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문 바깥에서였다. 저 괴물은 언제나 날 노리고 있었다. 입에는 거품을 물고 조금씩 침을 흘리는 소리를 내면서. 피하려고도 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나는 지금 갇혀있다. 어떻게든 살려고 애를 썼다. 그 괴물들은 다행히 내 방까지는 들어오지 못했다. 아직까지는 문을 걸어 잠근 것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었지만, 언제까지 그 효과가 지속될지는 알지 못한다.
일자리를 그만두고 나가 살던 숙소에서 다시 집으로 들어왔을 때 부모님은 새벽에 나가 늦은 저녁에 들어오는 일을 하고 있었다. 너무 죄송스러웠다. 하루 종일을 인터넷만 붙잡고 계속 일자리를 알아보았지만 나이를 먹을대로 먹은 나같은 사람을 고용해주는 곳은 없었다. 아르바이트 자리조차 씨가 말랐다. 여자, 여자, 여자, 빌어먹을 고용주들은 전부 여자만 찾았다. 그것도 나이 어린. 이런 자식들은 분명히 흑심을 품고 있을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망상에 빠진 적이 있다. 아마도 울화통이 쌓여서 그걸 풀 상대가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망상은 이제 벗어난 지 오래다.
그런 망상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저 괴물은 계속 속삭여온다. 그 속삭임의 내용들은 내 약점을 계속 공격하는 것이 전부이다. 사지 멀쩡한 놈이 왜 이렇게 좋은 날 방에 틀어박혀 지랄을 하고 있느냐. 좀 나가봐라. 이 문을 열어봐. 이 바보천치새끼. 그들의 속삭임은 너무나 잔혹하다. 계속 귓가에 그들의 말이 울린다. 그들의 침이 입안에서 부글부글 끓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손톱으로 문을 긁어대는 듯한 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나가지 못하는 것은 그 괴물들 때문이다. 이 문을 열면 그 괴물들은 얼씨구나 하고 내 팔을 잡아 뜯을 것이고 내 다리를 뜯어가 신경줄기를 마치 게맛살을 찢어먹듯 가닥가닥 하나씩 찢어먹을 것이다.
도대체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될지 두렵기만 하다. 인터넷에도 도움을 요청했다. 내 집주소와 사정을 게시판마다 올렸다. 결국은 미친놈 소리만 들었다. 부모님은 이미 그들에게 먹혀버린 지 오래였다. 그들의 비명이 울릴 때 나는 귀를 막았다. 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그들을 모른 척 했다. 그것이 내게 죄책감의 무게를 안겨주었다. 그리고 그 직후, 그들은 그렇게 숨죽이고 있던 내 존재를 알아챘다.
하지만 방문이 잠겨 있었으므로 그들은 더 무엇을 하지 못했다. 어쩌면 방문에 무언가 장치가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있는 대로 불을 다 켜두었기 때문에 들어오기가 쉽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괴물은 낮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 시간에 나는 먹을 것을 들고 조심스럽게 내 방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들이 깨지 않도록 특히 주의해야 한다. 낮이라도 그들이 깬다면 결과는 참혹할 것이다. 인터넷은 내가 고립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다가왔다. 나는 결국 선택을 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맞서 싸우느냐, 계속 갇혀 있다가 죽음을 당하느냐. 맞서 싸우는 것을 선택하기 까지는 꽤 많은 양의 용기와 계획과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결국 선택은 끝났다. 이제 행동으로 옮겨야 할 시기가 다가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부엌에서 먹을 것을 챙기는 척 하면서 칼과 얼음송곳 등등 무기가 될만한 것들을 챙겼다. 고기를 써는 넓적한 칼도 제격이었다. 오늘은 내 기필코 이 괴물들에게서 해방되리라, 굳은 결의가 내 온 몸을 흥분시켰다.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밤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나의 전의는 한층 더 짙어져 갔다.
드디어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내 약점을 공격하는 진부한 수법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난 그들의 손에서 놀아나지 않는 담대한 인간이 되어 있다. 송곳은 허리춤에, 양 손에는 칼을 들었다. 스탠드랑 거울이랑 랜턴 같은, 하여간 빛을 낼 수 있는 것을 전부 문 앞으로 가져다 놓았다. 아직도 부글부글 끓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한 후 천천히 문을 열었다.
어두움이 가득한 마루의 공간 한가운데서부터, 그 괴물은 모습을 천천히 드러냈다. 미노타우르스처럼 소의 머리를 하고, 어깨부터 뻗어나온 여러개의 촉수에는 각각 손들이 달려있었다. 그 손들에는 길쭉한 손톱이 길러져 있었고, 그 손톱의 밑에는 부모님의 것일지도 모를 고기조각들이 피와 털 같은 것들과 함께 말라붙어 있었다. 그 끔찍한 몰골이 하나 더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제기랄.....놈은 하나가 아니었다. 두 놈이었다. 인큐버스의 종류? 혼자 다니지 않는 몽마 같은 존재? 하여간 그게 둘이건 뭐건 상관 없다. 나는 오늘 죽든가 살든가 결판을 내기로 한 상태이니까.
그놈들이 내게 촉수의 손가락들을 뻗어왔다. 나는 스탠드를 들어 빛을 비추었다. 그들이 휘청대는 것이 느껴졌다. 역시 이놈들은 어떤 종류의 빛이건 간에 빛이라면 약하다. 스탠드를 놓고 랜턴을 드는 순간 나는 자신을 얻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손쉽게 놈들을 요리할 수 있다.
휘청대던 한 놈이 내 스탠드를 휘어잡으려 했다. 나는 그 손목을 바로 고기 써는 넓적한 칼로 쳐버렸다. 영화에서야 한 번에 잘도 끊어진다지만, 이건 카타나가 아니었다. 칼날은 반 정도만 들어갔을 뿐이었다. 그놈들의 몸속을 흐르는 더러운 녹색 체액이 내 얼굴에 튀었다. 무심결에 랜턴을 들었을 때 랜턴에 놈들의 체액이 묻으면서 빛이 약해졌다. 나는 황급히 그것을 닦아냈다. 닦아내는 동안 다른 한 놈이 비명을 질렀다. 이제까지 이 세상에서 들어본 소리 중 가장 끔찍하고 기괴한 소리였다.
나는 손목을 친 칼날을 다시 뽑아 내 앞의 놈을 되는대로 난도질했다. 괴물 중 한 놈이 죽어간다. 내 앞에서 휘청대던 놈은 목에 깊은 상처를 내주었고, 순식간에 사지가 체액 투성이가 되었다. 내 인생을, 우리 부모님을 잘도 가지고 놀았겠다. 나는 그동안의 놈들의 속삭임에 당했던 분노를 모두 터뜨리고 있었다. 모든 감정이 치솟는 듯 했다.
비명을 지른 한 놈은 내가 랜턴을 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곤 뒷걸음질 쳤다. 나는 그 놈을 랜턴을 비추며 쫒아갔다. 빛 때문에 놈의 촉수들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나는 또 다시 그 촉수들을 인정사정없이 난도질 했다. 그 놈이 쓰러지자 나는 칼을 버리고 그 놈의 눈에 손을 가져갔다. 두 눈을 모두 뽑아 꽉 눌러 쥐어 터뜨려서는 벽에 던져버렸다.
놈들은 죽었다. 나는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치다가 마루에 주저앉았다. 숨을 몰아쉬면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제, 모든 것은 끝났다. 누군가 이 난장판을 수습해주었으면 했다. 모든 체력을 단번에 쏟아부은 댓가인지, 나른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정신을 잃었다.
“심하군, 이건.”
늙은 형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오셨습니까.”
젋은 형사가 늙은 형사를 맞이했다.
“그래, 신고한 건 누구야?”
“가해자 본인입니다. 신고를 하더군요. 괴물을 잡았다고.”
“뭐?”
“괴물을 잡았답니다. 이거 골치 아프게 생겼는데요.”
“뭐야 그럼. 정신병자야?”
“그런 것 같습니다. 살해당한 사람들은 신고한 사람의 부모로 추정됩니다. 처음에는 부친이 당한 것 같더군요. 방에서 나오자마자 먼저 손목을 내리치고는 그 다음 목 언저리 등을 난도질, 그 다음에는 비명을 지르고 있는 모친에게 다가가 난도질을 하고 안구를 손상한 다음 얼음송곳으로 상해. 이런 차례로 생각됩니다. 왠지는 모르지만 랜턴도 들고 있었던 것 같구요. 아마도 시야를 랜턴 빛으로 안보이게 하려고 그런 게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사체들은 언제 죽은 거야?”
“한 나흘 쯤 전인 것 같습니다. 감식반 말로는.”
“그럼, 죽이고 나서 이 때까지 가해자는 이 시체들이랑 뒤섞여 있던 거야?”
“예. 그런데 정말 정신병 감정을 의뢰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처음 현장 도착한 순경도 충격을 받아서 자세한 진술을 듣기가 어려웠는데, 듣고 보니 내가 다 미치겠더군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보인 게, 가해자가 부패한 사체를 뜯어먹고 있더랍니다.”
“어욱, 씨발.....”
늙은 형사는 더 이상 참기가 어려운 듯, 손을 내저으면서 말했다.
“가해자는 정신감정 받아서 처리하고, 여긴 좀 치우라고 그래. 더 수사할 것도 없잖아.”
“알겠습니다.”
늙은 형사는 뜯어먹힌 사체들이 빽에 담기는 것을 확인하면서 그 집을 떠났다. 모든 사람들이 일을 마치고 떠난 집 안은 을씨년스러워졌고, 시간은 흘러 밤이 찾아왔다. 그리고 누구도 불을 켜지 않은, 피냄새가 진동하는 그 어둠의 공간 한가운데서, 천천히 손이 하나 떠올랐다. 그 손의 길다란 손톱에는 어떤 동물의 것인지 모를 고기 조각이 털들과 함께 말라붙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