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이야기-숲

괴의비명 작성일 07.03.10 22:3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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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하는 단말마 같은 신음소리와 함께 소스라치게 일어났다.

 

그곳은 숲이었다. 총천연색으로 빛나는 숲의 한가운데 남자는 서있었다.

 

그 뒤로 그림자처럼 남아있는 누웠던 자국이 흉물스럽게 남아있었다.

 

그는 당황했다.

 

잠에서 깨어보니 홍두깨 같이 숲속이라니 꿈이라도 꾸는 것 같았다.

 

그리고 황급히 자신의 로렉스 시계를 봤다.

 

-출근해야하는데!! 몇 시지?

 

시계는 11시59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말도 안돼 내가 지각을 하다니 젠장할 여기는 어디란 말이야!

 

남자는 마음이 급해졌다.

 

아마도 모종의 점심약속이 생각이 난 것이리라.

 

그는 핸드폰을 찾았다.

 

먼저 연락이 급했다.

 

그녀는 약속을 어기는 것을 상당히 짜증내 했으니까 말이다.

 

핸드폰을 찾았다.

 

급히 번호를 찍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남자는 엄지손톱을 신경질적으로 깨물었다.

 

전화가 연결되지 않는다.

 

안테나도 전부 떠있는데 연결이 안되는것이다.

 

다른 번호도 자리를 옮겨보아도 마찬가지다.

 

전화가 연결되지 않는다.

 

심술궂어 보이기까지 하는 sky핸드폰은 11시 59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마음에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고의로 그런 것은 아니니까. 분위기 좋은 곳에서 저녁식사를 하면 풀어지겠지 뭐.

 

남자는 커다랗게 솟아있는 나무에 기대어 앉았다.

 

소나무인 것 같다.

 

솔의 향이 머릴 맑게 해주는 것 같았다.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누가 자길 여기에 데려다 놓았냐는 것이다.

 

그는 전날 술도 마시지 않았고 늦게 귀가를 하지도 않았다.

 

직장에서 그의 위치는 야근을 할 정도로 낮은 위치가 아니여서 7시가 되자마자

 

포테이토 칩을 사들고 집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길에서 무슨 일을 당한 것이 아니라면 집에서 자고 있는 그를 누가 여기에 옮겨 놓았다는 것이다.

 

누굴까?

왜 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살풋 잠이 든 것 같다.

 

아마도 상쾌한 공기와 솔의 향 때문일 것이다.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자신이 앉아있는 이 나무 밑에서 죽어가는 꿈이었다.

 

별로 고통스러워 보이진 않았다.

 

다만 조용하게 무심히도 죽어가는 것이었다.

 

나무가 죽듯 그렇게 조금씩 말라 결국 썩어 숲의 일부가 되는 한그루의 소나무가 되는 꿈이었다.

 

문득 그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숲의 일부가 되어.........

 

....................

 

 

아! 안돼.

 

다시 한번 소스라치듯 잠에서 깼다.

 

머리위로 무언가가 푸드덕거리며 날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남자는 고개를 들어 머리 위를 바라보았지만 새는 보이지 않았다.

 

하늘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푸른색의 물결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에메랄드가 생각난다.

 

깊고 푸르며 빛을 휘어잡아 삼켜버리는 에메랄드 같은 하늘이다.

 

손을 뻗고 뛰어보자 팔짝하면 만질 수 있는 에메랄드빛 하늘에 구멍이 난 듯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부서져 내려오는 눈 시린 광원이 신비로워 보이기까지 하다.

 

내가 서있는 나무 아래는 뿌윰하게 빛이 내려오고 있었다.

 

어렸을 때 비가 오면 우산 두어개를 둘러치고 그 아래서 놀던 기억이 났다.

 

감정의 바다에 부표처럼 설레임이 떠올랐다.

 

여기는 도시이다.

 

나무는 도시이자 건물이자 도시 전부이기도 하다.

 

나는 이방인, 적의도 호의도 느껴지지 않는 이 도시에 기묘한 호기심만 넘실거릴 뿐이다.

 

혼자라는 단절감에 가슴 한 켠이 괜시리 뻐근해진다.

 

아마도 기쁨인 것 같다.

 

‘삐빅’

 

핸드폰에 문자가 왔다.

 

-귀하의 bc gold class 카드의 대금이 청구되었습니다. 확인바랍니다-

 

기억났다.

 

오늘은 송금하는 날이다.

 

뉴욕에서 생활하고 있는 딸에게 마누라에게 돈을 부쳐야 한다.

 

잠시간의 기쁨이 끊어졌다.

 

다시 로렉스 시계를 보았다.

 

여전히 11시 59분이다.

 

‘톡톡’두드려보아도 반응이 없다.

 

어떻게 된 것일까? 핸드폰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문자가 온 것인가 궁금하다.

 

‘1588-xxxx’

 

폰뱅킹을 하려고 했지만 이번 역시 연결이 되지 않는다.

 

안테나도 전부 떠 있는데 말이다.

 

남자는 지갑에서 딸과 부인이 함께 찍은 사진을 꺼내어 보았다.

 

뉴욕의 유명할 것 같은 넓은 거리에서 둘은 다정하게 껴안고 있었다.

 

나도 저 사이에 있었으면 좋았을 껄 하고 생각해보지만 소용없다.

 

남자는 살며시 고개를 흔들었다.

 

빨리 돈을 보내야한다.

 

남자는 앞으로 나아갔다.

 

나무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며 앞으로 전진 했다.

 

어느 숲이든 어느 길이든 어느 곳이든 분명 끝이란 건 존재한다.

 

한쪽으로만 쭉 가다보면 분명 숲이 끝나는 곳이 나올 것이다.

 

숲은 울창했다.

 

땅을 박차고 나온 뿌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갈고리 같이 뻗친 가지에 생채기도 많이 났다.

 

남자는 그래도 우직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숲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공기도 맑았다.

 

하지만 남자의 머릿속에 이미 그런 것은 멀어져있었다.

 

오직 나가야한다는 생각 뿐........

 

그렇게 얼마를 왔는지 모르겠다.

 

계속된 전진으로 피로했고 땀도 많이 났고 더웠다.

 

공기가 바뀌었다.

 

콧속을 찌르는 한기가 올라왔다.

 

적의가 느껴진다.

 

그리고 눈앞에 내가 누웠던 자리가 흉물스럽게 보인다.

 

말도 안돼.

 

어떻게 된 거지.

 

남자는 둔해진 발걸음을 놀렸다.

 

놀란 얼굴을 하고 찬 공기를 가르며 앞이라고 생각되는 쪽으로 한발 한발 걸었다.

 

숲은 여전히 그를 자빠뜨리려 했고 할퀴고 막으려 했다.

 

신경질적으로 나뭇가지들을 제치고 걸어갔다.

 

한참을 걸었다.

 

먼저 번에는 넘어지거나 하면서 방향을 헛갈렸겠거니 했을 때 즈음 눈앞에 유령처럼 다시 그것이 나타났다.

 

마치 시체라도 되는 양.

 

그림자가 누워있는 것처럼 잔뜩 웅크리며 잔 자신의 모습 그대로 찍혀있는 자리가 나타났다.

 

공포가 또아릴 틀고 그곳에 있었다.

 

-마.......말도 안돼.

 

남자는 하늘을 보았다.

 

해가 보이지 않는다.

 

나침반도 없다.

 

방향을 가늠 할 수 있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디선가 들려오는 푸드덕 거리는 소리.

 

그게 신호탄이 되어 남자는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내달렸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초록색 물결이 어지러이 눈앞에서 흩어지더니 노래졌다.

 

-퉤.

 

침을 뱉었다.

 

어렸을 때는 훨씬 오래 빨리 달릴 수 있었던 것 같은데 남자는 볼록한 배를 만지며 한심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한숨 돌리고 천천히 걸었다.

 

기분이 조금 나아졌는지도 모르겠다만 땀이 채 식기도 전에 남자는 멈춰버렸다.

 

눈앞에 펼쳐진 초록색 숲과 흉터처럼 남아있는 자국.

 

벌써 세 번째다.

 

-삐빅

 

문자가 왔다.

 

핸드폰을 꺼내보니 아까 그 문자가 또 왔다.

 

카드 대금을 인출해가겠다는 문자.

 

남자는 갑자기 욕지거리가 치밀었다.

 

공포에 잇닫은 소갈머리 없는 화가 남자를 지배했다.

 

핸드폰을 집어던졌다.

 

그것은 ‘휙’하고 날아가 ‘퍽’하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누웠던 자국에 떨어졌다.

 

심장처럼 중앙에 박혔다.

 

다시 한번 ‘삐빅’거리는 소리가 났다.

 

-으아아아아아아

 

남자는 소리를 질렀다.

 

목을 옥죄어드는 엔드류 넥타이를 거칠게 뽑아 집어던졌다.

 

나무를 발로 찬다.

 

주먹으로 친다.

 

가지를 부러뜨린다.

 

나뭇잎을 한 움큼 뜯어내 공중에 던지다 제힘에 못 이겨 핑글하고 넘어져 버렸다.

 

-아아아아아아아아!!!!장난치지 말고 나오란 말이야.

 

듣는 이 없는 외침.

 

그리고 내리누르듯 한 공기와 피곤이 쏟아져 왔다.

 

잠이 스르륵 든다.

 

꿈을 꾸었다.

 

또 그 꿈이다.

 

조용하게 죽어 나무가되고 숲의 일부가 되는 꿈.

 

-삐빅

 

문자소리에 잠이 깼다.

 

어지러운 머리를 이끌고 핸드폰을 보니 액정이 나가있다.

 

-젠장.

 

남자는 목이 말랐다.

 

‘퐁퐁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옹달샘이 있다.

 

아까 왜 저런 걸 발견하지 못했을까?

 

목을 축이고 나니 정신이 좀 맑아진다.

 

생각을 한다.

 

이상한 숲이다. 저 앞에 있는 자국도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어딘가 숨어 있다가 나타나는 것 같다.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는 옹달샘,

 

멈춰버린 시간, 소리만 날뿐 보이지 않는 새(그러고 보니 숲에 곤충이나 벌레 같은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정상적인 것이 나뿐인가. 아니 여기선 내가 비정상적일수도......

 

이곳은 해가지지 않는다.

 

아니 해가보이지 않으니 정확히는 모르겠다만 날이 지질 않는다.

 

어둠은 존재 하지 않고 계속되는 빛의 세계이다.

 

그래도 사람인지라 생체 리듬에 따라 몇 번의 잠을 잤다.

 

두 손으로 횟수를 센 다음에는 잊어버렸다.

 

아니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지식들은 벌써 다 똥이 되어버렸다.

 

별을 볼 수도 해를 볼 수도 없으니 방향을 가늠할 수 없었다.

 

나가는 방법이 없다.

 

똥처럼 구릿한 냄새만 머리에 진동할 뿐이다.

 

신기한 것은 배가 고프지 않다는 것이다.

 

그 퐁퐁거리는 옹달샘에서 물만 마시고 있다.

 

그런데도 내겐 생명이 충만하다.

 

죽기 않기에 힘이 있기에 계속해서 걷고 있다.

 

물을 마시지 말까 생각도 해봤지만 무섭다.

 

옷은 너덜너덜 해졌고 아르마니의 드레스셔츠는 찢어버린지 오래다.

 

저번에 발작 했을 때 찢어버렸다.

 

나는 그것을 발작이라고 여긴다.

 

발작은 매우 복합적인 정신적 스트레스이다.

 

눈앞에 나무가 보이고 초록색이 보이고 그러다가 다시 내가 태어난 것 같은 그 그림자 자욱이 흉물스럽게 남아있는 것을 봤을 때 발작은 일어나곤 한다.(이제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발작이 일어나면 끝도 없는 숲이 마치 사각형의 반 평 남짓의 암실이 된 것 같다.

 

빛도 색깔도 공기도 공간도 여전한데 나는 보지도 마시지도 못한다.

 

먼저 숨이 막혀오고 눈이 깜깜해져 어떤 것도 볼 수 없어진다.

 

어디로 손을 뻗어도 막혀있는 느낌이다.

 

마치 꼭 맞는 관에 들어간 느낌처럼 옴짝달싹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슬픔과 고통 그리고 공포 같은 그 무언가가 가슴에서 차올라 이작은 관을 가득히 채워버리는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표류한 것 마냥 허우적거리다 잠이 든다. 그리고 깨면 물을 마시고 다시 걷는다.

 

저 자국을 마주친 것은 잠을 잔 횟수에 곱절은 될 것이다.

 

일과처럼 걷는다. 가끔은 걷는 이유를 까먹을 때가있다. 왜 나가야하지? 남자는 생각했다.

 

떠오르는 것은 뉴욕에 있는 딸이었다.

 

본의 아니게 일찍 놓아버린 아이다.(나는 그걸 젊은 날의 치기라고 말하고 싶다.)

 

그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 했을 때 뉴욕으로 보내야했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한다고 한다.

 

나는 상류층은 아니지만 하지만 모대기업이 지은 60평짜리 로얄캐슬에 살고 있으며 펀드도 여러 개 들어 놨다.

 

이 모든 것이 부의 세습을 위한 것이다.

 

부의 축적과 세습을 위해서 딸을 뉴욕에 보내야했다.

 

딸도 똑똑해야 좋은 대학을 나와야 영어를 잘해야 좋은 남편을 만나 부유한 삶을 살 것이 아닌가.

 

그러기위해 딸을 보냈다.

 

딸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3년이 넘었고 마지막으로 통화를 한 것은 숲으로 떨어지기 한 5일전 정도 되었다.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딸애의 목소리는 어딘가 현실감이 없었다.

 

간혹 섞이는 영어도 말이다.

 

그래도 아빠 사랑해요란 말은 한국말로 해준다.

 

그때 딸애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딸애가 보고 싶다.

 

내 아내도 딸을 따라 같이 뉴욕에 가있다.

 

그래도 한두 달에 한번씩은 한국으로 돌아와 집에 온다.

 

다시 한번 그곳이 나타났다.

 

남자는 옹달샘에 가 물을 마셨다.

 

물끄러미 자국을 보았다.

 

몸을 둥글게 말고 잔 자국이 있고 그 위로 나뭇잎 몇 개가 떨어져있고 심장쯤 되는 부근에 핸드폰이 박혀있다.

 

액정이 나간 핸드폰은 충전도 안했는데 문자가 온다.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카드사에서 보낸 출금확인 문자이리라 한다.

 

한참을 바라본다.

 

문득 참으로 그로테스크하단 생각이 들어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핸드폰 심장이 박힌 둥글게 말린 괴물을 보는 듯 하다.

 

다시 걸음을 걷는다.

 

부지런히 발을 놀리고 손을 앞뒤로 힘차게 흔든다.

 

신기하게도 이제는 몸에 생채기가 생기지 않는다.

 

딱히 피하거나 조심하지 않는데도 상체는 아무것도 입지 않았는데도 긁힌 자국 하나 없이 숲을 헤집고 다닌다.

 

소담스럽게 나왔던 배도 이제는 쏙 들어갔다.

 

남자의 몸은 나뭇가지처럼 말라 앙상해져가고 있다.

 

발리에서 산 로퍼는 이미 너덜 해져 있다.

 

비싼 녀석인데 조금은 아깝다는 생각을 한다.

 

남자는 멈춰서 조금 생각을 하다가 발리로퍼를 벗어 던져 버렸다.

 

로퍼 밑에 하얗게 빛나는 발이 신기하다.

 

왜인지 모르지만 신발 따윈 없어도 될 것 같다.

 

캐스트어웨이가 생각이 났다.

 

얼마의 시간이 더 지났을까?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잠을 자는 주기가 점점 짧아져간다.

 

물만 먹고 사는 대신 잠을 많이 자는 것 같다.

 

다시 한번 그곳으로 돌아왔다.

 

내가 깨어 저 자리가 무척이나 괴기스러워 보이지만 동시에 편안해 보인다.

 

이상한 기분이다.

 

부인이 딸애를 따라 간지 딱 일년 만에 애인을 만들었다.

 

버스에서 그녀를 처음 보았다.

 

그녀의 첫인상이 지금의 내 기분과 매우 닮았다. 어딘지 모르게 괴기스러우면서 편안한 느낌.

 

그녀는 옷차림부터 특이했다.

 

검정색의 딱 붙는 스키니진에 역시 딱 붙는 라운드 티를 입고 있었는데

 

(사실 그건 30살 먹은 여자로서는 하기 힘든 패션이다)

 

게다가 빨간색 모자를 쓰고 있었다.

 

머리는 새까맣게 허리까지 내려오고 있었다.

 

피부는 매우 하얬다.

 

이질적인 두개가 공존하는 느낌이다.

 

몸에는 전체적으로 살이 좀 있는 편이었다.

 

보기 좋게 뚱뚱하기는 보기 좋게 마르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이 여자는 전체적으로 보기 좋게 뚱뚱함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배가 많이 나와 있었다.

 

앉았을 때 가슴높이와 배 높이가 같았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나로 하여금 혐오감이나 추하다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묘하게 시선을 끄는 것이다.

 

마치 어딘가 결락되어버린 모나리자를 보는 것 같았다.

 

(누가 그녀의 눈썹을 지웠는가(웃음))

 

그녀는 나의 모나리자가 되었다.

 

잠이 온다.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잠을 잤다.

 

정신을 차려보니 걷고 있다.

 

숲은 항상 똑같다.

 

시리게 푸르고 생명이 넘치며 신비롭고 이상하다.

 

이젠 걸으면서도 나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냥 걷고 있다.

 

방금 그곳을 지나쳐왔는데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걷고 있다.

 

일상보다 더 한심한 마주침이다.

 

몸은 말끔하다.

 

어느 곳에도 상처하나 없다.

 

먼저 번에 물을 마시다 물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웃어버렸다.

 

피부는 더욱 하얗게 됐고 곳곳에 금이 간 것처럼 푸른색 핏줄이 툭하니 불거져 나와 있다.

 

몸의 지방질은 거의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

 

물만 먹고 지내지만 몸에 생기가 넘쳐서 걷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몸이 오히려 더 건강해진 기분이다.

 

아내는 내 배가 볼썽사납다고 얼굴을 찌뿌렸었는데 지금 보면 좋아할까? 남자는 생각했다.

 

남자는 젊은 날의 뜨거웠던 사랑을 생각한다.

 

억만금을 주어도 바꾸지 않겠다던 아내를 향한 맹세와 서로의 미래를 약속한 결혼식도 생각났다.

 

그때는 정신이 하나도 없고 넋이 반쯤 나가서 어떻게 식이 지나갔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아내가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장인어른 얼굴이 매우 무서워 보였다는 것만 기억날 뿐이다.

 

-그래. 그땐 그랬었다.

 

남자의 눈엔 어느새 눈물이 쉴 새 없이 흐르고 있었다.

 

저 마르지 않는 옹달샘처럼 말이다.

 

멈추지 않고 쉼 없이 걷는 다리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자신은 그걸 모르고 있다.

 

자신이 울고 있단 사실도 심지어 걷고 있단 사실도 모른다.

 

그의 결혼반지는 회사 책상 서랍 속에 있다.

 

새로 생긴 애인인 그걸 싫어하기도 했지만 과거를 생각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아내를 사랑하는가?

 

딸애가 보고 싶다.

 

하지만 숲에선 모든 것이 현실감이 없다.

 

부유하는 공기처럼 1온스의 무게도 지니지 않고 흩어질 뿐이다.

 

-흩어질 뿐이다. 다만 그렇게 조용하게 숨을 죽일 뿐이다.

 

남자는 걸음을 멈췄다.

 

그곳이 나타났다.

 

그는 자신이 누웠던 자리로 걸어갔다.

 

그리고 심장처럼 박혀있는 핸드폰을 뽑아 옹달샘에 집어 던졌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 누웠다.

 

마치 자신이 심장이 된 것 마냥.

 

자국에 정확히 자신을 일치 시키고 잠을 청했다.

 

남자의 벌거벗은 태초의 아담처럼 둥글게 몸을 말고 누워있었다.

 

그리고 서서히 하얀 피부가 빛을 잃고 거무죽죽해지더니 이윽고 뿌리를 내렸다.

 

-남자는 숲의 일부가 되었다-

 

남자는 언젠가 할머니에게 들었던 옛 이야기를 기억해 냈다.

 

-얘야 숲에 빠져서 나올 수가 없다면 이건 아주 큰일이란다.

네 녀석 혼자 힘으로는 나올 수가 없거든.

숲 밖에 누군가가 널 기억해 줘야 그때서야 나올 수 있는 게야.

 

-에, 할머니 전 숲에서 길 잊어 먹은 적 한번도 없는데?

그냥 나오면 되지 뭐 그리고 내가 없어지면 할머니가 찾아주면 되지.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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