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갑전기 헤로스 외전 - 쥬마리온 (4)

NEOKIDS 작성일 12.04.03 12:5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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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친위기사단장이 와 있다고?"

다이슨은 전갈을 가져온 병사에게 다시 확인했다.

"예, 시장님. 타레크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의 눈은 믿을만하지."

다이슨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가 알기로 데미앙 페르마이어는 현재 범죄자의 신분인 것이다. 그를 잡을 여력도 겨를도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나 어떤 생각들이 다이슨의 머리에서 빠르게 오갔다. 그는 병사에게 절대로 발설하지 말라는 다짐과 함께, 타레크가 근무를 끝내면 자신에게 오라고 일러두었다.



"이 지역에서 나는 것 치고는 꽤 괜찮은 차라네."

스케루니가 따른 찻잔에서 김이 오르고 있었지만 데미앙은 선뜻 손을 대지 않았다.

"그래, 전 친위기사단장께서 여기는 웬일로 행차하셨는가."
"호칭이 거북하니 그냥 페르마이어군 정도로 해주시면 됩니다."
"그러신가. 알겠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여기서 메리니라는 애가 돈을 빌려갔을 겁니다. 그걸 탕감해주시오."
"허허, 이런."

스케루니가 너털웃음을 흘렸다.

"갑자기 메리니에 관한 이야기라니. 내가 그 애라면 잘 알고 있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겐가."
"그냥 복잡한 사정일 뿐입니다."
"그렇군. 그런데 알다시피, 고리대금업이란....."

백발 사이로 스케루니의 눈이 빛났다.

"이쪽이 뭔가를 받아야만 빚을 없앨 수가 있는 것이지."

데미앙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가지고 온 지갑을 통째로 꺼내놓았다.

"지금 있는 재산 전부요. 금화 57기네온. 모자라면 더 가져올 수도 있소. 그래도 안된다 하면...."

데미앙은 단검을 탁자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그것이 그 단검을 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겠다는 분위기도 함께 보여주면서.

"허허허, 이런이런."

다시금 스케루니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원하는 건 돈이 아니라네. 하물며 방금 본 자네의 무시무시한 실력도 직접 경험하고 싶진 않군."
"그럼 무엇을?"
"내가 이래뵈도, 학자 나부랭이였었다네."
"하아?"

데미앙은 잠시 어이가 없어졌다.

"믿기지 않아도 할 수 없지. 카노트 왕국의 현자 가르바가 내 다른 이름이었지만."

데미앙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눈썹이 치켜올라갈 정도로 놀랐다. 그의 스승 길가메쉬가 항상 말하던, 그리고 5대륙에 널리 알려져 훔족까지도 그 위명을 알고 있는, 그리고 카노트 왕국을 제노스 제국이 명말시켰을 때 행방이 묘연해진 그 현자 가르바가 자신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데미앙은 덥석 믿지는 않았다.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니까.

"제 스승 길가메쉬께서 현자님을 만난 곳을 저에게만 말씀해주신 기억이 납니다. 어디였습니까?"
"카르마의 언덕이었지. 길가메쉬는 그 때 어린 병사였고, 내게 물을 갖다 주었었네."
"현자님을 뵙습니다."

데미앙은 의자에서 내려와 즉시 한쪽 무릎을 꿇었다. 모든 것이 일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아 이사람아, 그럴 것까진 없네. 일어나 자리에 앉게."
"예."

데미앙은 즉시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을 보며 스케루니, 아니 가르바는 연신 미소를 지었다.

"길가메쉬가 보여주고 싶은 제자가 있다고 하고는 전쟁에서 세상을 떴기에 잊고 있었는데, 인연이란 참으로 오묘하군."
"스승님께서....."
"그렇다네. 천년에 한 번 나올 인재라더군."

데미앙은 코끝이 시큰해지는 걸 느꼈다. 스승은 자신이 죽은 뒤에도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 같았다. 검과, 말과, 인생을 섞었던 데미앙 인생의 단 하나 진정한 스승.

"그런데 어째서 이런 곳에서 전당포를....."
"말하기가 좀 그러니, 늙은이의 괴벽이라고 해두지. 어쨌거나, 아까 전의 이야기 말이네만....."

가르바는 두툼한 책뭉치를 꺼내들었다.

"늙은이의 심심풀이로 쓰고 있는 책이 있는데, 자네의 마법 운용력이 아주 특이하다 들었네. 그에 관해서 좀 이야기를 나눌까 싶었고. 그게 내가 원하는 전부라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허허허, 잘 됐구만. 그럼 이제 메리니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본인과 나눠보게."

하고 가르바가 등을 돌리자, 문간에 메리니가 서 있는 것이 데미앙의 눈에 들어왔다. 메리니의 표정이 짜증과 분노로 뒤범벅인 것도.

메리니가 무거운 장바구니를 든 채 성큼성큼 앞서가고 있고 데미앙은 멀찍이 떨어져서 그 뒤를 따라갔다. 계속 어색한 거리의 산책이 계속 되다가, 메리니가 홱 돌아서면서 데미앙을 노려보았다.

"왜요!"
"뭐가?"
"왜 따라오냐구요."
"그야 뭐..."
"또 나랑 하고 싶어서 그래요?"

당돌한 메리니의 말에 데미앙은 적잖이 놀랐지만, 그런 티를 내지 않고 받아쳤다.

"맛도 없었거든."

메리니가 집어던진 돌이 데미앙의 귓전을 스쳤다. 고개를 살짝 제껴 피한 것이었다.

"꺼져버려요!"

메리니가 씩씩대면서 다시 장바구니를 들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데미앙은 다시 뒤를 따라가면서 넌지시 물었다.

"안무겁니? 내가 들어줘?"

메리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여전히 씩씩대며 걸음을 옮길 뿐이었고. 데미앙은 보다못해 거리를 조금씩 좁혀서 장바구니를 홱 나꿔채고는 마구 앞서나갔다.

"왜 이래요! 내놔요!"

메리니의 고함도 못들은 척하고 데미앙은 걸음을 옮겼다. 길은 외길이고, 끝에 보이는 외톨이 오두막이 메리니의 집일거라고 생각했기에.

칼레아 시 둘레에 길게 2차 도랑을 파고 있는 현장. 사실 전부터 계속 공사를 해왔었지만 지금은 시간이 촉박한 상황이 되어가고 있었다. 다이슨은 직접 현장에 나와 상황을 감독하는 중이었다.

"공사의 진척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반 정도 된 것 같습니다만 시간 내에 맞출 수 있을지...."
"어떻게든 끝내야 하네."
"공기가 앞당겨진 이유만이라도 들을 수 있겠습니까?"
"머지 않아 듣게 될 걸세. 머지 않아."

다이슨은 말끝을 흐리며 도랑공사 현장을 바라보았다. 험준한 카나이 산맥 자락으로 넓은 평야가 연결되어 펼쳐지고, 대규모의 군사가 움직일 수 있을만한 너비의 공간을 칼레아 시가 버티고 있는 형국. 훔족의 군사에 맞서 이 도랑이 얼마나 버텨줄 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훔족 군사의 규모조차 모르고 있는 상황에서 공사상황의 변경까지 한다면 더 늦어질 수도 있었다. 모든 것이 너무 빨리 닥치지 않기만을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다이슨에겐 못내 답답했다.

그 때 타레크가 다이슨을 찾아왔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어서 오게. 나를 수행하게. 페르마이어경을 만나야 겠으니."
"만나실 겁니까? 하지만....."

타레크의 가는 눈이 한층 더 찌푸려졌다. 데미앙 페르마이어가 현재 어떤 입장인지는 타레크도 알고 있는 터였기 때문이었다.

"지금 상황이 아무리 급하다곤 해도 그런 자를 만나신다는 건 시장님께 해가....."
"어쨌든 사람이야."
"네?"
"진심은 직접 말해야 전해지는 법이지. 그가 묵고 있는 곳은 알아냈나?"
"붉은 갈기 여관에 있다고 합니다."
"허허. 그런 우연이."

다이슨은 팔크람과 데미앙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뭔가 기이한 일이라도 벌어지려는 것인가 싶었다. 현자 가르바까지 포함해, 인연있는 세 사람이 모인 곳에서, 풍전등화의 상황이라니. 하늘이 우군을 내려준 것 같은 상황에 다이슨은 기운이 솟았다.

"가는 건 밤에 해야 겠군. 사람들 눈에 띄어 좋을 건 없으니."

다이슨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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