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창전 - 5. 전투, 한걸음 앞으로 (1)

NEOKIDS 작성일 08.05.29 02: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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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전투, 한 걸음 앞으로.

 

 


적환의 예도 있었기 때문에 싸울아비들은 함부로 달려나가지 않았다. 본채의 널따란 뜰 안에서 집결하면서 사방에서 올 수 있는 습격들에 심신의 감각을 끌어올려 대비중이었다. 그 가운데 창해 일행이 나타났다. 진수도 사미를 피신시키고 어느새 시운의 곁에 서 있었다.

“다들 충분히 대비하라. 놈들은 충분한 준비를 끝내고 들어올 것이다!”

시운은 호흡과 기맥들을 조절했다. 이제껏 할아버지와 함께 단련해온 수많은 훈련들이 제대로 빛을 발할 때가 온 것이었다. 시운은 자신이 입은 택티컬 베스트를 점검하고 자신의 옆에 차고 있는 베레타까지 확인한 후 조용히 자신의 검을 뽑았다.

사실 시운은 자신의 힘이 어디까지인지 시험해 볼 기회가 없었다. 막연히 힘을 조절하는 법만을 알 뿐, 한계상황까지 자신을 밀어붙여 볼 때가 드물었다. 물론 바름가문의 조영과 대적할 때는 어느 정도 공력을 끌어올리긴 했지만, 그 장소나 상황이 자신의 한계를 끌어올려볼 정도는 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젠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더더군다나 본채가 전쟁터가 되었다. 어떤 이목도 신경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어느 정도였을까. 어둠 속에서 본채의 뜰에 밝혀진 횃불에 비쳐 일렁거리는 그림자들 사이로 강한 긴장의 기운이 유지되고 있었던 건. 그것을 깨는 일단의 공격이 먼저 다가왔다. 몇 개의 표창이 횃불들을 노리면서 날아왔다.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횃불들은 다 하나 둘씩 꺼져갔다.

하지만 싸울아비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이미 밝은 달빛이 하늘에 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어차피 표창들이 자신들을 노리지 않는다는 것쯤을 벌써 간파했기 때문이다. 싸울아비들은 그대로 선 채 감각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창해와 시운, 적환은 두 눈을 부릅뜬 채 정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넓은 뜰 앞의 트여있는 통로. 놈들이 건물 위로 섣불리 올라가서 기척을 들키게 만들지 않는다면, 이 상황에서 올 곳은 그 곳 하나뿐이다. 거의 삼방향이 건물이 둘러싸여 공격자의 측면에서 사각이 없는 이 곳은 어떻게 보면 방어에 부적합할 것 같기도 했지만, 싸울아비들의 실력과 공력으로 진을 형성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장소였다. 보통은 등갑진을 생각할 것이나, 지금 싸울아비들이 형성하고 있는 진은 아주 독특한 형태의 것이었다. 

무릇 등갑진부터 시작해서 몇 가지 구축진들은 중국의 일반적인 군 병법을 따른다. 그러한 병법의 진들은 내공과 무공이 일천한 자들을 위해서 오로지 전체적인 숫자로만 움직일 수 있게 지어진 터라, 그런 자들이 취한다면 무리가 없다. 하지만 내공과 무공이 있는 자들에 한해서는 그러한 진은 오히려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다.

그러기에 구파일방도 나름의 진들을 형성하는 법들을 연구했지만, 그것의 원형, 즉 진형의 강력함을 아예 처음부터 보존하고 연구해온 역사는 이 땅의 사람들이 훨씬 더 깊었던 것이다. 싸울아비들의 배치는 그래서 저 쪽에서 쉽사리 공격해올 수 없을 만큼 배치가 신기묘묘하고 흐름이 놀라웠다. 창해는 그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저 쪽이 이 쪽을 보는 눈이 어느 정도 있다면 쉽사리 공격해오지 못하리란 계산을 벌써 마치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 멍청하게 공격해온다면 순식간에 밥으로 만들어주면 되고.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앞에서 흑단을 날리고 있는 한 남자가 천천히 그들을 이끌고 있었다. 온통 흑색의 전투복을 입고 있는 그 무리들을. 적환의 눈동자가 크게 벌어졌다.


“변방의 오랑캐들 치고는 꽤나 머릴 썼구만. 까다로운 진이야.”

흑의의 남자가 팔짓을 한 번 하자 순식간에 건물 위로 일검대의 수하 10여명 정도가 올라갔다. 나머지는 싸울아비들의 정면에 남았다. 싸울아비들의 머릿수는 통틀어 50 정도, 저 쪽의 적들은 동영상과 현재의 상황으로 파악하건대 20여명 정도. 시운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를 깨닫고 화가 치밀었다. 저 쪽의 적은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 무공들의 악영향으로 그리 되었다고 생각하니 더욱 분노가 일었다. 목숨을 아끼지 않을 정도로 악한 놈들.

팽팽한 공기가 잠깐 흐르는 가운데 흑단의 남자, 반유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자, 이제 그 쪽의 두목 정도 되는 분이 나와 주실까?”

“반유!”

적환의 부름에 반유는 움찔했다. 이맛살이 잠깐 찌푸려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 목소리가 누군지를 알기에 잠깐 껄끄러웠던 심정을 숨기고 있는 것이었다.

“반유! 이게 무슨 짓이냐?”

“적환 형. 간만이야. 하긴, 이제 형이라고 부를 것도 없게 됐군.”

“어떻게 된 거냐?”

“보시다시피.”

적환은 반유가 어깨를 으쓱하며 내뱉는 그 짧은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이건 놈들에게 세뇌당하거나 사파의 기술을 당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스스로 화산을 배신한 것이었다. 적환이 이를 악물면서 반유에게 물었다.

“어째서냐? 우리 화산의 가르침을 잊을 정도라니!”

“화산의 가르침이라......”

반유는 얼굴에 비웃음을 한껏 담았다.

“그런 케케묵은 따위의 의식을 내 속에 담고 있기엔 구역질이 났던 차.”

“도대체 왜! 우리를 거두어주신 스승님조차 버리고 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 우리가 부모님을 여의고 거지 꼴로 헤매고 있을 때 우리를 거두어주신 분에게 은혜를 이런 식으로 갚다니!”

부모님의 이야기가 나오자 반유의 눈꼬리가 실룩거렸다.

“그건 뭐 자세히 알 것 없고. 뭐 어떻게 보면 잘된 건가. 적환 넌 내가 죽이려고 했었으니까.”

“뭐?”

반유의 입꼬리가 여전히 비웃음을 머금은 채 비수 같은 말을 내뱉었다.

“나와 똑같이 생긴 존재 따위가 살아있다는 건 기분 나쁜 일이라는 거지!”

창해가 앞으로 나서 중국어로 일갈했다.

“어린놈 맘씨가 고약한 지고.”

“흠. 우리 쪽 말도 쓸 수 있는 줄은 몰랐는데.”

“네 놈과는 살아온 무게가 다르니까. 거기다 너희 부모님도 한국분이셨다며? 그런 놈이 중국말을 자기 말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지.”

창해가 자신의 손에 들린 빛나는 검광과 함께 대답했다.

“뭐, 어쨌건 말이 통한다니 다행이군. 당신들의 비록. 흑검의 소재와 당신들의 신물이 기록되어 있는 그게 내겐 필요해. 순순히 내놓는 것이 서로 좋을 것이다.”

“목숨은 바꿀 준비가 되어 있는 듯 하군.”

창해의 검광이 이미 준비 태세로 들어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반유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이제 더 이상 자비는 없다.”


그 때 갑자기 공중에서 떨어져 내리는 신형이 있었다. 긴 봉을 들고 나타난 가녀린 체형의 신형이 긴 옷자락을 휘날리며 반유에게 달려들었다. 어느새 장살곤을 찾아 들고 얼마 되지 않는 공력을 또다시 끌어올린 사미였다. 이번엔 정말 목숨을 걸고 동귀어진이라도 할 태세였다.

 

“죽어라! 원수!”

 

그와 동시에 창해와 적환의 옆을 빠르게 질주하는 신형도 있었다. 시운의 등에 있던 검이 뽑혀져 나왔다. 그냥 보통 한국의 전통직검처럼 보이지만 푸름 가문의 인장이 새겨지고 기묘한 무늬를 뽐내고 있는 검이었다. 그 이름은 창광검.

반유의 허리춤에서 뽑혀진 암한절명쾌검이 순식간에 사미의 신형을 두 조각내려 수직으로 치솟는 동안, 사미는 그것도 모르고 그 검의 궤도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고, 그걸 순간적으로 파악한 시운이 빠르게 쇄도하여 내려찍으며 암한절명쾌검의 진행을 막았다. 빠른 경공과 갑자기 막힌 검궤도의 충격에 놀란 반유가 세 마장 정도 뒤로 피했다.

그 바람에 사미의 장살곤은 허공을 휘저었고, 강한 광풍이 공기를 휘저으며 미칠 듯한 진동이 일었다. 안그래도 공력을 무리하게 끌어올린 터라 힘이 조절이 되지 않는 사미의 비틀거리는 신형을 시운이 받아들었다.

 

“사미..........이러지 마.”

 

시운의 고개가 돌아간 상태에서 사미를 불렀다. 사미 또한 원망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사미의 맘 속에서 응어리져있던 말들이 튀어나왔다.

 

“이제.......이제 나는 살아갈 의미가 없어요! 아미파는 절멸했어요! 저 혼자서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저 혼자서 장살곤을 가지고 뭘 어떻게 하겠냐구요! 저 놈을 영상에서 봤을 때 전 결심했어요. 저 놈과 함께 동귀어진하여 돌아가신 아미파 일족들의 원수를 갚겠노라고. 시운 대협! 그러니 제발 절 놔주세요!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두라구요!”

 

“그렇게 내버려두면 난 어떨 것 같아?”

 

시운의 말에 사미가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시운을 바라보았다. 시운의 눈에 푸르고 싸늘한 광채가 치솟고 있었다.

 

“이 눈이 왜 이렇게 변하는지 알아? 내가 정말 화가 나면 그런대. 그 분노가 구파일방의 무공과는 달리 힘이 되어준대. 그런데 난 지금 정말 화가 나.”

 

시운은 사미를 내려놓고 어깨를 끌어안았다.

 

“사미를 이렇게 만든 저 개-자식들에게도, 저 사람들을 저렇게 만든 그 위의 개-자식들에게도. 그러니까, 나도 사미한테 부탁할게. 내가 죽고 나거든 사미 맘대로 해. 우리 할아버지가 뭐라고 해도 말야. 그 때까지는 난 사미가 맘대로 죽는 꼴을 볼 수 없어! 그렇게 되면 정말로 난.......”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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