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삼겹살,껌

엉덩이를씰룩 작성일 13.01.12 19: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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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김기택

 

술자리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
한 시간이 넘도록
내 몸에서 고기냄새가 지워지지 않는다.
불에 익은 피, 연기가 된 살이
내 땀구멍마다 주름과 지문마다 가득 차 있다.
배 고플 때 허겁지겁 먹었던
고소한 향은 사라지고
도살 직전의 독한 노린내만 남아
배부른 내 콧구멍을 솜뭉치처럼 틀어막고 있다.
고기냄새를 성인의 후광처럼 쓰고
나는 지하철에서 내린다.
지하철 안, 내가 서 있던 자리에는
내 모습의 허공을 덮고 있는 고기냄새의 거푸집이
아직도 손잡이를 잡은 채
계단으로 빠져나가는 나를 차창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상으로 올라오자
상쾌한 바람이 한꺼번에 고기냄새를 날려보낸다.
시원한 공기를 크게 들이쉬는 사이
고기냄새는 잠깐 파리떼처럼 날아올랐다가
바로 끈적끈적한 발을 내 몸에 찰싹 붙인다.

제 몸을 지글지글 지진 손을
제 몸을 짓이긴 이빨을 붙들고 놓지 않는다.
아직도 비명과 발악이 남아 있는 비린내가
제 시신이 묻혀 있는 내 몸속으로

끈질기게 스며들고 있다.

 






 

껌/김기택


누군가 씹다 버린 껌.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껌.
이미 찍힌 이빨 자국 위에
다시 찍히고 찍히고 무수히 찍힌 이빨 자국들을
하나도 버리거나 지우지 않고
작은 몸속에 겹겹이 구겨 넣어
작고 동그란 덩어리로 뭉쳐놓은 껌.
그 많은 이빨 자국 속에서
지금은 고요히 화석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껌.
고기를 찢고 열매를 부수던 힘이
아무리 짓이기고 짓이겨도
다 짓이겨지지 않고
조금도 찢어지거나 부서지지도 않은 껌.
살처럼 부드러운 촉감으로
고기처럼 쫄깃한 질감으로
이빨 밑에서 발버둥치는 팔다리 같은 물렁물렁한 탄력으로
이빨들이 잊고 있던 살육의 기억을 깨워
그 피와 살과 비린내와 함께 놀던 껌.
우주의 일생 동안 이빨에 각인된 살의와 적의를
제 한 몸에 고스란히 받고 있던 껌
마음껏 뭉개고 짓누르다
이빨이 먼저 지쳐
마지못해 놓아준 껌.






김기택 시인의 생활먹거리(?) 시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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