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월호 1주기로 정국이 떠들석 합니다.
하여 안전에 대한 관심이 화두가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여기에 제가 일본 이주를 결심하게된 결정적 이유가 안전한 사회나 여유로운 삶을 영유 하고자 하여 일본행을 택하게
되였습니다.
우선 제가 한국 살았을적 경험을 얘기하고자 합니다.
저는 전기쟁이로 전기설비, 전기공사를 업으로 살아왔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호텔 시설과에서 근무하다 이건 젊은 사람이 할일이 아닌듯 하여 좀더 활동적인 전기건설직으로 옮
기게 되였습니다.
그러면서 서울, 경기, 충청등으로 여기저기 다니며 건설일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건설직이다 보니 갖은 위험에 노출된체 근무하곤 했습니다. 작게는 멍이드는 상처에서 부터 크게는 뼈에 금이 가는 부
상까지 겪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덤벙되서 실수 했다 생각했고 좀더 숙련하여 전문가가 되야지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정말 여기선 살수 없겠다 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였습니다.
산부인과 병원을 신축하는 현장에서 두달정도 일을 하고 있는 무렵, 전기쪽 인력회사에 사람을 부탁하여 아저씨 한분
과 제가 같이 일을 하게 되였습니다.
그 아저씨와 저는 5층으로 올라가 전기배선을 입선 하는 작업을 하게 되였는데.. 그 아저씨가 도면을 이리저리 보시더
니 잘 안보인다고 하며 베란다로 나가고자 하였는데..
밖으로 나간다고 나간곳이 엘레베이터 수직 갱도 였습니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 아저씨를 말릴 틈도 없었습니다.
그 아저씬 지상 5층에서 지하 3층까지 그대로 떨어지셨고 저는 고함을 고함을 지르며 지하로 내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내려가다 현장 부소장과 몇몇 인부와 지하까지 내려왔고 지하 3층 엘레베이터 갱도에 도착하니 갱도에 피가 흩뿌려진
상태였습니다.
인부들이 아저씨를 들어 지상으로 옮겼고 전 주변에 있던 천막에다 그 아저씨의 떨어진 살조각들을 모아 싸서 지상으
로 올라갔습니다.
정말 피가 뚝뚝 흐르는 살점들을 들고 구급차가 오길 기다리는 그 시간은 몇시간이나 되는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기다리다 소장이 연락을 듣고 현장에 도착했고 그 즈음 구급차도 도착하여 아저씨는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되여 갔습니다.
이때 제 귀를 의심하는 말을 소장으로 부터 듣게 됐습니다.
'씨발 왜 떨어져서 지랄이야..'
그 아저씨가 탄 구급차가 미처 사라지기도 전이였는데.. 사람이 그 높이에서 떨어져서 사람이 정말 찣겨져 처참한 상
황에..
그 소장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은 그 아저씨의 안부를 묻는 말이 아닌 마치 아저씨가 나쁜일을 저지른것 처럼 말하는 거
였습니다.
더 놀라운건 주변에 인부들도 걱정하는 말대신 아저씰 나무라는 말.. 일색이였습니다.
이때 정말이지 망치로 머리를 한대 맞은 기분이였습니다.
게다가 그 갱도.. 전에 회의 시간에 제가 농처럼 사람이 떨어질수 있으니 굴러다니는 로프 라도 묶어두고자고 얘기했던
곳이였습니다.
그때 주변에서 그런거에 신경 쓸 시간 있으면 공사기간 맞출 신경이나 쓰라는 얘기 뿐이였습니다.
정말이지 소장이나 주변 인부들이 저런 말을 하는건 들었을때 제심정은 정말 사람맞나 싶더군요..
하여 그만뒀습니다.
이러다 언제 나도 사고나서 병.신 될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그만두고 건물관리 일을 하다 일본 여성과 결혼을 하여 일본 이주를 결심하고 지금은 일본에서 전기, 통신회사 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처럼 건설현장에 투입되여 일을 하곤 하는데...
여긴..
한국과 정말 정반대 이더군요..
정말 세심하게 안전에 대해 신경쓰고 있습니다. 한국사람으로서 쪼잔하게 그런것 까지 신경을 쓰나 할 정도로 안전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아침에 현장 도착하면 미팅을 갖고 안전회의를 합니다. 오늘 현장은 어디어디가 위험성이 있을거 같으니 어느점을 주
의해달라 라는 회의를 마칩니다.
그리고 일을 시작합니다. 일을 하는 와중에도 팀장급은 실질적 일은 안하고 항상 안전에 대해 주의를 당부하곤 합니다.
시간이 걸려도 빠른 일처리보단 안전하게 시간이 걸리는것을 택하고 안전에 관해 문제가 발생할것 같으면 일을 중단시
키고 다른 방법을 모색하곤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한시간 걸릴일을 두,세시간이 걸릴적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케이블 드럼(500kg)을 일층에서 삼층으로 옮기는데 한국에서는 여러명의 인부들이 들어서 계단으로 옮기곤
했습니다.
일본은 그거 하나 옮기는데 크레인을 부릅니다. 그러곤 정말 그거하나 올려주고 철수 합니다.
크레인 한대 부르는데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데 안전에 위협이 됨에 일본에서는 인력을 투입하는것 보단 비용을 들여
기계를 이용하는것에 감탄했습니다.
한가지에 예를 들었지만 이런 경우가 정말 많은곳에서 한국과 일본이 차이가 많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에서 일하는데 있어 감동했던게 주변의 시선이 전혀 다르다는 것에 있습니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한국에선 노가다 꾼으로 치부하지만 일본에서 장인이라 하며 당신들 덕에 우리가 이렇
게 살수 있다 라는 인식이 정말 감동하게 되더군요..
안전이라는 것은 그건 불편함을 의미 하기도 합니다.
계속 헬멧을 쓰고 작업하는것은 불편하기도 하고 활동에 제약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말 만일의 하나.. 사고가 발생
했을 경우 안전을 지켜준다는 의미에서 불편을 감수함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까지도 이런 인식이나 의식이 일반적이지 않다고 할수 있죠..
본인이나 주변 지인,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약간의 불편이나 약간의 시간의 지체는 감수해야 안전한 사회를 만들수 있다
고 생각합니다.
말주변이 없어서 죄송합니다.
그저 요즘 사태를 보자니 답답하고 죄스런 마음이 들어 제가 느낀 개인적인 경험으로나마 얘기 나누고자 했습니다.
뜬금없었더라도 이해해주시고 다들 올해 무탈하셨으면 합니다.
일본에서 이대너구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