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때쯤?
그러니까, 그 정도로 어림잡아야 할 정도로 내가 아주 어릴 적에. 동네에 용하다는 점쟁이가 있었다더군.
보통은 궁금하잖아. 사람의 앞날이란 거. 그게 맞던 맞지 않던 간에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하기라도 한 거. 어머니는 만약 허튼 소리를 하면 복채를 주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고 채비를 하셨대.
누구의 미래를 알고 싶었던 거였냐고? 물론 내 미래지. 동네 애들 모아놓고 모험을 간다고 어른들도 가기 힘든 약수터 갔다가 애들 다 뿔뿔이 흩어져 산에서 조난당하기, 돌싸움 하다가 가게 유리창 부수기, 멀쩡한 입간판에 몸통박치기 해서 간판 플라스틱과 형광등 박살내기, 여자애들 치마는 아이스케키 하라고 만들었다는 신념을 어른들에게 자랑스레 웅변하고 실천한 것. 뭐 하여간 맛배기만 이야기해도 동네의 암적 존재 같았던 나였으니 내가 부모라도 이 자식 커서 도대체 뭐가 되려고 이러나 궁금했겠지.
해서, 도무지 나는 어릴 때라 기억도 안 나는데,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점쟁이에게 가셨다는 거야. 뭐 대체로 동네 보면 창문에 만(卍)자가 새겨져 있는 일반적인 점집이었던 거 같아. 뭐 나름 부적이나 이런 것도 붙어있었겠지. 어머니는 내 손을 부여잡고 문을 열고 들어갔지. 너저분한 집안 꼴과 파리똥이 앉은 탱화들, 먹고 사는 데는 전혀 쓸데없어 보이는 오만가지 조각상들까지.
풍경도 허접한데 목을 벅벅 긁으면서 츄리닝 차림으로 들어오는, 기름에 떡진 장발과 길쭉한 양반수염의 점쟁이를 딱 보는 순간, 각오를 다잡으셨대. 복채 안줘야 되겠다고. 뭐 그 정도로 일반적인, 점쟁이였나봐.
그 일반적인 점쟁이는 어머니가 말해주는 내 사주를 듣고는 신유술해 진사오미 손가락 마디를 더듬어 계산을 해보더래. 손톱에 낀 때를 보면서 이 자식 진짜 복채 안준다, 굳세게 맘을 먹고 계신 어머니의 눈에 갑자기 점쟁이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보이더래. 그러면서 점쟁이의 이상한 행동이 시작된 거야.
갑자기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게 다가오더니 관상을 보고, 손금을 보고, 체형을 보고, 심지어는 양말을 벗겨 발바닥의 금까지 보더라는 거야. 점쟁이가 그러고 있는데도 태연자약하게 있는 내가 다 신기하시더래. 하기사, 그게 무서웠거나 신기했으면 기억에 안남을 리가 없겠지.
여기서 잠깐 어머니의 기억이 가물가물한 때가 많으셔. 그놈이 뭐라고 그랬더라? 하시면서 한동안 기억을 더듬다가 무릎을 치면서 아 맞다 그랬지 하시고는, 점쟁이가 얼굴이 사색이 되어서 뒷걸음질치다 못해 벽에 온 몸이 쳐박힌 꼴을 하고 내뱉은 한 마디를 기억해서 말씀해주시는 거야.
“스.....승천혈!!!”
그 점쟁이는 그 한마디를 뱉고는 허둥지둥 안채로 들어가 버렸고, 어머니는 복채가 굳었다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뭐 이러냐고 혼잣말 한마디 하고는 날 데리고 나오셨대.
그런데 다음날 그 점쟁이는 우리 동네를 완전히 떠나버렸어. 새벽에 도망치듯 트럭에 짐을 싣고는 가는 걸 동네 사람 누군가가 봤대. 그것도 자신의 흔적 하나라도 남기면 큰일 날 것처럼 뒤처리까지 완벽하게 했는데, 마치 먼지까지 짐 속에 챙겨간 것 마냥 텅 빈 집이 엄청나게 깔끔하더래.
동네 사람들은 왜 점쟁이가 그렇게 도망치듯 갔을까 궁금해 했어. 혹자들은 그 점쟁이가 너무나 용해서 비밀리에 정치판 쪽으로 스카우트 됐다, 혹자들은 또 그 점쟁이가 장사가 안 되니까 사채빚을 지다가 야밤에 도주한 거다, 혹자들은 그 인간이 별다방 미스 최한테 그렇게 껄떡대더니 정분이 나서 도망간 거다, 등등등. 여차하면 장편소설이라도 쓸 수 있을 분량의 소문들이 오갔어. 워낙 떠나간 모양새도 괴이했거니와 평소에 이런저런 기행들로 꽤나 유명했던 탓에, 동네사람들에게 이만한 가십거리도 없는 모양이었던 게지.
하지만 어머니는 입에 지퍼를 채우셨어. 일단 우리가 제일 마지막 손님이었던 거잖아. 괜히 우리 애 사주보고 도망갔어요, 라는 이야길 했다가 악평뿐인 내 이야기가 더 심한 수준이 될까봐 차마 농담 삼아서라도 동네사람들에게 이야기는 못하셨다는 거야. 이해할 수 있었어. 아버지 없이 나를 혼자 키우느라 스트리트 파이터 못지 않은 악과 깡의 길을 걸으셨던 어머니시니까. 철들고 나서는 그런 어머니의 사정을 알기 때문에 절대로 사고를 치지 않았어. 때론 우릴 버리고 갔다는 아버지가 정말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지.
어머니의 영정사진이 있는 납골당에 꽃 한 송이를 놓으면서, 나는 어머니가 해주셨던 그 이야기를 기억해냈어. 사실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거지만,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해줄 때 참 신기해 하셨던 것 같아. 그리고 꼭 한 마디씩 덧붙이셨지. 네 사주가 점쟁이가 도망갔을 정도니 넌 뭔가 아주 대단한 놈이 될 거라고.
죄송해요. 아직도 대단한 놈이 되진 못했어요.
완벽하게 혼자가 되어보고 나서야 세상 무서운 줄 알겠더라고. 그 때 내 나이 스물 둘이었어. 군대에서 혹한기 훈련을 뛰고 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받았지. 어미는 돈도 많고 주변에 아는 사람도 많아서 괜찮다. 대학도 못 보냈는데 군대 안 갔다 오면 사람 안 된다. 갔다오너라. 하셔서 갔던 군대인데, 그 지경이 되고 보니 미칠 지경이더라고. 찾아오는 사람은 어머니가 장사하던 주변 사람 대여섯 명이 전부였고, 남겨진 돈은 200만원이 전부였어. 그 돈을 꼭 쥐고 겨우 마련한 산동네 조그만 집에서 어머니는 외롭게 계셨던 거야. 일단은 슬퍼서, 목놓아 울었고, 그 다음은 삶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차갑게 다독여야 했어.
대학도 못 갔었고, 앞길이 막막해서 군대에 말뚝 박을까도 생각했었지만 군대는 내 체질이 아니더라. 별 수 있나. 일단은 뭘 하고 살까 고민하다가 제대하면서 지금의 물류창고 일자리를 구했어.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연락도 결국 이렇게 저렇게 다 끊어졌고. 남은 것이라고는 어머니와 같이 고독하고 하루하루가 곤궁한 삶과, 쉬는 시간을 빌려보는 비디오와 만화책으로 때우는 하루하루가 되어버린 거지. 결혼? 훗. 꿈도 못 꾸고 있고.
나는 그런 내 인생을 받아들였어. 큰 욕심도, 허무함도 없었고, 그저 담담하게, 시간을 살아가고 있었지. 하긴 뭐 별다른 수가 있나.
그러다 시간은 흘러 3년이 지난 후 또 어머니의 기일이 왔고, 제사상은 못 차려드려도 항상 기일은 지켜왔어. 뉴스에선 지독한 추위가 바람과 함께 기승을 부린다고 경고한 날, 일자리에는 쉬겠다고 이야기를 해서 비워둔 그 날. 나는 집을 나서서, 어머니가 잠들어계신 납골당에 갔다 오는 길이었어.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해괴한 일들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