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그리나 - 십자가 (1)

NEOKIDS 작성일 09.04.17 04:3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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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 십자가

 

 

 

 

 

밤의 어둠을 몰아내려는 듯 수많은 불빛들이 지상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 사이에는 십자가들의 붉은 네온 또한 섞여 있었다.

 

그 십자가가 있는 아래의 한 곳. 미친 듯이 도망치는 한 중년 남자의 다급한 모습.

그 뒤엔 그를 추적하는 한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끌리고 있었다.

 

중년 남자는 제법 큰 예배당으로 들어선 후 설교대 쪽으로 도망갔다. 쫒아오는 자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그는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턱까지 차오른 숨소리조차도 내지 않으려는 것처럼.

곧이어 중년 남자의 뒤를 쫒아온 발걸음 소리가 예배당의 입구에서 멈춰섰다.

 

중년 남자는 미칠 것만 같았다.

도대체 왜, 어째서 저 남자는 자신을 이렇게 쫒아오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이번 교회 신축을 빌미로 헌금을 유용한 것 때문에? 아니면 자신이 사놓은 땅의 문제 때문에? 이건 좀 그럴싸했다. 그 땅은 거의 서류 조작으로 자신이 싼값에 가로채버린 땅이다. 그리고 그 땅 때문에 그 땅에 살고 있던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평소 친한 장로들과 문제가 좀 불거지긴 했다.

 

그러나 그 외에 불법적인 건덕지가 걸릴 일은 전혀 없었다. 무엇보다 이제까지 손발을 맞춰온 공무원들과 함께 벌린 일이지 않은가. 많은 교인, 많은 헌금, 그리고 몇 채의 빌라 등등의 부동산. 무엇 하나 법적으로 걸릴 일이 없었다. 원한을 산 것도 없다. 이 재산을 가지기 위해 적당히 주변에 ‘선물’을 드렸다. 사기 치듯 재산을 불렸다는 소리도 우습게 여겼다.

 

그래, 이건 다 하나님을 위해서 한 일이다.

 

그런데 지금 저 남자는 갑자기 자신의 뒤를 계속 쫒아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왜 쫒기고 있는 거지?’

 

중년 남자는 갑자기 머릿속에서 든 생각 때문에 흠칫 했다.

자신은 분명 저 남자에게 쫒긴다고 생각하고 여기까지 도망쳐왔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생각대로라면 그럴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왜,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걸까?

 

이게 그 중년남자의 인생의 마지막에 제정신으로 던졌던 질문이었다.

 

 

 

 

 

“잡스런 교회 참 크게도 키워 놓으셨구만. 잡귀님이.”

 

뒤쫒아 들어온 남자가 비웃듯 말했다. 희미한 네온 빛에 여자들도 울고 갈만한 부드러운 선의 얼굴이 비춰졌다. 그리고 삼단 같은 긴 머리가 흘러내리는 호리호리한 몸매도.

 

“그런 인간에게서 무엇을 얻고 싶으셨던 건가?”

“네 놈이 알 건 없다.”

 

중년남자가 천천히 설교대에서 일어났다. 아까 전의 겁에 질린 표정이나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었다. 더 확실히 달라 보이는 것은 그의 눈이었다.

그 눈은 새빨갛게 빛나는 눈으로 변해 있었다.

 

“네놈 때문에 이 자가 눈치를 챘군 그래. 자기 몸이 조종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잡귀님이 나오시고 그 자의 혼을 잠시 가둬두셨군.”

“그래. 이런 수고까지 끼치게 하다니 정말 대단하군. 그래서 말인데, 넌 아무래도 여기서 그냥 죽어줘야겠어. 네 시체를 넘어서 난 이 자의 육신을 끌고 이 자의 집으로 돌아갈 거야.”

“진짜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은 잡귀님이시겠지. 어디서 함부로 인간의 오욕칠정을 탐하시는가?”

“우리가 인간의 오욕칠정을 탐해? 크크크크~”

 

중년 남자의 표정이 완전히 일그러진 채로 온몸이 오싹해질 정도의 소리를 내며 웃었다. 세로로 찢어진 동공이 더 크게 벌어지고 있었다.

 

“인간의 오욕칠정이 우리를 부르는 거다. 인간. 그리고 그게 크면 클수록 우리가 이런 놈들의 혼과 함께 하기도 쉬워지는 거지. 그리고 자꾸 잡귀라고 부르는데, 난 이 땅의 흔한 잡귀 따위와는 존재부터가 다르신 고귀한 분을 모시는 존재다. 버러지 같은 인간들은 감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중년 남자, 아니, 이미 그 몸을 지배하는 존재의 으르렁거림에도 호리호리한 남자의 표정에는 구김살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 이 정도면 말을 더 섞을 필요는 피차간에 없는 듯 하군. 그런데 이거 하난 말해줘야겠어. 머나먼 땅엔 뭐하려고 서역잡귀님이 오셨는가?”

“이제 죽을 놈이 알아서 뭐할 것인가?”

“왜냐면.”

 

남자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공중에 한 번 휘저어졌다. 시계방향으로, 지구의 자전 반대 방향으로.

 

“잡귀님이 먼 길 떠나시기 전에 내가 알아둬야 할 일이니까.”

 

빠른 보법. 그러면서도 뭔가 진형을 밟는 형태로 남자의 신형이 거칠게 내달려갔다.

 

“헉!”

 

짧은 숨을 내뱉으며 이계의 존재가 지배하던 인간의 신형을 움직이려 했지만 때는 늦어 있었다. 시계방향으로 한껏 휘저어져 있던 상대방의 양손이 갑자기 반시계방향으로 빠르게 회전하면서 응축시켰던 힘을 모아 커다란 반원을 그리며 올려쳤던 것이다.

중년 남자, 아니, 이제는 인간이라 불러야 할지 어떨지 모를 존재가 두어 번 거칠게 구르더니 벽에 쳐박혔다. 굉음과 함께 설교대와 벽에 쓰이던 자재들이 부서지면서 일어나는 먼지로 주위가 혼잡해졌다.

 

주저앉은 채로 처박힌 상태에서도 입은 마치 움직이지 않는 것을 손가락으로 잡아 억지로 움직이는 듯한 기묘한 움직임을 해대며 울렸다.

 

“크윽, 꽤 하는군. 하지만 그런 식으로 해봤자, 이 인간의 몸만 상할 뿐이야. 나에겐 아무런 해가 없다고. 그리고 인간의 몸쯤은 나도 순식간에 고칠 수 있지. 크하하하핫!!!!!!”

 

자신감과 오만함이 날 것 그대로 전해져 오는 웃음소리.

하지만 그 웃음소리의 주인공은 자신이 어떤 상황에 빠져 있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그 쳐박힌 몸의 부러진 뼈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와중. 갑자기 상대방이 앞에 버티고 섰다.

 

“뭘 하려는 거지?”

“당해보시면 아시네.”

 

남자의 손이 주저앉은 중년 남자의 목덜미를 잡았다. 그까짓 것, 자신에게 아무런 해도 없을 것이라고 자만하던 그 웃음소리의 주인이 갑자기 공포와 경악으로 뒤덮인 채 울부짖었다.

 

“끄아아악!!!!!!!!!!!!!!”

 

이 세상 누구도 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소리.

고래 종류의 초음파 소리와 벌떼의 윙윙거리는 소리, 칠판에 분필을 긁어대는 소리 같은 것들이 뒤섞여 듣는 사람 정도는 순식간에 미치게 만든대도 이상하지 않을 소리가 되었고, 그것이 예배당 안을 뒤흔들며 울려대었지만, 여전히 목덜미 께를 잡고 있는 상대방의 남자에게는 아무런 해도 입히지 못하고 있었다.

 

그 소리를 따라서 먼지들이 또 다시 격한 진동을 해댔다. 그리고 그 사이로 그 존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째서!.......어째서 내 영체를..........맨 손으로 잡을 수 있지! 한낱 인간이! 주술사도, 어떤 종교의 엑소시스트도.........함부로 하지 못하는 내 영체를!”

“그러니까, 잡귀님.”

 

가녀리게 보이는 남자의 손이 이미 그 영적 존재를 중년남자의 너덜너덜한 신체로부터 끄집어내어 높이 쳐들고 있었다. 영적 존재의 목덜미는 완전히 자루 끝을 잡은 모양새처럼 우그러져 있는 채로.

 

“님은 너무 멀리 오셨네. 그것도 하필이면 우리 같은 박수무당들이 있는 땅을 골라 오시다니.”

“아......알겠다. 크억...,,,이제 알겠으니 제발 놔줘! 다시는 해를 입히지 않으마.........이 목사가 불쌍하지도 않은 거냐? 우욱.......내가 떨어져나가면 이 목사도......죽게 되어 있어! 혼이 닫긴 채로 나와 함께 사라진단 말이다!”

“흠?”

 

사악한 존재의 다급해진 외침에 남자는 냉기가 서린 눈초리로 중년남자의 몸뚱아리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시선을 돌렸다.

 

“이런 자가 어찌 되든 알 바 없다네.”

“끼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남자의 손에서 어린 깨끗하고 맑은 느낌의 기운. 그것이 점점 입자로 변하면서 영체의 주위를 감쌌다.

별것 아닌 듯 했지만 그것은 영체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체 하나하나를 공격하면서 완전히 먼지 같은 성분으로 변하게 하고 있는 것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영자를 구성하고 있는 분자들을 공격하여 원자 단위로 쪼개고, 그 쪼개진 것을 다시 중성자, 미립자 단위의 크기로 점점 되돌리는 상황. 그리고 나중엔 그 미립자 단위까지도 깔끔하게 파괴될 것이었다.

 

소멸. 그것이 그 남자가 지금 시전하고 있는 재주의 이름이었다.

 

“안 돼!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불멸의 존재인 내가 소멸...........”

 

말은 채 끝이 나지 않았다. 이미 남자의 기운이 모든 입자를 공격하여 영체를 소멸시켜 버리던 탓이었다.

 

영체가 소멸되기 직전의 잠깐. 악한 영체는 그제서야 급박한 상황들이라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있었다. 그 남자의 어깨 위에 있는, 청초한 형상을.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이 적대하고 있던 존재가 얼마나 얼토당토 않은 존재인가를.

 

 

 

 

 

소멸의 과정이 끝나자 조금 힘이 들어가 있던 중년남자의 육신이 완전히 힘을 잃고 모로 쓰러졌다.

그 시체, 한 때는 목사였고 한 때는 탐욕을 부렸으며 지금은 귀신에게 조종당해 시체가 되어버린 한 중년 남자의 정지되어버린 육체.

남자는 그 시체를 어떤 감흥의 표정도 없이 내려다보았다.

 

곧, 예배당 옆의 깨어진 유리창들 너머로 경찰차의 번쩍거리는 불빛과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예배당 안으로 들어왔고, 먼지와 폐품들 투성이가 되어버린 예배당의 설교대 쪽에서 쓰러져 있는 목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시체 외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에 대한 단서는 단 한 개도 찾을 수 없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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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 치이고, 일에 치여서,

도무지 글이란 걸 제대로 쓸 수가 없더군요........-_-

 

그나마 이건 에피소드 형식의 한 화 한 화의 구성을 먼저 필기해놓았던 관계로.

그냥저냥 수월하게 초고를 뽑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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