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도도새...

펠레일 작성일 06.04.11 11: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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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도도새가 왜 멸종 되었는지 아니?"



할머니의 단호한 태도에, 철수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적어도 그녀는 지금까지 한번도 그에게 화를 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의 눈엔 불꽃이 담겨있었다.

할머니가 그동안 그를 훈계하기 위해 했던 잡다한 이야기들과는 다르다는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도도새는 따뜻한 날씨와 풍부한 먹거리로 가득한 섬에서 살았지.

그 섬의 특성상 도도새를 위협하는 육식동물 따위는 전혀 서식하고 있지 않아서 도도새는 마음편히 지낼수 있었단다.

아무런 천적이 없이 지내다보니 도도새의 날개는 점점 퇴화되었고, 결국에는 하늘을 날수 없게 됐단다."



할머니의 입으로부터 들려져오는 말에는 철수로 하여금 거부할 수 없는 불가항력 같은것이 담겨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남성적으로 변했고,

젊었을적의 여성스러웠던 그녀의 목소리는 이제는 완전히 중성적인 목소리로 변해있었다.

그리고 철수는 그저 방바닥에 주저앉아 그런 할머니를 멍하니 올려다 볼 뿐이었다.



"거기까진 좋았지.

하지만 도도새는 더욱더 많은 양의 음식을 섭취하기 시작했단다.

그리곤 얼마 안있어 비대한 몸을 자랑하게 되었지.

날지도 못하고 몸이 비대해진 그들은 마치 두발로 걸어다니는 돼지의 모습과 다를바 없었단다."



철수는 인상을 썼다.



"정말 흉측하기 짝이 없겠군요.."



"그래. 그들은 천국같은 곳에서 귀족처럼 생활했단다.

그리고 그들 주위의 것들은 모두 자신들을 위한 것 인줄로 믿으며 떵떵거리며 살았지.

나무는 자신들이 쉴 그늘을 제공하기 위해 있는거이고,

햇빛은 자신들의 온도 유지를 위해서 있는것이고,

바람은 자신들에게 쾌적함을 주기 위해서 있다고 믿었단다.

자신들이 이 세상의 지배자인줄 믿으며 바보같은 삶을 살았지."



"어리석군요"



"그래.... 하지만 불찰의 끝에는 파멸이 오기 마련이란다.

그들은 퇴화된 날개와 비대해진 몸으로 그 섬으로 들이닥친 인간들과 직면하게 된단다.

인간을 봐도 무서워하지도 않고 도망가지도 않았지.

도도새는 자신들이 이 세계의 지배자라고 믿었기에,
인간을 봐도 그저 방관해 버리고 말게 된거란다."



철수는 악의없는 미소를 지었다.



"인간을 무시하다니, 어떻게 됐을지 결과는 뻔하네요."



"그들보다 상위 종족인 인간을 무시한 대가로 도도새들은 인간들에게 무참히 잡혀나갔단다.

한번에 한마리씩 새끼를 베는 느린 번식속도 때문에 도도새들은 더 이상의 대를 잇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져 내려만 갔단다.

그리고 결국엔 그렇게 절멸하게 되고 말았지."



짧은 동안의 정적은 흐르고, 할머니의 눈빛은 빛났다.

그녀의 얼굴은 쭈글쭈글한 세월의 흔적을 지울 수 없었지만, 그녀의 반짝 눈빛만큼은 그녀가 살아온 지혜와 연륜을 담고있었다.

철수는 잠시 그 눈빛에 홀린듯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그녀의 이야기에 대한 감상평을 만들어냈다.



"도도새는 정말 어리석은 존재에요.

자신들의 진정한 위치를 직시하지 못한 댓가로 그런 결과는 당연하다고 봐요"



그녀는 철수의 말에 잠시동안 아무말없이 잠시 눈을 감고 가만히 있더니,

금방 눈을 뜨고는 아까의 눈빛으로 말을 시작했다.



"그래. 도도새는 정말 말할것도 없는 최악의 종족이었단다.

후대의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멸종된 그들을 연민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도도새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란다.

그들은 둔했고, 멍청했으며 자만했고 거만했지.

그리하여 그들은 뒤룩뒤룩 살져 갔고, 자신에게 주어진 천부적인 재능마저 잃고 말았단다.

그들은 마치...."



그녀의 눈빛에서는 철수를 뚫고 지나갈 것 같은 광선이 나오는듯했다.

그녀는 잠시간의 뜸을 들이더니 일관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너와 같아"



철수는 할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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