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껍절한 사랑이야기-에필로그 (완결)

NEOKIDS 작성일 07.01.31 14:3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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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학교 다녀왔습니다.”
“왔어?”
“응, 아저씨.”
“이맘때쯤 올 줄 알고 밥 차려놨어. 같이 먹자.”
“응~”

다솜이가 웃으면서 대답한다. 나 역시 웃으면서 다솜이를 바라본다. 그러나 다솜이의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쓰다만 글이 켜져 있는 컴퓨터 화면과 그 근처에 널부러진 자료들을 포함해서 아주 장대한 쓰레기장이 되어있는 내 작업실을 보더니 바로 인상이 볼만해진다.

“우악!!!!!! 이게 뭐야! 아저씨, 내가 좀 치우고 살라고 그랬잖아. 지저분하게 뭐하는거야!”
“지저분....이라면 다솜이가 원조였는데....”
“난 그런 적 없네요.”
살짝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짓는 내게 다솜이가 윙크를 한다. 그리고는 바로 묻는다.
“오늘은 일 없었어?”
“오늘은 대강 사전조사만 했고, 다음 주에 하나 있어. 뭐 가벼운 내용이긴 한데. 별 일은 없을거야. 늘 평소처럼 하면 되지.”
“이번엔 타겟이 뭐하는 인간인데?”
“악덕 사기꾼. 사람들을 거덜을 내면서 자기는 떵떵거리면서 살고 있다나. 조사도 그럭저럭 해봤는데, 틀린 말들은 아니더라고. 자기 명의로 된 건물들까지 있는, 살이 뒤룩뒤룩 찐 늙은이.”
“흠~ 보수는?”
“평소보다는 적어. 아무래도 다들 당한 사람들이 없는 거 모아서 내는 돈이다 보니.”
“어쩔 수 없지, 뭐.”

다솜이는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내 작업장의 책장 한 쪽에 있는 손잡이를 잡아당긴다. 책장이 천천히 열리고, 그 뒤에 있는 무기와 독극물류를 한참 바라보더니 뭔가를 하나 집어 든다. 독의 흔적도 잘 남지 않고, 1mg 정도만 마셔도 5분 안에 온갖 고통을 당하며 죽는 독. 당한 사람의 꼴이 하도 끔찍해서 나도 자주 쓰지 않는 그런 독이 든 병을 집어들고는 다솜이가 웃으면서 건네준다.

“그런 놈에겐 이게 낫지 않을까?”
“그렇게 가까이 접근하긴 쉽지 않은 놈인데....”
“평소의 실력이 있잖아. 평소의 실력이.”
“너, 너무 날 과신하고 있는거 아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인데, 그 정도는 되어야지.”
“부담느껴진다.”
“크크크크~”

입맞춤, 포옹. 따스한 느낌. 하지만 성인식 전에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 그런 면에서 이건 나름대로 좋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문이다. 다솜이가 나와 함께 한 지 3년. 수시합격을 한 상태에서 조금만 있으면 졸업식을 앞둔 12월. 다솜이 생일이 다가오는 내년 겨울 때니까, 조금만 더 참아보자고 자신을 위로하면서도 쉽지 않은 하루하루. 하지만 참을 수 있다. 사랑한다는 데야.

“이번 크리스마스 때는 아버님댁 안 들러 볼 거야? 이번에 오라고 연락왔다고.”
우리 집 가족들이랑도 굉장히 친해져서 이젠 제법 아내나 며느리처럼 구는 다솜이를 보면서 같이 밥을 먹고 있다. 나는 천천히, 내가 전에 다솜이에게 했던 말들을 떠올린다. 확실히, 그건 내게도 해당되는 말이긴 했지. 아버지에 대한 생각들.
“뭐, 한 번 가봐야 겠지. 다솜이네 아버님쪽은 어떨까.”
“어허, 장인어른!”
“장...인 어른.....이란 말은 아직 안 어울려. 언제 잡혀갈 지도 모르는데.”
“아직까진 별 탈 없잖아. 꼬리 잡힌다 싶으면 도망치면 되고.”
이젠 점점 하는 말이 나보다 더 대담무쌍해지고 있다.
“그보다, 중학교때 친구들 본다고 하던 건....”
“응, 23일 정도에 여기서 파티하기로 했어.”
“여기서?”
“응.”

미치겠다. 또 악몽이 재현되는 건가....고등학교에 진학한 그 애들이 전에 한 번 여길 왔었다. 중학교 때의 난리법석은 그야말로 우스운 수준에 가까웠다. 이것들이 어디서 술을 배워왔는지 맥주를 퍼마시면서 제법 술주정을 피웠던 것이다.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동안은 수능이다 원서다 갖가지 일 때문에 소원하게 지냈던 애들이기에 간만에 만나면 그 버릇없음이 도가 지나칠 터인데. 인상이 별로 안 좋은 걸 눈치 챘는지 다솜이가 어깨를 다독인다.

“괜찮아, 괜찮아. 아저씨. 장비나 무기들은 미리 치워놓고, 나도 도와줄게. 아저씨는 아직 우리 마스코트라는 거, 잊지 말고.”

그런데 그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을 열어보니 영감과, 내 후배쯤 되는 강신혁이 와있다.
“무슨 일이에요? 이런 시간에.”
“전화로 하려다가, 일단 급하게 왔구먼. 아무래도 이 근처에 있을까 싶어서. 우리가 도와줄 일 없을까도 궁금하고.”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다솜이가 와서 꾸벅 인사를 하면서 묻는다. 영감이 보통때같으면 다솜이를 보면서 웃는데, 지금은 웃지도 않는다.
“청송파, 그 두목 아들새끼 알쟈? 자네가 칼로 다리 절단 냈었던 놈.”
“네.”
“청송파 두목이 감옥에서 그 놈을 조종해서 다시 사람들을 모았나 봅니다. 흉흉한 소문이 파다하고요. 아무래도 조만간 여길 찾아낼 듯 합니다. 어딘가로 떠나시는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강신혁이 꽤나 위험을 느끼는 듯한 표정으로 말한다. 나는 다솜이를 바라보면서 빙긋이 웃었다. 다솜이도 씨익 웃었다. 그런 우리들을 본 영감과 강신혁의 표정이 더 황당한 모양새를 지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다솜이도 실전을 뛰어본 몸이다. 어렵지는 않을 거다. 이 집을 고른 이유와 동작감지기의 사용법, 폭발물을 다루는 방법, 부비트랩, 총기사용법, 독극물 사용법. 다솜이는 남들 모르게 그런 것들을 내게 배우고 있었다. 이젠 누가 어떻게 오던, 우리는 죽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나와 다솜이는 영감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탄이나 좀 챙겨주세요.”



(완결)




후기-

초고수준이라지만 이따위의 글을 써놓고 후기를 쓰냐 하시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가볍게 가버릴텨!’라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고나 할까요.

사실 이 아이디어는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도 아니었고,(택시 블루스라는 단편영화를 찍은 감독님의 표현을 쓰자면....내 인생에 갑자기 끼어들어버린 존재....얼른 해버리고 싶었던.....) 준비가 소홀한 상태에서 저질러보자는 심정 따위로 시작했던 게 꽤나 질질 끌다시피 썼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보면 자잘한 실수 따위도 많습니다. 뭐, 초고니까....라는 변명으로 어물쩍 넘어가기엔 용납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장편을 쓸 때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어떻게 호흡을 생각해봐야 할지에 대한 공부가 많이 된 작품입니다.

이외에도 사랑의 형식을 갖추고 있는 것을 묶어서 연작 식으로 써볼 생각입니다. ****한 사랑이야기 뭐 이런 식으로 말이죠. 해괴한 망상의 둥지처럼. 해괴한 망상의 둥지는 훈련의 느낌으로 계속할 생각이구요. 지금보다 배는 더 부지런해져야 겠죠. ㅠㅠ

지켜봐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다음엔 더 나은 작품으로 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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