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페에서 써본 글- 099 옷장 (이야기 하나)

NEOKIDS 작성일 06.10.07 00:5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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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 옷장-이야기 하나




서울의 복잡스러운 곳에서야 잘 볼 수 없지만, 2006년 10월 현재 어느 정도 서울의 변두리 지역인 이 동네에는 허름한 공터가 하나 있다. 수풀이 약간 우거지고 아무도 관리를 하지 않는 그런 곳. 그냥 빈 터 같기도 하지만 여름에는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시원한 화채나 과일들과 함께 장기 실력을 뽐내시기도 하고, 눈이 내리면 그 곳에서는 아이들이 눈싸움을 하기도 하는 그런 온 동네의 놀이터인 공터.

거기엔 예전부터 아무도 주워가지 않고 치우지도 않는 옷장 하나가 있다. 새로 샀을 땐 몸집도 큰 것이 공들인 조각솜씨와 예쁜 자개로 꽤나 주인의 눈을 즐겁게 했겠지만 이제는 문짝은 겨우 달려있고 나무가 다 썩어 색까지 변한 그 옷장. 그것이 그 공터 한구석에 들어선 지도 햇수로 따지면 5년 정도가 되었다.

그렇게 놀이거리를 찾느라 혈안이 된 꼬마들조차 거들떠보지도 않는 그 옷장에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 하나가 있었다. 그 옷장은 그 동네의 20마리 남짓한 토박이 고양이들에게는 일종의 추모의 장소이자 회의의 장소로 사용되는 곳이었다.

어스름이 낄 무렵이면 녀석들은 늘어진 하품을 한 번 끝내고는 어슬렁어슬렁 모여들었다. 탁 트인 곳은 인간들에게 들키기가 쉬운 위험이 있지만 어차피 벽 같은 건 만들어 낼 수가 없는 사정인지라, 녀석들의 배설물들로 표시한 영역을 확인해보고 먹잇감들을 확인한 연후에 모이는 곳이 이 옷장의 뚫어진 구멍 안, 널찍한 공간이었다. 요즘은 먹이 사정이 좋아져서 몸들이 튼실해서 좀 부대끼기는 했지만, 여기만한 회의장소를 찾기도 어려웠다.

그 안에서는 오늘도 회의가 벌어지고 있었다. 고양이들끼리의 눈짓, 발짓, 몸짓으로 나누는 대화에 옷장 안은 꽤나 부산스러웠다. 그런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다가 올해로 14살 되는 가장 나이가 많고 몸집 큰 고양이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

“조용히 하시오.”

그 말에 다른 고양이들은 고개를 돌려 시선을 일시에 모았다. 두껍고 투명한 수정체들이 내는 안광이 옷장 안을 가득 메웠다.

“일단 오늘의 일부터.....”
그러자 회색 바탕에 검정 줄무늬를 가진가 말했다. 이 녀석은 외부 침입자를 색적하고 보고하는 게 임무였다.
“요즘 옆 동네의 시장 쪽에서 이쪽으로 탐색하듯이 넘어오는 고양이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먹이 사정은 그 쪽도 풍부하지만, 부쩍 심해진 인간들의 탄압 때문인지 자꾸 영역을 침범해서 우리 쪽으로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대로라면 조만간 충돌이 날 듯 합니다.”
“그 점이라면 나도 어느 정도 느끼고 있네. 내가 그 동네의 수장과 잘 상의를 해봐야지. 다음은?”
이번엔 검정과 흰색이 반반씩 섞인 무늬의 고양이 차례였다. 이 녀석은 영역 내 고양이들에 대한 일종의 행정보급관 노릇이 그 임무였다.
“에.....또......조금 있으면 발정기가 다가옵니다. 전에 아이를 밴 고양이들이 많아져서 꽤 우리 영역 내의 먹이 조달이 힘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가뜩이나 수컷들도 각성이 안되어 있어서 아기엄마들이 굉장히 힘들게 살았던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좀 신경 써서 산아를 조정하도록 합시다. 고만 좀 울고 적게 좀 하자는 말이죠.....”
그 말을 듣고 서너 살 정도의 암컷고양이 몇몇들이 킥킥거리기 시작하자 말을 꺼낸 반얼룩고양이의 수염이 쭈뼛해지기 시작했다. 쑥스럽고 창피하다는 표시였다.
“그 점도 수컷들은 유념하도록.....다음은?”
누런고양이가 고개를 쳐들었다. 이 누런고양이는 외부의 정보들을 정리해서 고양이들에게 쓸 만한 정보를 주는 것이 임무였다.
“시장의 고양이들 말로는 인간들의 탄압은 다음으로 우리라고 합니다. 한 녀석이 거의 실성을 하다시피해서 다시 돌아왔는데 그 녀석의 말을 종합해본 결과 그 탄압의 정도도 상당히 심합니다. 아무래도 그 인간들이 탄압을 하러 올 때 각자가 몸조심을 위해 은둔을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특히 수컷들은 더욱 조심해야 됩니다.”
“허허, 탄압이 어느 정도이기에 실성을 한단 말인가?”
“들은 바로는 특히 공격적인 수컷에 대해 애를 못 낳게 하는 수술을 한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고양이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특히 매일 다른 동네 고양이들과의 싸움질로 밤을 새우는 검은덩치고양이는 겁에 질려 털이 다 하얗게 샐 것처럼 보였다. 더불어 그건 암컷들에게도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지만 자신들의 생존과 영의 종속에 직결된 중요한 것이었다. 집고양이들에게 종종 그런 짓을 하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접하긴 했지만 이제 거리의 고양이들에게까지 그런 짓을 한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 될 것이었다. 그 중요한 섭리를 인간은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운단 말인가.

‘역시 아무리 봐도 인간이란 무서운 놈들이야.....’

이런 식으로 고양이들은 생각에 잠기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건 이 옷장이 들어섰던 5년 전부터 어쩌면, 깊이 깨닫고 있던 일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런 연상을 하고 있는 고양이들에게 잠시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던 노인고양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내가 말을 좀 하겠습니다. 오늘은 ‘그녀’의 기일이라는 것, 다들 알고 있지요?”
고양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모두 ‘그녀’를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몇 년이나 거의 추운 겨울에 다 죽어가던 것을 겨우겨우 살아난 것이 ‘그녀’의 덕이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 모여 회의를 하는 스무 마리 남짓의 고양이들도, 어미가 차에 치어 털과 내장기관이 뒤섞인 고기반죽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배를 곯아야 했던 것을 ‘그녀’ 덕에 목숨을 구한 고양이들이 대다수였다. 잠시 침중해진 좌중을 둘러보면서 늙은고양이는 다시 말을 꺼냈다.
“오늘도 우리는 ‘그녀’를 추모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하지만 추모하기 전에 회의는 마저 끝내야겠지요. 지난 번 ‘그녀’의 기일에 올라왔던 안건은 1년의 보류기간을 두기로 했습니다. 그 동안 살면서 그에 대해서 입장정리들을 해야 한다는 것을 조건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쯤이면 어느 정도 생각들이 정리되었을 것이라 봅니다. 자, 그럼 그 생각들을 한 번 꺼내봅시다.”

사실 오늘 고양이들은 이 시간을 기다려 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각자 나름대로의 생각들을 다듬어 본 터였고, 이 기일이 다가올수록 그에 대해서 의견이 다른 어떤 고양이들과도 말을 나누어 볼 각오가 서서 온 터였다. 어리든 나이가 많든, 그건 이 자리에 모인 모든 고양이가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인간과 말도 통하지 않고 대적도 할 수 없습니다.”
뚱보고양이 하나가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조용히 추모만 하면 됩니다.”
그건 누구라도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특히 어떤 금기가 그들 사이에 있는 한은 그랬다. 그 금기는 이미 인간들이 자신을 애완용으로 기르기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영물이라는 사실에 대한 모독은 아닐까요? 우리는 그 금기에 너무 속박당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역시 4살짜리의 젊은 누런고양이가 말을 꺼냈다.

“인간에게 우리가 영물이라는 것을 들켜서는 안 된다는 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우매한 존재가 되도록 몰아넣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우리는 개와는 차별된 존재라는 것을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하고 있는 것들은 무엇 하나 개보다 낫지 않습니다.”
누런고양이의 눈에 열정이라는 불꽃이 일었다. 좀 더 나이가 지긋한 검은고양이 한 마리가 누런고양이의 그런 눈을 지긋이 바라보다가 그 뒤의 말을 이었다.

“이런이런. 잠시 분위기를 식히고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꼭 개의 뒤를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인간들은 우리가 영물이라는 것을 그들 스스로 상상해서 드라마나 영화들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면에서는 우리도 어느 정도 활동을 자제하는 것이 좋지요. 우리가 영물이라는 것이 그들 사이에 진실로 밝혀진다면 그 때부터 우리의 삶은 아주 피곤하게 될 겁니다.”

다른 고양이들은 그 나이 많은 고양이들의 의견에 더 찬성을 했다. 인간들은 지금도 좀 귀찮은 존재들이었다. 친구가 되려고 별의별 짓을 다하는 인간들도 있는가 하면 자신들에게 장난감 총탄을 쏴서 괴롭히거나 돌을 던지기도 하는 어린 인간들도 있는 등, 여러모로 자신들의 삶에서 접한 수많은 인간들은 귀찮으면 귀찮았지 도움이 되는 존재들은 아니었다. 말은 계속 이어졌다.

“우리가 개와 다른 지점도 거기에 있어요. 개들은 인간의 친구 자리를 꿰찼다지만 실제로는 개에 대해 인간들이 대우를 달리 해준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그저 스스로의 허영심에 빠져 귀를 자르고 털에 물을 들이는 등 해괴한 짓을 마다하지 않는데다 휴가철이면 되려 버리고 가서 굶어죽게 만들기도 하지요. 게다가 이 땅에서는 그들을 잡아먹기까지 합니다. 스스로를 친구란 말로 위장하고 있지만, 그것도 우스운 것이 인간들은 친구를 그들과 말이 통하는 생물 정도로 밖에는 인식하지 않는 협소한 지경에 이르렀단 말이지요. 과거 선조들이지금과 달리 인간들과 소통하던 그런 때는 아니란 것이죠. 그리고 말이 많이 어긋났는데 말입니다......”

검은고양이는 목에 털이 걸리는지 한 번 헛기침을 했다.

“우리가 그녀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도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건 실제로는 우리가 영물이라는 것을 들켜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뜻합니다. 그 점은 상당히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하는 요소일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그 생각들을 나누어 보자는 것이 오늘의 요지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의 금기를 포기하고서라도 그녀를 도와줄 만한 가치가 있는가에 관한 문제입니다. 물론 그녀는 우리의 생존을 도와주고 우리가 여기서 이렇게 회의를 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건 이 밑에서 잠들어 있는 그녀에게도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본들, 우리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기는 확실히 지났어요.”

검은고양이의 말이 끝나자 모두가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금기를 포기하면서 그녀를 도와주어야 할 것인가. 그것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건 좀 감정에의 호소가 될 듯한 이야기지만요....”
말을 꺼내며 나서는 것은 이제 갓 2살이 된 어린 얼룩고양이였다.
“우리가 만약 영물이라면, 어떤 것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을 하는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전 우리 어머니가 그녀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것을 말해 준 것을 기억하고 있어요. 아마 그 때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수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훨씬 빨리 죽게 되었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 이제는 우리가 조금이라도 도와줘야 할 차례 아닐까요. 전 아직도 그녀의 혼과 자주 마주쳐요. 그녀의 혼을 가끔 만날 때마다 외면하는 분들이 있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이런 모든 행동은 결국 우리에게 ‘개만도 못한’ 이라는 수식어를 스스로 같다 붙이는 결과가 될 것 같아요. 이런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수많은 고양이들은 그 말이 나름대로 또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무도 나서려 하지는 않았다. 몇몇 고양이들은 다시 심사숙고를 하는 분위기였다.

“저......”
검은뚱보고양이가 머뭇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조금 조용하던 분위기라 바로 시선이 그 고양이에게 집중되는 걸 느끼고는 검은뚱보고양이는 멋쩍은 듯이 입 주변을 꿈틀거렸다.
“사실 전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어요.”

모든 고양이들의 수정체가 그 안에 놀라움을 가득 채웠다. 그가 살고 있는 곳을 아무도 모르고 있다면 아까 전까지의 이야기는 그런대로 받아들일 만 했다. 그런데 이제 그가 사는 곳을 알고 있는 것이다. 이건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충분한 동기가 될 수도 있는 사실이었다.

“윗동네에 싸우러 갔다가 우연히 개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그 사람을 봤습니다. 그 사람의 그 강하고 역겨운 인간들의 화장품냄새가 채액과 섞인 특이한 향취는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그게 그 사람에게서 풍겨 나왔어요. 전 겁이 나서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고양이들은 저마다 술렁거렸다. 누가 그 향취를 잊을 수 있을까. 그녀가 싸늘해지던 무렵 그녀의 온 몸에서 풍겨 나오던, 그녀의 향취와 확실히 구별할 수 있는 침탈자의 그 역겨운 냄새. 그녀가 나을까 싶어 그녀의 몸을 핥아가면서 맛까지 본 고양이들도 이 안에는 다수일 것이었다. 술렁이는 가운데에서도 이미 대답은 나와 있는 듯 했다.

“자, 잠시 조용해 주시오”
늙은고양이의 말에 옷장 안은 또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하지만 아까 전과의 조용함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이제 우리는 그가 어디 있는지 압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행동을 할 것을 강요하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숙고해야 할 시간들은 남아있습니다.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저는 뭐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어디 있는지를 알고 있다면 모든 건 이미 결정된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를 어떻게 죽일까요?”
“밤마다 찾아가서 죄다 할퀴어 놓고 오는 건 어때?”
“그것보다는 쥐약 먹은 쥐새끼들을 물어와서 입에 먹여버리는 게 낫지 않나?”
“그건 병원 가면 해결될 일이잖아. 너무 약해.”

또 다시 옷장 안은 왁자지껄하게 변했다. 늙은고양이는 그 모습을 이번엔 말리지 않고 지긋이 보고 있었다.

“그럼 이제 정리를 해봅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로 정리가 되는군요. 인간들에게 알리는가, 우리가 해결하는가.”

늙은고양이의 목소리가 울리자 다른 고양이들은 다시 조용해졌다. 사실 자신들이 지금처럼 이야기가 겉돌 땐 이렇게 늙은고양이가 핵심을 잘 짚어주었다. 그 때 아까 전에 반대를 했었던 중년의 검은고양이 한 마리가 늙은고양이를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는 계속 이 상황을 걱정스럽게 지켜보다가 늙은고양이의 말에 놀란 것이었다.
“아니.....잠시만요. 늙은고양이님도 우리가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렇소.”
“아니....그렇다면 우리의 금기는 어찌됩니까? 우리가 이때까지 지켜온 것들은 어떻게 하구요? 우리는 고양이 사회에서 매장당할 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수정체는 온 사방에 알려져서 외톨이취급을 당하거나 심하게는 공격당할 지도 모르는데.....”
“그게 무서운 고양이가 여기 있다면, 그 고양이는 우리가 뭔가 하려는 그 시점 이전에 여기를 떠나주시기 바랍니다.”

늙은고양이는 이 말 직후에 심호흡을 했다. 그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직설적인 말을 꺼내기 전에 늘 해두는 버릇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녀의 손길과 그녀가 준 밥을 기억합니다. 여기 모인 많은 고양이들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나는 그녀와 살았고, 그녀가 데려온 여러분들을 지금까지 보호해왔습니다. 이런 내 입장에서 금기 따위는 이젠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개와 다른 건 그렇게 거리감을 가진다는.....”
“거리감을 가진다는 것이, 우리가 영물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이 중요한 겁니까? 왜 그게 금기가 된 거지요?”
“그건 매우 위험한 발언입니다! 우리 모두를 곤경에 처하게 할 수 있다구요!”
“고양이 사회에서의 우리의 생존권과 그녀에 대한 복수 중 택일을 하라면, 나는 당연히 우리의 생존권을 포기하겠습니다. 왜냐면, 그녀가 없었다면 우린 아예 살아있지도 않을 테니까.”

고양이들은 목청을 높여 울어댔다. 늙은고양이의 말에 대한 환호였다. 늙은고양이는 그 환호에도 아랑곳없이 단호히 말했다.

“이제부터 금기사항이나 고양이 사회가 무서운 고양이가 여기 있다면 그 고양이는 지금 당장 떠나기를 권유하겠습니다. 다른 고양이 사회에서도 힘들지만 살아갈 수는 있을 겁니다. 이것은 의견이 다른 고양이들에 대한 내 마지막 배려이기도 합니다.”

그의 말을 따라서 벽장 뒤의 구멍으로 나가는 고양이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반대를 한 중년의 검은고양이까지도. 늙은고양이는 의외라는 식으로 검은고양이를 바라보았다. 검은고양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 쪽 눈을 찡그리고 수염을 쭈볏거렸다.
“여기 이 사회가 제가 태어나고 자라온 곳인데 어떻게 버립니까. 지금도 수많은 고양이들은 죽습니다. 저도 그 중의 하나인 셈 치죠.”

늙은고양이의 발언에 따라 일은 척척 진행되었다. ‘그녀’에 대한 문제는 인간들의 풍습을 보면 잘 수습을 해줄 거라고 고양이들은 믿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복수는 자신들이 직접 하기로 했다.

그 동네의 사람들은 그 고양이들의 회의가 끝난 후 밤마다 고양이들의 공포스럽고 애잔한 애기 울음소리 같은 합창을 들으면서 신경이 거슬리는 것을 느껴야 했다. 그리고 그 소리가 자꾸 들리는 진원지, 옷장을 없애기 위해서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어 투덜투덜 대면서 옷장을 들어냈다. 그리고 사람들은 더욱 지독한 공포에 빠졌다.

그 썩어 버린 옷장의 밑에서 뭔가 희끄무레한 것이 보였다. 당황해서 너무 얕게 묻어놓은 윗 흙들이 쓸려내려 갔음에도 옷장 때문에 보이지 않던 사람의 뼈조각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해골의 눈동자 부위가 빼꼼히 옷장을 든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나중에 경찰이 오고 조사가 이루어지고 나서야 사람들은 그 뼈의 주인이 고양이들을 많이 키우던 착한 처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한 온 동네에 떠돌던 풍문으로는 다른 사실도 있었다. 그 처녀는 살해된 후 토막이 난 것이라는.

그리고 그 일주일 후, 경찰은 그것보다 더욱 이상한 사실도 접하게 되었다. 위쪽 마을의, 두문불출하는 30대 청년 하나가 거의 온 몸을 칼이나 손톱 같은 것으로 추정되는 것에 의해 난자당해 죽어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시체의 주위에는 게걸스럽게 자신의 주인과 그 고양이들의 시체고기를 뜯는 개들이 있었다.

이미 피맛을 본데다 떼거지의식으로 인간에게 덤벼드는, 이성을 잃은 개들을 몽둥이로 도륙내고 주변을 살펴보니, 온 사방에 적어도 20여 마리 정도의 고양이 시체들이 있었고, 아마도 주인을 지키려던 개들과 꽤나 사투를 벌인 모양이었다. 하나같이 제대로 된 고양이 시체가 없었다. 모양새도 해괴한 사건이긴 했지만, 그것보다도 한 검시관은 그 때 너무 소름이 끼치는 경험을 해서 아직도 그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그 중의 한 고양이, 좀 늙어 보이는 풍채의 고양이 시체 하나만은 얼굴이......눈은 어딘가에 초점을 맞추고 입 끝이 올라가서 마치 그 표정이 웃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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