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조가 아카데미를 떠나온지 일주일이 지났다. 17조의 과제는 슬라임사냥 퀘스트 하나에 유적발견 퀘스트 둘, 전달 퀘스트에 다섯, 수집퀘스트가 둘이었다. 처음부터 계획도 없이 만만히 보고 무작정 슬라임사냥에 도전했다가 슬라임 무리에게 무기를 모두 부식당하고 간신히 도망친 17조는 사냥은 나중에 사전 조사를 한 후 진행하기로 했고, 현재는 전달 퀘스트와 유적 발견 퀘스트가 지도상 같은 선상에 있기 때문에 동시 진행하는 중 이었다. 그 과정에서 겸사겸사 식물수집퀘스트도 같이 진행하였다. 수집퀘스트는 각 지방 특산물을 모아오는 것이나 특정지역에서 자라는 식물을 채집하는 것이었다.
“여전히 시끄러운 녀석들, 그래도 평민 녀석이 이럴 땐 쓸모가 있군.”
“올리비에. 기왕 칭찬할꺼 같은 말이라도 듣기 좋은 말로 해주지. 그게 뭐니?”
“브, 브라다! 내, 내가 언제 칭찬했다고 그래?!”
지난번 슬라임 무리에게 무모한 도전을 했을 때 올리비에는 자칫하면 뒤에서 몰래 덮친 슬라임 때문에 크게 다칠 뻔 했다. 슬라임이 자체 공격력은 없지만 일단 자신의 몸 안으로 집어 삼킨 것은 부식시키므로 조심해야했다. 간신히 일행들이 슬라임을 제거했지만 전에 입었던 작은 상처에 슬라임의 체액이 들어가 상처가 악화되어 올리비에는 쓰러졌고, 그나마 일행 중에 회복계열마법을 가장 많이 공부한 플로시마르가 나서서 그 상처를 치료해주고 보살펴 주었다.
나중에 올리비에가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치료해준 이가 플로시마르인 것을 알고도 했던 소리가 ‘평민으로써 귀족을 위해 당연한거 아닌가?’ 였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같이 생활하며 고생하고 더욱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었기에 전에 비해 많이 누그러지고, 속으로는 고마워하고 있었다.
“크크크, 올리비에 저 녀석 부끄러워하는 것 봐.”
“닥쳐! 리날도!”
여전히 티격태격인 일행이었지만 올리비에뿐만 아니라 모두들 아카데미 내에서와는 달리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었다.
‘이거 어디로 줄을 서야하지? 뭐 저 녀석들도 한가닥하는 집안 녀석들이니 오히려 잘 된 일인가?’
물론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후아. 이것으로 편지전달 미션도 완료!! 남은건 슬라임사냥하고 유적발견 퀘스트 하나뿐이네. 우리 이대로 가면 미션 다 마치고도 한 일주일 남겠다. 이러다가 우리 조가 1등하는거 아니야? 흐흐흐”
“그러게, 그동안 너무 미션 수행하는데만 몰두한거 같아. 기왕 시간이 여유도 있겠다 우리 천천히 구경하면서 다니자.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디종 지역도 끝인데 어떻게 할래? 서쪽의 베른으로 갈까? 아니면 남쪽의 마르세유로 갈까? 난 베른 쪽이 좋을꺼 같아. 거기 초콜릿이 유명하거든. 한번 먹어보고 싶어”
브라다는 입에서 사르르 녹을 달콤한 초콜릿을 생각만 해도 즐거운지 싱글벙글했다.
“그럼 베른으로 가기로 하지. 베른으로 갔다가 파리로 돌아가는 길에 미션을 완수하면 시간이 대략 맞아 떨어질 것 같군.”
“좋아. 그렇게 하자. 올리비에 역시 너의 계획의 완벽해.”
올리비에는 베른 쪽으로 방향을 잡자고 했고 가네롱도 동조했다.
“어째 올리비에 저 녀석은 말하는 것마다 브라다 편을 들어주는건지. 므흐흐, 혹시 너 브라다 좋아하는거 아냐?”
“시끄럿!! 난 단지 귀족으로써 왕국의 국경을 가보는 것도 좋을꺼 같아서 그런 것뿐이야! 내가 앞장서지”
“올리비에 같이 가~”
올리비에는 버럭 소리친 후 벌게진 얼굴을 가리기 위해 고개를 푹 숙이고는 일행을 앞서서 말을 몰기 시작했고 가네롱이 뒤따라갔다. 뒤에서 롤랑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올리비에. 마르세유도 로마 공화국과의 국경이지 않아?”
“입 닥쳐!!!”
올리비에는 고개를 더욱 숙이고 말을 더욱 재촉했다.
베른은 전형적인 군사도시로써 프로이센 왕국과의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아레강이 도시를 휘감아 도는 형태를 띄고 있고 알프스산맥까지 끼고 있어 방어에 유리했으며 프랑크왕국의 건국 이래 한번도 함락된 적이 없는 곳으로도 유명했다. 현재 촐더스 자작이 영주로 부임하여 방어를 맞고 있었다.
“우와~”
롤랑일행은 거대도시인 파리에서 생활을 했지만 파리의 화려함과는 다른 웅장함을 주는 베른의 외관에 감탄을 했다. 성문으로 다가갈수록 높아지는듯한 성벽의 위용에 일행은 위축되었다.
“신분증과 방문 목적을 알려주십시오.”
성문의 위병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절도 있는 동작으로 검문을 하였다. 아카데미 학생들은 재학하는 동안 기존 신분은 잠시 말소가 되기 때문에 모두 아카데미 재학생임을 나타내는 표식을 소지하고 있었다.
“왕립 아카데미 학생분들 이시군요. 베른을 방문하여 주신 것을 환영합니다. 머무시는 동안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롤랑일행은 검문을 통과하여 베른으로 들어가 길을 걸으면서 연신 감탄을 했다.
“도시가 참 멋지네.”
“우와! 저 성당 봐. 지붕이 무지 높네. 뭐 이리 뾰족해?”
“크크. 지붕 끝에 찔리면 피나겠다.”
"그나저나 너무 힘들다. 우리 일단 쉬자."
“나도 발 아파.”
중앙광장에서 조금 떨어진 여관에 방을 잡은 롤랑 일행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며 그동안에 쌓인 피로를 풀었다. 베른에서의 첫날은 그렇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