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가디언- 1화 황당무계 그 자체였어(1)

NEOKIDS 작성일 10.06.07 23: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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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황당무계 그 자체였어






지금이야 웃으면서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정말 그 땐 난 심각했어.

생각해보라고. 네가 퇴근 시간이었고, 집에 가면서 누가 흘려놓은 신문을 읽고 있던 중이라고. 그런데 어디선가 좋은 냄새가 나는 거야. 넌 무심코 고개를 돌아보게 되지. 그리고 거기엔 근사한 여자가 있는 거야. 여기까지면 정상적인 범주겠지? 나도 그랬거든.


좀 더 자세한 걸 추가하자면, 그 때 내 코에 들어왔던 냄새는 왠지 애기의 그 젖비린내 같은, 고소하면서도 달콤하고 질척한 그런 느낌의 것이었지. 고작 애기 냄새에 맛이 갔냐고 말하진 말아줘. 그 때 그 냄새는 내겐 정말 천상의 여신들이나 풍길 수 있을까 싶었던 냄새였으니까.

 

고작 냄새 풍기는 거 따위로 여자에게 홀릴 정도로 나이를 헛먹은 것도 아니었고, 그 냄새의 주인공 여자도 그다지 성인 같은 느낌이 아니었어. 대강 외모로 따져보면 한 20대 초반 정도의 앳된 외모였다고 할까.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찰랑거리는 머리카락 정도가 '오 괜찮은데' 정도의 혼잣말 정도는 해줄 수준이었지만.

 

하지만 보통은 그런 여자가 있어도 저런 여자는 내 것이 아닌겨 하면서 다시 눈을 깔든가 아니면 계속 훔쳐만 보다가 집에서 기억창고에 저장해 놓은 그녀의 외모를 리플레이 해보면서 두근두근 두루마리 휴지를 붙잡든가 할 것 아냐.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난 어느새 버스가 끊겨있는 산골짜기 허름한 정류소에서 누워서 별을 보고 있는 거야.


그녀의 냄새가 너무 신경 쓰이고 그녀를 자꾸 다시 보게 되고, 그러다 보니 그녀가 내리는 지하철 종점에서 같이 내리게 되고, 그녀의 뒤를 따라서 버스도 타고 걷기도 하고 하면서 마치 술에 취한듯 비척대다가 보니 어느새 왠 산중턱에서 이성줄을 잡게 되고. 그녀의 모습 따위는 커녕 불빛이라도 보인다면 정말로 땡쓰한 상황이 되어버리고.


어떻게 겨우 그 숲속을 헤치고 내려와서 낙엽과 각종 부스러기들로 거지꼴이 된 채 비포장도로 길을 내려와서 햇빛에 거의 지워지다시피 한 버스 시간표를 보니 워메 이미 버스는 막차가 떠나가 버렸네요. 핸드폰 버튼을 누르니 현재 시각 새벽 1시 20분.

 

별 수 있나. 다음날 첫차라도 타야 제대로 출근할 것 같아서 난 그 허름한 정류소의 흙먼지 가득한 벤치에 대강 신문지를 깔고 누워서는 다시 남은 신문지를 덮었지. 무슨 놈의 정류소는 칸막이처럼 턱 세워 놔가지고 천장도 없길래, 아, 오늘 노숙은 참으로 알찬 경험이 되겠구나 싶었다.

 

이야기를 듣는 네가 들으면 미친누무 색휘 하며 콧방귀를 날리거나 박장대소할 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난 누워서 아주 심각하게 생각했단 말이다. 내가 왜 이렇게 된 건지. 

 

처음엔 머릴 대고 누워서 정말 쏟아질 기세로 떠있는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참 처량하더군.


 

머릿 속에 들어온 첫 번쨰 생각:

내가 정말 연애를 해야겠구나.

군대 가기 전에 잠깐 여자친구 사귈 때가 있었는데, 내가 너무 범생이라서 남들은 다 하는 붕가붕가 한 번 해보지도 못한 채로 훈련소 입소했지.

자대배치 받자마자 무슨 라면박스로 부식을 보내주는 등의 쑈를 펼치다가 6개월 쯤 되니 끝내는 바이바이야, 더는 못 기다리겠쌰 그동안 즐거웠음, 이러는 거지발싸개 같은 편지 하나 받은 걸로 끝난, 진짜 내세울 것도 없는 그 연애. 그거 이후로는 연애라고는 해본 적도 없으니 나는 진짜 동정마법사라고 놀림 받아도 별 수가 없을 지경인거지.

혹시 그렇게 억눌려 있던 욕구가 그녀를 만나 폼페이의 베수비오 화산 폭발하듯 본능을 폭발시킨 것인가 생각했었어.

 

하지만 그것은 맞지 않았어. 왜냐하면,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도 딱히 여자를 못 사귀어서 죽겠네 하는 느낌은 없었거든. 외롭지가 않았단 거야.

 

 


머릿 속에 들어온 두 번째 생각:

그런 게 아니라면, 도대체 뭘까. 귀신에게 홀린 거?

전설의 고향? 그런 드라마 있었잖아. 여름 때면 머리 풀어제낀 소복귀신이 우물 속에서 나와 주시는 그런 냡량특집.

왜 전에 무서운 이야기들 들을 땐 실감나는 것 중에는 택시기사를 홀리는 여자 따위의 이야기들도 있더라고. 혹시 나도 그런 귀신 같은 것에 홀린 것이 아닐까 생각해봤어.

 

그런데, 이것도 곰곰이 짚어보니 우스운 노릇이더구만.

 

으슥한 곳에서 택시기사처럼 둘만 만나서 날 홀린 것도 아니고, 퇴근길 초저녁 지하철 속에서 만나서 그것도 나같은 동정마법사 놈을 홀리는 귀신 따위라고 생각해보라니까.

뭐 그딴 게 다 있어, 이런 생각밖에 안 들더군.


그런저런 생각들을 하는 사이, 졸음이 찾아왔고, 별들만큼이나 휘황찬란한 보름달의 모습도 점점 흐릿해지고, 눈꺼풀은 시시각각 무게가 늘어만 가는 거야. 얼른 자야겠다고 맘을 먹었지. 회사 서류나 잡다한 물건들이 들어있는 가방을 베개 삼아서.

 

그 흐릿한 시선 안에 비친, 어떤 길다란 그림자가 보름달의 원 속으로 휙 지나가는 것도 너무 피곤해서 무시해버린 채로.

 

 

 

(다음 회에 계속)

 

 

되도록이면 하루마다 한 분량씩 올려볼 예정임다......

 

아......붕어공주 동화도 좀 각색해서 더 써봐야 하는뎅 낄낄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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