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운이 탄 차가 막 진의 입구로 들어서 동굴을 지나고 있을 무렵, 싸울아비가 갑자기 차를 세웠다.
“무슨 일입니까?”
갑작스런 움직임에 놀란 시운이 묻자 싸울아비가 답했다.
“앞에, 누군가 있습니다.”
시운은 시트 밑에서 검을 꺼냈다. 언제 무슨 일이 있을지 몰라 항상 대비해두는 검으로 한국전통검이지만 그다지 뛰어난 검은 아니었다. 그저 호신용 정도로만 있을 뿐이고, 이 정도도 거의 꺼내지 않아도 될 만큼 상황이 나쁜 적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있어선 안 될 곳에 사람이 있다. 라디오의 방송도 들었다. 지금은 적이 언제 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시운은 검을 아직 뽑지 않은 채, 싸울아비와 함께 차에서 내렸다. 헤드라이트 불빛에 긴 흑단의 머리가 비춰졌고, 난데없는 불빛에 남자는 눈을 가리고 있었다.
“뉘신데 이 동굴에 계신지?”
시운이 건네는 말을 장발의 남자, 적환은 무뚝뚝하게 받았다.
“먼저 자동차의 불빛 좀 끄면 안 되겠습니까?”
“제 물음에 대답을 하시는 것이 먼저입니다만.”
시운과 싸울아비, 그리고 적환의 시선이 충돌하면서 적대감이 어렸다.
“그러시니 묻겠습니다만, 혹시 푸름 가문의 분이신지?”
“푸름 가문이란 이름은 어찌 아시게 되었는지?”
“이러다간 질문의 끝이 안날 것 같습니다. 역시 힘으로 이야기할 때인가요?”
남자의 싸늘한 말에 시운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편이 오히려 편하겠죠.”
몰래 숨겨져 있던 싸울아비의 손이 엽창을 날렸다. 불빛을 받으며 맹렬하게 날아가는 엽창의 날이 제법 서 있어 파공음을 강하게 냈지만, 남자는 그것을 가볍게 두 손가락 사이로 받았다.
“전해 들었던 푸름가문 치고는 이상하군요. 이런 술수밖에 못 쓰시는 분들이라니......”
“이거 실례.”
싸울아비에게 물러서 있으라는 손짓과 함께 시운이 자세를 잡고는 신형을 날렸다. 시운의 축지와 경공이 순간 동굴의 천장을 울리면서 강한 충격과 함께 쇄도하자 장발의 남자는 순간 움찔하면서 저도 모르게 등 뒤의 검을 뽑아들었다. 간발의 순간. 장발의 남자가 막지 않았더라면 그 날이 바로 남자의 목을 꿰뚫었을 것이었다. 시운의 눈이 어둠 속에서 강하게 빛났다.
“손속을 좀 강하게 써야 대답을 해 주실 것 같길래.”
“강하시긴 하시군요.”
남자의 말에 시운이 씩 웃었다.
“칭찬 감사합니다.”
바로 축을 잡고 돌아 들어가는 칼날과 함께 두 신형이 서로 엇갈리고 뒤틀렸다. 시운의 빠른 손속도 손속이었지만, 그것을 간발의 차로 막아내고 있는 장발의 남자, 적환 역시 대단했다. 빗겨간 칼날의 검기가 두 신형이 교차하는 사이로 어지러이 빗겨가며 동굴 벽에 금들을 남겼다. 이 삼십합 정도가 지났을까, 남자는 어느새 숨을 몰아쉬며 오한을 흘리고 있었다. 동굴 벽에서 흩뿌려진 흙들이 그 땀으로 엉겨붙어 있었다.
‘대체 이건......’
원래 이런 검기서린 싸움에서는 오감보다는 기척의 흐름을 파악하는 육감으로 상대하는 법. 하지만 기척의 흐름이라도 구파일방의 손속들이라면 적환은 어느 정도 체험해본 터였다. 따라서 어떤 무술이라도 능히 막아낼 수 있어야 하겠지만, 적환은 지금 오감을 최대한 끌어올리는데 집중할 뿐이었다. 무형이면서도 흐름이 독특한 이 기척을 육감으로 상대했다가는 자신이 행하는 초식들이래봤자 허점만 제공해줄 뿐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땀과 숨이 몰아나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정은 시운 역시 같았다. 시운도 난감할 뿐이었다. 미세한 변초가 많고 방어와 동시에 공격으로 전환되는 검법. 움직임도 난해할뿐더러 어떻게든 다 막아내는 그 실력과 보법. 이런 검법은 이제까지 구파일방의 무술을 접해본 중 시운이 제일 까다로워 하는 검법이었다. 시운은 놀라움을 그대로 적환에게 전했다.
“보아하니 화산검법 같으신데, 화산의 제자시오?”
“그러합니다.”
“그렇다면 이 땅의 두 가문이 화산파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것도 알고 계실 터.”
시운이 검에 전하는 기운을 더 끌어올렸다.
“그 쪽에서 아주 과거에 한 일은 이미 가문의 비록으로 다 보았던 터. 어째서 염치도 좋게, 그것도 진을 파괴하면서 지금 이리 들어온 연유를 들어봐야겠군요!”
“염치불구하고 오게 되었을 정도로 급한 사정이 있습니다만.”
“사미를 살려둔 게 그렇게 후회되셨나?”
순간, 적환의 눈매가 정말 놀랐다는 듯이 크게 변했다.
“아미파의 생존자가 여기 있소이까?”
“문답무용.”
또 다시 경공이 일으킨 파열음과 먼지가 적환 쪽으로 쇄도했다. 급히 내뻗은 장에서 솟아난 조그만 기운이 시운의 정면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미 늦어 있었다. 시운이 가진 검이 맹렬한 속도로 파고들면서 적환의 옆구리 쪽에 박히려 하고 있었다. 급한 김에 적환은 그 장을 틀어 검기파쇄를 노렸다. 하지만 공허한 느낌과 함께 검은 어느새 측면이 아닌 정면으로 치솟아 있었다. 싸늘한 시운의 검기가 적환의 머리를 두 쪽 내려고 하는 찰나.
“화산의 제자, 도움을 청하고자 왔습니다.”
그가 내뱉은 말에 검이 적환의 머리 위 1mm 남짓 될까 말까한 틈을 두고 멈췄다. 적환의 검은 이미 등 뒤에 꽂혀 있고, 손은 포권을 하고 있었다. 강한 외풍과 함께 가까스로 제지한 시운의 검에서 흘러나온 기가 적환의 머리카락을 휘날리고 있었다.
이미 적환의 이마에는 그 검기를 이기지 못하고 살짝 핏방울이 하나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