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괴한 망상의 둥지 - 지구 vol.1 (6)

NEOKIDS 작성일 12.07.06 08:3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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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녀석들 중의 하나를 잘 알고 있다. 매일 방에만 틀어박힌 채 거구를 움직이지도 않고 네 개의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는 놈. 내 해킹툴도 대부분은 그 놈이 만들어줬지. 나는 곧바로 그리로 향한다. 도중에 선물도 좀 사서.

"누구냐능"
"치들스. 기분 더러운 상황이니까 빨리 열어."
"뭐냐, 알테우스냐능."

문이 열리면서 퀴퀴한 냄새가? 동시에 공격해온다. 이 냄새만으로도 침입자 정도는 간단히 물리칠 수 있을 것 같다. 들어가보면 꼴은 더 가관이다.

여기저기 널려진 합성과자 봉지, 음료수, 입고 빨지도 않은 채 널부려둔 거대 사이즈의 속옷 무더기, 그 외 각종 생활쓰레기들이 장황한 풍경을 만들고 있다. 언제 봐도, 좋아질 수가 없는 풍경.

그 속에서 녀석은 일어나지도 않고 자동화 홈 시스템으로 문을 열어준 것이다. 컴퓨터 서너 대의 네트워크와 다섯 대의 모니터, 그리고 그 전기선들이 만드는 정신 사나운 광경도 빼놓을 수가 없다. 안본 사이 한대가 더 늘었군.

"오기 싫음 안오면 된다능."

있는대로 일그러진 내 얼굴을 보며 치들스 녀석은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나는 선물을 봉지째 던져준다. 칼로리 폭탄이나 다름없는 라이즈 패스트푸드사의 더블 울트라 립 치즈 버거를.

"오오오, 이건 대환영이라능."

게걸스럽게 버거를 씹어대며 치즈와 갈비가 일품이라능, 합성이라 해도 이 정도면 수준급이라능, 열변을 토하느라 파편을 튀기고 있는 녀석.

"금속건물은 싫어하지만, 네녀석을 보면 걔네들 캠페인도 좋아할 수밖에 없게 되는군."
"그건 모독이라능. ㅋㅋㅋ"

치들스는 비웃음인지 즐거움인지 모를 낄낄거림을 반복한다.

"노동은 신성하다능, 그러니 몸을 움직여 노동하라능! 그러면 왜 지들은 정신노동만 하고 있냐능. ㅋㅋㅋ 더 놀라운 건 아무도 그 딜레마엔 관심이 없다능. 그게 다 먹고 살기 빠듯하게 해서 신경을 못쓰게 만드는 수작이라능. 그런데....."

화면을 보고 있던 치들스의 육중한 얼굴이 이쪽으로 돌려진다.

"그런 말 하려고 온 거냐능?"
"물론 아니지. 알아볼 게 있어서 왔다. 게이머즈에 대해서."
"그 폐쇄적이고 정신병자같은 인간들?"

치들스가 눈쌀을 찌푸린다.

"걔네들 엄청 짜증난다능. 금속건물 측이 요즘 안그래도 예의주시하고 있다능. 게다가 왠지 모르게 폐쇄성이 더 쎄졌다능. 내가 쓰레기면 걔네들은 쓰레기 엑기스라능. 엮이지 않는게 좋다능."
"안좋은 일이 있었나?"
"말도 말라능. 요즘 게이머즈들이 온라인 게임안에서 뭘 발견했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는데, 내가 보기엔 별거 아니라고 했더니 그 다음부터 나 제명하고 게시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고. 병삼들도 그런 병삼들이 없다능."
"뭘 발견했는데?"
"그냥 16진수의 나열이라능. 프로그래머가 못지운 배열일 수도 있고 단순한 행렬 상의 버그일 수도 있는데, 일단 보라능."

치들스가 옆에 있던 뭔가를 하나 집어 던져준다. 눈 주위를 완전히 덮어버리는 거대한 바이저 같은 놈을.

"xin - 3000이라고 요즘 게이머즈들이 들고 다니는 건데 디바이스와 게임기가 결합된 휴대용이라능. 써보라능."

나는 그것을 뒤집어 썼고 곧이어 16진수의 숫자와 문자의 나열들을 보았다.

"대체로 시작은 어딘지 전혀 모르겠다능. 하지만 끝은 확실히 알 수 있다능."
"어째서?"
"끝에 이 행렬을 만들어낸 작자의 서명이 있다능. 그 서명만 딱 64진수로 되어있다능. 그걸 보자마자 이녀석들이 갑자기 난리를 치고 지들끼리 사용하던 페이지도 보안등급을 높여놓고. 이유를 모르겠다능."
"서명?"
"그러니까 이름이.......뭐였더라.....확실하게......"

잠깐 뜸을 들이던 치들스의 입에서 의외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크레이그 윌킨슨이라고 했다능."

치들스의 사정을 묻는 말과 계속 되는 버거찬양이 뒤죽박죽이 된 중얼거림을 뒤로 한 채 계속 조사를 부탁하고 거리로 나서면서 나는 혼란스런 머릿속을 정리해 보았다.

먼저 메레디스. 그녀는 금속건물에 충성하는 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일단 모호한 것은 빼자. 다음은 크레이그 윌킨슨과 게이머즈. 손을 잡고 있는 것은 분명하고 뭔가 게이머즈들에게 메세지를 남긴 것도 분명하다.

다음으로 금속건물. 그들은 확실히 크레이그를 '추적'하고 있다. 일반적인 납치 및 실종사건으로 다루지 않고 비밀리에 행동하고 있는 점이 그것을 말해준다. 결국은, 그 메세지의 문제라는 것인가.

금속건물 측에서는 크레이그 윌킨슨이 남긴 그 메세지를 상당히 거북해하는 것이 틀림없다. 그가 속한 부서는 역사정보심의회. 그가 그 곳에서 금속건물 측이 알려지면 거북해하는 것을 빼내어 유포했고, 그래서 쫒기고 있는 것인가.

여기까지 생각하자, 이제는 정말로 발을 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싶었다. 내가 아무리 금속건물 인간들을 싫어한다고는 해도, 그들과 맞부딪혀 음모를 터뜨린다는 일 따위는 생각할 수가 없다. 어느새 발걸음은 열블럭 정도를 지나와 있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즈음. 디바이스의 벨소리가 울린다. 메레디스.

"그러지 않아도 마침 잘 됐습니다. 전 이 일에서....."
"당신 디바이스가 추적 당하고 있어요."

갑작스런 메레디스의 말에 뒤통수를 또 맞은 듯한 느낌이 들면서 걸음을 멈춘다.

"당신 디바이스의 위치경로를 보고서 게이머즈, 당신이 찾아갔던 모든 곳을 조사한다고 했어요. 어떻게 된 건지 짚이는 곳이 있나요?"

기억을 되짚어 보기 시작한다. 아무리 수완 좋은 금속건물 측이라도 내 디바이스를 그렇게 쉽게 감청, 해킹할 수는 없다. 내 디바이스는 해킹에 커스텀화 되어있어 신호가 접촉되지 않는 한 추적할 수는 없다. 단 한 번이라도.......

제길. 금속건물의 해킹벽에 걸렸을 때인가!

나는 황급히 디바이스 속의 칩을 꺼내어 바닥에 짓뭉갠다. 메레디스는 그 때까지 전화를 끊지 않았다.

"왜 이런 정보를 알려주는 겁니까?"
"크레이그를 당신이 찾아줘야 하니까요. 그건 내겐 중요해요. 당신이 만난 사람들이 있다면 빨리 위험하다고 알려줘야 해요! 그들에게 모두 끌려갈 거에요!"

디바이스의 전화를 끊고 나는 방향을 돌려 뛰기 시작한다. 곧이어 다시 울리는 벨소리.
치들스.

"뭐 이렇게 통화가 오래 걸리냐능."
"치들스. 내 말 들어. 지금 그리로 금속건물 사람들이 갈 거야. 빨리 그 곳을 빠져나와!"
"무슨 소리냐능?"
"이런저런 설명할 시간이 없어!"

치들스는 잠시 침묵한다.

"그 16진수 때문이라능."
"뭐라고?"
"나도 처음엔 잘 몰랐는데, 가만히 보다가 알게 됐다능. 지금 전송하겠다능."
"됐고 거기서 빠져나와!"
"지금 오고 있다면, 이 몸으론 어디 도망도 못간다능. 평소에 운동을 해둘 걸 그랬다능."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이건 이미지라능!"

치들스의 목소리도 다급해지고 있었다.

"크레이그가 왜 이 이미지를 진수화해서 뿌렸는지 모르겠지만, 꽤 예전의 프로그래밍이기 때문에 알아차리는 게 늦었다능. 압축형식이 아주 예전의 bmp라는 형식이라능.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라능."
"제발 입 닥치고 나와!"

난 아예 멈춰서서 소릴 지르고 있다.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도 상관없이. 그러나 디바이스의 수화단자 너머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순간.

"뭐 설마 죽이기야 하겠냐능. 하하하~"

그 웃음소리는 이어지지 않는다. 갑작스런 폭발음과 총성이 그 자리를 대신했기 때문이다. 금속건물 치안부대 녀석들이 틀림없음직한 클리어, 외침소리. 물건들이 부서지는 소리. 그것들만이 수화단자를 울린다.

내 다리는 다시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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