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평 남짓 되는 자그만 부엌.
탁자에는 내가 마련한 음식들의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있다. 뚜껑을 연 지 얼마 안되었는데, 저녁 준비과정 때문에 남편은 허기가 졌었는지, 아니면 눈앞의 음식에 회가 동한 건지. 전채를 끝내기가 무섭게 급한 동작으로 집게손가락으로 들고 있던 뼛조각의 살을 남김없이 발라내면서 말한다. 그제서야 남편의 표정에 약간의 여유가 생긴다. 입에는 아직 소스가 묻어있었다.
“조금 더 소스를 진하게 했어도 괜찮을 것 같았는데.”
하지만 나의 음식관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진한 바비큐 소스는 어쩌면 본래의 육질 맛을 떨어뜨릴 수도 있었다.
이렇게 직접 소스까지 만들어 먹은 지도 내 인생에서 따지면 이제 꽤 되어 가고, 아무리 힘들어도 요리는 해먹는 것이 더 맛있다는 것. 그게 처음 만나서부터 결혼생활 5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남편과 나의 공통된 의견일치였다. 하지만 이런 품평엔 아직은 좀 익숙하지 못하다. 조금 부루퉁해졌다.
“내가 요리하는 방법을 알잖아. 그런 것 싫어하는 거. 소스는 어디까지나 소스일 뿐이고 본래 재료의 맛을 살려줘야지.”
“그렇긴 하지. 내가 괜한 이야기를 했는가 보군.”
“정 그렇다면 다음엔 한 번 빵가루를 묻혀서 기름에 튀겨볼까? 비린내가 좀 가시게?”
“그럼 돈까스나 다른 튀김요리랑 다름이 없지. 그건 내가 싫네요. 그것보다도 와인을 한 잔 곁들이면 그럴싸하겠는데.”
“아직 이틀 전에 따둔 게 남아있을 거야.”
그 말을 하면서 일어서려고 하는데 남편이 말린다.
“아니야, 요리하느라 고생했는데 내가 가져오지. 어디 있는지도 아니까.”
남편은 손수 와인 잔과 병을 가져와서 잔에 반쯤 따른다. 진한 보라색이 마음을 뒤흔든다. 언제 보아도 이 색은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무언가가 있다고 느낀다. 그건 남편도 똑같이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힘든 바깥에서의 전쟁 같은 일들. 나는 금융과 경영 관련에서 컨설팅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고, 남편은 원래의 대기업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지금은 다른 사업을 추진 중이다. 5년이라는 시간동안 권태기라는 단어 따윈 모르고 살 정도로 우리는 누구에게든 천생연분이라는 소리를 듣고 살았다. 그 말들이 겉핧기식 소리처럼 들리지 않을 정도로 많은 면에서 남편은 정말 내 마음과 맞아 떨어지는 무언가가 있다.
“역시 좋군. 선택이 나쁘진 않았어. 1935년산 보르고뉴라.”
“제철을 만난 포도였죠. 수확도 좋았고.”
“내가 제철을 만난 건 바로 당신을 만나고 나서부터야.”
“어쩜......하나도 변하지 않네요. 그 비행기태우기.”
“나쁠 건 없잖아?”
남편의 와인잔과 접시가 동시에 비었고, 나는 다시 갈비를 준비해왔다. 물론 남편의 취향을 참작해서 남편은 미디엄으로, 나는 웰던으로. 남편은 다시 포크를 들었다. 좀 질긴 부위에 칼을 쓰면서 남편은 내게 넌지시 물었다.
“일은 잘 되어가고 있는 거야? 힘든 건 없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내가 근무하고 있는 증권회사의 골치 아픈 상사 하나가 생각이 났다. 분명 내가 결혼을 한 걸 알면서도 치근덕대는, 머리엔 비듬이 떡지고 배는 튀어나온 전형적인 중년의 추한 인간. 대체적으로 그런 인간들은 하나같이 처음엔 열심히 일할 것처럼 동분서주했지만 능력보다는 그냥 시간이 지나면서 생긴 최소한의 관리 노하우로 남아있는 그런 유형의 사람.
원수를 만들고 싶지는 않지만, 조금만 더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면 ‘고려’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문제다.
“안 그래도 좀 귀찮게 하는 사람이 하나 있네.”
“흐흐, 당신은 너무 예뻐서 탈이야. 상대는 어때?”
“그다지 내 취향이 아니야. 당신은 보면 어떨지 몰라도.”
“그러게. 어떨까? 만약 개기름이 줄줄 흐르고 머리가 벗어진 늙은 인간이라면.....”
“딩동댕.”
"술담배 같은 건 당연히 하겠지?"
"말이라고. 그나마 요즘은 건강기록 때문에 그것도 줄이고 있긴 한데....그래도 꽤 골초였지."
"그럼 좋지 않네....."
남편은 입맛을 쩍 다셨다. 갈비에 뿌린 소스가 좀 많았던 탓인지 입 가로 흐르는 소스를 냅킨으로 닦아내며 남편은 말을 이었다.
“어딜 가나 그런 인간들은 있게 마련이지. 짜증나는 노릇이야. 하지만 뭐, 상관없지. 그런 인간들은 또 그런 인간들대로 어떻게든 쓸모가 있는 거니까.”
미간을 찌푸리면서 남편은 와인 잔을 기울였다. 남편의 그 ‘내 일을 두고 남 보듯 하는’ 말투가 또 살짝 내 속을 긁었다. 남편은 다 좋은데 가끔 이러는 게 참 좋지 않은 버릇이다. 긁힌 김에, 내뱉어 보았다.
“그 인간이 나한테 심하게 지분거리면 당신은 어떻게 하려고?
“그거야 당연한 이야기를.”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그 뒤는 들어보지 않아도 안다. 정말, 이 사람의 머릿속은 온통 나와 같다.
도대체 이 인간에게 질투심이란 게 있기는 한 걸까. 이번엔 그걸 떠보기로 했다. 포크에 살코기 한 점을 찍어 단지에 담긴 치즈를 묻히며 나는 넌지시 물었다.
“만약 내가 당신보다 멋진 남자 만나고 다니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거죠?”
“그것도 이미 알고 있잖아. 하지만 한 번쯤은 그래도 괜찮은지 물어보긴 해야겠지?”
남편은 살짝 뾰루퉁한 표정으로 맞받아친다. 꼬치구이에 양껏 뿌리라고 놔둔 데리야키 소스병도 마구 흔든다. 마치 듣기 싫은 이야기를 들은 아이마냥..... 귀여워진다. 하지만 내 입으로 꺼낸 그 ‘만약’이라는 그럴 일은 절대로 없을 거다. 내 이런 미각적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이 딱 맞는 사람은 어딜 가도 찾을 수 없으니까. 그렇게 몇 사람을 보냈었다. 그리고 남편은 그에 대해서 한 마디도 물어보지 않았다. 남편은 힘들게 잘라낸 그 질긴 부위를 잠깐 씹다가 다시 말을 꺼낸다.
“하지만 당신도 즐길 권리는 있어. 내가 그러하듯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즐기는 게 당신 습관이긴 하지만, 그것도 이젠 좀 바꿔야 할 때 아니에요? 나이도 어느 정도 들었고, 습관도 그만큼이면 이젠 뭔가 좀 찾아낼 때가 되었는데.”
포크를 내려놓으며 한 말에 남편은 고개를 지긋이 저었다.
“이게, 참 한 번 맛들이기 시작하니까 어쩔 수가 없더라고. 아직까지도 내가 그 맛을 잘 모르겠어. 경험도 쌓았고 이젠 어느 정도 되었다고 생각은 하는데도, 아직까지 당신만큼은 뭔가 복잡한 기준도 생기지 않고, 따라 맞출 수가 없더란 이야기지. 사실 그런 게 내가 당신에게 많이 반한 부분이기도 하고. 내가 초보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당신은 예술가야. 정말이야.”
나에 대해 말하면서 짓는 저 진지한 표정. 그게 또 내가 남편에게 혹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언제나 그렇듯, 나는 남편의 말에 가볍게 웃음 지었다.
사실 남편도 처음엔 내 요구들에 힘들어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남편 역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난 후에는 내 요구들에 잘 따라 오는 편이었다. 남편을 초반부터 잡는다는 건 역시 이런 것인가 싶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나 역시 남편의 요구들에 맞춰가는 부분들이 있었다. 서로가 많이 힘든 시간들이었지만, 이제는 적어도 영혼 수준에서의 합일을 이뤄낸 듯한 기분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특히 서로의 미각적 취향을 확인하면서 이런 담소를 나누는 식사시간에는.
남편 역시 어느새 갈비를 다 먹었고, 나 역시 맛있는 부분만 골라가며 먹었다. 식사를 모두 마치고, 서로 같이 뒷정리를 했다. 언제나처럼 남편은 설거지, 나는 여러 가지 반찬들의 정리. 그리고 남편이 잠시 책을 뒤적일 동안 나는 상큼한 과일을 곁들인 쟁반을 가져왔다. 쟁반을 놓는 순간, 남편의 손이 둔부에서부터 나의 허리를 감아왔고, 나는 그만큼 부드러운 나의 몸을 그 손놀림에 맞추어 그의 몸에 안겼다. 우린 이런 면에서조차 완벽했다. 그렇다. 우리는 완벽하다.
극치감에 몸을 떨던 남편은 내 옆에서 숨을 몰아쉰다. 그의 억센 두 팔은 계속 나를 끌어안은 채다. 이것도 정말 내가 반한 부분이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기 볼일이 끝나면 떨어져 나가버렸다. 하지만 남편은 언제나 이렇게 나를 사랑한다는 표현으로 끌어안고 있다.
나 역시 같이 느낀 극치감에 겨우 손을 움직여 그의 가슴을 쓰다듬는 게 전부일 뿐이다. 가슴에 난 그의 털을 조금씩 고르면서, 나른한 이 와중에도 머릿속으론 내일의 업무를 생각해낸다. 내일은 오전 11시에 투자이익에 관한 회의가 있고, 오후 1시에 모 대기업의 구조조정 컨설팅의 중요회의가 있고, 오후 3시에는 마지막으로 자금을 회수해야 할 기업들에 대한 조치를 명령하게 된다. 물론 그들이 그 때까지 어떤 답변을 주는가에 따라서.
남편이 내 맘을 읽었는지, 내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는 마지막으로 정리할 것을 향해 일어난다.
“샤워는 안 해?”
“기왕이면 계속 땀을 흘리는 게 좋아서 그래. 힘들텐데 먼저 자.”
“누가 정력가 아니랄까봐. 지금 사업도 그렇게 밀어붙이고 있지?”
“하핫, 귀여운 우리 마님. 얼른 주무세요.”
닭살스런 멘트와 함께 가운을 걸친 남편은 지하로 내려가고 있고. 나는 무거운 눈꺼풀을 느끼고 있다. 조금 후, 방음장치가 잘 되어 있는 집이기는 해도, 바닥을 울려대는 느낌은 전해져 온다. 쿵쿵대는 느낌.
뇌를 발라버린 두개골부터 시작해서, 허벅지살과 넓직한 대퇴부살, 갈비, 팔의 근육살 등등은 조금 살점이 붙은 채로 가지런히 놓아두었고, 질긴 십자근과 괄약근, 식도, 눈알 같은 먹지 못할 것들은 따로 모아둔 통에서 식사시간동안 염산에 의해 다 녹여졌을 것이다. 남편은 지금 우리가 먹고 남은 뼈다귀들에 마저 염산을 뿌려 깨끗이 한 후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일이나 모레쯤 해서 그렇게 지하에 쌓인 3명의 늙은남자, 2명의 여자아이, 2명의 남자, 1명의 여자 분량의 뼛가루를 여느 때처럼 인적이 드문 어딘가에 뿌려놓고 올 것이다. 모레는 토요일이니까 그 때가 좋을지도 모르겠다. 기분전환 삼아 드라이브도 갈 겸 남편과 오붓하게. 남편이 있어 편한 건 이런 부분이다. 일단 힘쓰는 일은 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 나는 그냥 부위별로 ‘도축’만 하면 되는 일이니까. 내일은 남은 소장이나 대장으로 곱창 순대 같은 것들을 만들어 두어야 겠다. 물론 일이 끝나고 와서.
쿵쿵거리는 절구의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온다. 나는 깊은 잠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