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괴한 망상의 둥지 - 0015 깊은 곳 (1)

NEOKIDS 작성일 10.01.20 22: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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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괴한 망상의 둥지 - 0015  깊은 곳

 

 

 

 

그 시체가 발견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 다섯이 플래시를 켜고 지하실에 들어간 순간이었다. 좀 오래된 아파트라면 어디에나 있는 지하실이었고. 거기에 남자의 시체가 하얀 천 위에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다. 둘은 그 자리에서 기절했고, 셋은 지하실에서 소리를 지르며 튀어나와 경비 아저씨를 불렀다. 아직도 그 아이들은 밥을 먹지 못한다 들었다. 


시체상태로 보면 의외로 빨리 발견된 것이었다. 쥐조차도 오지 않았다. 아니, 쥐가 올 수가 없었으리라. 시체의 주위에는 쥐약들과 끈끈이가 놓여져 있었다. 방부처리마저 되어 있는지 곰팡이 냄새 사이로 약품 냄새가 밀려올 정도였다. 미생물 하나조차도 이 시체를 훼손하지 않은 상태에서 발견하기를 바란 것이다. 이정도라면 쥐약들과 끈끈이의 겉에 지문 하나 남지 않은 것은 명약관화.

 

하얀 천 위의 그 시체는 굉장히 깔끔해서 오히려 주변과 격리된 것처럼 보였다. 플래시 빛으로 비춰진 광경을 보며 나는 머릿속에서부터 일을 시작했다. 몸 속 장기들은 하나 같이 깨끗하게 절단되어서는 목울대부터 성0기 근처의 둔덕까지 살을 갈라 속을 쩍 벌린 시체 옆에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다.


상황만으로 몇 가지 즉시 판단되는 것을 나는 종이에 적어 내려갔다.


첫째, 얼굴을 비롯한 피해자의 표피 외부 그 어느 곳에서도 타박상의 흔적이 보이지 않음. 그 얼굴 표정이 평온함으로 미루어, 아마도 해부 직전에 마취를 시켰을 가능성.


둘째, 피는 모처에서 없앴음. 반나절 정도 시간 경과. 발뒤꿈치의 경동맥 부분 자상으로 보아 피가 계속 흘러나가도록 만들었음. 시간경과로 봐서는 사후 근육경직이 되려는 시간 직전에 해부에 들어갔을 가능성.


헛구역질을 해대며 담당수사관들이 지하실 사건현장을 나갈 때, 나는 본격적으로 손을 움직였다. 먼저 시체의 사진을 찍었다. 얼굴부터 발끝까지 꼼꼼하게. 그리고 몇 가지 훼손하면 안 되는 부분들을 체크했다. 같이 현장에 내려와 있는 김양석 군도 지문 채취 등등 자신의 일을 했다. 이제 4년차인 후배이다.

훼손하지 못하게 몇 가지 부표들을 작성해 위치에 놓으면서, 김군은 말했다.

"부검할 필요가 없을 정도군요."


나로서도, 새삼 놀랄 수밖에 없었다. 노트를 꺼내들고 시체를 이곳저곳 찔러보고 들춰보며 나는 다시 기록을 시작했다. 깔끔하고 해박한 솜씨. 의외로 놓칠 수 있는 장기들까지 철저히 해부해 분리. 메스질을 한 각도와 솜씨가 비상. 근육과 지방층을 정확하고 섬세하게 분리할 줄 아는 실력. 목줄기 같은 곳에서는 근육결 하나하나를 손상없이 가늘게 잘라내기도 함. 장기를 잘라놓은 절단면에서는 깔끔하게 단번에 찔러 그어댄 흔적. 자신의 해부학적 실력을 과시하고자 하는 느낌.


나는 마지막 문장을 쓴 후 잠시 노트를 바라보았다. 사실은 이런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았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시신을 굉장한 경의와 애정을 담아 해부했다.'

 

물론 보고서에는 이런 식의 꾸밈글은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거나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 느끼는 것과 같이, 이 짓을 오래하다 보면 민감하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었고, 그 감각은 가끔 내게 이런 명령들을 한다.

 

예를 들어, 자상이든 타박상이든 상처는 제각기의 표정을 가지고 있다. 사고로 타박상을 입은 흔적과 사람이 사람을 때려서 입은 타박상의 흔적. 그 둘의 표정은 다르다. 사고로 타박상을 입어 모세혈관들이 파열된 부위는 고의가 아니었다는 느낌을 충분히 주도록 생긴다. 압력도 고르고 압력이 끊긴 부위도 선명하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을 때려서 입힌 타박상의 부위는 흐릿한 모습의 경계선과 대비되듯 그 적의가 충만하게 고여있다. 사람의 주먹, 혹은 둔기가 휘둘려져 압력과 고통을 가한 순간, 모세혈관들과 신경세포들이 질러대는 비명이 귀에 들릴 것 같다. 더불어 가해자가 한 짓이 숙련된 자인지 서투른 자인지 까지 전달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면밀한 과학적 분석을 통해서 이러이러한 근거에 의해 추정되는 순간에만 인정받는다. 타박상을 입을 때, 대부분의 모세혈관들은 터지고 나면 피하조직 내에서 파괴되면서 림프액들과 함께 피하조직 표피 사이로 스며들어 멍을 형성한다. 그 멍의 상황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본다면 거기서 거기일 뿐이고, 실제로 내 감각을 분석해서 보고할 만한 과학적 단서조차도 시간이 흐른 상태라면 나타나지 않는다. '타박상'이라는 단어 속에 갇힐 뿐이다.

다만, 적어도 이제까지의 대부분 수사결과에 따르면 내 감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내 감은 그렇게 작문을 하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허나 지금은 내 느낌의 명령에 따를 때는 아니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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