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나는 벽난로에 땔감으로 쓸 나무를 골라 도끼로 그것을 쪼갰다. 서울과는 조금 떨어진 이 산장. 혼자서 조용히 글을 쓰기에는 나무랄 데 없는 곳이다. 주제에 인터넷도 되는 곳이긴 하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웬일인지 흔쾌히 찬성하셨다.
그동안의 일을 이야기해주려면, 조금 정리가 필요할 것 같다. 너무 많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그 날의 이야기부터 하자면, 청송파는 그 날 그 시각으로 괴멸되었다. 경찰의 발표에 따르면 지하에는 그 날 다른 해외로 팔아넘길 불법무기들과 마약류가 모두 발견되었고, 두목은 도망치다가 우습게도 그 날 처음으로 검문을 하는 의경의 검문에 걸려 체포되었다. 꽤나 그 때 몸부림을 쳤었는지 몇 명이 상해를 입었고, 그 자리에서 총을 맞고 체포되었다고 한다. 그 외에는, 그 날 그 자리에서 러시아 마피아의 하부조직장까지 검거, 인터폴에 넘기는 쾌거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 뒤 러시아 마피아들은 자국의 관리들에 의해 본국으로 송환되었다고 한다.
나는 날아온 총탄들을 몇 발 맞았다. 운 좋게도 치명상까지는 피했지만, 스쳐가거나 몸에 박힌 파편들에 의해 거의 만신창이가 된 채 그 자리에 쓰러져 있었다. 경찰들은 그런 나를 긴급 후송했고, 나는 의식이 돌아온 후에도 정신을 잃은 척 하고 있으면서 사흘을 보냈다. 그리고는 기회를 봐서 병원에서 도망쳐 나왔다. 집으로는 갈 수 없어서 잠시 영감의 은신처를 썼다.
그리고 나서 내가 가진 재산들을 처분했다. 영감에게는 약속했던 2억을 주었지만, 영감은 네가 살아온 것만도 대단하니 애초의 약속처럼 50대50으로 하자고 했다. 이 일을 그만 두려면 돈이 있어야 할테니까 그런다는 말도 덧붙여서. 하지만 지금도 그 일을 그만 두지는 못하고 있다. 영감은 그래서 가끔 투덜댄다. 그 돈 다 받을 걸 하고.
그리고 내가 살던 집은 전세금을 뺐다. 그것만 해도 1억이 좀 넘어갔으니까, 어떻게든 살 방도는 되었다. 가구나 그런 것들은 직접 가서 처분하지는 못하고, 갑자기 해외로 이민을 가게 되어서 처분을 못하니까 알아서 처분해 주시라고 부동산 중개소에 말했다. 거기에 남겨두면 위험한 것들은 없었다. 직접 가서 해결하기엔 다솜이네 아버지가 그 근처에 잠복을 심어놓았을 가능성이 있어 위험했다.
핸드폰은 그대로 버렸고, 새 핸드폰에 번호를 위장된 신분으로 다시 만들었다. 아마도 그 핸드폰을 누군가 주워 썼다면, 전화를 걸고 30여분 후 갑자기 경찰의 포위망이 자신을 향해 이뤄진 것에 놀랐을 것이다.
집에 전화를 해서 다솜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물었다. 다솜이는 2주 정도 있다가 다솜이 아버지라는 사람이 데려갔다고 한다. 경찰 신분증까지 확인하고 보냈으니까 안심해도 된다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그동안 정이 단단히 들었던 모양이다. 종종 놀러오라고 했으니까 아마도 또 올지도 모른다고 넌지시 이야기해 주었다. 역시 그 때 아버지도 대강 눈치를 챘던 것 같다. 그것으로, 다솜이와 나는 이제 끝이었다.
아픈 몸만큼이나 가슴도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제 모든 건 처리되었다. 다솜이는, 다시 만나지 않아도 된다. 그건, 다솜이에게도 좋은 것이다.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온 것 같았지만, 뭔가는 변했다. 무엇보다, 전에 헤어졌던 그녀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 것 정도는 확실히.
영감은 내가 사는 곳의 근처에 살고 있다. 영감도 꽤나 이곳저곳에 알려져서 밀려드는 주문을 해결하려면 좀 한적한 곳에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던 차에, 내가 말을 꺼내자 나와 같이 이 근처로 내려왔다. 물론 어느 정도의 거리는 두고 있는 곳이고. 나도 이렇게 한적한 곳에 있지만, 아직 주문이 많아서 일을 그만두지는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청송파를 괴멸시켰다는 소문이 업계 사람들 사이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그 세계에 입문한 애송이들이나 이름이 좀 알려져 있는 같은 업종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일도 종종 있었다. 모르다가 알고 보니, 그들 중에는 부부도 있고, 영감 정도의 사람이 일을 하는 사람도 있고, 천차만별의 모습이었다.
청송파를 괴멸시킨 솔직한 이유를 아주 친해진 몇 사람에게 털어놓기도 했는데, 그 때마다 그들의 떡 벌어지는 입과 아픈 추억이 교차하는 것을 즐기기도 한다. 더 기묘한 건, 언제 날 죽이러 올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친분을 유지하고 이런 이야기를 해준다는 자체다.
내 글은 아직도 지지부진이다. 조금 길게 쓰는 소설을 완성시켜 보려 하고 있는데, 역시 시시껍절한 환타지나 무협지 계열이지만, 보통 나오는 그런 양산형들과는 좀 다르게 시간을 들이고 탄탄한 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돈이 어느 정도 있는데다가, 가끔 또 힘없는 사람들의 한건 한 건을 해결해주다 보면 그럭저럭 글을 쓸 만한 여건은 되었다. 그렇게 보내고 있던 하루하루가, 어느새 2년이라는 세월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게 아무 일 없이 흘러갈 날일 것 같았다. 누군가 내 집의 문을 두들기기 전까지는. 주먹으로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가 어쩐지 예사롭지 않아서 나는 손에 나이프를 하나 챙겨 들었다. 그리고는 밖을 향해 물었다.
“누구세요?”
저 쪽에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듯 했다. 누구인지 나는 다시 한 번 물었다.
“누구십니까?”
“경찰에서 왔다.”
경찰에서 왔다니. 이거야 원. 그런데 목소리가 어디서 많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나는 그것이 누구의 목소리인지를 깨달았다. 다솜이의 아버지.
“저를....체포하러 오신 겁니까?”
“......”
저 너머에서 아무런 말이 없다. 나는 숨을 한 번 들이켰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은 해두었다. 감옥 안에서도 글은 쓸 수 있을까. 어쩌면 사형대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지. 뭐 어쨌든, 여기서는 더 피할 수도 없다. 이렇게 자신 있게 문을 두드릴 정도면, 이 근처는 다 포위되어 있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 내가 킬러이고 총기를 소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이상은 최소한 그 정도는 하고 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을 했다.
나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가만히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하마터면 손에 잘 숨겨놓았던 나이프를 떨어뜨릴 뻔 했다.
다솜이의 아버지 뒤에 서있던 다솜이의 눈. 그것이 나와 정면으로 마주쳤기 때문이다.
“계좌추적을 6개월 정도 진행하다가 그만두었지. 표면적으로는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비밀리에 찾아보고 있었어. 그러다가 한 두 달 정도 전에 찾아낸 거야. 정말 잘도 위장했더군. 신분까지 다른 사람으로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거실에 놓여 있는 소파. 커피잔에 모락모락 오르는 김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아버님의 말씀을 들었다. 할 만한 말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솜이는 2년을 지나면서 어느새 훌쩍 커 있었다. 예전의 코찔찔이 모습은 다 어디로 가고 차분한 머릿결에 다소곳한 모습까지. 제법 고등학생 티가 났다. 다솜이 역시 조용히 커피잔에 담긴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왜 자네를 이렇게 찾아 헤맨 줄 아나?”
“네?.....아....그거야 물론......”
나는 말을 흐렸다. 이유야 뻔하지 않은가. 아버님은 경찰, 그것도 형사부장이니까.
“다솜이 부탁 때문이었네.”
눈이 나도 모르게 커져버렸다. 다솜이를 바라보았지만, 다솜이는 얼굴만 살짝 붉힌 채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저게 어찌나 고집이 세던지, 자네를 찾아주지 않으면 죽겠다는 소리를 몇 번을 해대질 않던가. 그리고 정말 죽으려고 약까지 먹고....나도 그렇게 설명은 해주었지만, 도대체 말을 들어야지. 누굴 닮았는지 원....”
누굴 닮았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뻔하지 않습니까.
“어쨌든, 자네를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하길래 데리고 온 걸세. 아, 그리고 오늘은 체포하지 않겠네. 무엇보다 뚜렷한 증거도 없고, 나도 자네에게 신세진 것도 있고. 하지만 자네가 늘 그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면, 언젠가 나랑 부딪히겠지. 하지만 딸아이는 할 말이 아주 많을 거야.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네와 이야기해서 자네가 그렇게 따르겠느냐의 문제겠지. 그럼, 나는 잠시 밖에 나가 있겠네.”
영문을 모를 이야기 뒤에 어색한 표정으로 아버님이 일어나는 걸 엉거주춤한 포즈로 바라보고 있는데, 아버님이 다솜이를 바라보면서 한마디 한다.
“다솜아, 이제 네가 알아서 하거라.”
“어떻게 된 거야?”
나는 커피잔을 한 모금 넘긴 후, 바닥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왜 찾아왔어?”
다솜이는 아무 말이 없다.
“나는 그런 사람이라고 얘기했었잖아. 이젠 다솜이랑도 아무런 상관도 없어. 나 봤으면 된 거지? 이렇게 잘 살아있어. 그러니까 다솜이도 이젠 잘 살고.”
“싫어.”
“뭐?”
나는 다솜이를 바라봤다. 다솜이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눈물이 고인 눈으로.
“아저씨는 정말....처음 나타날 때부터 지금까지도.....너무 자기 멋대로야.”
“그런 사람이라서 미안하구나.”
“아저씨가 너무 자기 멋대로만 하는 게 싫어. 그래서, 내가 고쳐 놓을거야. 평생이 걸리더라도.”
다시 커피잔을 들어 입에 한 모금을 넣던 중에 그걸 뿜을 뻔 했다. 당황한 나는 다시 말을 잘 해보려고 손으로 입가를 닦으며 운을 떼었다.
“다솜아, 내 말 잘 들어....”
“아니. 이젠 아저씨가 내 말 잘 들어.”
다솜이가 성큼 일어서서 탁자 건너의 내 바로 앞에 섰다. 내가 다솜이를 올려다보아야 하는 형국.
“자기만 혼자서 나를 위해서 목숨까지 내놓고 석양의 무법자처럼 휙 사라져 버리면 내가 알았습니다, 잘 살게요, 하고 잘 살 수 있을 줄 알았어? 정말 그랬던 거야?”
“이런 건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나는 너와 함께 할 수 없어. 내가 킬러란 걸 들키기 이전이라면, 어쩌면 하던 일도 그만두고 잘 살 수 있었을 지도 몰라. 정말 그러길 원한 적도 있었어. 그만큼 널.....”
나는 그 다음의 대목에서 주춤했다. 이 말을 하면, 이제 되돌릴 수도 없을지도 모른다.
“날 뭐?”
다솜이가 다그쳐 묻는다. 어차피 다솜이도 알고 있는 말일 것이다.
“....널 사랑한다고 믿었었으니까.”
잠시의 침묵. 그걸 깬 건 나였다.
“하지만 이제는 무엇도 바꿀 수 없고 무엇도 나아질 수 없어. 너는 날 보고 싶어서 그렇게 했겠지만, 내겐 이제 그 모든 게 지나간 일들일 뿐이야. 내 목숨을 던졌던 것도. 네 덕분에 내 과거에 대한 우울들은 나아졌지만, 이제 그 이상의 의미는 없어. 그러니까, 너도 이젠 그만 잊어버려. 고등학교 2학년이면 이제.....”
“학교 이쪽으로 옮겼어.”
“응?”
“아저씨가 여기 있다는 이야기 듣고, 주소도 여기로 해서 옮겼다고. 바로 아저씨네 집으로.”
조금 전, 영문 모를 아버님의 말뜻이 이거였던가. 누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투정인가. 자기야말로 완전히 이렇게 막무가내이면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맘대로 헤집고 들어와서는, 맘대로 사람을 뒤흔든게 누군데.
“그만둬. 이젠 끝난 일이야.”
“아저씨, 나 좀 보고 말해줄래?”
줄곧 바닥을 보면서 이야기하는 내게 다솜이가 소리쳤다.
“정말 그래? 그런 거야? 아저씨 나 사랑한다고 분명히 말했어.”
“너에게 전에 그런 말을 했더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뭐가 다른데? 2년이 지난 게 대수야? 내 맘을 말해줄까? 난 아직도 아저씨 사랑해!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쭈욱.”
현기증이 났다. 듣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다. 그게 지금이 아니라, 아주 예전에 들었었다면, 어쩌면 내 인생이 더 달라져 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은. 이 꼬맹이가 날 사랑한다고 해봤자, 정말 사랑이란 걸 이 아이가 알 수 있을까. 그저 호르몬에 지배당해 이성을 잃은 그런 미친 듯한 감정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시시껍절한 사랑은 수없이 많이 있다. 그리고 내가 보낸 다솜이와의 한 철은 그런 시시껍절한 사랑 중의 작디작은 한 토막이었을 뿐이다. 이젠 그것의 노예가 아닌 내가 좋았었는데, 어째서 이 아이는 지금까지도,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걸까. 왜 그걸 굳게 믿고 있는 걸까.
“네가 사랑이 뭔지는 알기나 하니?”
“그럼 가르쳐 줘봐.”
그리고는 갑자기 그 애의 얼굴이 내 얼굴로 다가온다. 그 아이의 입술이 내 입술에 겹쳐진다. 제길. 서른 네 살이나 되어서....나 당하는 거야? 나 역시 거칠게 그 애를 끌어안았다. 아버님이 나간 쪽에 밖으로 난 창이 없어서 천만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긴 입맞춤이 그 애의 얼굴이 들리며 끝나고, 우리는 서로를 응시하고 있다.
“후회할 텐데.”
“아니, 절대로.”
짧은 대화와 다시 바라보는 서로의 눈. 이렇게, 해도 될까? 정말, 이걸 시작해도 될까. 다시 반복되는 그런 사랑이 아닌 진정한 사랑인걸까. 아니, 어쩌면 그런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진정한 사랑이란 것 따위가, 아예 없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다만, 그런 걸 만들 수가 있다면, 그 상대는 다솜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든다.
영감에게는, 일을 그만 둔다고 말해야 할까. 우리는 서로를 다시 끌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