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껍절한 사랑이야기 4장(1)

NEOKIDS 작성일 07.01.26 03: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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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집에 들어왔을 때는 아주 늦은 밤이었다. 나는 다시 무기들을 점검하고, 이번에는 방탄복과 택티컬 베스트를 챙겼다. 한 박스를 전부 탄창에 우겨넣어놨으니, 이제 남은 탄도 얼마 되지 않는 건데 아까 전에 더 써버려서 문제가 심각했다. 집에는 전에 사놓은 세제나 PVC파이프 등의 사제 폭탄의 재료들이 있었다. 탄이 떨어진다면 이걸로 해결을 볼 셈이었다.

핸드폰을 체크해보니 영감에게서 온 연락은 없다. 아무래도 정말 영감이 나를 도와주지 않을 모양인 것 같았다. 그렇게 펼친 핸드폰을 들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번호와 뜨는 메모리의 이름. 평화상점.
영감님. 아무래도 양반은 못되실 것 같군요. 흐흐.

-아직 작업 안 들어 갔제?
“네. 구하셨나요.”
-일단 급한 것 같아서 내 돈으로 구했으니께, 나중에 값이나 후하게 쳐줘. 잉그램은 두 개 구했고, 예비탄창도 20개 정도 구했다. 탄 채워서 바로 넘겨줄 거고. 그리고 조명탄이랑 연막탄도 두 개씩 구해놨어. 그것도 가져가.
“고마워요, 아저씨.”
-혹시나 도움이 필요할까 해서, 다른 사람들한테도 알아봤지만 청송파를 쳐서 문제 만들겠다는 아그들이 없어서, 도울만한 사람이 없네.
“아니요, 필요 없어요.”
-응?

나는 다솜이의 아버지와 내가 짰던 계획을 영감님에게 말했다.

-정말....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만.....짭새들꺼정 이용하겠다니....
“기왕에 하려면 스케일 크게 나가야죠.”
-이름 떨치기는 싫담서?
“이름 떨치는 것도 살고 나서나 문제죠. 죽을 지도 모르는데.”
-숭한 소리 허덜 말어.
수화기 구멍 너머에서 침묵의 시간이 전해져 온다.
“내일, 가지러 갈께요.”
-그렇게까지 해야 할 정도로, 그 애, 사랑허나?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 질문이 내게는 그렇게 들렸다. 목숨을 걸어도 좋을 정도로, 그 애를 사랑하는가. 이 시시껍절한 내가, 사랑도 할 수 없는 내가, 이런 미친 짓을 해야 할 정도로, 진정하게 사랑하는가. 그 모든 것들의 의미와 무게에 대해, 나는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네. 영감님.”

근처에 꽤 넓은 저수지를 끼고 있는 산 언저리의 넓다란 2층 건물을 쌍안경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 곳은 영감님의 정보와 다솜이 아버님의 정보가 정확히 일치한 곳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건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그 곳이 그들의 본부이자 두목이 있는 곳이 확실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쌍안경으로 보이는 모든 광경들이 그 이야기를 확실한 정보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경비인원만 해도 최소 20명은 되어 보이는데다, 집의 너비도 꽤 큰 편이고, 외부에만 20명인데 내부에도 적어도 10명은 더 기거할 수 있을 것 같은 공간.

저 정도면 마약의 창고나 무기가 거쳤다 가는 유통경로 정도로도 활용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경찰이 건들지 못했던 이유야 뻔하겠지. 청송파는 오래된 만큼 정치나 재계의 드러나지 않은 뒷줄도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근처의 경찰은 물론이고 아무리 상급의 경찰들이라도 확실한 증거가 나온다는 정보가 없는 이상은 영장 발부조차 되지 않는 것이다.
안으로 보든 밖으로 보든, 그 곳은 ‘철옹성’ 그 자체였다. 그 철옹성에 공격을, 그것도 혼자서 하러 간다는 건 몇 번을 생각해봐도 미친짓임에는 틀림없었다.

나의 쌍안경은 주차장 쪽으로 향했다. 앞마당 쯤 되는 곳의 넓은 곳에서는 꽤나 비싼 차들이 여러 대. 아마도 오늘 무슨 회의 같은 것을 하는 걸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실제 저 안의 경비와 숨겨져 있는 경비들까지 합치면 내가 지금 파악한 숫자보다는 더 많을 것이었다.
지금은 때가 좋지 않았다. 좀 더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쌍안경을 집어넣은 후 놈들이 보지 못할 만한 곳으로 이동해서 가방을 숨길만한 곳에 이르러 행색을 바꾸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온 차림새가 등산객의 모습이라면, 지금 차려야 할 행색은 거의 특수부대원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만큼. 옷을 벗자 차가운 공기가 피부를 괴롭혔다.

산이 많은 곳의 해는 빨리 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해가 져도 그 많은 차들은 떠나질 않았다. 20개의 탄창, 칼, 사제폭탄 10개, 그 밖의 장비를 우겨넣은 택티컬 베스트와 그 안의 방탄판 등은 굉장히 무거워서 추위와 합쳐 체력소모를 심하게 한다. 오른쪽 다리에는 베레타와 잉그램이 매달려 있고 왼쪽 다리에는 베레타의 탄창 다수와 잉그램.
추위에 굳은 손과 근육을 주물러 풀면서 쵸코바를 우둑우둑 씹었다. 그냥 공격을 하기로 맘을 정했다. 차가 많다는 건 집주인이 있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을까. 만약 싸우다가 간부급들을 해치우기라도 한다면 청송파 자체가 완전히 무너져 버리는 상황도 생길 수 있을 것이다. 확고해진 결심으로 나는 산을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택티컬 베스트에 넣어놓은 핸드폰을 꺼내어, 산장에 돌입 전에 다솜이 아버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별장이고, 이제 들어갑니다. 아무래도 간부급 회의가 있는 모양입니다. 시간은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그 쪽 지역 경찰들의 협조와 이쪽의 중앙 기동타격대 협조까지 얻으려면...아무래도 거기까지 도착은 한 시간 정도 족히 걸릴 거야. 괜찮겠나.
“그 때까지라면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조심하게.
“네. 그럼 이만.”

산장의 사각인 측면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놈들은 산장의 앞과 뒤만 있고, 측면 쪽은 그 둘이 교대로 왔다갔다 움직이면서 보고 있다. 2층 지붕 쪽의 경비가 돌아서는 순간과 측면의 놈이 없는 순간이 지하층의 쪽창으로 뛰어들 수 있는 타이밍. 그리고 타이밍은 꽤나 빨리 왔다. 잽싸게 뛰어들어 쪽창 쪽을 살폈다. 내 덩치 정도는 충분히 들어갈 수 있고, 다행히 환기를 자주 시켜야 하는 곳인지 쪽창은 열려있다. 나는 그 곳으로 발부터 집어넣었다.

조용히 내려오고 나서 조그만 등을 켜봤다. 되도록 불빛은 크게 새어나가지 않게. 무슨 나무로 만든 박스들이 굉장히 많았다. 그 중 하나를 뜯어보았다. AK-47. 할렐루야! 그 옆에는 7.62mm탄까지 고스란히 놓여있다. 아무래도 한국을 경유해서 안전하게 어느 곳으로 갈 모양이었다. 청송파가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무기 밀매까지 하는 인간들인 줄은 몰랐다.
이건 곧 걱정거리가 되기 시작했다. AK정도를 다룰 놈들이면, 놈들의 무장상태도 강하면 강했지 빈약하지는 않을 것이라는.....아마도 AK나 MP5K 정도는 품속에 있지 않을까 싶었다.

AK하나를 집어 들고 탄창에 탄을 빨리 채워 넣었다. 그렇게 한 두 개쯤의 탄창을 만들었을 때 잠시 그것들을 놔두고, 이번에는 탈출로를 탐색했다. 다행히 이런 물건들이 들어오는 큼지막한 경사로 같은 것이 있고, 그 앞에는 두꺼운 나무문이 달려있다. 빗장 형태에 쇠사슬로 자물쇠만 채워두는 식. 이런 거라면 총으로 어떻게든 해볼 수 있다. 빠져나가는 길은 이 쪽이 될 것이다. 다만, 안에서 헤집으면 외부의 놈들이 전부 안쪽으로 들어와 있어 줄 것인가가 성패의 갈림길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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