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글 ---- 동전 첫번째 이야기

NEOKIDS 작성일 08.09.24 07:3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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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에서 낸 동전? 그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어디 빠찡코 같은 거나 그런데서 쓰는 동전 같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이렇

 

게 크게 만들었을 리가 없다. 나는 동전을 손에 들고 잠시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냥 은색의 동전. 한 면에는 막 날개를 퍼덕

 

일 것 같이 정교한 깃털들이 새겨진 천사의 모습이, 한 편에는 날개의 힘줄이 선명하게 드러난 악마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비온 뒤 진흙탕으로 변한 공사장에서 주웠을 땐 정말 난 무엇에 홀린 것 같았다. 어쩌면 동전이 날 부르고 있는 것처럼, 그렇

 

게 보일리가 없음에도 내 눈에는 동전이 아주 심하게 반짝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길을 가다가 그것을 본 나는 *처럼 그 공사

 

장의 움푹 패인 바닥으로 바득바득 기어들어가 동전을 손에 넣고 있었다. 공사장 인부 아저씨에게 욕과 고성을 한바탕 들어먹

 

고 난 다음에나 거기서 기어나와 제 갈길을 갈 수 있었다. 당신이라면 어땠을까? 아무리 당신이라도 그 동전의 부름을 피할 수

 

는 없었을 거다.

 

 

그런데 막상 동전을 줍고 보니 이걸 왜 주으려고 그 진흙탕 바닥을 들어가 교복과 새로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비싼 운동화까

 

지 버려가면서 난리를 피웠는지 알 수가 없었다. 덕분에 어머니의 욕과 매질을 한 사발은 얻어 마시고 나서야 겨우 생각해 본

 

거지만.  

 

 

어쨌든 나는 동전을 데굴데굴 굴리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튕겨 돌리기도 하고 있었다. 나른한 점심시간. 애들은 전부 자고 있

 

거나 자기들끼리의 이야기에 빠져있다. 나 역시 엎드려서 아무데도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동전만 쳐다보고 있었다. 빙글빙

 

글 돌던 동전이 특유의 쇳소리를 내며 책상에 눕던 그 때. 누군가의 손이 동전을 휙 집어들었다.

 

"뭐냐, 이건?"

 

동전을 집어든 건 형석이였다.

 

"응? 아니, 그냥 길가다가 주은 건데, 좀 특이해서 보고 있었어."

 

"특이해?"

 

형석이는 잠시 그 동전을 앞뒤로 살펴보았다. 그 양각의 정교한 무늬를 한참 살펴보며 넋이 나간 듯 살펴보던 형석이가 입을 열었다.

 

"이야, 이거 정말 잘 만든 건데? 혹시 이거 졸라 비싼거 아냐?"

 

"모르겠어. 그럴지도."

 

"땡잡은 거면 피자 한 판 쏴라. ㅋㅋㅋ"

 

"아, 그래. 뭐 정말 땡잡은 거라면 ㅋㅋㅋ"

 

형석이는 동전을 손가락으로 튕겨 공중에 돌리다가 손등 위에 탁 엎어놓고 말했다.

 

"너와 나 둘 중 누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동전에 걸어보지!"

 

이 말은 녀석과 내가 주말에 보러 갔던 영화에서 악당이 꺼내는 대사였다. 이녀석도 영화는 꽤 좋아해서 한 번 본 영화의 특징

 

적인 대사들은 잊지 않고 있었다.

 

"뭐하는거야. 니가 투페이스라도 되는 줄 아냐?"

 

"못할 건 뭐냐. 낄낄낄. 난 천사. 너는?"

 

"나? 나는 악마 하지 뭐."

 

녀석이 손을 펼쳤을 때는 악마가 나와 있었다.

 

"쳇, 녀석. 운이 좋군."

 

그런 우스개 소리가 그 녀석의 마지막이 될 거라고는 그 땐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다.

 

 

1주일 후.

 

내가 제일 마지막으로 꽃을 던졌다. 가장 친한 친구였기 때문에. 꽃이 떨어져 그 녀석의 관 위로 내렸다. 반 아이들은 각기 울

 

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침울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그 녀석은 나와 농담을 한 그 날 저녁 정말 죽었다. 교통사고였다. 파

 

란 불이었고, 건널목을 건너고 있을 때, 덤프트럭이 형석이를 덮쳤다. 형석이의 시신은 완전히 으깨어져서 뭐가 뭔지 구분조

 

차 불가능했단다.

 

 

나는 멍한 상태에서 그날의 농담을 다시 생각하고 있었다. 과연 동전이 그렇게 만든 것일까. 누구에게 이야기해도 믿지 않을

 

것이지만, 생각을 떠올릴 때마다 기분이 묘했다. 진짜 동전에 그런 힘이 있다는 것일까? 이때만 해도 나는 고개를 세차게 내저

 

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의혹이 다시 생기는 때는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형석이의 죽음에 대한 충격이 우리 반에서 채 가시지 않은 3주 정도 후. 우리는 여전히 일상을 보내고 있었고, 세상은 보란 듯

 

이 굴러갔다. 우리 앞에는 언제나 수능이 놓여 있었고, 날마다 독려랍시고 해대는 선생의 말들도 그리 와닿지 않았다. 그런 마

 

음들에 형석이의 죽음에 대한 일종의 절망까지 겹쳐 있었던 탓일까.

 

 

어느날 재철이가 지우개를 빌려달라고 해서 빌려줬는데 용석이 녀석이 내게 조심스럽게 다가오더니 말했다.

 

"야. 너 쟤랑 친하냐?"

 

"전교1등? 아니 뭐 그다지. 재철이야 뭐 나름 친한 애들도 있고."

 

"쟤 지금 왕따야."

 

"뭐?"

 

"왕따라구. 저새끼 맨날 전교1등 해대느라 냄새나고 빙충이라고 애들이 피하던데. 전엔 안그랬다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나는 그런 움직임들이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여럿이서 패거리를 지어 누군가를 놀려대는 짓거리는 정말 쓰레기 같은 짓이었

 

다. 그리고 우리 반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요즘은 분위기가 좀 어수선했다. 누군가가 다른 학교 애랑 쌈질을 해대지 않나, 누구는 성적이 떨어졌다고 입에다 푸

 

념만 달고 살질 않나. 기타등등의 일들로 반 아이들의 마음이 그리편한 상태만은 아니라는 분위기라는 것만은 짐작할 수 있었

 

지만, 그래도 지들 힘들다고 그런 짓으로 풀려 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이 짜증과 겹쳐서 입밖으로 바

 

로 튀어나와 버렸다.

 

 

"야. 우리 씨-발 내년이면 고3이야. 어린애도 아닌 놈들이 무슨 왕따질이냐?"

 

내 언성이 조금 크게 교실을 울렸던지 아이들이 전부 나를 쳐다보았다. 재철이도 쳐다보진 않았지만 잠시 흠칫하고 동작을 멈

 

추는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어색해진 주변을 돌아보면서 외쳤다.

 

"왜, 씨-발 꼽냐? 내가 틀린 말 했냐고."

 

아이들은 뭐라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 말에 동의할 수 없다는 분위기였다. 아마도 나도 왕따가 될테지. 그런건 상관없었다.

 

난 그딴 거 이겨낼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 수정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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