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괴한 망상의 둥지 - 0015 깊은 곳 (2)

NEOKIDS 작성일 10.01.24 13:4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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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는 아침, 고통이 나를 깨웠다. 팔에 피돌기가 되지 않아 그런 것이었다. 오른쪽 팔이 마치 몸에 달려 있으면서도 이물질처럼 내가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는 상황.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려서 팔에 피돌기가 되게 한다. 몇 초간 드는, 고통과 공포감. 그리고 신경들이 따끔거리기 시작하면서 함께 돌아오는 안도감.


출근 시간은 아직 멀었다. 다시 쓸 수 있게 된 팔로 세면을 하면서 나는 어제의 그 시체와 가족을 함께 떠올렸다. 왠지 그것은 치덕치덕 붙어서 뗄레야 뗄 수 없는 스티커들처럼 다가왔다. 이렇게 팔의 고통에 의해서 깨지 않았다면, 알람시계도 듣지 못하는 나를 그녀가 소리를 질러가며 깨워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부엌의 아침 짓는 반찬들의 냄새가 나를 불렀을 것이고, 아들이 누워있는 나를 향해 몸통 날리기를 해서 깨웠을 것이다. 그런 둘은 짐을 싸서 이 집을 나갔다. 내 앞에는 이혼서류의 도장이 찍혀있었다. 인주는 피보다 붉어보였다.

 

나가면서 그녀는 내게 단 한마디를 하고 떠났다.

 

"난, 이제 당신이란 사람을 알 수가 없어."

 

불가해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불가해함을 입으로 낼 수는 없었다. 그것이 밖으로 나오는 순간, 마치 그 놈은 살아 숨쉬는 것처럼 나를 휩싸고 짓밟을 것 같았다. 이제까지 이해가 가능한 세상들 속에서 살아온 간편함이, 되려 면역체계가 떨어진 날 만들어 바이러스 같은 것에는 취약하다는 두려움을 만들었다.

 

그 시체를 만든 자는 어떠했을까. 그는 무엇을 얻기 위해 내장을 도려내고 하나씩 진열해 두었던 것일까. 그것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임에는 분명했다. 어쩌면, 그도 지금의 내가 느끼는 이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였을까.


아침 뉴스에서는 그 시체에 관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어제 사둔 빵을 입에 구겨 넣고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뉴스를 보았다. 여자 아나운서의 표정은 경직되어 있었다. 뉴스에는 시체가 된 남자의 인적사항이 나오고 있었다. 그는 큰 대학병원의 환자실에 있었다고 했다. 공개된 CCTV의 장면도 함께 떠올랐다. 누군가가 피해자의 침대를 밀고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얼굴은 어두운 조명 등으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빵을 씹다 말고 그 몸짓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 몸집과 걸음걸이가 낮익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저걸 어디서 봤더라. 의외로, 나는 그 생각을 금방 포기했다. 빵부스러기가 묻은 손을 털어내듯. 기시감이란 것은 크게 믿을 게 못 된다는 심리학적 차원의 이야기도 있거니와, 일단은 출근시근이니까.


일자리에 도착해서 역시 처음의 업무는 그 시체였다. 해부는 잘 해놨다고 해도 세부부검은 들어가야 할 판이었다. 이미 뉴스까지 나간 탓인지 날파리들처럼 카메라와 기자들이 몰려와 있었다. 한 두 번 겪는 일이 아니었기에 적당히 얼버무리고 피했다.

시체는 손상된 장기들과 함께 부검실에 안치되어 있었다. 김양석 군과 함께 업무를 시작했다.


전기톱으로 흉골을 잘라내는 과정은 가장 고되고 소름끼치는 일중의 하나이다. 소리와 촉감, 이후 기계적으로 쪼개진 흉골부위를 벌려야 하는 작업들. 처음엔 영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이제 이 일도 12년째다. 오히려 일손이 덜어진 것에 가해자에게 감사해야 하나 머뭇거려질 지경이다. 이미 절개를 해놨으므로.


흉골 부위 손상도 분명 전문적인 기구를 사용했다. 뼈들이 떨어져 나간 모양새를 보면서 확신했다. 의료용 기구 밖에는 손상된 부위를 설명이 불가하다. 갈비뼈는 손으로 벌린 듯 했다. 바이스나 겸자 따위는 준비가 되지 못한 상황인듯 했다. 몇 개의 갈비뼈가 불규칙하게 손상되어 있었다. 그 외에는 처음 상황에서 판단된 것들이 전부였다. 두부에는 어떠한 손상도 없었다. 마취제는 포르말린 계열이었다. 의학계열 종사자라면 소량이라도 흔히 구할 수 있다. 나름 관리들을 철저하게 한다고는 하지만, 가해자가 맘먹고 작은 병으로 가져가려고 한다면 전혀 모를 상황이다.

왜 머리는 손대지 않았을까. 그것이 의문으로 남았다. 몸의 모든 장기를 대상으로 한다면, 머리의 뇌 역시 별개의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머리 안쪽에는 흥미가 없었다는 것인가. 김양석 군에게 나는 내 의문점을 제시했다.

김양석 군도 동의하긴 했지만 자신조차도 답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인간이란 우스워서, 인간 이하의 상황을 봐도 생존욕구는 자신을 괴롭히게 마련이다. 점심을 먹기 위해 나와 김군은 설렁탕 집으로 들어갔다. 점심시간의 식욕을 채우느라 분주한 모습들 속에서 우리는 방금 전에 본 시체의 모습들을 잊을 수 있었다. 그것을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건 설렁탕 그릇을 중간정도 비웠을 때였다.

 

"어이구, 식사하시는 구만요."

 

이 사건의 담당형사 민충식이었다. 30대 후반의 나이와 다부진 몸매. 깎지 않은 수염과 정돈할 생각이 없는 머리가 허름한 점퍼와 어울려 까칠한 이미지를 뿌렸다. 김양석 군은 수저를 내려놓았다. 대놓고 내색하지는 않지만 민충식을 싫어했다.

 

그 점은 나도 이해를 했다. 나 역시 이 일의 초반에는 실적만을 위해 부검의 결과를 놓고 뭣도 모르면서 왈가왈부하며 자기 편한 식으로 해석하는 인간들에게 넌덜머리를 냈다. 그러나 말했듯이, 12년이다. 이 정도는 유들유들하게 넘길 수 있어야 할 기간이다.

 

"아무래도 뉴스까지 나간 만큼, 윗선의 압박이 심해서요."

 

그 뒤에 실례하게 되었습니다, 까지 붙여주면 누이 좋고 매부 좋겠지만 형사란 인간들은 그런 것들과는 담을 쌓는 게 습관화되어 있었다.

 

"부검 보고서는 올렸으니까 나중에 보면 되요."

"아뇨, 실은 지금 조금 이야기라도 듣고 먼저 수사를 시작해보려고요."

"일단 추정할 수 있는 건, 범인은 해부학을 잘 아는 의료관계자라는 겁니다."

"네, 네...."

 

엉거주춤한 포즈로 수첩을 꺼내 올려놓고 큰 덩치가 곰살맞게 한 두 자를 적어내려갔다.

 

"그 이외에는 정신병력도 봐야 되지 않을까 싶은데, 의외로 편집증이나 집착 같은 것도 엿보입디다."

"어떤 면에서요?"

"현장 사진 보면 알겠지만, 뭐든지 가지런하고 뭐든지 통제되어 있어야 하죠."

"아, 네....."

"그 정도 이외에는 더 말해줄 게 없어요."

"이 정도면 충분함다. 의료관계자라니 먼저 병원부터 조사해봐야죠. 원한관계도 조사하고."

 

민충식은 일어나서 뒤통수를 잡으며 굽신한다. 모양새가 마치 인사하기 싫은 머리를 손이 억지로 잡아서 내리누르는 것 같아, 그에게 지어주는 웃음 속에 그런 의미도 흘려보냈다.


"민충식은 못 잡을 겁니다. 가해자가 잡히려 들기 전까지는."

 

김양석 군은 조그만 거울을 보면서 이쑤시게로 이빨의 고춧가루를 긁어냈다. 말의 톤으로는 민충식에 대한 혐오 정도가 아니라 아예 확신을 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당연하지 않습니까."

 

김양석 군은 이쑤시게를 옆으로 던지면서 말했다.

 

"전 민충식에게 잡히고 싶진 않으니까요."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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