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괴한 망상의 둥지 - 지구 vol.1 (5)

NEOKIDS 작성일 12.07.03 10: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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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통화를 하고 있다. 여자 목소리.
앨리스인가.

".....별건 없었어요. 디바이스도 해킹툴 빼면 그들과 관련이 있다는 증거는 없어요. 메레디스가 의뢰를 했던건지 아저씨 프로필이 있더군요. 네. 그리고는 지구의 사진이 조금......네? 그건 근처 도서관에서 다운로드 받은 것 같아요. 워터마크가 도서관 걸로 찍혀있더라구요........네..........네. 알겠어요. 몸조심하세요."

어딘가의 방. 손과 몸은 물론 발까지 통째로 의자에 묶여있고 눈은 가려져 있지만 기척이 느껴진다. 적어도 앨리스를 제외한 셋.

디바이스로 통화를 마친 앨리스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진다. 눈을 가리던 것이 벗겨진 순간 강한 불빛에 나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다. 테이블의 너머로 앨리스의 붉은 머리가 어슴푸레하게 먼저, 그리고 건장한 남자 셋의 어두운 잔영. 아직도 뒤통수는 뜨끔거리고. 손에는 내가 상대의 코트에서 쥐어뜯었던 것은 사라지고 없다.

"아저씬 탐정 재능은 없는 것 같아요. 이렇게 쉽게 걸리면 재미없잖아요."

앨리스는 취조실처럼 조명을 내 쪽으로 해놓고 말한다. 앨리스의 왼손이 특이하게 까딱거린다.

"이런 분이 어떻게 탐정이 되었을까. 그것도 연쇄살인범을 둘씩이나 잡고 큰 사건들을 해결하다니."
"적성에 맞지 않는단 소린 많이 듣지.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앨리스는 내 대답이 우스운지 웃으면서 말한다.

"그래요. 빅터 요한슨에게 전화를 건 것은 나에요. 그 사람은 아저씨보단 못하지만 그래도 꽤 위협이 되는 존재니까. 솔직히 아저씨가 이 사건을 맡지 않길 바랬어요. 아저씨의 업적을 좋아하기도 하고......."

앨리스는 잠시 뜸을 들인다.

"아저씨가 감당하기엔 버거울 테니까."
"걱정해줘서 고맙군. 기왕이면 이걸 풀어주고 하는 게 더 고맙겠는데."
"그 전에 몇가지 물어볼 게 있어요."

앨리스는 조명을 내 얼굴 앞으로 더 바싹 당기면서 말한다.

"금속건물과 한 패인가요?"
"그건 좀 불쾌한 질문이군."

사실 그건 진심이었다. 금속건물 측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으니까. 어디 가서 대놓고 말하지는 않아도.

"메레디스가 그들과 한 패라는 건 아나요?"
"그건 또 새로운 정보로군."
"메레디스에게선 무슨 얘길 들었죠?"
"이봐, 앨리스. 난 한가한 사람이 아냐."

이런 류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내게 어린애 장난 같은 짓을 하려 하다니. 주도권을 빼앗기 위해 나는 앨리스의 말을 끊었다.

"난 그저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알고 싶을 뿐이야. 물론 의뢰인에게 정보를 제공해줘야 할 의무도 있지. 하지만 내가 그걸 꼭 지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마. 그래서 묻겠는데, 크레이그는 어딨지?"

앨리스가 움찔하는 기척이 보인다.

"왜 내가 크레이그 아저씨의 위치를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나요?"
"첫째, 넌 지금 크레이그를 아저씨라 불렀어. 그만큼 친근하단 이야기지. 둘째. 아까 전 통화에서 넌 아저씨 프로필이 내 디바이스에 있었다고 말했어. 그건 크레이그와 통화하고 있었다는 정황으로 충분하지."

앨리스는 경탄의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 다만 다른 남자들의 분위기는 반대로 험악해진다. 내가 알지 말아야 하는 것을 알고 있기라도 한 것 같은 눈치. 바로 움직여 무기라도 쓰려는 듯한 움직임을 앨리스가 깨닫고 팔을 들어 제지한다.

"그 아저씨를 만나면 어떻게 할 건데요?"
"말했잖아.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알고 싶을 뿐이라고. 진실 여부에 따라 모든 행동이 결정될 거야."

앨리스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럼 마지막 질문이요."

앨리스는 내 디바이스를 들어 흔들어 보인다. 어둠에 눈이 익어 그녀의 몸매와 셔츠 사이의 봉긋한 젖무덤 윗부분이 어슴푸레하게 보인다.

"왜 디바이스에 지구의 사진을 넣어가지고 다니죠?"
"개인적인 감상의 목적이지. 사실을 이야기하면, 난 그 풍경들을 아주 좋아해."
"좋아한다구요?"
"그래. 그것도 크레이그가 물어보라던가?"

쓸데없는 말을 덧붙인 것 같기도 했지만 그렇게 대답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것 같았다. 진실은 언제나 통하는 법이니까.

앨리스는 뭔가 생각하는 눈치로 내 디바이스를 내려놓고 침묵에 잠긴다. 나는 숨을 죽였다. 내 발악은 여기까진가.

앨리스는 내 디바이스를 내려놓고 뒤의 덩치 셋에게 말한다.

"크레이그 아저씨에게 인사는 전해둘께요. 머리는 한 번 때렸으니까 이번엔 약으로."

덩치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딘가를 뒤적거려 약을 찾아내어 거즈에 적신다. 거즈가 코와 입을 가리는 순간 아찔함과 함께 내 머릿속엔 한 단어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제기랄, 이라는.

누군가가 툭툭 건드리는 바람에 나는 깨어났다. 청소부 할아버지가 죽은 사람인 줄 알고 건드려 본 모양이다. 해가 덜 뜬 새벽. 어슴푸레하고 차가운 색조의 풍경들이 눈 앞에서 춤을 춘다.

"젊은 사람이 술은 엔간히 먹어야지....."

잔소리를 뒤로 한 채 약과 폭력이 선사한 통증을 느끼는 뒷머리를 부여잡고 자리를 떠난다. 행색이 완전 거지꼴이군.

가방의 물건들은 디바이스까지 그대로 있다. 다만, 디바이스에 저장되어 있던, 추적할 수 있는 단서들은 다 지워진 상태. 백업을 하지 않은 것을 크게 후회한다. 빅터 녀석에게 부탁을 또 하긴 싫은데.

일단 걸어가면서, 나는 물질분석기를 꺼내어 물건을 쥐었던 손을 살핀다. 레이저와 각종 광학선에 반응하는 내용은 불순물이 많아 분석이 어려웠지만 곧 손에서 나는 분비물을 제외한 다른 성분을 검색해낸다.

손으로 꼭 쥐었고, 미량이라도 분비물에 녹은 흔적이 남아있다면 대략의 모양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물질분석기가 분석을 마쳤고, 나는 결과의 분포이미지를 디바이스로 전송했다. 이제 내가 손에 쥐었던 그 뱃지 같은 것의 정체가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이미지를 본 순간, 앨리스가 하고 있던 특이한 손동작을 보며 가지고 있던 의혹을 확신으로 바꾸었다.

초승달의 모양.

이런 뱃지를 하고 있는 녀석들은 그 놈들 밖에 없다. 게이머즈. 온라인 게임에 중독되어 현실과 게임을 분간 못하는 녀석들. 하지만 그런 녀석들 치고는 용의주도했다.

대체 이녀석들은 왜 엮여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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