명량 토요일 일요일 두 번 봤습니다.
영화가 너무 좋아 두 번본 것은 아니고 상황이 그렇게 되어서 두 번 보게 되었습니다.
명량은 우선 완성도가 아주 높은 영화는 아닙니다.
2시간의 러닝타임동안 절반은 해전씬에 쓰고 나머지 스토리를 1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에 풀어내려다보니 인물간의 개연성도 떨어지고 사건의 개연성도 떨어지고 이순신 장군의 내면의 고뇌와 지략가로서의 모습을 모두 엉성하게 보여주고 맙니다. 한숨과 고민과 절망적인 상황만 있을 뿐 관객들과 진정성 있는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느낌입니다.
최민식도 최근 인터뷰에서 밝혔지만 연기 인생에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알면 알수록 도저히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난 이분의 존재를 나 스스로가 제대로 이입하지 못했다“ 였습니다. 25년의 연기 인생에 누군가를 흉내내거나 그 분위기에 맞게 그럴듯하게 연기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본인의 연기철학과 습관이 이순신이라는 존재 앞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왕에 대한 충심, 그 절절했던 전쟁상황에서 백성들에 대한 연민, 본인이 수년간 만들어온 해상력이 원균과 선조의 고집으로 칠천량에서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있을 때의 심정, 고문으로 인해 간질과 환청으로 고생하며 부하들 앞에서는 티를 낼 수 없는 상황, 어머니를 여의고도 군영을 지켜야했던 상황, 모두가 힘을 합쳐도 모자를 판에 군내에 수습불가하게 퍼진 공포와 불신, 적군의 수에 대처하기 위해 답도 안나오는 전략을 구상해야했던 어려움. 막상 바다위에서 아군의 수십배에 해당하는 적군을 맞닥뜨렸을 때의 공포와 결의, 그 적을 보고 선뜻 나서지 못하는 부하장수들을 두고 대장선 홀로 상대와 싸워야할 때의 통탄 등등 수없이 깊어가는 고뇌를 최민식은 완벽히 소화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최민식의 연기는 그 고뇌를 최대한 담으려 애썼고 아쉬움도 남았지만 훌륭했습니다.
오히려 김한민 감독의 연출력이 이 훌륭한 배우를 제대로 못 활용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김한민 감독도 나름 이 영화를 만들면서 고민이 많았을 겁니다. 이미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를 토대로 긴장감을 표현해야 했고 너무 신격화해서도 너무 가벼운 사람으로 만들어서도 안되었기에 초점은 이순신에게 맞춰져있지만 신격화하려는 모습보다는 최대한 담담하게 그리고 전장의 긴장감을 표현하기 위해 영화 전체에 웃음을 유발하는 요소들은 단 한 장면도 넣지 않았습니다.(전투 이후 병사들끼리 이야기 하는 장면 제외). 다만, 아쉬운 점은 장면 장면의 연결이 매끄럽지 않아 배역에 몰입하려하면 다른 장면으로 넘어가버리고 몰입하려고 하면 또 다른 장면으로 넘어가 감흥을 깨는 경우가 많아 영화 초반이 지루했다고 봅니다. 이 훌륭한 배우들을 모아놓고도 공감대를 얻지 못한 데는 편집과 연출이 크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또... 음악효과는 좋았지만 배경에 깔린 음악들도 제 기준에서는 90년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좀 촌스럽더군요....
물론 중반이후의 해전으로 들어가면 전쟁의 처절한 상황을 잘 표현해내며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의 절반은 성공적으로 보여줍니다. 어느 정도 과장과 허구가 들어가긴 했지만 배가 몇 대였고 사상자가 몇 명이었다 같은 숫자놀음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 당시 수십배에 달하는 적을 맞이해야했던 조상님들의 두려움과 처절함은 똑같습니다. 그걸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블록버스터 액션영화이지만 해상전을 보는 내내 가슴이 울컥하고 먹먹합니다... 그만큼 과거 나라를 위해 목숨바쳐 싸웠던 조상님들에게 감정이입이 되어서 봤다는 것이겠지요...
이 영화를 보신 다른 많은 분들도 이 영화의 연출과 연기력에 감탄했다기 보다는 이 영화를 보며 그 당시로 어렴풋하게나마 돌아가 그들을 이해하며 오는 아픔이 이 영화를 강하게 포장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제 생각에는 그거면 됐습니다.
이야기를 조금 틀어서 말이 많은 고증으로 넘어가보면.....
첫 번째로 거북선을 불태우고 이순신을 암살하려다 실패하고 도망가다 죽은 배설은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그런 적 없습니다. 거북선은 이미 칠천량 전투에서 원균 그 등신이 다 잃고 판옥선 12-13척으로 전투했고 암살시도도 허구입니다. 물론 배설은 이 전투가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군사들을 데리고 탈영을 하였다가 정유재란 이후 권율장군에게 잡혀 참수당합니다.
두 번째로 조선군사들이 대부분 두정갑(포졸복이 아닌 갑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 그 전시 상황에 일반 군사들도 두정갑을 입는다는 게 말이 되냐고 하시지만 그 간 과거의 드라마가 소품비 아낀다고 싸구려 포졸복을 입혀놔서 그렇지 실제전투에서는 대부분 갑옷을 입고 싸웠습니다.
세 번째로 조총, 조총의 형태와 발사방법은 고증이 잘되었다고 합니다. 화승총이 우리가 익히알던 화승 심지가 다 타들어가야 발사되는 방식이 아닌 방아쇠를 당겼다가 방아쇠가 화승접시에 닿아야 발포되는 방식이 당시의 조총과 맞다고 합니다. 그리고 내구력이 약해 대포가 장착되지 않는 왜의 전함에서 조총을 대포 쏘듯이 약간 위로 들어서 쏘는데 사거리가 짧았던 조총을 그렇게 들고 쏘는 것은 고증이 잘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네요.. 다만 사거리가 50-100m정도 밖에 안되었던 당시 조총과 판옥선의 대포와 사거리가 비슷하게 나왔다는 것이 잘못된 부분이라 할 수 있겠네요. 대장선위에서 저격하던 장면 마찬가지....(사거리도 사거리지만 물살이 센 배위에서 저격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네 번째로 백병전의 유무.. 사실 명량은 전투방법이 아주 정확하게 적힌 자료는 없습니다. 판옥선의 수도 12척이다 13척이다 말이 많고, 왜군도 333척이다 130여척이다 말이 많습니다. 어느정도 상상력을 발휘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인데 이 영화에서는 공식적으로는 기록에는 없던 백병전이 대장선 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며 나옵니다.
제 생각으로 보자면 백병전이 아주 없진 않았을 것이지만 있다하더라고 배위에 그 많은 왜군이 개미떼처럼 타지는 못했다, 또한 대장선은 아닐 것이다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기본적으로 일본의 배는 스기목으로 만들어 가볍고 바닥부분이 현재의 고속선과 같은 v자 형태로 빠르지만 반대로 내구성이 약하고 물살에 쉽게 휩쓸립니다. 왜는 나름대로 본인들의 전투방식(기동성을 바탕으로 상대 배에 붙어 상대 배에 올라타 백병전을 벌이는 방식... 오랜 전쟁 후에 통일이 된 일본이기 때문에 모두 칼싸움에 능해 이런 방법을 취함)에 맞게 배를 건조했지만 물살 때문에 판옥선에 제대로 달라붙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영화에서도 어느정도는 구현이 되었지만 판옥선이 일본의 주력전함에 비해 훨씬 크고 높습니다. 그래서 사다리를 놓던지 갈고리를 던져 그걸 잡고 기어 올라가듯이 올라타야 했을 것입니다. 물론 판옥선 쪽이 위에서 화살을 쏘거나 창으로 찌르며 유리한 입장에서 전투를 했을 겁니다.
실제 사망자 수가 2명이라는 것만 봐도 왜병들이 판옥선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겠지요. 물론 기록에 보면 대장선이 왜선에 둘러싸인 부하장수의 배를 구해냈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일본은 필사적으로 백병전 위주로 끌고가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섯 번째, 폭약을 실은 배가 나오는데 이건 극적인 상황을 위한 도구이고 이런 기록은 없습니다.
여섯 번째, 대장선이 회오리에 휩쓸려 죽기직전 백성들이 어선에서 갈고리로 고정해 구해내는 장면.... 물론 허구입니다. 기록에 백성들이 산이나 바위에 숨어 전쟁을 보다 환호하고 감사해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백성들이 구해냈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다만, 이순신이 출정 시 판옥선만 출정한 게 아니라 세력을 크게 보이고 유사시 보급용으로 쓰기위해 뒤에 피란선들을 대동했다는 이야기는 있는데 감독이 이런 걸 조합한 듯합니다.
일곱 번째, 대장선 혼자서 왜선 전부를 상대했다는 내용. 영화처럼 오래는 아니지만 실제로 대장선 혼자서 버텼습니다. 영화에선 8시부터 오후2시까지 거의 6시간을 혼자 버틴 것처럼 나오지만 실제로는 한 시간 정도라고 합니다. 물론 그 많은 배들을 상대로 혼자서 한 시간을 버틴 것도 진짜 말도 안되는 기적같은 상황입니다. 이에 용기를 얻은 부하장수들 중 안위 등 두척이 지원을 오고 그 이후 나머지 배들이 지원을 왔다고 합니다.
여담으로 조진웅님께서 연기하신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대장선만 앞서나와 싸우고 나머지 11척이 뒤에 물러나있는 것을 보고 이건 이순신의 계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함부로 공격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여담의 여담이지만 와키자카는 기마병 1500으로 5만의 조선 보병을 쓸었고 이 외에도 전공이 대단한 장수였지만 이순신에게 한산도에서 철저하게 패배해 본 이후 이순신의 무공과 지략을 무서워했고 전쟁이후 일본으로 돌아와 이순신에 대한 책을 보며 충격을 받아 이순신장군을 진심으로 흠모하며 존경했습니다. 지금도 와키자카의 후손들은 이순신 장군님 탄생일 마다 한국을 찾는다고 합니다.
여덟 번째, 충파, 나무배끼리 부딪히는데 왜 판옥선만 멀쩡하냐며 말도 안된다고 하시는 분이 많지만 실제 명량에서 충파전술을 사용했습니다. 앞서 말했듯 왜군전함은 기동성위주라 내구력이 약하고 쇠못을 사용하여 녹슬어 충격에 약했지만 판옥선은 소나무에 나무못을 이용했을 뿐만 아니라 바닥이 편평한 형태로 물살에 쉽게 휩쓸리지 않았기에 충파가 가능했습니다. 갖다 들이박으면서 대포를 쏘며 휘저으니 당해낼 수가 없었던거죠.... 충돌로 왜군전함이 직접 파괴되지 않더라도 충격으로 인해 배가 중심을 잃으며 회오리에 빨려들어갔을 겁니다.
아홉 번째, 구루지마와 준사... 준사는 항왜장수로 실존인물이며 구루지마는 영화처럼 배위에 올라 화살을 맞고 이순신에게 달려들다가 목이 잘려 죽지는 않습니다. 전투 중 물에 빠진 구루지마를 준사가 저 자가 구루지마임을 이순신에게 알려주고 김돌손을 시켜 구루지마를 물에서 꺼낸 후 토막내어 배에 걸어 왜군의 사기를 꺾었다고 기록에 남아있습니다.
뭐 고증부분은 더 파고 들면 많겠지만 쓰다보니 지쳐서 더 못쓰겠네요.;
저도 사실 전문가가 아니라 이 중에서도 틀린 이야기가 있을 겁니다. 참고만 하십시오.
쓰다보니 글이 두서도 없고 이상해졌는데 단점을 좀 많이 적은 것 같지만 확실한 건 볼만한 영화이고 보고나면 지금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것에 감사하게 되고 조상님들께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듭니다. 남는 게 있는 영화이니 보시길 바랍니다.
p.s : 여기저기 보다보면 ‘국뽕영화’니 ‘국뽕으로 1000만달성 하겠네’ 같은 글들이 보이는데 대체 국뽕이라는 단어는 누가 만든거죠?...; 진짜 머저리 같은 사상으로 만든 단어 같은데 볼때마다 거북하네요. 아무데나 대고 두유노우김치 두유노우 연아킴 해대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상황파악 제대로 못하고 여기저기 국뽕이라는 단어붙이는 것들 보면 이해가 안되네요.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될 역사를 굳이 비꼬는 인간들도 많이 보이구요. 전 애국심 없느니 차라리 너네가 말하는 ‘국뽕’으로 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