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가디언 - 1화 황당무계 그 자체였어 (2)

NEOKIDS 작성일 10.06.08 23: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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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잤는지. 난 문득 머리맡이 공허해진 느낌에 눈을 떴었지. 베개로 쓰던 가방이 사라져 있더라고. 손으로 더듬거리며 베개를 찾던 내 손에 뭔가 물렁한 게 잡히더라. 조금씩 손가락으로 눌러보기도 하고 더듬더듬 형체도 찾고 하던 난 그게 뭔지를 깨달은 순간 놀라서 화들짝 일어나 버렸어.

 

그건 앉아있는 여자의 허벅지였던 거야.

 

신문지들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잠시 내 눈을 가렸다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고, 다음 광경을 보는 순간 내 입에서는 숨이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조차 모르겠더라.


그녀가 내 앞에 있었어.

그것도 달빛에 반사된 하얀 나신을 내게 선보여주면서.


"어버버버버버....."


이런 소리가 내 입에서 나오게 될 줄은 정말 몰랐지. 사람이 진짜 당황하면 그런 소리를 낼 수 있더라고. 그러니까 그런 소리 내는 사람들 나쁘게 보면 안 돼.

 

하여간 혀는 막 꼬이고 순식간에 등줄기에서 소름이 쫙 끼치면서 몸이 굳는데 1초 정도는 찰랑거리는 그녀의 머릿결이 뭔가 덜 발육된 그녀의 몸과 조합되어

'와우 정말 님 짱 나의 호르몬을 태워 죽여주시네요'

하는 쓸데없는 생각에 할애하고, 그 다음 1초 정도는

'정말 귀신이었는가?'

라는 생각을 하다가 그 다음 1초엔

'그럼 왜 벌거벗고 나온 거야..... 설마 처녀귀신 덜덜덜....그럼 나는 이때까지 가져온 동정마법을 귀신 때문에 잃게 되는 것인가!'


이런 생각을 했었지.


사람이 너무 놀라면, 이런 쓸데없고 조잡한 사실조차 기억할 정도가 돼. 진짜로.


어쨌든 그녀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어. 그녀의 앳된 얼굴 외곽선 안으로 귀엽게 생긴 눈매. 그 수정체가 어찌나 두껍던지 마치 고양이의 그것처럼 맑디맑은 기운과 함께 이상한 안광을 빛내고 있더라고.

그래, 귀신이라면 그 정도쯤은 해줘야지. 이 정도면 내 동정마법 쯤 주더라도 후회 없다고 계산도 해보고.

 

그런데, 그녀의 손아귀가 내 가방을 뒤져보고 있던 찰나라는 걸 깨닫고는 이성줄을 굳세게 다잡았지. 귀신이 왜 내 가방을 뒤져보고 있을까? 여기까지 생각한 순간, 내 혀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어.  


"저, 그거 제 가방이에요."


그녀는 대꾸도 않고 계속 나를 쳐다보고 있었어. 그제서야 나는 그녀가 나를 바라보는 표정이 어딘가 석연치 않다고 생각했었지. 그것은 마치, 두려운 존재를 바라보는 것이거나, 혹은 의심스런 존재를 바라보는 것, 뭐 그런 느낌이었어.

 

그런 생각과 그녀가 자꾸 보여주는 나신의 모습 때문에 정신이 혼란스러워지는 걸 어떻게든 수습하기 위해서는 일단 내 가방을 돌려받는 것이 중요한 문제인 것 같더라고. 그래서 살며시 손을 뻗었는데.....

 

얼래. 무슨 장난감을 뺏기지 않으려는 애기처럼 품에 안고 놓지 않겠다는 굳건한 의지의 바디 랭귀지를 보여주는 거야. 그 바람에 슴가는 가려졌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응? 중요한 거야?)


"아니.....저.....이러심 안되요......제발 좀......무슨 일이신지는 몰라도....."


중언부언 주절주절 동문서문 하면서 가방을 돌려받으려고 윗몸을 기울인 순간,


그녀의 손날이 제대로 각도 잡고

나의 모가지를 무슨 돼지 잡듯이 강타하더라.....


그게 또 묘한 게, 그 가속도9747;질량이 충만한 강력한 손날에 정신줄을 놓아버리는 순간 난 그래도 행복했어. 귀신은 아니었구나, 이걸 확인하기는 했으니까.

어쨌든, 결국 불이 꺼진 영화관 안처럼 내 시야는 완전히 꺼매졌어.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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