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워둔 탄창을 하나 AK에 결합하면서 나는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갔다. 역시 문은 밖에서부터 자물쇠로 잠겨져 있다. 심호흡을 하고, AK를 연발로 놓고는, 끊어서 세 발을 갈겼다. 강한 반동과 파괴음. 제대로 문이 열렸다. 잽싸게 몸을 날려 그 밖으로 뛰쳐나갔다. 놈들도 분명 이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한 놈이 눈앞에 보인다. 놀라서 허둥대면서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려는 사이 놈을 걸레짝으로 만들었다. 더 많은 놈이 몰려올 것이었다. 아직 좁은 복도, 긴 총을 돌려 뒤쪽도 응사하기에는 힘들다.
바로 양쪽의 꺾어진 앞으로 급한 발소리들이 들린다. 놈들이 몰려온다. 급한대로 뒤쪽은 잉그램을 꺼내어 갈겼다. 두 놈이 쓰러지고 한 놈은 뒤로 물러선다. 타이밍. AK를 먼저 갈겼던 쪽으로 급하게 뛰어갔다.
뒤의 놈들이 당황해서 멀어진 내게 권총을 쏴댔다. 하지만 아무리 가까운 거리라도 당황해서 쏘는 총솜씨가 내게 해를 입힐 수는 없다. 꺾어진 곳까지 나가면서 AK를 연사하자 놀란 놈들이 당황해서 피하고 있다.
그런대로 1층의 넓은 곳까지는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잠시 총을 내려놓고, 꺾어지는 앞쪽에서 총을 내려놓았다. 택티컬 베스트에 잘 결합해둔 터보라이터로 사제폭탄의 짧은 심지에 불을 붙여 꺾어진 안쪽으로 던져 넣었다. 폭발음. 뒤의 놈이 겨우 내 상황을 알아채고는 용감하게 총을 쏘면서 달려오기 시작한다. 빠르게 내 손에 들어온 잉그램이 다시 불을 뿜었다. AK의 빈 탄창을 버리고 새 것으로 결합. 잉그램의 탄창을 빼버리고 그대로 파우치에 꽂았다.
폭탄을 던져 넣은 곳으로 나가서 보니, 1층의 마루 같은 곳으로 나가기에는 아직도 길이 멀어 보이는 듯 했다. 복도들이 아기자기한 구조로 되어 있어서 헤쳐 나가는 것도 고생길이었다. 집안 구조의 정보는 그다지 없었던 탓에, 그냥 즉흥적으로 헤집는 꼴이 되고 말았지만, 어쨌든 충분히 시간은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발소리가 들리는 곳부터 무조건 갈겨댔다. 2층에서 내려오던 세 놈이 AK의 밥이 되어버리고 나서야, 뒤에서 오는 놈들을 살펴보았다. 외국인들로 보이는 덩치 큰 놈들이 달려오고 있다. 이제 보니 간부급들만 있던 게 아니라 바이어들과 그 똘마니들도 있는 모양이었다.
한 놈이 잽싸게 칼을 던진다. 어깨를 스쳐가며 남기는 통증. 나는 그걸 피하기 위해 구르면서 AK를 난사한 후, 그대로 그걸 버리고 계단 위로 뛰었다. 칼을 던진 놈은 맞은 것 같지도 않다. 끈적한 것이 흐르는 어깨를 내버려둔 채 심지에 불을 붙여 밑으로 던져버렸다. 폭발음을 들으면서 잉그램 하나에 탄창을 결합하고는 다른 잉그램도 함께 꺼냈다. 다시 힐끗 바라보니 그 쪽으로 쫒아온 것 같지도 않다.
그 외국인은 다른 놈과는 달리 대단한 놈인 것 같다. 급하게 겨누기보다는 빠르게 던질 수 있는 칼을 쓴 것도 그랬고, 뒤를 급하게 쫒아오지 않는 것도 그렇고. 이 쪽의 것을 소진시킨 다음에 치겠다 이건가.
내가 올라간 곳의 저 쪽에도 계단이 있는지 발자욱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앞에는 범이, 뒤에는 이리떼들. 사면초가.
범은 앞으로 상당히 날 귀찮게 할 가능성이 있다. 계단을 겨누면서 다시 내려갔다. 내가 왔던 곳의 맞은 편으로 있는 복도에 그 놈이 상황을 살펴보려 내민 고개가 급하게 들어간다. 아예 점프해서 날다시피 하면서 놈의 쪽으로 잉그램을 갈겨댄다. 하지만 그 놈은 그 옆의 방 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여러모로 귀찮게 만드는 군. 낙법으로 구르면서 계단 정면의 회랑쪽, 놈이 숨어든 방의 문 앞에서 멈춰섰다.
자물쇠께에다 세 발, 바로 몸을 낮추고 굴러들어가면서 놈의 위치를 확인, 있는 탄을 다 쏟아 부었다. 놈은 방을 나가려는 찰나 내 급습으로 벌집이 되어버렸다. 범은 해결했다. 하지만 탄 소모가 너무 심했다. 방의 한구석에서 탄창을 갈면서 계산했다. 이제 남은 탄창은 14개 정도?
놈들이 내가 있는 방의 앞뒤로 몰려온다. 방 앞에 있을 법하자 방문 쪽으로 모두 탄창을 갈겨댔다. 몇 놈의 비명과 신음소리. 이제 더 있을까. 제발 더 없기를.....하지만 이제는 AK의 응사가 나를 향해온다. 아직 쓰러지지 않은 몇 놈이 더 있는 것이다. 방의 구석으로 숨어들면서 나는 다시 탄창을 갈았다. 여기서 나가야만 한다.
폭탄에 불을 붙여 문에 난 총구멍 속으로 가만히 굴려 넣었다. 그리고 내가 들어왔던 문의 반대방향으로 뛰어들었다. 좁은 복도의 벽에 어깨를 부딪히면서 잉그램을 연사하자 그 쪽에서 기다리던 몇 놈이 고꾸라진다. 폭발음과 함께 그 쪽에 있던 놈들도 대강 청소가 되었을 것이다. 갑자기 눈앞에 한 놈이 뛰어나왔다. 잉그램을 들었지만 조금 늦었다. 놈의 AK 단축형에서 뿜어나온 탄이 내 오른쪽 허벅지 옆을 스쳐가는 순간 그놈도 잉그램의 밥이 되었다.
다리의 통증을 참으면서 조금씩 걸어 나갔다. 아직 간부급이라던가, 두목이 남아있을 것이다. 이 소란 통에 도망갔다면 모르겠지만....하지만 아직 내가 1층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이쪽으로 도망가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숨을 몰아쉬면서 걸음을 옮겨 위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피가 고인 발자국이 내 뒤에 남았다.
2층에서 한 놈씩 나를 노리고 튀어나왔지만, 그런 축차적인 투입은 이 쪽에서 대비하고 있는 한 전혀 쓸모가 없다. 2층의 다섯 개 방에서 한 놈씩 튀어나오는 것들을 잉그램으로 청소하면서 나는 조금씩 앞으로 나갔다.
조금 넓은 2층의 난간이 나오고, 그 아래의 큰 마루가 보이기 시작한다. 간부를 비롯한 놈들의 모습이 1층의 그 곳에 보였다. 다른 쪽의 계단을 통해서 내려온 것이군. 그들 앞에 나서기 전, 잉그램을 파우치에 꽂아넣고, 사제폭탄 하나를 손에 쥐고서, 나는 2층의 난간 앞에서 멈춰 섰다.
“죽이기 전에 좀 묻지.”
사진을 통해서 숙지했던 두목이라는 놈이 말을 건다. 사각과 모든 경로에서 나를 겨누고 있다. 뒤에는 좀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바보 같은 놈들. 저렇게 거리를 두면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그래봤자 내가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놈들은 당황할 것이다. 승산은 충분히 있다. 떨지 말자.
“넌 대체 누가 보낸 놈이냐? 제물파? 그것도 아니면, 충기파?”
“난 그냥 온 것뿐이다.”
“뭐?”
“말 그대로야. 너희는 사람을 너무 귀찮게 하더군. 그래서 내가 끝장을 내러 왔지.”
“이해할 수가 없군.”
두목이 인상을 쓰기 시작한다.
“돈도 목적이 아니고, 그렇다고 누가 보낸 것도 아니고. 그럼 왜 이 난장판을 벌려놓은 거냐. 넌 대체 누구냐고.”
“그냥 킬러일 뿐이다.”
“킬러?”
두목은 나를 노려보다가 말을 꺼냈다.
“그럼....그 때 윤철호를 잡으라고 보낸 애를 만져준 것도......”
“용케 기억하는군. 하부조직 똘마니들의 일인 줄 알았는데.....”
“기억할 수밖에 없지. 내 아들놈이었으니까.”
잠깐 흠칫하긴 했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가. 사실 목을 그어버리고 싶긴 했는데.
“아주 예쁘게도 해놨더군. 그럼 또 묻지. 윤철호와는 어떤 관계길래 이런 짓을 벌이는 거냐?”
“흠....”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끌면서 내 힘을 빼려는 수작을 모를 줄 알고. 그런 것은 소용없다. 나는 통증으로 굳어지고 긴장된 온 몸의 힘을 조금 풀어놓기 위해서 짐짓 농담조로 쾌활하게 이야기했다.
“뭐, 장인어른과 사위의 관계랄까.”
“뭐라고?”
두목이 커다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뜨린다.
“푸하하하핫!!!!!!!! 웃기는 군. 경찰 장인과 킬러 사위라.”
두목의 개기름 흐르는 인상이 다시 찌푸려진다.
“농담할 만한 분위기 같나?”
“아니라도 뭐 어때.”
말이 끝남과 동시에 터보라이터를 움켜잡고 불을 붙였다. 두목의 눈이 더욱 커다래졌다. 그것을 밑으로 굴려 던져주고 뒤의 문에서는 보이지 않는 옆으로 비켜섰다. 폭발하는 소리가 커다란 마루를 울렸다. 다시 하나를 꺼내서 이번엔 문 안의 복도에 던져 넣었다. 폭발과 후폭풍에 2층 복도를 달려오던 놈들이 죄다 쓰러져 흘리는 신음이 실려온다.
밑을 흘끔 보았을 때 두목 놈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사제폭탄도 얼마 남지 않았고 잉그램 탄창과 베레타만 남아있다. 시간을 얼마나 더 끌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끝장은 봐야 했다. 잉그램을 다시 양손에 들고서, 나는 2층난간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쪽으로 사력을 다해 뛰었다. 1층에 남아있던 간부 놈들이 응사를 해오기 시작한다. 튀는 나무의 파편들과 귀가 먹먹할 정도의 총소리가 이 공간에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살아야 한다. 살고 싶다.
내 귀에 헬기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건 그 난사의 향연 한 가운데서 미친 듯이 구르고 뛰고 있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