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자 - 2

지금은짝사랑 작성일 10.01.17 17: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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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돈이 너무 많아서 할일이 없었던 한 남자가 세상을 여행하며 사람들에게 질문을 했다.       “만약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여러 사람들의 뻔한 대답을 들으며 평생을 떠돌던 남자는 세상이 참 시시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시시한 세상이라   면 살아갈 필요도 없겠다고 생각한 남자는 여행을 그만 끝내야 겠다고 생각한 후 죽을자리를 찾아 고향으로   돌아갔다. 고향에 도착한후 들어선 자신의 집은 오래전 자신이 떠났을때와 달라진게 없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의아한 남자는 집안으로 들어섰고 어느새 초로의 노인이 되어버린채 청소를 하고있는 집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아침에 외출한 주인을 반기듯 집사가 반기자 남자는 집사에게 물었다.      “만약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전 그래도 사과나무를 심겠습니다.”      여기에도 한 남자가 있다. 평범한 유년시절을 보내고 격동의 사춘기를 겪었으며 죽을 고생을 해서 들어간 대학에서   술에 모든걸 퍼부었다. 군대를 갔다와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공부한 결과 초등학교 교사 시험에 합격한 이 남자는   지금 병원앞에서 멍하니 서서 병원건물을 바라보고 있다.       “아. 남기영씨 무슨말씀을 드려야 할지, 병명을 알 수조차 없는 병입니다. 내장은 죽어가고 있지만, 남기영씨는   아드레날린과 엔돌핀이 육체적 고통을 느끼지 못 할 정도로 과다하게 분비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육체적 고통은 없   을 것입니다만, 1주일 후에는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오늘 오후, 대학 병원에서의 일이었다. 뜬금없는 시한부 선고. 병명조차 알 수 없는 희귀병.  나는 그동안 그런 것은   소설이나 드라마 속에서나 존재하는 줄 알았었다. 있어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땐 그랬다.     "젠장, 젠장, 젠장, 젠장, 빌어먹을, 빌어먹을."     현실감이 들지 않는다. 나는 연신 중얼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끼익."   정신이 들어보니 어느 새 나는 서울 변두리 언덕 위 빌라 맨 꼭대기 전세 1000만원의 싸구려 옥탑방에 도착해 있었   다. 어떻게 왔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손에 쥐어져 있는 약통과 가방을 대충 침대 위에 던져 놓고 화장실로   향했다. 변기와 세면대, 샤워기가 각각 5cm 정도씩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작은 화장실에서 샤워기를 틀었다.     "쏴아."   차가운 물이 양복을 걸치고 있는 나를 덮어간다.    “아..... 역시 드라마와는 다르구나.”    양복은 물을 잔뜩 머금은 한층 더 무거워진 몸으로 나에게 끈적이고 추적거려 불쾌감을 더해줬다.     “젠장. 이놈의 양복도 날 좋아하지 않는구나”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물에 젖어 몸에 철썩 달라붙은 양복을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벗기 시작했다. 양복을 벗었지   만 온몸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은 그대로다. 화장실에서 나와 쓰러지듯이 침대에 널부러졌다.       다음 날 눈을 떳을때 해는 옥탑방 위에까지 떠있었다.  침대 맡에 있는 5000원짜리 싸구려 자명종 시계는   울리지도 않았는지 알람이 켜져있는 상태로 11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물에 쩔은 양복은 나도 모르는 새에   건조대 위에 대충 순직해 있었다.  대충 머리만 만지고 청바지에 간단한 난방하나를 걸치고 방에서 나섰다.    눈부시게 내려 쬐는 빛에 눈을 찔끔감은채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자조했다.     “그럼 나는 어떤 사과나무를 심어야할까?"     1주일이란 시간을 가장 가치있게 보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는 집이 있는 언덕 밑에 있는 공원에 앉아 남방 주머니   에 있는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래도 불치병에 걸리니 좋은것이 하나 생겼다. 담배를 필때 병걸릴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거. 지금부터 담배를 하루에 3보루씩 피어도 1주일안에는 죽지 않겠지. 한참을 공원에 앉아 줄담배를   피다가 문득 내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사람들이 생각났다.      “그래도 마지막 정리는 필요하겠지?”      핸드폰에는 200명이 조금 넘는 번호들이 저장되어있었다.      “1주일 안에 모두에게 할 수 있을까?”      조금씩 시작은 해봐야겠다.      “여보세요? 어, 나야 어떻게 지냈어? 그래? 요즘은 뭐하면서 지내냐? 그러냐? 아니, 그냥 생각나서 연락 한번해본거   야. 응. 어. 그래 언제한번 술이나 한잔하자. 그래. 끊어라.”    “여보세요? 나 기억해? 그래, 기억하는구나. 아니, 그냥. 요즘 뭐하고 지내? 아, 그래? 바빠? 그래? 알았어. 나중에 연   락이나 한번 줘. 그래 알았어.”    “네, 선배. 저에요. 요즘 뭐하고 지내세요? 일은 잘되시고요? 아 그러세요? 아니요, 그냥 오랜만에 선배 생각이 나서   요. 네, 네. 하하하. 그럼요. 선배, 나중에 밥이나 먹어요. 네 그럼요. 잘 지내세요.”    “여보세요? 네, 이모. 잘 지내셨어요? 애들은 잘 있나요? 그냥 연락해본 거예요. 네. 하하하, 이모부는 여전하시죠?   그럼요. 네, 그럼.”    “형 나야. 응. 어떻게 지내? 아니 그냥 생각나서.... 응응. 그럼! 안될 것이 뭐가 있겠어. 그럼.... 나중에 연락이나 한번   해, 응 알았어. 그럼 끊을게.”    “네, 안녕하셨습니까. 접니다. 하하. 밤늦게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냥 안부 인사나 하려고 전화드린 겁니다. 네. 하   하하 덕분입니다. 네. 네. 그럼 네, 나중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내 전화기는 오랜 시간 나와 나의 추억을 이어주었다. 그래 1주일이면 긴 시간이다. 그 시간을 이런 설레임으   로 채우자. 절망속에서 희망을 본다고 했던가?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작은 것들에서 큰 행복을 느낀다.     "일단 어머니 아버지도 찾아뵈고, 술자리도 많이 갖자, 사진도 많이 찍어두고, 짝사랑했던 애들한테 멋스럽게   고백도 하는거야."     "띠리리리리띠리리리"   오늘 처음 걸려온 전화다. 난 무언가 들뜬마음에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네, 여기 병원인데요.”    병원에서 무슨. 혹시 검사 결과가 잘 못 됬다든가.    “네, 무슨일로....”    참 간사하게도, 자그마한 기적을 바란다.    “잠시 와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아, 네, 네.....”    무슨 일이지? 설마.    “그러니까 며칠 후면 걷지도 못하게 된다고요?”      “네..... 벌써 각 기관들이 에러를 일으키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혹시, 요즘 생체리듬이 바뀌시진 않으셨는지요.”      생체리듬? 바뀌긴 도대체......        “아마 요즘 전날 일이 정확하게 기억이 안나 시거나, 평소보다 늦게까지 잠을 자거나 갑자기 우울해졌다가 또 어느새   기분이 좋아진다든가 하진 않으십니까? ”    “그게....”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이름모를 병은 나도 모르게 나를 갉아 먹고 있었다.      “이틀 후엔 음식도 삼키시지 못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내일만 되도 돌아다니시는 것은 무리라고.....”      병원을 나올 때 나의 손에 든건 절망과 하얀 약봉지뿐이었다.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마음 한편의 부정은 있었다.     설마, 내가 그럴 리가. 아마, 검사 결과가 잘못된 것 일거다. 다시 병원에서 오진이라고 연락오겠지라는 나의 마지막   희망 까지도 날아가 버렸다. 약봉지에는 암 말기환자나 먹는 진통제가 들어있다고 했다. 신경은 마비 돼서 고통을 느   끼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모르니 가지고 가라고 억지로 손에 쥐어준 약봉지. 그 것은 나에게, 이 작은 하얀 봉투   는 최악이다. 실행하려 했던 모든 계획들이 하얗게 태워져 사라지고 말았다. 병원을 지나 걷기 시작했다. 그냥, 마냥,   아무 생각 없이 걷기만 반복했다.  나도 죽는게 두려워서인지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뚜르르 뚜르르    ‘네. 접니다. 지금은 일 때문에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음성이나 문자 부탁드립니다.’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내 친구 놈의 목소리.    ‘음성을 남기시려면 1번....’    뚜    ‘삐 소리가 들리시면 남기실 말을 해주시고, 샾 버튼을 눌러 주십시오.’    삐.    “야, 나다. 바쁘냐? 전화 좀 받지....... 야....... 나 어디 좀 갈 것 같다. 근데, 좀 무섭다. 안가도 될 줄 알았는데....... 꼭   가야한데....... 야, 전화 좀 받지. 이 게으른 자식아. 넌 왜 만날 이럴 때만 안 받냐? 난 지 힘들 때 항상 있어줬더니. 비   겁한 자식. 아마 보기 힘들 거다. 내가 너 때문에 고생고생 한 일들 생각하면 왜 이런 자식과 친구가 됬는지 참.......   야, 그래도 넌 내 가장 친한 친군 인거 알지?  넌 내....... 아무튼 넌 울어라. 꼭 울어줘라. 꼭이다. 아주 펑펑 꼴사납게   울어 줘야한다. 아주 해외토픽에 나올 정도로....... 내 마지막은 네가 끝까지 울어줘라.”    삐.    ‘음성메세지가 저장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내 정리는 모두 끝났다. 부모님께는 안하는게 좋을 듯하다. 그래, 그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오늘따라 오염된 하늘이 좀 더 멋지게 보인다.    “당신은 내일 세상이 멸망한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난, 아직 대답할 수 없다. 아마 집사는 주인이 여행을 떠났던 오랜 세월동안 혼자서 수없이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기   에 망할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말을 했겠지. 하지만 내가 겪은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그렇기에 난 강제로 땅에서   사과나무를 베어내겠다. 난 병 때문에 죽는게 아니다. 나의 마지막을 내가 정하고 싶었고, 내 딴에는 나의 일생을 깨   끗하게 정리했다. 그래 그러면 된것이다.           “뉴스입니다. 오늘 오후 6시경에 한 아파트 옥상에서 불치병에 걸린 한 30대 남자가 한 손에 핸드폰을 들고 투신했습   니다. 투신직후 남자는 즉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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