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그리나 - 십자가 (2)

NEOKIDS 작성일 09.04.18 03:4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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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영 도사 - 무당.

 

그렇게 자그맣게 붙어있는 간판. 아크릴이 다 깨지고 글씨조차 흐릿해져 있는 초라한 꼴을 건석이 잠시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나 그걸 볼 때마다 건석의 마음은 조금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그것은 이 땅에서 무교의 대를 이으며 살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건석은 피우고 있던 담배를 비벼끄고는 담배를 피우던 손에 가방을 옮겨 쥐었다.

 

지하실의 현관으로 통하는 계단.

건석 같은, 평균 이상으로 건장한 몸집의 사람이 드나들기엔 조금 비좁은 감이 없지 않은 그 계단의 벽은 부적을 벽지처럼 빽빽하게 발라놓았다. 그것도 건석이 자주 보던 살풍경함이었다.

건석은 지하실의 현관으로 내려가 문을 두들겼다.

 

“누구십니까.”

“나다. 건석이다.”

 

문이 열리면서 어젯밤, 목사를 죽이던 그 남자, 초영이 건석을 맞았다.

잠을 자다 나왔는지 머리는 온통 까치집을 짓고 있었다.

소파에 마주앉자마자 건석이 입을 열었다.

 

“일을 너무 크게 벌렸더군.”

“네가 준 정보가 틀렸어. 잡귀라며. 잡귀수준이 아닌데다 서역에서 온 존재라니.”

“그렇다고 그 목사를 죽일 필요까진 없었잖아.”

 

초영은 마시던 물병을 내려놓았다.

 

“갑자기 예전 생각이 나버렸지 뭐야. 더러운 기억이.”

 

그 말. 그것을 듣고 건석은 잠시 말을 멈췄다. 과거의 기억이 그를 사로잡은 탓이었다.

초영에게는 전혀 달갑지 않을 그 과거의 기억이.

잠깐의 침묵 이후, 건석이 걱정스러운 투로 말을 이었다.

 

“협회에서는 이 일을 별로 안 좋게 생각해. 이래가지고 계속 일을 맡길 수 있겠냐고도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뭐, 벌어진 일이야 어쩔 수 없잖아. 그걸 알려주려고 온 건가?”

“아니, 그 일의 뒤처리야.”

 

건석은 가져온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소파의 탁자 앞에 놓았다.

 

“목사에게 아들이 하나 있어. 이미 이 아이도 잡귀에게 당한 것 같아. 협회 쪽으로 데려오라고 하는군. 아마도 네가 저승 보내버린 그 존재한테서 제대로 정보를 못 캐냈기 때문에 그 아이 속의 존재에게서 정보를 얻고 싶은 거겠지. 도대체 뭘 꾸미고 있는지.”

“쳇. 귀찮은 일이군.”

“제대로 하라고. 돈 받고 싶으면.”

“알았어.”

 

건석은 일어나면서 허공에 떠있는 누군가를 보면서 손을 흔들었다. 그 누군가도 꾸벅하고 인사를 했다.

만약 무당이나 무교에 관련되지 않은 누군가가 봤다면 판토마임이라도 하고 있는 거라 여겼을 터이다.

그리고 어차피 그런 사람이라면, 그 방에 있는 존재가 둘이 아닌 넷이라는 것도 모를 터였다.

건석은 다시 초영 쪽을 바라보면서 엄하게 말했다.

 

“혹시나 싶어서 말해두는데, 만약의 사태라도 예그리나의 힘을 쓰지는 마. 그게 뭘 의미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겠지.”

“엄마 같은 잔소리는 협회 가서 다른 사람들에게나 해주라고.”

“네 말대로 못해줘서 유감인데. 그럼 이만.”

 

건석은 미소를 지으면서 나갔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웃음을 지으면서 삼삼오오 쏟아져 교문 입구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아직은 학교에 처음 들어간 듯한 아이들의 고사리 손과 발이 서로에게 장난을 치면서 개구지게 움직이고 있었다. 몇몇 아이들은 걱정이 산더미 같은 부모들의 손에 이끌려 차에 태워지거나 끌려가다시피 했다.

 

초등학교 앞에서라면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풍경들. 그것을 지금 초영은 낡아빠진 프라이드의 운전석 안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상상이 가지 않아.”

 

초영이 입을 열었다.

 

“저런 조그만 손을 가진 존재들을, 우리가 정말 가질 수 있었을까.”

“난.....가지고 싶었어.”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 예그리나의 대답.

그것을 듣는 초영의 입에서 담배연기가 뿌옇게 흘러나왔다.

 

목사의 장례식이 있음에도 아이의 엄마는 독하게도 아이를 학교로 보냈다. 아마도, 아이의 성적을 걱정했을 수도 있고, 아버지의 죽음을 아이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으리라. 어찌 되었든 아이에겐 너무 가혹했다. 그런 착잡함을 날려보내기라도 하듯, 초영이 불어날리는 담배연기의 양이 더 심해졌다.

사진의 모습과 똑같은 남자아이를 발견하고 초영은 프라이드의 시동을 걸었다.

 

이상하리만치 느지막하게 나오는 아이의 표정에선 슬픔 따윈 없었고 오히려 뭔가 심드렁함까지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래도 집에서 잠시 법석이 일었을 거고, 아이의 성장상태로 봐선 인지 못할 나이도 아닐 터.

초영은 그 표정에서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 아이의 휘적거리는 걸음걸이를 따라서, 초영은 아이가 눈치채지 못하게 프라이드를 몰면서 뒤쫒아갔다.

 

잠시 찻길과 인도가 꼬여 더 뒤쫒을 수 없게 된 잠깐 사이. 갑자기 아이가 시야에서 사라져 있었다. 몇 분 정도 지나면서 초영이 초조함을 느낄 무렵, 예그리나가 말했다.

 

“피비린내가 나.”

 

초영은 급히 차에서 내렸다. 그 이상한 느낌, 자신이 잘못 느낀 것이 아닌 확신으로 변하고 있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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