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갑면(鬼甲面)- -2-

op2004 작성일 12.01.17 13: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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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헉...!"

누군가가 앞을 막아대는 나뭇 가지를 거칠게 꺾어가며 달려가고 있다.

그 누군가, 성호는 피가 꿀럭 꿀럭 쏟아지는 자신의 오른 팔을 왼 팔로 세게 움켜쥔 채 산의 숲을 달려서 올라가고 있었다.

"하악, 하아악-. 광일이, 광일이가-."

숨을 거칠게 토해내며 그가 자신의 친구인 광일의 이름을 번복하며 되뇌었다.

"젠장, 젠자앙-!"

그는 욕짓거리를 외치며, 바삐 움직이는 자신의 다리를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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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야, 저건?!"

성호가 혼란스러운 얼굴로 의문을 거칠게 내뱉었다.

【키키킥...!】

그 해괴망측한 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무척이나 끔찍한 흉물이었다.

상반신만이 존재하고, 얼굴은 기다란 형태이며, 머리에는 자잘한 뿔들이 아무렇게나 나있다.

팔은 무척이나 거대했고, 손이라 생각되는 부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반신이 없는 그 괴생물체는 그 커다란 팔을 이용해 두 발로 걷듯이 움직여대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3m에 육박할 정도의 굉장한 크기였으며, 가장 괴기스러운 부분은 녀석의 가슴팍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가슴에 있는, 얼굴에 달린 그것과는 별개의 용도인 듯한 커다란 입.

그것이 쫙 벌어져 혀를 날름거리는데, 그 모양이 굉장히 역겹다.

이 괴형(怪形)의 생물체는 누가 봐도-

"괴, 괴물...!"

놀라서 다물어지지 않는 입을 힘겹게 놀리며 광일이 말했다.

'쿵'하고 괴물이 오른쪽 발, 아니, 팔을 한 걸음 내딛는다.

그에 반응하여 광일이 '히익' 거리고는 도망 가려는데, 성호가 광일의 손목을 붙잡는다.

"기다려."

조금씩 떨며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움직이던 발을 멈추는 광일.

성호는 흘끔 뒤를 보았다.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의 시선이 성호와 광일에게 몰려있다.

하지만 그들은 괴물은 못 본 듯 그저 소란스럽게 구는 성호와 광일을 꾸짖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괴물은 아직 산을 다 올라오지 않았고, 사람들은 저만치 뒤에 있다.

아마 저들의 각도에선 이 녀석이 보이지 않는 것이리라.

"...지금 네가 뒤쪽 방향으로 도망가면 저 사람들도 말려들게 돼."

"무슨 소리야! 그럼-"

"진정해!!"

성호의 말에 반박하려는 광일을 향해 그가 낮게, 그러나 위압감 있게 외쳤다.

그에 놀란 듯 어깨를 약간 움츠리는 광일-.

성호 역시 안 무서운 것은 아니었다. 당연한 거다.

정상적인 인간이 이런 끔찍한 괴물을 앞에 두고서 어찌 태연할 수 있으랴.

하지만 성호의 판단은 옳았다.

자신들이 사람들이 있는 공터를 향해 도망가면 괴물은 쫓아올 것이고, 그럼 이 기림사 전체가 대혼란에 빠질 것이다.

예의 그 변사체 같은 형태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을지도 알 수 없다.

광일의 손목을 잡은 성호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광일에게도 느껴진다.

그 역시 떨고있다. 그 역시 나만큼 두렵다.

땀이 배어나와 촉촉한 성호의 손이 확실히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성호가 침착하게, 아니, 침착하려고 노력하며 광일을 본다.

"내, 내가...내가 미끼가 된다-."

"...?"

처음엔 성호의 말을 이해 못한 광일이 의문을 표하다, 곧 경악한다.

"그게 무슨-"

【퀴이익, 키기기..!】

그 때 가만히 지켜보던 괴물이 그런 소리를 내며 쿵하고 한 걸음 더 올라온다.

괴물의 눈은 자신 앞에서 침착함을 유지하는 성호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다행이다.

황당하기 짝이 없지만 성호는 순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 흉물의 탐욕스러운 눈-.

이젠 시간이 없다.

그렇게 판단한 성호가 가라는 듯 광일의 가슴팍을 강하게 밀며-

"가서 선생님께 말씀 드려! 그 동안은 내가-"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달리기 시작하려는 성호의 그 행위가 괴물에게는 도망가려는 자세처럼 보인 것이다.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그것이 올라오려는 찰나-,

팟하고 성호가 괴물의 옆을 지나 산 아래 쪽으로 달린다.

【키...】

괴물은 혼란스러운 듯 잠시 뜸을 들였다.

자신의 본능대로라면 '이것'은 뒤를 돌아 도망가야 맞다.

그런데 자신이 올라온 그 길로 다시 내려 가다니-.

【키야아아악!】

괴물은 곧 그렇게 울부 짖더니 자신의 팔을 바삐 움직이며 성호를 따라 내달리기 시작했다.

"서, 성호야!"

순식간에 혼자가 된 광일의 외침만이 기림사에 울려퍼졌다.

 

 

 

"헉, 헉, 이게 도대체-"

성호는 산을 계속 해서 달려 내려가고 있었다. 그 뒤에선-,

【쿠워어어어어억-!!】

하는 소리를 내며 예의 그 괴물이 뒤따라 달려오고 있다.

쿵쿵 거리며 두 팔로 빠르게 달려오는데, 그 모습이 무척이나 위협적이다.

죽는다. 녀석에게 잡히면 확실히 죽을 것이다.

상반신이 돌아가서 죽은 그 남자처럼-,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더 잔인하게-.

"허어억, 헉...!"

성호의 숨이 눈에 띄게 거칠어진다.

뒤의 그것은 체력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듯, 10분째 달리고 있건만 처음과도 같은 그 속도로 계속 쫓아오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녀석의 그 육중한 몸뚱어리였다.

자신은 나무들 사이를 이리 저리 피하면서 가는 반면에, 녀석은 나무에 계속 걸리는 듯, 거리가 벌어졌다 다시금 따라잡고는 했다.

아마 이 나무들이 없었다면 자신은 진즉에 따라잡혔을 터, 그 뒤를 상상하니 열에 찬 땀 사이로 식은 땀 한 방울이 주르륵 흐른다.

"이런...!"

성호가 방향을 급히 틀어 괴물이 있는 방향으로 뛴다.

아니, 정확히는 뒤를 돌아 뛰었지만, 괴물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져 있는 곳으로-.

그가 이런 행동을 한 것은 내리막이 끝났기 때문이었다.

다른 이들은 말려들지 않게끔 해야 한다.

그리 하려면 이 산의 숲에서만 뱅글 뱅글 돌며, 시간을 벌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 광일이가 선생님께 갈 시간을-.

성호가 그렇게 생각하며 달려서 괴물과 같은 선상에 위치한 그 순간,

【쿠어어억-!】

"!"

괴물이 예의 그 거대한 팔을 성호를 향해 휘두르는 것이 아닌가.

실수였다. 이 정도의 거리라면 닿지 않을 거라 생각했건만, 괴물의 팔은 그의 예상보다 훨씬 길었던 것이다.

아슬 아슬하게 거리를 벌려 피하긴 했지만, 그 힘이 어찌나 센지 팔에 휘둘린 나무들이 으지직하고 쓰러진다.

이런 거에 맞으면 상반신이 돌아가는 정도가 아니라 하반신과 찢겨져 분리되고 말 것이다.

성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쿵!

"웃!"

난데없이 나무 하나가 성호의 앞에서 쓰러졌다.

다행히 가까스로 맞지는 않았지만 제 발에 걸려 땅에 엎어진다.

괴물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뻥 뚫린 자신의 가슴에서 삐죽 삐죽하고 가느다란 촉수들을 힘차게 내뱉는다.

명중률은 떨어지는 듯 대부분의 촉수가 나무에 부딪히거나 성호를 스쳐 지나갔지만, 운이 없게도 그 중 하나가 성호의 오른 팔을 '푸욱'하고 꿰뚫는다.

"우와아아악!!"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는 성호.

【키히힉, 킥!】

괴물은 만족한 듯 자신의 촉수들을 가슴에 달린 입 속으로 거둬갔다.

팔에 박힌 촉수가 빠져나갈 때, 성호는 다시 한 번 더 형언 못할 고통에 괴로워 해야했다.

"읍, 으으으...!"

왼 손으로 오른 팔을 강하게 움켜 잡고서 성호가 고통을 참으려는 듯 목을 끓었다.

팔에 구멍을 낸 촉수가 빠져나가자 그걸 대신할 부분이 없던 성호의 팔에서 피가 주체 못하고 흐르기 시작한다.

【키기기기...】

괴물이 성호를 향해 다가온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일어나서 도망가야 하는데, 고통이 몸을 지배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게다가-,

일어나서 다시 달린다 해도 도망치지 못할 것 같은 그런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지배한다.

"아흑...! 젠장-"

그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죽기 싫어.

죽기 싫다구!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상반된 그런 마음이 성호를 어지럽히던 그 때-

【키캭...!】

"...!"

'버억'하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돌이 별안간 괴물의 머리를 강타했다.

돌은 곧 괴물의 몸을 타고 데굴 굴러 땅에 떨어진다.

"그 쪽이 아냐, 이 망할 자식아!"

괴물의 뒤쪽이었다.

성호가 고개를 틀어 그 쪽을 바라보니 그 곳엔 '이 쪽이다'라고 덧붙여 중얼거리는 광일의 모습이 보였다.



"이 쪽이다...!"

자신을 향해 몸을 돌린 그것에게 그렇게 말한 광일은 거칠게 숨을 골랐다.

그 역시 성호와 괴물을 뒤따라 계속 달려온 것이다.

"과, 광일아..."

성호가 적잖이 놀란 듯 동공을 키우고 '여긴 어떻게'하고 중얼거린다.

광일은 ‘하아’하고 한 숨을 쉰 뒤,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며-

"...내가 친구 하나 잘못 사귀었지. 이 상황에 사람들이 말려들고 말고는 무슨-. 영웅 납셨네, 영웅 납셨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얼굴엔 사람 좋은 미소를 띄우고 있다.

【크키이이이...!】

"... ..."

당연한 얘기지만 이 녀석에게도 분노란 감정은 있는 듯 괴물이 목을 거칠게 끓어대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

그 눈을 똑바로 응시하는 광일.

신기하게도 전과 같은 두려움은 없었다.

도리어 '늦지 않았다'는 안도감 같은 것마저 느껴진다.

성호가 원망스러운 듯한 목소리로-

"여긴 왜 온거야! 내가 선생님께 말씀 드리라고-"

"시끄러, 이 자식아! 지지리도 못 달리는게 미끼는 무슨...!"

'결국 결과가 이거잖아'하고서 광일이 팔짱을 끼며-

"임무가 잘못 배정 됐지. 미끼는 내가 된다. 그리고 선생님께 말씀 드리러 가는게 네 역할."

"야, 최광일!"

광일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괴물이 별안간 한 층 더 거칠게 목을 끓어대고는 몸을 돌려 성호를 등지고서 광일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다.

그러자 광일이 가볍게 미소 지으며 팔짱을 풀고는, '얘도 알겠다는데?' 한다.

그는 녀석을 자극하듯 오른쪽 발 끝을 땅에 두어번 정도 가볍게 두드리더니,

뒤를 돌아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키와아아아악-!】

그러자 괴물이 그에 상응하듯 울부 짖으며 광일을 쫓아 달려간다.

다급해진 성호는,

"이 괴물 자식아! 어딜 가?! 이 쪽으로 와!"

하지만 둘 중 누구도 발을 멈추지 않는다.

"쫄은 거냐?!"

그런 허세 섞인 성호의 외침도 들리지 않는 듯 광일과 그 뒤를 쫓는 그것은 순식간에 저만치로 가서는 나무들 사이로 사라져 갔다.

"야, 이 개자식아-!!"

원망 섞인 목소리로 성호가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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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썩!

달리던 성호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크윽...!"

숨을 고르며 욕설을 내뱉는다.

이럴 시간이 없는데-.

그의 체력은 이미 한계였다. 아마 광일이도-

"카학! 하아, 하아...."

목을 찌르는 기분 나쁜 숨을 토해내며 성호가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다.

광일은 괴물을 유인하기 전부터 이미 많이 지쳐있었다.

당연하다-.

자신이 미끼가 되어 도망다닐 때부터 그는 주욱 뒤쫓아 왔었을 테니까.

모르긴 몰라도 지금 광일은 무척이나 괴로울 것이다.

성호가 한 발을 내딛는다.

광일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무사할까...?

자신도 이렇게나 지쳐있는데, 어쩌면 이미-.

성호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드는 불길한 생각에, 흠칫 놀라고서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할 시간에 한 발자국이라도 더 나아가자.

어서 가서 선생님께 말씀 드리지 않으면-,

...말씀 드리지 않으면...

"... ..."

그가 고개를 푹 숙이고서 걸음을 멈춘다.

선생님께 말씀 드린다고 뭐가 달라지지...?

선생님이라고 무언가를 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차라리 경찰에 신고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아니, 신고한다면 과연 그들이 믿어주기나 할까-.

가슴을 가득 메우는 절망을 아무리 떨쳐도 불안에 불안이 겹쳐 와 계속해서 자신을 옥죄어 온다.

이미 성호는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많이 피폐해져 있었다.

피도 많이 흘렸고, 그 때문에 초점은 흐리다. 이제 그는-

그때였다.

'걸어라.'

그래, 걸어야지. 빨리 가서 선생님께-

'어서. 친구를 살리고 싶지 않은건가?'

재촉하지마. 난 지쳐있다고. 팔도 너무 아파.

'한심하군. 네 친구는 살 수 있다.'

"...에?"

갑자기 정신이 퍼뜩 들고, 흐렸던 시야가 맑아진다.

그래, 광일이.

지금 목숨을 걸고 자신을 위해 괴물과의 추격전을 벌이고 있을 나의 소중한 친구.

아아,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다니-.

엄살 아닌 엄살을 피운 자신이 못내 원망스러워졌다.

헌데...

자신은 갑자기 무슨 수로 광일을 살릴 수 있다고 확신한 걸까.

그렇게 생각하는데 자신을 깨워준 그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린다.

'네가 구하는 거다.'

"!"

귀에 들리는게 아니라 자신의 머릿 속에 울려퍼지는 목소리-.

그것은 매우 투박한 듯이 굵고 낮은 남성의 목소리였다.

감정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 음성-.

'당황하지 마라. 그럴만한 상황이지만 지금은 그래선 안된다.'

뇌를 통해 전달된다.

그러나 이건 자신의 생각 같은 것이 아니라, 이 남자의 목소리다.

성호는 발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 보며-

"누구?"

'발을 멈추지 마라.'

"... ..."

일단은 묵묵히 그의 말을 따른다.

'한 가지 묻겠다.'

"?"

'너에겐 싸울 용기가 있나?'

성호가 한쪽 눈썹 끝을 올린다.

그것만으로도 이해 못하겠다는 성호의 의사가 전달된 듯,

'너에게는 싸울 용기가 있냐고 물었다.'

"...싸울 용기...?"

누군지조차 듣지 못했는데 갑자기 다짜고짜 이런 질문을 한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싸움이 아까 예의 그 괴물과의 싸움을 의미한다는 것만큼은 알겠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확신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대답은-

"어, 물론...!"

'... ...'

성호의 말에 뭐라 지껄여야 할 목소리가 들려 오지 않는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망설이지 않고 바로 대답하는 성호가 의외여서 그런 것이지 않을까-.

"난 싸울 준비가 돼있어. 그런 나에게 당신은 뭘 해줄 수 있지?"

아무 반응 없는 그에게 애가 타서 성호가 물었다.

이 사람은 광일을 살릴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건 거짓말이 아닐 것이다, 분명-.

성호는 그렇게 믿었다.

'멈춰라.'

목소리가 다시 한번 명령한다.

이번에도 순순히 그의 말을 따른 성호가 발을 멈추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긴 자신이 처음 도망을 치며 내려왔던 그 곳이었다.

고개를 드니 기림사가 보인다.

아마 이 오르막을 오르고 나면 자신과 광일이 점심을 먹었던 그 장소가 나올 것이리라.

"...길을...가르쳐 준거야?"

'힘을 주겠다.'

성호가 숨을 고르며 그렇게 묻는데, 그가 전혀 생뚱맞은 대답을 한다.

그러나 성호는 당황하지 않고-

"광일이를 살릴 수 있는 힘...?"

'요마귀를 쓰러뜨릴 수 있는 힘.'

요마귀?

아아, 요마귀란건가 보다, 그 괴물이-.

무엇 하나 아는게 없는 자신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런지, 이상하리만치 이해가 빠르고 납득이 빨랐다.

"힘을 주겠다는 것은...빌려주겠다는 의미인거야? 나를 도와주겠다는-"

'아니, 아까도 말했지만 쓰러뜨려야 하는 건 너다. 그리고-'

"... ..."

얘기가 이렇게까지 진행되면 제 아무리 성호라도 혼란스러워지기 마련이다.

그런 그에게 그 목소리가 덧붙인다.

'그것이 가능한 것 또한 너뿐이다.'

...나만이 쓰러뜨릴 수 있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건가, 이 남자는-.

머리가 여전히 복잡하다. 속이 뒤집힐 정도로 복잡하기 짝이 없다.

그렇지만 이해하려고 할 수도 없었다.

지금의 자신에게는 그럴 시간조차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빨리 나에게 그 힘을 줘...! 내가 어떻게 하면 되지?"

이윽고 성호가 무언가에 쫓기듯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좋다.'

남자의 그 말을 끝으로 갑자기 성호의 이마 언저리가 뜨거워진다.

"아."

뭐지, 이 느낌은?

뜨겁다. 무척이나 뜨거웠지만-,

그와는 반대로 황홀한 느낌 같은 것도 깃든다.

고통과 쾌락이 뒤섞인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우우..."

이마가 저릿저릿한 1분여의 시간이 지나고-.

그 느낌이 차츰 가라앉기 시작할 때 즈음이었다.

위 쪽, 그러니까 기림사 쪽에서 뭔가 굴러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곧 '풀썩'하고서 성호의 발 앞에 떨어진다.

더럽게 이곳 저곳에 젖은 나뭇잎이 덕지 덕지 붙어있는 그것은 성호 자신의 가방이었다.

'열어라.'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어안이 벙벙했던 성호는 덜 식은 듯한 자신의 이마를 한 번 쓰윽하고는 문지른 후, 오른쪽 무릎을 꿇어 가방에 손을 뻗었다.

별안간 자신을 향해 내동댕이 쳐진 가방. 누군가가 던진 것일까.

그렇다면 던진 이는 누구일까.

역시, 머릿 속에 울려퍼지는 이 목소리의 주인인 것일까.

그러나 성호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 이건-"

가방을 연 성호가 적잖게 당황한 듯 말을 떠듬거린다.

자신의 가방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네 개의 눈동자.

오늘 점심을 먹고난 후 쓰레기통에서 우연히 주웠던 그 가면이 아니겠는가.

[환영한다, 나의 숙주여-.]

이윽고 가면이 예의 그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듯한 굵은 음성으로 성호에게 낮게 읊조렸다.

 

 

 

 

 

 

 

 

 

 

 

 

 

그림을 넣고 싶은데 시간이 없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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