껌 / 김기택
누군가 씹다 버린 껌.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껌.
이미 찍힌 이빨 자국 위에
다시 찍히고 찍히고 무수히 찍힌 이빨 자국들을
하나도 버리거나 지우지 않고
작은 몸속에 겹겹이 구겨 넣어
작고 동그란 덩어리로 뭉쳐놓은 껌.
그 많은 이빨 자국 속에서
지금은 고요히 화석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껌.
고기를 찢고 열매를 부수던 힘이
아무리 짓이기고 짓이겨도
다 짓이겨지지 않고
조금도 찢어지거나 부서지지도 않은 껌.
살처럼 부드러운 촉감으로
고기처럼 쫄깃한 질감으로
이빨 밑에서 발버둥치는 팔다리 같은 물렁물렁한 탄력으로
이빨들이 잊고 있던 살육의 기억을 깨워
그 피와 살과 비린내와 함께 놀던 껌.
우주의 일생 동안 이빨에 각인된 살의와 적의를
제 한 몸에 고스란히 받고 있던 껌
마음껏 뭉개고 짓누르다
이빨이 먼저 지쳐
마지못해 놓아준 껌.
시를 배우기 시작할 때, 무엇부터 해야하냐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보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김기택 시인의 ‘껌’이란 시를 보여드립니다. 누구나 껌은 씹어보았을 것입니다. 일반 사람은 껌을 씹다가 질리면 버리며 때로는 삼키기도 하고, 그것으로 그 껌에 대한 감상은 끝이 날 것입니다. 시인은 어떨까요. 김기택 시인은 껌 속에서 질긴 생명력을 발견하고 이빨이 가진 폭력의 역사 반대편에 서서 결국 살아남는 생명을 봅니다.
이것이 어떻게 발견되는걸까요? 그 답은, 껌을 ‘껌’이라는 이름 안에 가두지 않고 껌을 제대로 ‘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언어의 함정에 갇히지 마세요. 그 사물은 무수한 가능성을 숨기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가능성을 보는 힘은, 바로 ‘관찰’에서 나옵니다. 김기택 시인은 관찰과 묘사의 달인입니다. 묘사 하나로 시를 완성시킬 정도로 말이죠.
오늘 편의점에서 껌을 하나 씹으시면서 가보시는건 어떨까요. 껌을 관찰하고 씹고 뱉으며 계속 관찰해보세요. 그 껌이 시가 될 때까지 말입니다.
시집 제목 : 껌
저 자 : 김기택
출 판 사 : 창비
출판 년도 : 200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