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가디언 - 8화 살기 위해서, 걸었어 (2)(3)(4)

NEOKIDS 작성일 10.07.07 23: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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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해가 뉘엿뉘엿해질 즈음. 이모님은 벌써 마당에 나와 계셨고, 국정원 요원들도 준비를 다 끝내놓았어. 수영이 부모님이 안전가옥을 확인하러 가시느라 없다는 것이 전력 상에서 조금 문제가 되긴 했지만, 이모님은 오히려 없는 게 다행이라는 식이셨고.

 

저택 주변으로 고요함만이 감도는 가운데, 나는 수영이와 함께 있었어. 1차적으로 수영이를 보호하는 것이 내 몫. 여차하면 나와 수영이는 함께 도망쳐야 했으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이모님의 용의 힘 한 번 쓰시면 될 일인데 왜 이렇게 긴장들을 할까, 그런 생각도 했지. 하지만 잔뜩 긴장한 얼굴의 이모님이나 정욱씨, 국정원 요원들 앞에서 그런 말은 쉽사리 꺼낼 수 없었어.

 

무엇보다도, 수영이가 많이 무서워하고 있었어.

 

아직은 어린 용이고, 어쩌면 나보다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겠거니 싶어서, 나도 입을 꾹 다물고 있었지. 그렇게 잠시 방에서 대기하고 있는 상황. 헬멧과 택티컬 베스트와 방탄조끼, 돌격소총에 탄창이니 수류탄이니 다리 양쪽에 권총 한 정씩이니 하여간 몸에 걸칠 수 있는 만큼 다 걸쳐 놓고 있는 나.

 

앉아있기도 거북했지만, 수영이가 무릎을 껴안고 무서워서 앉아있는 모습을 보니 가만있을 수가 없더라고.

그래서 수영이한테 이리 오라는 식으로 팔을 뻗었어. 수영이는 내 품으로 들어왔고. 여전히 좋은 냄새였지만, 몸은 계속 떨고 있었어.

 

“우리, 괜찮겠지?”

 

수영이가 날 보면서 말했어.

 

“그럼.”

 

내가 있으니까 괜찮아, 따위의 말은 내놓을 생각도 못했어. 나조차도 이번이 능력을 발견하고 첫 실전인데, 사람을 쏜다는 것은 고사하고 조준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싶었지. 나까지 떨면 안 되기에, 의식적으로 몸에 힘을 주고 있었지만, 수영이는 그것마저 느낀 듯 곧 조용해지더군.

서로를 껴안은 채로, 우리는 어떻게 다가올지 모를 일들에 대해 그저 떨고 있어야만 했어.


첫 조짐은 역시 뭔가가 폭발하는 듯한 굉음으로부터 시작. 폭발음이 여러 차례 울리고, 나는 수영이를 품에 꽉 껴안았어. 수영이도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소리를 듣지 않으려 애썼고.

 

“마 우리가 어떻게 흔들리는가 보려고 이러는 겁니다. 겁먹지 마이소.”

 

무전기로 정욱씨가 친절하게 설명을 해줬지만, 그렇다고 폭발음들이 들려오는 사실을 아 그렇습니까 하고 쉽게 무시할 수 있을 정도는 못되었지. 폭발음이 멈추고, 어느 정도의 정적.

 

“놈들이 오고 있십니더. 얘기해뒀던 탈출로 루트로 가소! 지금 당장!”

 

정욱씨의 신호에 난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는 수영이를 일으켜 세워서 밖으로 나갔어. 안채를 통해서 뒷마당 쪽으로 나가는 툇마루 부분을 통과, 정욱씨의 무기고까지 이동하면 무기고 안쪽에 비상통로가 있고, 적어도 300m 바깥의 산중턱 쪽으로 이동하게 되어 있었어.

그 길을 타고 툇마루가 있는 곳의 기둥까지 간 순간, 난 수영이를 껴안고 멈춰 세워야만 했어.

마당의 상황이 최악이었거든.


수영이를 잠깐 옆에 두고 상황을 살펴보고 있었어.

드라켄 야거 놈들은 아주 당당하게도 마당으로 들어와 대열을 갖추고 있었어. 놈들은 나를 보던 때와는 달리 완전히 그들만의 제복을 갖춘 상태였어. 어설프게 훑어 봤다면 2차대전의 나치 군복과 착각했을 만큼 비슷한 실루엣이었어.

그 대열의 앞쪽에 프란데르트가 지휘관처럼 서있었지. 아무리 저 쪽 사정 모르는 나라도 그 자신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내가 읽었던 롬멜보병전술이나 그런 책들에서는 적의 힘을 모를 경우 정면충돌을 피하고 우회해서 공격하라고 되어 있었고, 그건 손자병법에서도 마찬가지였어. 그런데 이 녀석들은 끽해야 10여명 남짓이 여봐란 듯이 당당하게 마당으로 들어와 이모님의 앞에 있는 거야. 그 말은 아주 압도적인 전력이 있다는 것이거나......다른 흉계가 있다는 것.

이모님은 우리에게서 등을 돌린 채 그놈들을 바라보며 툇마루에 서 있었고. 그 주변을 국정원 요원들과 정욱씨가 보호하듯 서 있었어.

적의와 살의가 피어올라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 상황. 그런 침묵을 깬 건 이모님이셨어.

 

“용의 힘을 쓰면 어떻게 될는지 잘 알면서도 그렇게 왔다는 건, 믿는 구석이 있어서란 말이렸다?”

 

프란데르트는 얼음장 같은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외쳤어.

 

“멋진 집이군요. 부수는 게 아까울 정도입니다. 주변에 거리낄 눈길도 없는 이곳으로 집터를 잡았다는 것도 의미가 있구요. 이런 일이 생길 것을 대비해서, 용의 힘을 사람들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는 곳으로 봐둔 거겠지요?”

“그럼, 순순히 당해줄 건가?”

 

이모님의 받아침에 프란데르트는 슬며시 웃었어.

 

“그렇게 되도록 놔둘 수는 없죠. 이런 곳은 우리에게도 유리한 곳이니까. 일단 용은 당신 한 분밖에 안 보이는 군요.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임무를 시작해야겠습니다.”

 

일촉즉발의 상황. 하필이면 그 때.

 

고개를 내밀고 살짝살짝 눈치를 보고 있던 내 눈길과 프란데르트의 눈길이 딱 마주친 거야. 프란데르트가 재밌다는 듯한 표정으로 눈을 크게 떴고, 나는 황급하게 몸을 숨겼지. 낭패감에 휩싸이는 것도 잠시, 내 옆에 수영이가 있다는 것을 떠올리며 진정하려 애썼어. 그리고 저 너머로 프란데르트의 목소리가 들려왔어. 

 

“지후씨, 거기서 잘 들으시죠. 난 당신을 우리 쪽으로 끌어들이려고 아주 많이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그건 내 뜻이 아니었죠. 이제 명령이 바뀌었습니다. 지후씨에게도 지금 여기서 전해드리죠!”

 

프란데르트는 잠깐 뜸을 들였다가 큰 소리로 외쳤어.

 

“‘우리 것이 될 수 없다면, 누구도 가질 수 없게 하라.’라고 적혀있군요. 그럼, 안녕히.”


빌어먹을.

프란데르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난 놈들이 그렇게 자신감에 쩔어서 마당에 서 있는지를 깨달았어. 툇마루 뒤쪽으로 저녁놀이 지기 시작한 하늘에서 뭔가가 떨어져 내려오기 시작한 거야. 노을이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각종장비들을 잔뜩 매고, 그 녀석들의 증원이 고속강하를 해오고 있었어.

온 사방에서!

 

“적 증원!!!!!!!!!!!!!!!!!!!!!!!!!”

 

그렇게 짧고 크게 외친 내 말이, 공교롭게도 전투의 신호가 되어버렸어.


고속강하를 해오는 놈들로부터 갑자기 꼬리에 연기를 끄는 다수의 불빛들이 발생. 난 더 볼 필요도 없이 뒷마당 쪽으로 뛰어나가 사격을 개시했어. 이 쪽으로 제대로 올만한 몇 개만 골라서 빠르게 점사로 한 발씩. 몇 개의 미사일이 공중에서 박살이 나면서 불꽃놀이처럼 펑펑 터지기 시작하면서, 그것에 영향을 받은 다른 미사일들이 방향을 잃었어. 그러고 있는 동안 앞마당 쪽에서도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는 분위기.

 

나는 수영이를 잠깐 옆의 방으로 피하게 하고서, 바로 강하해 오는 놈들을 계속 쏴댔어. 정확히 머리만을 노렸지.

바람에 흔들려오는 표적들이라도 큰 상관은 없었어. 그건 조준을 하고 있는 내 눈에는 느리게 움직이는 수박들처럼 보였거든. 하지만 탄창안의 탄환이 바닥난 그 찰나의 순간, 미처 내가 막지 못한 놈들이 낙하산을 펴댔어.

 

그게 말이 낙하산을 폈다고 하는 거지, 일반 사람들이 고도계 보고 그냥 펴서 유유자적하게 내려오는 수준이거나 무슨 공수부대가 처음부터 낙하선 펴고 내려오는 그런 형식이 아니야. 그 정도면 내가 벌써 탄창 갈아서 다 처리했게.

 

낙하산이 펴져서 어느 정도의 저항이 속력을 줄일 때까지만 놔두고, 최대로 감속된 타이밍에서 낙하산을 떼어 버리는 거야. 그 다음부터는 하늘에서 그냥 후두둑 떨어져 내리는 거지.

 

정욱씨에게 이야길 들을 때는 현실감이 없었는데, 정말 그런 식으로 땅에 쳐박히고도 멀쩡하게 일어나는 좀비같은 놈들을 보자니 현기증이 밀려올 지경이었어. 아....그 때 내 손에 기관총이 들려있었다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그 때 당시의 내 체력은 개거지 수준이라고 말했지? 기관총 들면 금방 지칠 거라는 생각에 들지 않았는데. 지금도 참 후회된다.)

 

탄창을 갈아서 다시 사격자세를 잡는 동안, 적어도 내 눈으로 보이는 데서만 30여명은 됨직한 놈들이 집 위로 떨어져 내렸어. 난 뒷마당에 떨어지는 놈들을 뒷걸음질 치면서 계속 쏴댔고.

 

옆 놈의 머리가 터져나가는데도 정확히 날 응시하고 있는 놈들의 얼굴을 조준하려니 정말 이건 뭐 무슨 fps 게임도 아니고 오싹하기 그지없더군. 반은 공포심에 질려서 쏴대는데, 위에서 갑자기 누군가 떨어져 내려오면서 내 총구를 내려쳤어.

 

그 놈이었어. 각진 턱.

 

총구가 내려감과 동시에 난 돌격소총을 버리고 부무장으로 바꿨어. 그 때의 나는 다시 생각해봐도 놀라울 정도의 반응속도였어. 사람이 살려고 하면 무슨 짓이든 한다더니, 정말 그렇더구만. 번개같이 베레타 권총을 뽑아서 그 놈의 가슴팍에 대고 막 갈겨댄 것까지는 정말 멋졌는데.

 

이놈이 자빠져야 더 멋이 나지......

 

그 충격을 서서 그대로 다 받더니 그 놈이 천천히 가슴팍을 펴면서 씩 웃는 거야. 방탄조끼에 박혀 찌그러진 탄두들이 후두두둑 떨어지고 있고.

 

님하, 인간 맞으삼? 방탄조끼라도 탄을 맞으면 보통 사람에겐 충격이 전달될 거고, 적어도 난 그런 충격을 6발이나 줬는데? 님하는 차두리랑 동족?

 

내 멱살께가 답답해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공중에 내 몸이 떠있더라. 그리고는 벽 쪽으로 날아가 완전히 쳐박혀서 충격을 고스란히 받았고. 머리를 제대로 얻어맞은 것처럼 찡하고 멍한 것이 완전히 정신이 없는 상태. 그 때 누군가 내 옆을 휙 지나갔어. 그리고는 뭔가 소리를 지르는 것 같은 포즈를 취했지. 그리고 강한 힘의 압력.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각진 턱의 큰 덩치가 완전히 너덜해진 채로 꿇어앉아 있는 모습과, 날 흔들어 깨우는 수영이의 화급한 표정이 보였어. 그리고, 순간 각진 턱이 천천히 드는 권총을 쥔 손도.

 

“위험해!”

 

난 순간적으로 수영이를 옆으로 제끼면서 감싸 안았어. 둔탁한 충격과 함께 나는 몸에 힘을 주었어. 이물질이 파고드는 느낌. 오함마로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

이를 악물었어. 여기서 정신 못 차리면 죽는다. 살아야 한다. 그 생각만이 내 몸을 지배했고, 반란만 일삼던 내 몸의 각 부분들도 그 생각에 일치단결했어.

 

온 힘을 다해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등 뒤에서 또 다른 반탄력이 왔어. 아무래도 이모님의 기합이 들린 걸로 봐서는 드디어 용의 힘을 제대로 쓰시기로 맘먹으신 것 같았지. 마당 쪽에서는 굉음과 함께 집의 골재들이 부서져 날아가는 소리가 귀를 때렸고, 뒷마당에서 나와 교전 중이던 얼마 남지 않은 숫자의 드라켄 야거 놈들도 힘의 압력에 모두 쓰러졌어. 각진 턱만이 쓰러지지 않으려 사력을 다해 두 팔로 얼굴을 막고 버티고 있었지. 난 그 반탄력을 받아서 날아가는 한 편으로 최대한 한 손을 뻗은 자세를 유지했어. 그 손에는 남은 권총 하나를 꺼내들고. 악에 받쳐서 이렇게도 외쳤지.

 

“*아아아아아!!!!!!!!!”

 

총구는 정확히 놈의 이마부터 정수리를 돌아 뒤통수까지 훑어가며 탄창에 들어있던 13발을 모두 쏟아 부었어. 9mm 패러블럼탄이 모두 일렬로 박혀 들어갔어.

 

내가 밀리터리 잡지에서 본 탄환의 물리학대로 되었다면, 아마 탄들이 두개골을 깨고 들어가자마자 저항을 먹고 탄의 위아래가 돌면서 전두엽이건 측두엽이건 뇌하수체건 가리지 않고 헤집어 놓았을 거야.

 

바닥에 배를 깔고 엎어지다시피 넘어졌을 땐, 각진턱 놈은 이 세상에 있지 않았어. 단지 두개골이 쪼개지기 일보직전의 덩치 큰 시체 하나만 남아있었을 뿐.

 

하아, 하고 한숨을 돌리려는 순간, 명치의 충격 등으로 아직 몸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 틈을 타서 남아있던 좀비같은 놈들이 천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어. 그 놈들이 지니고 있던 무장을 들고서.

완전히 죽었구나 싶었지. 충격과 통증 때문에 아직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상황. 그런데 내게 수영이가 달려오고 있는 모습도 함께 눈에 들어오는 거야. 그리고 그 놈들이 총을 천천히 쳐들고 있는 모습.

 

순간 그 좀비 같은 놈들이 뭔가에 얻어맞는 것처럼 비틀대기 시작했어. 처음엔 왜 그런지 몰랐지만, 곧 알게 되었지. 정욱씨가 엄호를 해주는 거였어. 놈들은 난사질에 머리와 무릎을 얻어맞으면서 쓰러졌어. 곧이어 이모님이 쓴 용의 힘이 그들을 완전히 짓눌러 으깨버리는 광경도 봤지.

그들은 곧장 쓰러져 있는 나에게 왔어.

 

귀도 잘 안 들리게 되었는지, 나에게 일어나라고 말은 하는 것 같은데, 들리지가 않는 상황에서 내 상태를 보던 이모님과 정욱씨의 시선이 뭔가를 깨달은 듯 위로 쳐들렸어. 수영이까지도. 그들의 눈빛은 당황함이 잔뜩 배인 상태로 앞마당 쪽을 돌아보고 있었어. 나 역시 그 와중에도 그들의 시선을 따라 본 앞마당.

그리고 어떤 광경이 내 눈에 들어왔지.

 

프란데르트의 모습이 변하고 있는 그 광경이.


떨어지는 시체들의 신체조각들 아래로 검은 오오라에 감싸인 채 프란데르트의 온 몸이 변하고 있었어. 옷은 이미 다 찢겨진 채로, 얼굴을 제외한 뼈란 뼈들에서 뭔가 울퉁불퉁한 산맥들이 튀어나오는 듯한 느낌. 그리고 자잘한 비늘들이 피부에서 솟아나와 마치 도미노가 쓰러지듯 하면서 몸을 덮는 모습. 금발은 이미 뭔가 힘이라도 뻗치듯 잔뜩 뻗어 올라간.

눈동자의 주변이 금색으로 변하면서 동공은 완전히 세로로 찢어진 눈.

 

그건 분명히 용의 눈이었어.


위잉 하고 고막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청각이 돌아오는 것 같았어. 온 사방은 완전히 진동하고 있었고, 갑작스런 압력들의 영향인지 아까 전만 해도 멀쩡하던 하늘에 먹구름이 일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어.

프란데르트가 용의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에 다들 패닉상태였어. 나조차도 예외가 아니었지. 그 흉흉한 모습과 위세 또한 보기에도 위력적이었기에 더욱 그랬을 거야. 

 

다만, 뭔가 내가 알던 용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었어.

프란데르트는 표면상으로만 용의 모습과 비슷했을 뿐, 인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어. 손발만 조금 달라졌을 뿐, 두 다리로 서있고 얼굴이 비늘 덮인 것만 빼면 변하지 않은 형태?

그 모습을 유심히 보고 있는 상황에서 날 부축하고 있는 손들 중의 하나가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어. 난 그 손의 주인을 천천히 올려다봤고, 곧 진짜 일어나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어.

 

그 손은 이모님의 손이었던 거야.

 

“지후씨. 퍼뜩 인나소. 도망쳐야 합니더!”

 

정욱씨는 시선만 그 쪽으로 향한 채, 나를 마구 흔들면서 재촉했어. 몸을 일으켜 보려는데 옆구리 쪽의 통증이 장난이 아니었어. 왠지 호흡도 가빠오는 듯 싶었고. 난 옆구리 쪽에 손을 대봤어. 불에 지져서 기름에 삶고 있는 듯한 통증. 뜨뜻미지근한 액체가 마치 샘솟듯 하고 있는 상황.

 

제기랄. 그 때 맞았구만. 방탄조끼가 가리지 못한 틈으로 들어와 버렸군. 그렇게 상황 파악이 겨우 되었어.

 

모두가 내 상황을 깨닫는 건 어렵지 않았어. 수영이가 내 상처를 두 손으로 막으면서 거의 울부짖듯 하고 있었고, 이모님은 완전히 넋이 나간 상태였고, 정욱씨만이 정신을 차리고 응사하고 있었지만, 그건 헛수고에 불과했어.

놈이 뭔가를 한 번 날려 보내자, 정욱씨도 쓰러지고 말았어. 낌새를 눈치 채고 몸을 조금 돌렸기에 망정이지, 아마 즉사했을 거야. 그건 놀랍게도 정원에 있던 아주 조그만 자갈돌이었어. 정욱씨가 그걸 자신의 팔에서 뽑아내고 있었지.

프란데르트는 천천히 우리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어.

 

“놀랍군. 용이 한 마리 더 있었나?”


중저음과 고음의 목소리가 몇겹이나 겹쳐져서 나는 듯한  소름끼치는 목소리를 내는 프란데르트. 그 놈의 눈이 수영이를 보고 있었어. 수영이는 그 서슬에 눌려 나만 꽉 붙잡은 채로 아무 것도 못하고 와들와들 떨고 있었지. 처음 만났을 때의 맑던 수정체가 공포로 물들어 혼탁해진 모습을 보니, 미쳐버릴 것만 같았어.

이대로 수영이를 잃을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고통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뭔가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데.

 

그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어.

 

정욱씨의 손에 들려 있는 섬광탄을 봤거든.

 

정욱씨는 큰 데미지로 쓰러져 있는 척 하면서 이미 섬광탄을 꺼내들고 있었어. 섬광탄 위쪽의 2차 안전핀이 조용히 땅에 떨궈지고 있었고. 나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금방 깨닫고 몸에 살며시 힘을 줘봤어. 아직은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지. 

 

“그것도 어린 용이라니. 하하하!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군. 네년은 끌고가주지. 우리가 능욕하며 키워주마. 하지만 나머지 놈들은 여기서 죽어줘야 겠어.”

 

끌고 가서 뭘 어째? 개호로자식 같으니!

 

프란데르트의 한 쪽 팔이 높이 치켜 올라갔을 즈음, 이미 안전핀이 뽑혀있던 섬광탄을 정욱씨가 프란데르트의 얼굴 앞쪽에 직구로 던졌어. 나는 필사적으로 수영이와 이모님을 껴안고 굴렀어. 방심하고 있던 놈이 섬광탄을 내려치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서 퍽 하고 터진 섬광탄의 강한 섬광이 고스란히 놈의 동공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고.

 

“우워어어어어어억!!!!!!!!!!!!!!!!!!!!!!”

 

갑작스런 섬광으로 시야가 완전히 없어져버린 프란데르트놈이 눈을 감싸쥐고 발광을 해대고 있었어.  그 틈을 타서 정욱씨가 이모님을 부축하면서 말했지.

 

“갑시데이!”

 

난 수영이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어. 형상을 완전히 잃은 집의 뒷마당 쪽에서 조금만 더 나무들 사이로 가면 그 때의 무기고가 있는 거야. 거기까지 갈 동안만 프란데르트가 우리를 보고 있지 못하면 만사 오케이.

 

겨우겨우 우리들은 안으로 들어가서 위장된 문을 닫았어. 하지만 난 곧 생각이 났어. 나 때문에 아마도 들키게 될 거란 걸. 놈의 시력이 돌아와서, 바닥에 길게 끌고 온 내 핏자국을 본다면 여기쯤이야 금방 눈치 채겠지.

그걸 정욱씨도 알고 있었어. 정욱씨는 바닥으로 툭툭 떨어지는 내 핏방울을 보면서, 잠시 심호흡을 했어. 그리고는 뭔가 굳은 결심을 한 것처럼 말했지.

 

“이모님. 수영아기씨랑 지후씨 데리고 빨리 도망 가이소.”

 

그리고는 기폭장치를 하나 꺼냈어. 그 기폭장치를 본 이모님이 정신이 번쩍 들어온 듯 말했어.

 

“너.....지금 뭐하려는 게냐?”

“마님예. 모두들 데리꼬, 언능 나가소. 들키는 건 시간 문제입니더. 지는 마, 여기서 완전히 흔적을 끊어놓겠심니더.”

“안 돼! 그럼 너도 죽어!”

“마님예......”

 

정욱씨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듯 했지만, 정욱씨는 그것을 애써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고개를 쳐들면서 말했어.

 

“그동안, 많이 감사했십니더. 살려주신 은혜는 갚아야지예. 다음에 뵐 때는.......그냥 평범한 사람들로 만나길 바라겠십니더.”

“안 돼! 이럴 순 없어. 같이 가자. 응? 정욱아. 내가, 내가 힘을 쓸 테니까.....”

“안됩니더. 퍼뜩 가이소.”

 

정욱씨는 기폭장치를 꽉 쥐고서는 벽에 있던 버튼을 눌러 비밀통로 입구를 열었어. 땅속의 습한 공기와 바람이 훅 들이쳤지. 벌써 바깥에선 프란데르트가 시력을 찾았는지 이 곳 저 곳 닥치는 대로 공격하느라 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어. 그러다 그게 갑자기 뚝 멈춘 거야. 그게 무슨 의미인지를 모두가 순식간에 알았어.

 

“퍼뜩 가소!”

 

등을 돌려 다시 입구로 나가려는 정욱씨. 한 팔엔 날 부축한 채로 이모님을 끌고 가는 수영이. 그런 수영이의 힘을 뿌리치지 못한 채 이모님은 정욱씨의 등 뒤에 대고 울부짖었어.

 

“날 지켜준다며! 네가 죽으면 어떻게 지켜 줄 거야!”


정욱씨가 나가는 것과 동시에, 우리는 비밀통로의 입구를 닫았어. 이모님이 닫힌 비밀통로를 열려고 하는 것과 동시에, 비밀통로 전체가 뒤흔들렸어.

정욱씨가 가지고 있던 기폭장치가 어떤 건지는 나도 알고 있었어. 그건 이모님 집 밑에 숨겨진 수많은 폭약들을 단번에 점화시키는 장치였어. 무기고까지 포함해서. 아마도, 프란데르트가 그 정도로 죽을 리는 없었을 거야. 하지만 이 무기고와 비밀통로의 행방까지는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주변은 전부 초토화 될 거고.

 

흙모래가 떨어지는 그 통로의 입구에서, 이모님은 가만히 서 있었어. 뭔가 막 울부짖으며 힘을 끌어 모으려는 포즈를 취하다가, 이모님은 엎드려버리고는 흐느끼고만 있었어. 만약 여기서 힘을 썼다간 이 동굴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거겠지.

 

나 또한 그 와중에서도 정욱씨가 죽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어. 그 슬픔은 내 상태와 맞물려서 지독하게 내 몸의 힘을 빼놓았지. 눈앞의 모든 것이 핏빛으로 빙빙 돌고 있었어. 

 

필사적으로 거기까지 왔지만, 이젠 더 이상 몸을 가누고 있을 처지가 아니었던 거야. 출혈량으로 따지면 나도 이제 간당간당한 지경이었거든. 다리 근육 힘이 풀려 무릎이 푹 꺾여지면서 자세가 기울어졌어. 수영이의 부축도 소용이 없이 나는 완전히 땅으로 푹 고꾸라져 버렸지.

 

“일어나! 정신 차려야 돼! 오빠! 여기서 이러면 안 돼!”

 

힘이 없어서 그냥 흔들리는 종잇장 같은 나를 막 잡아서 흔들면서 수영이는 말했어. 그만 좀 흔들어라.....안 그래도 없는 피 더 나온다.....

 

“오빠! 제발! 여기서 죽으면 안 돼.”

 

수영이가 지혈을 위해서 그 소복 같은 치맛자락을 찢어 내 늑골쪽을 싸매고 힘껏 묶는 것도 느껴졌어. 헤에. 오빠라곤 죽어도 못부르겠다더니. 벌써 두 번이나 불렀네. 이제 세상을 하직해도 여한이 없.....

 

씨.발. 무슨 놈의 세상 하직이야.

 

내가 결심했던 것도 아직 못 이뤘고, 수영이랑도 이제 시작이야. 눈물까지 흘리면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서 내가 걷겠다고 했던 길이고 꿈이야. 그걸 내버려둔 채로, 패배자가 된 채로 이 땅굴 속에서 죽을 것 같아?


이빨을 확 악물고, 열받은 채로 힘도 없고 쑤시기만 하는 내 몸에 명령을 내렸어. 이 걸레짝만도, 벌레만도 못한 몸뚱이야. 난 살아야 돼. 네가 내 말을 안 들어봤자 어쩔 거야!


그 뒤로는 어떻게 살아 나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아. 그저 기억나는 건 몸을 후벼파고 있는 고통과, 후들거리는 다리, 길고 습하고 어두운 통로의 풍경, 날 부축한 수영이와 이모님, 그런 단편적인 것들 밖에는.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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