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창전 - 4. 푸름 가문 (7)

NEOKIDS 작성일 08.05.29 01:3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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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미가 겨우 진정할 무렵에야 시운은 대통령이 보냈다는 영상을 떠올릴 수 있었다. 시운은 컴퓨터를 키고 대통령이 창해에게 말했던 ip를 ftp 프로그램에 입력했다. 곧 하나의 파일이 목록에 나왔고, 그 파일을 이쪽 컴퓨터로 다운로드해서는 재생을 해보았다.

처음은 아무렇지 않은 공항의 풍경이었다. 그러나 곧 입국 수속대에 여러 명의 무리가 보였다. 그들은 계속 카메라의 위치를 유념하고 있는 듯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 무척 신경썼다. 그리고 뒤이어 그 아비규환들이 일어났다. 총소리, 비명소리,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들.

사미는 애써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 광경이 자신의 아미파 절멸과 겹쳐온 까닭이었다. 눈물이 흐르고 다시 분노가 들끓었지만, 지금은 그래봤자 자신에게 이로울 것이 없었다.

평정을 유지하고, 얼른 몸을 회복해야만 장살곤을 쓸 수 있었다. 장살곤만 쓸 수 있는 정도까지 회복되면 그 때부터는 어떻게든 저 거짓말하는 자도 해치울 수 있으리라는, 그 집념이 사미에게 호흡과 기맥의 평정을 애써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시운과 창해, 적환은 그것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한 가지 공통적인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게 먼저 입에서 흘러나온 건 적환이었다.

“이건......구파일방의 엔간한 정수들을 모두 뒤섞어 버린 것이군요.....”

“흐음.........”

모두의 생각이 복잡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구파일방의 장법, 권법, 곤법, 검법, 그 외 나머지 무공들은 모두 호흡과 보법 등 그 자신들이 독특한 사상에서 발전시킨 ‘길’을 기초로 한다. 그 ‘길’은 결국 호흡과 보법이 흐트러진다면 무공을 한 들 아무짝에도 쓸모없을뿐더러 오히려 시전자의 몸에 해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이 절기들의 ‘길’을 가르치기 위한 방법들이 차곡차곡 쌓여왔고, 그것이 지금의 구파일방을 존속케 하는 것이었다. 그 ‘길을 가르치기 위한 방법’들은 모두 차기 그 문파의 장이 될 사람, 즉 후에 일파의 존속을 물려줄 제자가 배우고 익혀둬야 했다.

예전부터 사파의 외도 같은 곳이나 변방의 방파에서는 이런 각 파들의 ‘길’들을 뒤섞어보려는 시도가 있기도 했다. 그래서 얻은 결과는 두 가지 이상의 다른 ‘길’들을 뒤섞게 되면 열에 하나 정도로 요행히 상승무공의 힘을 가질 수는 있게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무공을 전수받았을 경우 시전자의 무공과 기맥이 오래가지는 못하고, 이것은 결국 시전자의 수명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정파 역시 이런 사실을 잘 알기에, 결국 무공을 하는 자들에게 있어 가장 처음에 가르쳐주는 상식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 이 동영상에서 보여주고 있는 저들의 무공은 두세 가지도 아닌, 적어도 구파일방 절기들의 모습을 다섯 가지 이상이나 보여주고 있었다. 시운은 그걸 알아챔과 동시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저 놈들의 두목은.......사람을.........사람을 도구로 생각하는 자들이군요........”

“후.......그런 모양이로구나. 아니면 빨리 죽게 된다는 걸 가르쳐 줬음에도 불구하고 자원한 인간들인지도 모르지.”

창해는 나직한 한숨과 함께 말했다. 적환도 분노가 일기는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쌍둥이 동생을 데려다가 저런 꼴로 만들어놨다면, 그리고 그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면, 그렇게 만든 작자들을 갈가리 찢어 죽이고픈 분노가 자신의 속에서 일어날 것이었다.

하지만 화산의 가르침과 ‘길’은 절대 분노를 용납하지 않았다. 냉정한 이성, 그것이 화산의 정수였다. 장문인의 1대 제자로써, 그러한 분노 속에서 일을 행할 수는 없었다.

동영상이 끝무렵에 다다랐을 즈음, 영상 속의 무리들이 경공을 써서 흩어지고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는 한 남자가 보였다. 카메라는 급히 그 남자를 클로즈업 시켰다. 그 흑단의 남자가 얼굴을 비추었을 때, 적환에게 드디어 격한 분노가 끌어올랐다.

적환은 자신도 모르게, 양 손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반유!!!!!!!!!!!!!!!!!!!!!!!!”

동영상 속 남자의 이름을 외치며, 적환은 주저앉았다.


그 때까지 겨우 평정심을 유지해왔던 적환의 기맥이 들끓고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 것을 육감으로 느끼면서, 사미는 자신의 생각이 오해였음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저런 감정의 폭발은 거짓 따위로 위장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것을 사미는 1대 제자가 되는 동안, 여러 가지 치료술과 배움들로 깨닫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렇다면 저 동영상 속의 남자가 바로 자신의 원수일 터. 하지만 너무나 닮은 생김새는 아직 사미에게 의심과 분노를 다 풀게 하기에는 부족했다. 그 얼굴을 볼 때마다 사미는 떠올랐다. 자신이 도망치던 그 때가. 그것만으로도 사미는 충분히 고통스러웠다.


적환은 일어나서 창해에게 말했다.

“끈이나 무엇이라도 좋습니다. 머리에 뭔가 묶을 하나만 주십시오.”

창해가 팔에서 띠를 하나 풀어주자, 적환은 그것을 머리에 묶었다.

“이것으로 제 동생과 저의 구분이 쉬울 것입니다. 제 동생이 오게 될 때는 저도 손속을 쓰겠습니다. 다만, 제 동생 녀석은 이놈들을 이끌고 오는 우두머리일 터,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형제지간에 손속이 느슨해질 터. 괜찮겠는가?”

“여러분께 폐를 끼치지는 않겠습니다.”

적환은 포권으로 마무리를 한 후, 사미가 힘없이 앉은 쪽으로 가서는 사미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사미 소저. 동생이 끼친 폐와 고통과 심려, 일단 제가 대신 사죄드립니다. 동생의 흠결은 저의 흠결이기도 한 터, 나머지는 제 동생을 앞에 꿇려 놓고 드리겠습니다.”

적환의 굳은 눈빛을 보며, 사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불안과 고통이 조금 누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 닮은 모습만은 끝내 친근해지지 않았다. 사미는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지켜보도록 하죠.”


그 때, 기다렸다는 듯이 동작감지기의 전원이 끊기면서 울리는 비상벨소리가 온 사방에 울렸다.

“사미는 일단 피해 있거라. 진수가 안내해 줄 것이다.”

창해는 사미에게 이르면서 진수를 불렀고, 진수는 급히 나타나 사미를 데려갔다. 사미의 눈빛이 모두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제발, 다시 아미파와 같은 상황이 일어나지만은 않기를 바랬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시운의 눈에서, 파란 빛이 일었다. 그것은 푸름 가문의 핏줄만이 가진 특징이었다. 창해는 그런 시운의 뒤통수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벌써부터 그럴 것 없다. 자, 이제 나가자!”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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