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창전 - 4. 푸름 가문 (2)

NEOKIDS 작성일 08.05.09 01:2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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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운이 학교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가 다 되어서였다. 그 전에도 휴학계를 내긴 했지만 고등학교 휴학계란 게 별걸 다 까다롭게 물어보는 탓에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해내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그런 건 대통령과도 줄이 닿는 할아버지 선에서 해결해주면 될 일이었지만, 전에 이런 일이 있었을 때 도움을 요청했더니 할아버지는 이런 대답을 보내왔다.


‘우리 가문에 대한 일을 아주 온 사방에 떠들고 싶으냐? 대통령이 고등학교 쪽에 직접 네 휴학계에 대한 지시를 내렸다고 생각해봐라 이놈아. 그런 건 네가 잘 알아서 하는 게야!’


시운은 다시 한 숨을 푹 내쉬고는 담임선생을 만나러 들어갔다. 담임은 마침 교무실에 있었다. 한규종이라는 팻말이 자리에서 깔끔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서류뭉치들이나 책들이 어지러이 쌓여있는 다른 선생들과의 책상과는 다르게 아주 정돈되고 깨끗한 책상. 또 그만큼이나 올백으로 고정되어 있는 선생의 머리와 얼굴이 날카로운 칼날같은 이미지.

그래서 그의 별명은 면도칼이었다.

교무실에 들어선 시운에게 담임의 날카로운 눈빛이 안경 너머로 꽂혀오면서, 나직하게 내뱉는 목소리가 들렸다.

“늦었군.”

“아, 넵 선생님!”

시운은 잔뜩 긴장해서 선생님 있는 쪽으로 날아갈듯이 달려갔다. 어떤 지옥이라도 다 겪은 시운이고, 그만큼의 배짱도 있었지만 면도칼의 앞에만 서면 괜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긴장이 되었다.

“이만큼 늦은 데는 이유가 있겠지? 연락도 통 없었던 것도 말이다.”

“아.....네. 저, 그게......시골 할아버지 댁에 급히 갈 일이 생겨버려서, 연락도 미처 못 드렸습니다.”

“핸드폰은 끓여먹었냐?”

면도칼이 평소 즐겨 사용하는 체벌용 당구대가 손가락 사이에서 까딱거렸다.

“네? 아니오. 죄송합니다. 핸드폰도 밧데리가.....”

“됐다. 그보다도 다 늦게 여기엔 무슨 일이냐?”

별명답게 날카롭게도 말을 끊어버리면서 담임은 질문했다. 

“예, 저, 휴학계를 좀 내려고 하는데요......”

“또냐?”

“네.......”

그는 갑자기 책상 서랍을 뒤지더니 휴학계 서류를 꺼내서 작성법과 함께 들이밀었다.

“써라.”

“네?”

“이유야 그걸 보면 알 것이고, 이유를 대기 힘들다면 내가 만들어주마. 다른 부분들부터 먼저 써라.”

“아니, 저, 그래도......아무것도 안 물어 보시나요?”

“물어볼 필요가 없는 이유겠지. 그냥 써라.”

시운이 휴학계를 쓰고 있는 동안 그는 책을 보고 있었다. 책은 영어원서인데다가 두껍기도 했다. 시운이 그걸 흘낏 보고 있을 때 다시 강한 눈빛이 시운을 쏘아보았다.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다. 궁금증이 풀렸으면 빨리 써라.”

시운은 다시 고개를 쳐박고 서류를 썼다. 쓸만한 부분은 다 썼지만 이유 부분을 쓰지는 못했다. 더 이상 댈 핑계도 없었고, 선생님이 어떻게든 알아서 해줄 것만 같다는 생각에 그냥 비워둔 것이었다. 면도칼은 그걸 받아들고 읽더니, 이유 란에 자신이 뭔가를 끄적이고는 바로 서명을 했다.

“서류는 내가 학생과에 제출할 테니 가봐라.”

“.....가.....감사합니다.”

시운이 등을 돌리고 나가려고 어느 정도 발걸음을 옮겼을 때, 선생의 나직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잘 해결하고 와야 한다. 몸조심하고.”


시운이 흠칫해서 다시 면도칼을 바라봤을 때, 그는 시운 쪽은 보지도 않고 계속 서적을 읽고 있었다. 마치 네가 앞으로 뭘 할지를 안다는 듯한 그 말투. 자못 걱정이 섞여 있는 그 말투와 그의 태도를 곱씹으며 시운은 교무실을 나왔다.


“얌마!”

시운의 뒤통수에 작렬하는 지훈의 손바닥. 시운이 살짝 미세한 반탄력을 쓰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기분이 상당히 더러워졌을 그 스냅. 시운은 웃으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쉬는 시간이 되었는지 여기저기 애들이 교실에서 쏟아져 나왔다. 

“뭐얌마.”

“아주 제대로 늦었다 너? 학교는 왜왔냐? 그냥 쉬지.”

“응.....사정이 있어서 학교를 좀 못 나오게 될 것 같아. 어쩌면 이번 학기 내내 쉬어야 할지도 몰라.....”

“또? 너 전에도 그래서 유급했다고 했잖아.”

“그래. 어쩔 수 없지 뭐.....”

“너......이제 보니.......”

시운은 고개를 숙이는 지훈을 보며 잠시 어리둥절했다.


“그렇게.......집안이 어려웠었구나! 그래서 혼자 살고 힘들게 살고 있었구나! 학교도 돈이 없어 못다니는거구나! 엉엉엉!"


어느새 콧물과 눈물 범벅이 되어 고개를 드는 지훈의 얼굴이 시운의 어이를 잠시 앗아가 버렸다.


“그러면 형한테 말하지 그랬어! 형이 안 그래도 집이 좀 잘 사니까 충분히 도와줄 수 있었는데. 친구 좋다는게 뭐냐 이녀석아!”

“그런거 아니거등......”

“아니긴 뭐가 아냐 임마! 알았어. 앞으로는 이 형님이 자주 챙겨주마! 어어엉 이녀석......”

나이도 시운보다 어리면서 자꾸 형님이라 그러는 것도 웃겼지만, 정말 진지하게 울면서 말하느라고 눈물콧물이 다 튀는 것도 정말 우스운 모습이었다. 시운은 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라니까 임마. 정말 큰일이 있어서 그래. 그러니까 나중에 보자. 그 땐 선배가 되어 있을라나? 흐흣”

“정말....아닌 거냐?”

“그래 임마. 어쩌면 해외에 나갔다 와야 하는 일일 수도 있어서 그런 거야. 그것도 한 학기 정도.”

“괜히 걱정했잖아 임마!”

울다가 웃는 표정으로 싸대기를 날려대는 것도 시운이 맞는 척하면서 미세하게 피하지 않았다면 상당히 기분 더러웠을 터였다. 하기사, 이런 시운이니까 그나마 지훈이랑 어울려 다닐 수 있었다.

뭔가 상당히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이었고, 애들은 지훈이 가진 여러 가지 비싼 물건들을 구경할 심산이 아니면 되도록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나름 지훈의 손버릇을 받아넘길 줄 아는 시운에겐 지훈은 나름대로 재미있는 녀석이었다. 둘은 어깨동무를 하면서 매점으로 걸어갔다.


한 편, 공항 입국장에는 흉흉한 인상의 남자들이 떼로 서 있었다. 맨 앞에 있는 남자에게는 여행사의 팻말이 들려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날카롭게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우습게도 적환의 비자를 조사하던 바로 그 공무원이었다.

“그러니까, 여행을 온 겁니다. 단순히 그것뿐입니다.”

“정말입니까?”

“정말입니다.”

믿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서류도 문제가 많았다. 이미 예전에 중국정부 측이 폐기했었던 서류 폼이었던 것이다. 여권들도 하나같이 다들 오래된 것이었으며, 사진도 거의 요즘 새로 붙인 듯한 티가 많이 났다.

공무원은 슬그머니 빨간 버튼을 눌렀다. 평소엔 노란 버튼 정도만 누르면 해결되었지만, 이 정도의 인원은 한 두어 명 정도 가지고는 택도 없었다. 가장 위급한 상황에서 누르는 빨간 버튼은 경찰특공대 정도는 부를 수 있는 것이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서류를 처리해 드릴테니.”

그렇게 말을 하고서 서류접수대 바깥으로 공무원이 나갔다. 맨 앞에서 한국어를 하던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바로 뒤에 서있던 흑단의 머리를 한 남자에게 눈짓을 받아야 했다.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는.

사방에서 스와트무장을 한 경찰들이 모여오고 있었다. 이내 스무명 남짓한 그들을 공항특수경비대의 병력이 에워쌌다.

“손을 머리로 올려!”

영어로 외치는 소리를 들으며 그들은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투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그들끼리의 신호를 충분히 주고 받는 상황이었다. 다시 경비대원 중 하나가 중국어로 외치자, 그들은 알아듣겠다는 듯이 머리로 손을 올리는 척을 했다.

알아들었다고 생각하며 다가간 것이 화근이었다. 몇 명의 공항경비대 대원들이 일순간에 목과 명치에 충격을 받으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아무리 특수훈련을 받고 총기훈련을 받았다 한들, 지근거리에서 칼이 없어도 십여 명쯤 우습게 제압할 수 있는 수련과 내공을 쌓은 풍호회의 일검대 일행들에겐 소용없었다. 소두령을 제외한 그 스무 명은 일검대 중에서도 정예만 모아온 것이었다.

온몸이 비틀려 떠오르는 경비대원들의 몸에서 떨어진 MP5와 K1을 주워들고 노리쇠를 당긴 후, 몇몇 일검대 대원들이 공항 내부에서 사격을 해댔다. 그 사격에 경비대원들의 시체가 더 늘어나면서 나머지 총을 쥐지 못한 일검대 대원들이 총을 주워들었다. 순식간에 공항은 그들의 총이 내뱉는 탄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탄피와 피와 시체, 부서진 유리 파편들이 어지러이 흩어진 공항 로비, 이미 사람의 기척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확인한 소두령은 손짓을 했다. 모두들 들고 있던 총을 버렸다. 탄창은 이미 비워져 있었다.

“흩어진다. 무기를 얻는 장소는 기억하겠지. 그 곳이 집결지다.”

“예.”

남자들은 전부 준비했던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는 순식간에 흩어졌다. 소두령만이 그 자리에 잠시 남아 공항의 기둥에서 자신을 촬영하는 몇 개의 무인카메라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양손이 품속으로 들어가는가 싶더니 빠른 속도로 몇 번 곧게 뻗었다. 다음 순간 무인카메라는 그가 던진 표창에 의해 박살이 났다. 전기선이 튀기는 스파크와 연기 사이로, 그는 천천히 자취를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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