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자마자, 난 참을 수 없는 메슥거림에 쓰레기통부터 찾았어. 위장을 뒤집어 꺼내놓을 것만 같은 토악질을 하고 있는 동안, 초영이 나를 두들겨 주고 있다는 것도 깨달았지. 다만, 등이 아니라 머리를.
“으이구 자식아! 볼 일 없다고 그랬는데 볼 일을 만드냐!”
거참. 토하고 있는데 머리를 맞고 있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랄까. 하여간 화를 낼 겨를도 없이 기진맥진하면서 다시 자리에 눕는데 진윤이 입을 닦아주고 있고 모두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뭐가 어떻게 되긴, 이놈아. 내가 경고한 꼴이 난 거지. 무식하게 부적을 자기 몸에다가 쳐바를 줄이야. 까딱 잘못했으면 그냥 황천길이었어!”
초영이 투덜대면서 작은 절구 같은데다가 뭔가를 넣고 절굿공이로 마구 갈고 있었어. 지희가 그걸 돕고 있었고.
“괜찮은 거야?”
미호의 물음에 고개만 끄덕여서 대답하자마자, 미호가 와락 안겨 들어왔어. 어허허허헉. 무거워, 힘들어, 비켜봐, 하는 소리가 입으로 나오지도 않고 맴돌고 있는데 미호는 그런 내 맘도 모른 채 저 혼자서 엉엉 울더군. 초롱이도 같이 울기 시작했고.
“으허어어어어어엉~~~내가 잘못했어~ 뭘 잘못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잘못했쪄 어흐어허으허어어엉~”
미호가 콧물이 범벅이 된 얼굴을 내 얼굴에다가 마구 부벼대느라 얼굴의 온 사방이 도로 찐득찐득해지는 걸 느끼며,
에로한 걸지도.
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이, 초영이 뭔가 하던 것을 다 끝내고는 진윤에게 주었어.
“이거, 때마다 먹여. 마침 귀한 약초들을 구했으니 망정이지. 당분간 원기도 보충해야 하고, 먹을 것도 잘 먹어. 인스턴트 따위 절대로 먹이지 마! 그리고 다신 그런 일 따위 벌이지 좀 마. 알았냐?”
초영이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자 지희도 뒤를 따랐어.
“멀리 못나간다.”
“지/랄.”
초영에게 인사를 건네고 욕으로 받은 후, 미호와 초롱이를 진윤이 다독여 내 방에서 내보낸 후 다시 들어왔어. 수건을 짜서 다시 내 얼굴을 닦아주는 진윤에게 나는 물어봤어.
“그놈들, 어떻게 했어?”
“도서관 때처럼 처리했어. 다만, 기억은 조정하지 않았어. 아무래도, 그 기억이 있어야 다시는 여기로 오지 않을 테니까.”
“그렇군.....”
진윤이 수건을 다시 대야에 담그다가 손을 멈추더라.
“다시는.....그러지 마.”
나는 진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어. 진윤이 울음을 참고 있는 것처럼 어깨를 떨고 있었지.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겠다고 한을 품었던 사람이, 이제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걸까. 어쨌든 할 얘기는 해야지.
“넌, 어때?”
“응?”
“내가 그런 상황이 되면, 넌 어떻게 할 것 같아.”
진윤은 아무런 말이 없었어.
“난 똑같은 상황이 되면 또다시 그렇게 할 거야.”
“성수, 너......”
“네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
나는 내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어. 고생에 고생만 하시다가 결국엔 혼자 외롭게 가신 사람에 대한 이야기들을. 어렸을 때 날 키우기 위해서 보낸 그 시간들을. 그리고 그것에 보상도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너 역시 나와 같은 것을 느꼈겠지.”
“......”
“네가 귀신이건 아니건, 네 속에 있는 그 슬픔을 보고 지나칠 정도로, 지독하지 못해, 나는.”
“......”
끝내 눈물을 막지 못하고 연신 고개를 들썩이고 있는 진윤에게 나는 손짓을 했어.
“와서 누워봐.”
으흠......지금 생각하면 참 대담한 말이었잖아. 하지만 그 땐 뭐 아무 생각 없는 순백의 의지였으니깐.....(진짜라고!)
진윤은 내 옆으로 팔베개를 하며 꼼지락꼼지락 기어들어왔어. 나는 그런 진윤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꼭 껴안아줬어. 진윤이 뭔가 놀라는 듯 흠칫 했지만, 이내 내 팔에 몸을 맡겼어.
“이제, 괜찮아. 여기서 쉬어.”
아까 전엔 미호가 그러더니 이번엔 진윤이 콧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또 내 뺨을 부비네. 이런 행동을 한다는 것이 조금은 맘을 열어준 것도 같고 해서 기뻤어.
뭐, 일단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라고 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건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실은 좀 더 남아있던 일이 나에게 닥쳐오고 있었지. 그건 내가 몸이 좀 나아서 겨우 움직일 수 있게 된 다음날 들이닥쳤어.
“주인 계십니까?”
갑자기 어떤 중년부부가 들이닥친 거야. 그 중 아내 쪽은 알아볼 수 있었지. 진윤의 엄마. 그렇다면 바깥분 쪽은 뻔하네. 진윤의 아빠. 초롱이의 안내로 들어온 두 사람을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일어서서 맞이하면서 속으로 생각했어. 나는 못 싸웁니다. 몸은 둘째치고 진윤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두 분인데 내가 어떻게 싸웁니까. 아아아. 굽어 살펴주세요.
“자네가 지은이를 데리고 있는.....”
초롱이는 뭔가 마실 것이 없어 그걸 사오라고 내보냈고, 미호와 지은 어머니가 또 으르렁거리려는 걸, 진윤에게 잘 타일러 보라고 하며 내보낸 뒤, 지은아버지와 독대를 하는 상황. 짧은 머리에 기골이 장대하고 목소리가 쩌렁쩌렁한 분. 그리고 뺨에 나있는, 칼로 난 것 같은 흉터.
“네. 그렇습니다.”
“썩 환경이 좋진 않군.”
뭐, 그렇지요. 산동네 그늘진 판잣집 같은 집이야 누가 봐도 그럴 만도 하지요. 하지만 그런 이야기하려고 오신 건 아니실 거고.
“저 애들은 뭔가?”
“나름 인연이 있고 사정이 있어서 데리고 있는 애들입니다.”
“지은이도 그렇다 이건가?”
“그렇습니다.”
“이상한 짓이나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안 그래도 이상한 짓의 영역으로 들어가려는 놈들을 막느라 골치가 아픕니다......라고 말할 순 없고, 뭐 대강 둘러대는 내 눈치를 세심하게 살펴보던 아버님께서 이야기를 하시더군.
“험한 데에서 나름 잔뼈가 굵으면서 사기꾼 같은 녀석들을 많이 봐왔기에, 그런 놈들은 대강 봐도 느낌이 오지. 자네도 딱 그런 느낌이야.”
헉. 뭐 이래저래 숨길 것들이 많은 상황이긴 하지만 사기행각과는 전혀 상관없이 살아온 사람인뎁셔....
“다만, 진짜 사기꾼과 자네가 틀린 점이 있다면, 자넨 뭘 숨기고는 있어도 누굴 속일 수 있을만한 위인은 아니라는 거지. 자네 뒷조사도 다 해봤고. 나름 성실하게 살아왔더군.”
“감사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숨기고 있는 게 뭔지를 맞춰볼까?”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아버님의 태도에 난 잠깐 섬짓함을 느꼈어. 응? 이게 뭐야? 설마 초영처럼 뭔가 알고 있는 사람인가? 설마 날 노리고 여기까지 쳐들어온 것인가! 어째 처음 볼 때부터 이미지가 별로더라니! 그러고 보니 뒷조사도 해봤다고?
우물쭈물하는 내게 아버님은 조용히 말했어.
“지은이 속에 있는 건 내 딸이 아니야. 그렇지?”
히이이이이익!!!!!! 진짜 그런 사람인건가! 이제 어떻게 하면 되지? 내가 미쳤지. 왜 독대를 한 거야. 초롱이는 아직 오고 있는 중일테고, 진윤과 미호는 어머니랑 싸우고 있는 중일 것이고. 아니, 혹시 저 지은 어머니라는 사람도 뭔가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아냐, 그건 너무 오바했고, 하여간 이 상황은 뭔가 위험해! 라며 지레짐작으로 생각하고 방어태세를 취하고 있느라 대답을 미처 못하고 있는 사이.
“역시 그랬군.”
지은 아버님은 담배를 한 대 꺼내 물고는 가지고 다니는 재떨이를 꺼내놓으셨어. 보기보다 정말 준비성 좋으시다, 싶었지.
“눈만 봐도 알아. 저건 내 딸이 아니야. 난 언제나 내 딸과 눈을 마주칠 때 느끼던 게 있었어. 그게 지금 저 애에게는 없어. 게다가 공부를 그렇게 잘하지도 못했는데, 지금은공부도 안하는데 척척박사야. 이래저래 위화감이 느껴졌지. 내 딸 안에 들어가 있는 저건 누군가?”
“진윤.....이라고 합니다. 따님과는 아무래도 뭔가 교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담배연기를 뿜고, 아버님은 허공을 쳐다보시면서 눈물을 흘렸어.
“그럼, 이제야 비로소, 내 딸아이가 죽었다는 것을 실감하겠군.......”
뭐라, 드릴 말씀이 없었어.
한동안 말이 없으시던 아버님은 갑자기 품속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어.
“받아두게.”
“이게.....뭡니까?”
“저 아이를 데리고 있는데 양육비 정도 보탠다고 생각하시게.”
봉투를 열어보니 천만 원짜리 수표 세 장이 들어있었어.
“받을 수 없습니다. 돈이라면 저도 있구요.”
“받아주게. 이게 내가 저 애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야.”
아버님은 도로 내민 봉투를 받지도 않고 일어섰어.
“그래도 저 아이는 내 딸의 모습을 하고 있네. 가능하면 결혼하는 것도 보면서, 그렇게 알콩달콩 살고 싶은 맘도 있었네만, 자네 옆에 있으려는 맘을 굳힌 것으로 봐서는 뭔가 사정이 있는 거겠지. 괴롭힘을 당하다가 죽은 딸아이를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나 자신이 얼마나 원망스러웠는지 모르네. 하지만 이제 확실하게 내 딸이 아니라고 알게 된 이상, 우리가 붙잡고 있을 수도 없겠지.”
아버님은 담배를 비벼 끈 재떨이를 챙겨 넣으며 말했어.
“지금 저 애에게만큼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 고작 돈으로라도 말일세. 이걸로 나도 조금은 속죄를 하고, 살아갈 수 있겠지. 알아보니 우리 딸 괴롭혔던 애들 전부 작살을 내놨다지. 고맙네. 자네가 아니었다면, 결국엔 내가 했어야 할 일이니. 몸도 안 좋은 것 같아 보이는데 나오지 말게.”
아버님은 눈물을 마저 소매깃으로 닦고 길을 나섰어. 그래도 어떻게 안 따라 나설 수 있겠냐 싶어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섰지. 진윤은 겨우 미호를 말려서 진정시켰고, 어머님과는 아직 옥신각신 하고 있었지만, 아버님이 어머님을 붙잡고 가자고 단 한마디 해서 상황은 종료됐지만.
진윤과 함께 부모님을 골목까지만 배웅하려고 갔는데, 차가 다닐 수 있는 큰 골목까지 나섰을 때 난 그 험악하고도 절제된 풍경에 자동으로 후들거리는 다리를 꽉 조여야 했어.
왠 검정색 고급 중형 승용차들과, 정장의 깍두기 머리들이 그 골목을 꽉 채우고서는 아버님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초롱이의 아버지가 왔을 때 도깨비들의 꼬락서니가 하와이안 셔츠의 양아치들 같은 분위기와는 사뭇 대조되도록, 완전히 검은 정장차림의 인간들이 선글라스를 끼고서 아버님을 경호하듯 감싸서 차에 탔고, 나머지 수행원 같아 보이는 인간들도 죄다 차 안으로 기어들어가더니, 줄줄이 차들이 골목을 따라 내려가는 장관을 연출하고 있는 거야.
나는 충치까지 보여줄 것 같은 기세로 입을 벌리다가 그제서야 진윤을 돌아보면서 물었어.
“아버님은......뭐하시는 분?”
“음? 잘은 모르겠는데, 그냥저냥 들은 이야기로는 대한민국 3대 집단 중의 하나라더라 뭐라더라....”
헐. 뭐냐능.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