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갑면 -1-

op2004 작성일 11.09.22 16: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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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라니까?"

 

"응~."

 

광일의 신난 듯한 목소리에 성호가 고개도 안 돌리고 무표정으로 대답한다.

 

제각기의 가방을 들고 시끌벅적하게 모여있는 사람들-.

 

약 서른여명 정도되는 그 인원들은 사복을 입고 있긴 했지만 누가 봐도 학생들이었다.

 

아마 수학 여행 같은 것을 온 것이리라-.

 

지금은 점심 시간이었고, 이들은 버스가 주차돼있는 곳과 가까운 인근 공원에서 각기 신난듯이 떠들어 대

고 있었다.

 

학생들 모두에게서 여행의 설레임 같은 것이 느껴진다.

 

...한 사람은 빼고 말이다.

 

"내 말 듣고 있냐?"

 

"응~."

 

"...야, 강성호. 너 또 내 말 안 믿는거지?"

 

"응~."

 

"... ..."

 

성호의 대답에 광일이 슬픈 표정을 짓는다.

 

심지어는 울먹거리는 제스처를 취하며, '너무해'하고 속삭이듯 말하지만, 성호는 신경도 안 쓰고 그저 좋

은 자리를 찾고있을 뿐이다.

 

강성호-.

 

그것이 이 학생의 이름이었다.

 

나이는 열일곱-.

 

가기 싫은 수학 여행에 담임 선생님의 억지 권유로 참여하게 된 그는 기분이 착 가라 앉아있었다.

 

지금은 가기 싫지만, 후에 커서 돌이켜보면 다 추억이다.

 

그 지긋지긋한 변명에 또 속아 넘어가고 말았다.

 

자신이야 그런 말에 안 넘어가지만은 부모님께선 달랐다.

 

"어이, 시덥잖은 소설 그만 쓰고, 얼른 좋은 자리나 찾아봐. 배고프다."

 

성호가 광일에게 인상을 찌푸린채로 말했다.

 

최광일은 성호의 친구였다.

 

중학교 때 알게 된 사이였으나, 별로 친하지는 못했으며, 고등학교 때 우연히 같은 반이 되며 둘은 절친해

진 사이였다.

 

"소설이라니, 너무한 걸-."

 

그렇게 말하고서 광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성호가 말하는 좋은 자리...

 

분명 복잡한 분위기를 싫어하는 성호에게 있어 좋은 자리란 인적이 드문 곳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탁 트인 공원에 그런 자리가 있을 리 만무하다.

 

곧이어 광일은 뭔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아, 거기로 갈까?"

 

"거기?"

 

"절."

 

"...?"

 

성호가 이해 못한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 거리자, 광일은 자신있게 미소 지으며 입을 연다.

 

"나 알아. 이 근처에 '기림사'란 절이 있거든. 아까 표지판도 봤어."

 

"사람 없어?"

 

"주말이면 잘 모르겠는데, 지금은 평일이니까...! 있다 해도 별로 없을 걸?"

 

광일이 말을 마치자 성호는 턱을 괴고 고민에 잠겼다.

 

아무리 가까운 곳이라 해도 절은 절.

 

산을 조금 올라가야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공원과는 거리가 어느 정도 될 것이다.

 

그러면 광일과 몰래 단독 행동을 해야하는 것이고, 반 아이들과 선생님께 피해가 갈지도 모른다.

 

성호는 그 부분을 고민-

 

"...좋은 생각인데?"

 

...은 커녕 그 따위의 말을 내뱉으며, 히죽 웃는다.

 

"그치?"

 

"어. 걸리면 많이 깨지겠지만...안 걸리겠지, 아마!"

 

...아무래도 고민의 방향은 이쪽이었나보다.

 

둘은 모험을 앞두고 가슴 설레여하는 어린 아이들 같은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마주보았고, 이윽고 성호

가-

 

"갈까?"

 

"...어ㆍ디ㆍ를-?"

 

그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뒤에서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같은 나이 또래 소녀의 목소리-.

 

성호가 불안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본다.

 

"여어, 범생."

 

"누가 범생이야?"

 

성호의 말에 허리에 손을 얹고 불쾌하게 되묻는 소녀.

 

곧 앞으로 상체를 쭉 내밀어 성호를 올려다 본 뒤 검지로 삿대질을 하며 말한다.

 

"너 말이야, 내가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지?"

 

"알았다구요, '선 린'씨."

 

성호가 항복했다는 듯이 두 손을 과장 되게 들어 올려 보이자 소녀, 선린은 여전히 불만스런 표정이었으

나 그에 대해 더 말하지는 않았다.

 

소녀의 이름은 선 린.

 

중학교 3학년 때 성호와 같은 반이 되며 알게 된 사이였는데, 우연인지 필연(혹은 악연)인지 고등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또 반이 같아지며 둘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계속 자신이 하는 일에 이러쿵 저러쿵 참견을 하며 잔소리를 늘어놓는 린은 성호에게 있어

서는 천적이나 마찬가지-.

 

곧 불장난 하다 들킨 아이처럼 성호가 당황한 듯 웃어 보이며 묻는다.

 

"그런데 어인 일로?"

 

"다 들었어. 어딜 간다고-?"

 

린이 자신의 가슴 앞에 두 팔을 교차하며 팔짱을 끼고는 되물었다.

 

"오, 들었냐? 같이 갈래?"

 

눈치 없이 끼어든 광일을 성호와 린, 두 사람 모두가 째려본다.

 

순간 찔끔한 광일은 혼자 멋쩍은 듯 뭐라 중얼거렸다.

 

린이야 '이게 그런 농담(광일의 입장에선 진심이었지만)이 통할 분위기냐?'는 의미의 눈빛이었고,

 

성호는 '괜히 나서서 귀찮게 사람(특히 얘만은) 끌어 들이지마라.'는 의미의 눈빛이었다.

 

제각기 다른 의미였지만 뭐 어떠랴, 어쨌든 이럴 때만은 호흡 척척이다.

 

이윽고 광일에게서 눈을 뗀 성호가 린을 주시한다.

 

"아니, 얘랑 둘이서만 한 얘긴데, 어디서 나타나 그걸 주워 듣는겐가, 자네는?"

 

"자네들이야말로 그런 대의를 도모하는 일을 그렇게 큰 소리로 떠벌려서야 되겠는가? 이 내가 아닌 스승

님께서 들었으면 당연히 자네에겐 매타작이 떨어졌을 것이니, 이 일은 오히려 나의 귀에 감사해야할 일

아니겠는가?"

 

"... ..."

 

성호가 장난 식으로 던져 본 '자네'라는 단어에 완벽한 사극 버전으로 화답하는 린-.

 

역시나 말로는 이길 재간이 없다.

 

게다가 여전히 팔짱을 낀 상태에서 무표정한 표정으로 그렇게 맞받아치는데, 오히려 그게 더 열받는다.

 

왠지 진 것 같은 기분(그리고 실제로도 그렇다.)에 불쾌감이 깃든다.

 

"재수 없는 범생이 녀석."

 

"...이익...!"

 

성호가 고개를 휙 돌리며 다 들리게끔 중얼거리자, 발끈하는 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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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죽거리며 성호가 기분 나쁘게 웃는다.

 

'이겼다.'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하며 웃는 것이겠지-.

 

"... ..."

 

"... ..."

 

린이 인상을 찌푸린 채로 가만히 성호를 주시하자, 성호 역시 무표정으로 맞대응한다.

 

뭔가 스파크가 튀는 둘의 그 눈싸움 사이로 들어가면 감전이 되지 않을까하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는

광일.

 

그 때 린이 자신을 방어하듯 끼고있던 팔짱을 풀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그래, 알아서들 하셔. 단, 집합 시간까지는 늦지 말고."

 

"...엥?"

 

"선생님께서 혹시 눈치 채시면 내가 알아서 잘 둘러댈테니까-"

 

"...어라?"

 

"걱정하지 말고 조심히 갔다와."

 

"... ..."

 

'이게 끝?'이란 심정으로 멍하니 린을 바라보는 성호.

 

광일 역시 의외라는 듯한 시선으로 린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 둘의 시선이 오히려 낯설어, 당황한 듯 의문을 표하는 린.

 

"...왜, 왜?"

 

"아니, 아무것도."

 

성호가 그렇게 대답하자 린은 '시시하기는'하고서 등을 돌려 자신을 기다리는 여학생들의 무리 쪽으로 향

한다.

 

"어...야, 범생...!"

 

약 5m정도 떨어지자 성호가 린을 급히 불러세운다.

 

무슨 일이냐는 듯 이 쪽을 돌아보는 린.

 

그러자 성호가 그녀의 시선을 회피하고서는 멋쩍게 볼을 긁적이며-

 

"...그...밥 맛있게 먹으라고-."

 

"어, 어...?"

 

성호가 건넨 말에 린도 적잖이 당황한 듯 말을 떠듬거렸다.

 

금방 정신을 차린 그녀는-

 

"...그래, 너도."

 

그렇게 말하며 미소로 받아주는 그녀의 양 볼은 덜 익은 복숭아처럼 따스하게 물들어있었다.

 

그리고서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휙 등을 돌려 제각기 갈 방향을 찾아 걷는다.

 

예고도 없이 먼저 앞장 선 성호의 뒤를 황급히 따르며 신이 난 듯 뭐라 떠드는 광일.

 

린의 저만치 앞에 있던 여학생 무리들도 '꺅, 꺅'거리며 수다를 떤다.

 

재빨리 성호의 옆까지 다가온 광일은 그와 걸음을 맞추며,

 

"좋을 때다~."

 

"그런 거 아니다."

 

그러자 오른쪽 팔꿈치로 성호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대며,

 

"에이, 아니긴 뭐가~. 요놈, 요놈...!"

 

"... ..."

 

곧 성호의 손바닥이 광일의 뒤통수에 나앉았다.

 

 

 

 


 

 

 

기림사 한 구석-.

 

성호와 광일은 각자 싸온 도시락을 펼쳐놓고 서로 나눠 먹으며 잡담을 하고있었다.

 

절은 생각보다 높지 않았다.

 

산 길을 따라서 올라갈 때만 해도 경사가 생각보다 높아 둘은 괜히 왔나하고 후회했지만 얼마 안 가서 절

은 나왔고, 사람도 얼마 없었다.

 

뭐, 주말이 아니라 스님들 빼고는 아무도 없을 거라 호언장담한 광일의 말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

만, 이 정도면 아까의 공원보다는 훨씬 양호한 편. 성호는 만족했다.

 

사람들은 예상 외로 많았다.

 

심지어는 산을 오르던 성호와 광일 일행의 앞, 뒤로도 등산객들이 너댓명 정도 있었는데, 그 사람들은 절

이 목적이 아닌 듯, 기림사를 외면하고 기림사 뒤 쪽으로 펼쳐져있는 산 길을 계속 올랐다.

 

다 노인 분들이셨는데 참 체력도 좋다.

 

그 때 자신의 김밥을 먹던 광일이 입 안에 든 것도 다 삼키지 않은 채로 성호의 주먹밥에 손을 가져가며

입을 연다.

 

"그보다 아까 얘기 말인데-"

 

"얼씨구, 집어 치우세요. 나와 걔는 진짜 그런게-"

 

"아니, 아니, 그 쪽 말구."

 

"?"

 

광일이 말하려던 '아까 얘기'란게 린에 대한 이야기란 것을 지레짐작한 성호가 그의 입을 막으려는데, 그

걸 광일이 또 막았다.

 

"아까 얘기? 아아-."

 

광일의 말을 되뇌던 성호가 생각이 났는지 수긍하듯 고개를 까닥거렸다.

 

아마 아까 절 얘기가 나오기 전에 광일이 해줬던 그 얘기인가보다.

 

이 근방의 산에서 한 남자가 변사체로 발견되었다는 얘기였는데, 또 시시한 얘기냐며 안 듣는 척은 했지

만 사실은 다 듣고있었나 보다.

 

그걸 알기에 광일도 그렇게 열심히 설명한 것일 터, 확실히 이 둘은 서로를 잘 알고있는 좋은 친구다.

 

"밥 먹는데 꼭 그런 얘기를 해야겠냐?"

 

성호가 미간을 찌푸리고 광일에게 말했다.

 

그러자 광일은 굉장히 들뜬 듯한 표정으로 말한다.

 

"아니, 그게 진짜 흥미로워서 그래!"

 

"...헤에-, 어디가?"

 

"어이, 친구. 가만히 잘 생각 해보라구...! 남자가-"

 

"죽었다며?"

 

광일의 말을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성호가 자르자, 광일은 흥이 깨졌다는 듯이,

 

"아, 그래, 죽었지-, 죽었는데...!"

 

그리고는 다시금 방금 전 예의 그 표정으로 돌아와서는,

 

"옆구리 쪽이 함몰돼 가지고서는, 완전히 상반신이 돌아가 있었다니까?"

 

"산짐승의 습격."

 

성호가 답을 알았다는 듯 검지로 광일을 척하고 가리켰다.

 

그러자 광일이 힘 빠진 표정으로 헛웃음을 친다.

 

"요 답답한 인간들의 생각은 어찌 하나 같이 다-. 뉴스에서는 그렇게 나왔지!"

 

"에이, 뉴스에서도 나왔어? 그럼 그게 답이네, 응."

 

"뉴스라고 다 답인게 아니야. 잘 들어봐. 이빨 자국도, 발톱 자국도 없었대."

 

"발톱이 안 닿게끔 발바닥으로 조심해서 때렸겠지."

 

"... ..."

 

성호의 대답에 광일이 할 말을 잃는다.

 

그리고는 곧 언성을 높이기 시작한다.

 

"아이, 진짜! 걔가 왜 멀쩡한 발톱 놔두고 발바닥으로 때찌 때찌 하겠냐? 생각이란 걸 좀 해봐봐!"

 

"뭐, 임마?! 그건 나도 모르지, 걔 마음인데! 내가 때렸냐?!"

 

성호도 울컥해서 맞받아쳤는데,

 

어느새 주위의 시선이 자신들에게 쏠려있다.

 

광일은 민망한 듯 헛기침을 두어번 하였고, 성호도 머리를 긁적인다.

 

그리고는 이번엔 성호가 먼저 작은 목소리로 광일에게 말을 건넨다.

 

"그래, 알았어.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뭐가 문젠데? 네 생각을 말해봐."

 

"응."

 

광일 역시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고개를 까닥인 후 다시 설명을 시작한다.

 

목소리 때문인지 제스처도 작아져있다.

 

"네 말대로 산짐승의 짓이라는게 가장 유력해. 실제로 뉴스에서도 그렇게 나왔고. 그런데 말이야, 과연 산

짐승이 먹지도 않을건데 아무 목적 없이 사람을 죽였을까?"

 

"아, 과연-."

 

성호가 고개를 까닥인다.

 

광일의 얘기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항상 꺼내는 얘기는 남들이 무관심할만한 얘기인데, 듣다보면 그의 이야기와 추리, 논리에 빠져든다.

 

그리고 스쳐 지나가듯 주어진 주제들로 여러 가능성을 제시해보고 안으로 파고든다.

 

확실히 이 녀석은 이런 쪽으로 재능이 있다. 하지만 이 녀석의 문제는...아니, 그건 나중에 하도록 하자.

 

그렇게 생각한 성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광일에게 묻는다.

 

"배고픈게 아니라, 그냥 화난거 아냐?"

 

"그럴수도 있어. 그런데 새벽에 맹수를 본 남자가 미쳤다고 산길을 벗어나면서까지 그 놈들을 약 올리겠

어? 도망가는게 정상이겠지. 게다가, 사람도 잘못 때리면 손톱 때문에 상처가 나는데, 맹수의 습격에 할

퀸 자국 하나 안난다는건 불가능해."

 

"아...! 그럼 사람 짓인가?"

 

어느새 광일의 말을 귀찮게 여기던 성호가 더 푹 빠져서는 이것 저것 묻고있다.

 

광일은 더 분위기를 잡아가며 성호를 바라보았다.

 

"그것도 아닐거야, 추측이지만. 변사체가 발견된 곳은 산 길에서 약 10m 정도 벗어난 곳이었대. 만약 정

말 사람이 한 짓이라면 산 길이랑은 완전히 벗어난, 사람이 잘 지나다니지 않을 부근에서 발견돼야 하지

않을까? 덧붙여 변사체의 상태도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고."

 

"...그렇다면?"

 

"아마 피해자 스스로가 산 길을 벗어나 숲 쪽으로 들어간 거겠지."

 

"으음..."

 

거기까지 설명한 광일이 성호에게 가까이 다가와 눈을 맞추며,

 

"진짜 중요한건 이제부터야...!"

 

"?"

 

"피해자가 뭣하러 갑자기 숲 쪽으로 들어간걸까? 이상하지 않아?"

 

"...아."

 

"그래. 아마 피해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무슨 현상이 있었던 걸 거야. 나는 의문의 빛 같은 걸로 예상하

고 있어. 혹은 소리나 냄새 같은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세 가지 모두."

 

거기까지 들은 성호의 표정이 삽시간에 바뀐다.

 

눈을 반 정도 뜨고 설마 설마하는 표정으로,

 

"그래서 네 말은..."

 

"...외ㆍ계ㆍ인. 아니면 귀신."

 

젠장, 또 속았다.

 

"아아,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넌 항상 결말이 그거지? 그래서 내가 네 말이 항상 시시하다고 하는거야! 또

말도 안되는-"

 

"어어? 이봐, 친구. 귀신은 있다구-?"

 

미신이란 미신은 철석같이 믿는 광일과 그런건 절대 없다고 굳게 믿는 성호.

 

그 때문인지 둘은 이렇게 자주 티격 태격하고는 했다.

 

사실 성호는 남이 미신을 믿던 말던 별로 신경 안쓰는 편이었지만, 그가 이렇게 흥분하는 이유는 그럴 듯

하게 꺼낸 광일의 얘기가 항상 대부분 이런 식으로 결말이 맺어지기 때문이다.

 

흠뻑 빠져들다가도 얘기가 그런 쪽으로 가면 힘이 쭉 빠지기 마련이다.

 

"아유, 됐다. 그만하자, 그만해-."

 

성호가 먼저 포기한 듯 손을 휘휘 저었다.

 

"그런데 진짜 이상하지 않아?"

 

"이상하기는 한데, 외계인이나 귀신 때문은 아니야."

 

"...아이,참! 외-"

 

성호의 말을 기점으로 다시 언쟁에 불이 붙으려는 찰나, 광일의 배에서 개가 으르렁 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그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

 

"...나, 화장실...!"

 

그렇게 말한 광일이 성호가 뭐라 하기도 전에 잰걸음으로 자리를 벗어난다.

 

왠지 그 뒷모습이 웃겨 코웃음을 치고는 먹던 도시락을 정리하는 성호.

 

친절하게도 광일의 것까지 치워준다.

 

쓰레기를 한 곳에 몰아 대충 광일의 가방에 우겨넣고는 하늘을 올려다 본다.

 

참 맑다. 바람도 느껴진다.

 

게다가 혼자만의 시간이 되니 주위는 무척이나 조용했다.

 

스님들이 발을 끌며 이동하는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 조금이지만 나뭇잎들이 바람에 휘둘려 저들끼리

부딪히는 소리도 들린다.

 

정말이지 평화롭다.

 

심심한지 주위를 둘러보던 성호는 소화도 시킬 겸 좀 걷자는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저만치에 통나무형 쓰레기통이 보인다.

 

"어? 쓰레기통이 있었네?"

 

'하긴, 없는게 이상한건가'하고 성호가 덧붙여서 중얼거린다.

 

약간 미안한 마음으로 광일의 가방을 뒤져 아까 넣었던 쓰레기를 꺼내고서는 가방은 제 자리에 놓고 쓰레

기통으로 향한다.

 

쓰레기통과 1m 정도로 가까워졌을 즈음, 더 가기도 귀찮아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툭 던지고서 돌아서려는

찰나-

 

"...?"

 

쓰레기들 사이로 비집고 나온 허연 무언가가 보인다.

 

약 30cm 정도 되어 보이는 그것은 칼날과도 비슷한 날카로운 뿔이었다.

 

다시금 쓰레기통으로 다가가는 성호.

 

이번엔 바짝 다가가서 자세히 본다.

 

뭔지 궁금해서 보려는데, 쓰레기들에 파묻혀서 뿔과 이어진 무언가는 보이지 않는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성호는 쓰레기통을 뒤지기가 찜찜해서 돌아서려다가-

 

"에이, 손이야 씻으면 되지, 뭐...!"

 

그렇게 중얼거린 후에 예의 그 뿔을 잡고 그대로 들어올렸다.

 

그 무언가가 들려지자 쓰레기통 안에 들어있던 쓰레기들이 후두둑 거리며 떨어진다.

 

성호가 꺼낸 그것은-,

 

"가면?"

 

그랬다.

 

그것은 가면이었다. 얼굴만을 가리는 안면 가면-.

 

헌데 이 가면이 생긴 것이 좀 요사스럽게 생긴 것이 아닌가.

 

성호가 잡고 들어 올린 그 부분은 뿔이 맞았다.

 

눈과 눈 사이의 상단에 위치한 기다란 뿔이었는데, 그것 외에도 가면의 옆, 그러니까 사람의 귀에 해당하

는 부분에 크고 작은 뾰족한 뿔들이 세 개씩 나있다.

 

그리고 가장 이상한 부분은 눈이었다.

 

가면은 사람이 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그렇다면 당연스레 가면에는 두개의 눈 구멍이 뚫려 있어야

하건만, 이 가면은 그런 용도로 보이는 듯한 구멍이 네 개나 되는 것이 아닌가.

 

그 외에도 코와 입으로 보일 법한 무언가가 없다거나, 가면 전체가 새하얀 순백색이라는 자잘한 특이점들

이 보인다.

 

어쨌든 전체적으로 굉장히 기괴하게 생긴 가면이었다.

 

어쩐지 가지고 있으면 저주를 받을 것 같은 불길함마저 느껴진다.

 

그러나 성호는-

 

"...머, 멋-지다~!"

 

...이런 엄청난 반응을 내어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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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조리 방향을 바꿔 가며 자세히도 본다.

 

얼굴에 쓰려다가, 역시 쓰레기통에 나온거라 꺼림한지 관둔다.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그로데스크한게 딱 내 스타일이야! 전시용인가, 이거-?"

 

'이런 멋진 물건을 왜 버렸을까'하고서 고개를 갸웃거리다 '역시 집에 걸어두기엔 너무 무섭게 생겼지'하

고는 멋대로 판단해버린다.

 

"가져가서 내 방에 걸어두면 끝내주겠는데?"

 

그 말을 끝으로 성호는 크리스마스날에 선물을 받은 아이 같은 표정으로 자신과 광일의 가방이 있는 곳으

로 달려갔다.

 

 

 

 

 

 



"후아-, 위험했다-."

 

약 몇 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자신의 배를 쓸으며 돌아온 광일이 처음으로 내뱉은 말은 그것이었다.

 

"시원하냐?"

 

한 번 키득거린 성호가 광일을 향해 그렇게 묻는다.

 

광일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 후-

 

"근데 너 기분 좋아 보인다?"

 

"오, 그래 보이냐-?"

 

무슨 일이 있었냐는 질문에 성호가 '득템했걸랑'이라고 답한다.

 

의아한 듯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광일이 검지로 성호의 가방을 가리킨다.

 

"네가 말한 득템이란게, 저거?"

 

"뭐, 그런 셈이지."

 

성호의 가방에는 아까 쓰레기통에서 주웠던 예의 그 가면이 들어있었다.

 

안 들어가는 걸 가방을 억지로 넓히고 넓혀서 겨우 우겨 넣기는 했는데, 가운데 솟아있는 그 뿔만은 도저

히 들어가지가 않아 가방의 지퍼 사이로 희멀건 그것이 비죽 나와있는 상태였다.

 

"뭔데, 그게?"

 

"비밀이지~."

 

광일의 질문에 성호가 그렇게 답했다.

 

그러더니 저 혼자 후후후 거리며 웃은 후, 광일을 슬쩍 올려다 보며,

 

"궁금하냐?"

 

"...아니, 별로."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광일.

 

사실 '뭘 그렇게 대단한 걸 주운건가'하고 궁금하기야 했지만은, 우쭐해하는 성호가 얄미워 그렇게 대답

했다.

 

이런 약올림에는 그 누구도 어울려 주고 싶지 않은 법이다.

 

게다가 그의 경험상으론 그런 멋진 물건은 본인이 직접 안 보여주고서는 못 배기는 경우가 더 많았다.

 

성호가 약간 입을 비죽인 후, '싫음 말아라'라고 말하려는 그 순간이었다.

 

【킥, 키킥...!】

 

불현듯 괴상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주 잠깐 들린 것이었지만 그의 귀를 강하게 찔러대는 아주 불쾌한 음성이었다.

 

성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후 광일을 올려다 보며-

 

"뭐야, 네가 웃은거냐?"

 

"...아니, 난 아닌데."

 

아무래도 성호만 소리를 들은 것은 아닌 듯 광일 또한 눈썹을 가운데로 모이게끔 찡그리고 있었다.

 

【키약! 캬캭..!】

 

그 때 다시금 들려오는 소리.

 

성호는 주위를 두리번거렸고, 광일은 침착하게 소리가 들린 방향을 찾아 헤맨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 소리가 들려왔을 때, 그는 소리의 방향을 검지로 집고선-

 

"이 쪽에서 들리는데...?"

 

"숲?"

 

소리의 방향은 그다지 굵지 않은 산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있는 곳이었다.

 

성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광일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숲을 내려다본다.

 

절 자체가 약간의 등산을 통해 올라와야 하는 곳이었으므로, 나무들은 내리막을 따라 아래 쪽으로 즐비해

있었다.

 

【키이익-!】

 

"힉...!"

 

듣도 보도 못한 소리. 맹수가 위협적으로 목을 끓어대는 것과는 전혀 다른 소리다.

 

이건 짐승의 소리가 아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그것과는 다른-,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이것'은 짐승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위험한 무언가다.

 

두 사람은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꼈다.

 

【키이이이-】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이렇게 서서 보니 확실히 알겠다.

 

소리는 분명 이 아래 쪽으로부터 들려오고 있다.

 

성호는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약간은 뻣뻣한 목소리로-

 

"...야, 광일아. 아까 네가 했던 얘기-"

 

"응? 으응...?"

 

광일 또한 만만찮게 긴장을 한 상태인지 말을 늘어뜨린다.

 

"왜, 아까 있잖아...! 남자가 상반신이 돌아가서 죽어 있었다는...!"

 

"아, 아아-. 하지만 그건 이 산이 아닐거야. 만약 정말로 이 산이라면 등산조차 못하게 막아놨을 걸-?"

 

성호가 말하는 것이 아까의 외계인, 귀신 언쟁을 벌이게 한 그 사건 얘기라는 것을 알아챈 광일이 빠르게

자신의 생각을 답했다.

 

"하지만 이 소리는-"

 

그 순간이었다.

 

【구카칵.】

 

아뿔싸-,

 

그 흉측한 소리가 자신들과 훨씬 가까워져 있는 것이 아닌가.

 

성호와 광일의 대화 소리를 듣고 온 것일까.

 

둘은 누가 뭐라할 것도 없이 입을 다물었다.

 

소리를 내면 안된다는 판단보다는 뭐라 말 못할 그 공포감이 만든 긴장감 때문이리라.

 

다리가 움직이지 않아 도망갈 생각도 못하는 그 두 사람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못 박힌 듯 꿈쩍도 않고 있

었다.

 

그저 그들의 네 개의 눈동자가 소리의 행방만을 찾아 방황하고 있을 뿐이다.

 

이윽고,

 

'특, 트드드드득'하는 나뭇 가지를 헤치는 듯한 소리가 얕게 울려 퍼지더니,

 

희번뜩 거리며 '무언가'의 그 커다란 눈동자가 광을 발하며 두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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