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김호중, 나이는 32, 병명 심경근색과 특이성 혈관경화의 합병증, 입원으로 약물치료 중이었음. 사인, 심장마비.
“이게 뭡니까?”
“생물학적 죽음, 데드싸인에 관한 기록입니다. 보시다시피 5월 16일 23시를 기준으로 해서 최소 2시간동안 심장박동수도, 뇌의 활동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내 말은 왜 시체의 기록을 내게 가지고 와서 이러는지에 관한 겁니다. 이런 건 부검실에서 처리해야 할 문제 아닌가요? 그리고, 이 시체가 무슨 문제라도 일으켰습니까?”
“아주 큰 문제를 일으켰죠. 일어나서 돌아다니고 있거든요.”
“뭐라고.....했습니까?”
“일어나서 돌아다니고 있다고 했습니다.”
부장 대리급까지 올라왔고, 그래도 꽤 실력은 알아준다는 내 모든 감각으로, 그 모든 데이터들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있으면서도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검사를 받으려고 온 김호중이란 사람은 너무나 쾌활한 표정이었다. 정말 죽은 사람인지조차 의심이 갔다. 말 그대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자의 표정, 바로 그것이었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에 대해 기쁨을 느끼는 그런. 하지만 검사결과들은 그런 감정들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분명히 그 사람의 모든 바이탈 싸인을 다시 체크해 보았다. 총 7번에 걸쳐 검사하고 또 검사하고. 몇 억 원을 주고 사온 기계들은 하나같이 그 사람의 바이탈 싸인을, 그 어떤 것도 잡아내고 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생물학적으로는 완전히 죽었는데, 산 사람처럼 움직이고 말도 하고 생각도 그대로라는 말이다.
확실히 죽은 사람이 어떻게 생명체처럼 저렇게 일어나 돌아다니고 있을 수 있는가. 이건 말 그대로 엄청난 모순이었다. 하지만 그 모순이 지금 내 눈앞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그 사람이 지금 내게 기분이 썩 괜찮은 것 같은 말투로 소리를 지르고 있다.
“이제 일어나도 됩니까?”
원장실 옆에 마련된 회의실에는 각 과의 부장급과 부장대리급 의사들이 모두 모여 둥근 탁자에 앉아 있었다. 그들도 김호중이란 사람의 상태보고에 어이가 없어 하는 눈치였다.
“의사생활 30여 년 만에 이런 경우는 정말 처음이로군....허허.....”
병원장은 황당하다는 말투로 서류를 던져놓았다.
“조직검사 결과는 어떻게 된 거야?”
“그게......정말 이상합니다.....”
조직검사를 담당했던 책임의사가 서류를 뒤적였다.
“마치, 그 사람의 몸에서만 시간이 정지된 것 같은 느낌입니다. 어떤 위해를 가해도 세포가 죽지를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떤, 생명체라고 부를 만한 움직임도 전혀 일어나고 있지 않았습니다. 세포를 분해할 수도 없고 DNA검사를 해볼 수도 없었고...... 정말 시간이 딱 정지되어 있지 않고서야 이런 일이 가능할 수는....”
“결국 우리가 할 일은 두 가지야.”
원장은 미간의 주름을 한껏 지으면서 말했다.
“저 사람의 상태를 밝혀내든가, 아니면 확실하게 죽이든가.”
“네?”
나는 내 귀에 들린 것이 맞는지 되물었다. 원장은 얘가 왜 이러냐는 듯이 나를 한 번 힐끗 쳐다보고는 말했다.
“우리는 수많은 환자들을 돌보고 있어. 그 중에는 이 병원 경영에 꽤 도움이 되는 인사들도 많이 있지. 그런데 이런 자연에 역행하는 환자의 상태가 알려져 봐. 아무리 우리가 어떤 보고서를 들이밀고 어떤 말을 해도 이건 그냥 병원의 실력 탓으로 치부될 게 분명해. 죽지 않은 사람을 죽었다고 말하는 사람들한테 사람들이 자기 병 맡기러 오겠어? 평범한 개념의 사람이라면 어떻게 저 김호중 환자 보고 죽은 사람이라고 말하겠냐고.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우리에겐 저 김호중 환자는 갑자기 생긴 종양과도 같은 거야. 종양은 어떻게 해야 하나? 떼어내기도 하고, 원인을 찾아서 적절히 조치하기도 하지. 그런 논리라고.”
원장은 서류를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이맛살을 있는 대로 찌푸린 채였다.
“일단은 입단속들 잘 시켜. 언론이든 일반인이든 간에 이 일을 모르게 만들라고. 새나가면 끝까지 추적해서 확인되는 사람은 여기 나가게 만들 거니까. 그리고 김호중 환자에 접촉하는 의료진은 한정하고 그 의료진이 24시간 김호중 환자를 체크할 것. 그 명단은 오늘 오후 내로 완성시켜. 그리고 계속 세포에 대한 검사를 진행해. 되도록 다양한 신체부분들의 세포들을 추출하고,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그 세포를 죽이든가, 아니면 세포가 살아있는 원인을 밝혀내란 말이야. 또 알아? 그게 오히려 득이 될 지.”
돈맛에 환장해서 연구의욕까지 내팽개친 원장의 그런 말 따위는 의사들 사이에서 순식간에 잊어버리게 만들 정도로, 이 이슈는 신기했다. 결국 그 회의에 참석했던 모두에게 김호중 환자에 대한 문제는 강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의사들은 세 개의 부류로 갈라졌다. 한 부류는 연구논문이나 신약개발의 베이스로 써야 한다는 학구열파, 다른 한 부류는 원장처럼 김호중 환자의 존재를 껄끄럽게 여기거나 두려워하는 자, 마지막 한 부류는 이도저도 아닌 회색파. 나로 말하자면 그 회색파 쪽에 속했다.
김호중 환자가 살아있는 이유나 원리는 확실히 있을 것이다. 자연의 섭리에 역행을 한다고 보여지거나 아니면 특이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현상은 원인이 있게 마련이다. 심령사진 따위들도 실제로 필름의 현상 상에서 충분히 나타날 수 있는 오류들이고, 어쩌다 신기한 동물들이 나온다손 쳐도 그건 다 환경이 그만큼의 제련을 해놓아서 생긴 결과물이다. 하지만 김호중 환자의 경우는 어떤 생각을 해도 그 원리 자체에 대한 모순적 결과를 어떻게든 풀어볼 수가 없었다.
내 개인적으로는 그런 것들에 대해 신기해하긴 하지만, 도저히 논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다고 해도 결국은 그대로 흘러가게 내버려두는 성격이 강했다. 그게 이때까지 트러블도 없이 부장급 의사의 대리로 올라오게 된 배경이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나쁜 것이든 좋은 것이든 받아들이고 일을 진행하는 내 성격이 많이 감안이 되었던 것일까. 나는 김호중 환자의 특별의료진 명단 맨 위, 책임자 자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기분은 좀 어떻습니까? 어디 특별히 아픈 데는 없고요?”
“없습니다. 뭐 늘 그렇지요. 그 날 이후로.”
아침 회진, 혼자서 외진 1인실을 쓰고 있는 그에게 나는 묻고, 그는 답했다. 환자라도 이렇게 편한 환자가 있을까. 차트를 체크하는 건 사실상 아무 의미가 없다. 바이탈 싸인이 없으니까. 그렇다고 별다른 변화도 없다. 늘 검사하는 특별 간호진들은 처음엔 긴장했다가 한 1주일 지나도 하도 변화가 없다보니 체크도 대강대강 넘어가는가 보았다. 사실 그런 게 몇 번 눈에 띄기도 했다. 차트의 날짜와 확인시간까지 바꿔 써넣지도 않는 것이다.
이런 저런 일들에 바빠서 특별의료진 일이라고 뭐 해괴한 인간에게 별 소용도 없는 업무를 하느니 다른 일을 먼저 처리하는 게 낫다는 고충은 나도 이해를 해서, 어차피 별다른 스케쥴이 잡혀있는 것도 아닌 이상 이 일을 신중하게 처리하겠다고 손수 내가 모든 체크사항을 다 점검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아침 회진이 좀 길어졌다. 그래도 내가 맡고 있던 다른 환자들을 맡길 만큼 밑의 의료진들도 충실해서 그냥저냥 내 주위는 굴러가고 있었다.
“다른 좋은 일은 있나요?
“별 일이 있겠습니까?”
김호중 환자는 언제나 이렇게 대답한다. 처음엔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점차 거듭되는 이 대답이 또한 내 호기심을 자극한다. 체크사항을 검사하면서 우연히 환자의 가족관계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는 고아였다. 보호자라고 부를만한 사람도, 면회 오는 사람도 없었다. 직장에서도 그를 아는 이웃들도 처음에 한 두어 번 온 게 고작이었고, 그나마도 이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이 퍼진 뒤로는 누구도 오지 않았었다. 이런 식이면 장례 치러줄 사람도 없었을 거고, 아마도 시체 처리는 은밀하게 불법적으로 행해졌을 것이다. 노숙자 같은 사람들이 오면 죽어나갈 때 쓰는 그런 방법들로. 평판은 꽤 좋았던 모양인데, 사람들이 모질어서 그랬던 걸까. 자기밖에 모르는 세상이니.
하기는, 나도 그런 세상은 꽤 오래도 살고 있지만......
“그런데 선생님.....”
검사를 하고 있는 내게 김호중 환자가 말을 걸어왔다.
“무슨 할 말이라도?”
“아무도 제대로 된 말을 해주지 않아서 그러는데......전 지금도 죽어있는 거죠?”
가끔씩, 자신의 병세를 물어보며 스스로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대비하는 환자들에 대해 나는 절대로 그런 생각하지 마시라고 내가 더 쾌활하게 이야기하고는 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어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뭐라고 해야 할 지 잠시 생각했다. 아마도 환자도 이런 내 모습을 주의 깊게 지켜볼 것이고. 반응은 즉각적으로 나와야지 되는데, 왠지 좀 뜸을 들이게 되었다. 하지만 이내 결심했다. 뭐 어떻게든 해결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상은 거기에 부응해줄 필요도 있었으니까.
“예. 실은 지금 김호중 환자의 경우는 바이탈 싸인이 하나도 감지되지 않고 있어요. 생물학적으로는 말 그대로 지금도 죽은 겁니다.”
“......”
이거 또 괜히 환자를 침울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긴장하면서, 나는 김호중 환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윗몸을 일으켜 앉아서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잠시 아무 말이 없는 정적이 우리 둘 사이에 흘렀다. 가끔씩 기계가 삑삑대는 소음만이 그 공간에 가득 찼을 뿐......
이윽고 그는 말문을 열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습니다. 난 분명히 한 번 죽었다 살아난 것 뿐인데 수많은 의사들이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돌봐줄 거라고는......전 돈도 없고 보호자도 없는데 왜 이렇게 잘해주나 싶었죠. 스스로 맥을 짚어보니 뛰지도 않더군요. 하지만 뭐, 상관은 없습니다.....저도 제가 왜 이렇게 죽은 채로 깨어있는지 이유를 알고 싶으니까요. 그 이유를 알아서 얼른 갈 길 가는 것이 이윤호.....선생님께도 도움이 되겠죠?”
그가 고개를 돌려 내 명찰을 유심히 보면서 말을 마무리했다. 내게 도움이 된다......글쎄.....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뭐 어떻게 말한들 차트에 체크할 만한 다른 상황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좀 전의 반응으로 확인했으니, 내친김에 더 나가보기로 했다.
“그것도 김호중 환자의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내겐 도움이 되는 게 없을 거에요.”
“어째서죠?”
“일단은 원장 선생님이 바라고 있는 건 당신이 다시 죽은 상태로 돌아가는 겁니다. 한 편에서는 당신을 실험대상으로 해서 그 신비를 풀자는 편도 있고요. 나로 말하자면, 그 어느 편도 아닙니다. 물론 신기하기는 하죠. 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에 대한 이유를 풀 수 있을 만큼 똑똑하지도 못하다고 생각하고, 또 그럴 시간 자체도 없는 진료 스케쥴 같은 것도 있고.....”
“이윤호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왜 이렇게.....‘깨어있는’ 것 같습니까?”
김호중 환자가 눈을 빛내며 똑바로 내 눈을 쳐다보았다.
“글쎄요......”
더욱더 뭐라 말하기가 난감해졌다. 받아들이고만 있을 뿐 이유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을 해보지 않았었다. 또한 내가 의사로서 업무를 처리해 온 중에 버릇이 든 정보 통제도 전혀 되지 않아 버린 상황이었다. 그렇다. 어쩌면, 처음부터 접해왔던 뭔가 이상하게, 묘하게 달뜬 눈. 뭔가를 바라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흥분되어 있기도 한 것 같은 그 이상한 눈을 보면 별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고 오직 한 가지만 생각났다. 내 직관에서 울리는 그 말을, 나는 해주기로 맘먹었다. 그 맘도 도대체 왜 생겨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답지 않게, 말했다.
“아마도......뭔가를 바라고 있는 게 아닐까요?”
“바란....다구요?”
“아......왠지 김호중 환자의 얼굴이나......그 눈을 보면 그렇습니다. 뭔가를 바라고 있는 사람 같다고 느껴져요. 이 말이 맞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바란다.....바란다......뭔가를 원한다.....”
김호중 환자는 계속 혼자서 곱씹고 있었다. 내가 뭔가 잘못했나 싶어 나는 계속 가만히 있었다. 문득, 자꾸 회진이 길어지고 있다는 현실이 떠올랐다. 이젠 슬슬 마무리를 해야지 싶어서 늘상 있는 멘트 정도나 날려주려고 했을 때 김호중 환자는 다시 고개를 들어 나를 보면서 말했다. 이전과는 달리, 뭔가 단호했다.
“아마도 선생님 말이 맞을 것 같습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