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22 글연습
그는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바라보며,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머리카락들이 없어지는 거야 나이가 들면서 어쩔 수 없다고. 누구나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유전적으로도 그는 대머리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했다. 거기에 요즘 일의 스트레스들까지 더하면, 자연스런 일이라 생각했다. 그가 좀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그 빠진 머리카락들이 방바닥은 물론 침대나 욕조의 배수구 등등, 있을 만한 곳 그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터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오늘은 눈썹이 없어진 것이었다.
그것도 조금씩이 아니라, 아예 통째로.
회사에 모자를 눌러쓰고 나갈 수는 없기에, 창피함을 무릅쓰고 출근을 해보았지만 의외로 어떤 곳에서도 자신이 눈길을 끄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거울을 봐도 눈썹이 없어졌다는 사실이 불편하지 않았을 때쯤엔 머리카락도 완전히 대머리가 되어 있었지만 남들이 그걸 가지고 굳이 얘기를 하지 않으니 괜찮다고 다독이며 넘어간 시간이 2주째에 접어드니.
이제는 눈이 없었다.
눈이 없는 자신을 거울 속에서 보는 순간, 그는 세면대를 붙잡고 겨우 버티고 서있어야 했다. 응당 있어야 할 눈구멍이 살로 메워져 밋밋해져 있는 것을 손으로 몇 번이나 매만졌지만 손가락이 전해주는 느낌은 그것이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눈이 없는데도 자신의 모습이 거울 속에서 보인다는 것도 그를 혼돈으로 몰아넣었다. 눈이 없는데 어떻게 보고 있을 수 있는 것인가.
그런데도 밖에 나가면 사람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칭찬까지 들었다. 항상 정돈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그는 속으로 외쳤다. 난 지금 대머리에 눈썹도 눈도 없어요! 하지만 그 말을 누구에게나 쉽게 할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자신을 멀쩡한 사람으로 봐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추리했다. 계속 신체의 부분이 없어지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계속 나를 사지 멀쩡한 사람으로 취급한다는 건, 그렇게 그들의 눈에 보이기 때문이라고. 그의 추리에 증거도 나왔다. 눈에 뭐가 들어갔는지 봐달라며 동료에게 물어본 것이었다. 동료는 그의 눈이 아무 이상 없다고 해주었다.
그의 신체 부분이 없어지는 시간의 간격은 점점 더 짧아져 갔다. 그 다음엔 코가, 그 다음엔 귀가 10일의 간격을 두고 완전히 사라졌다. 마치 공이라도 되어가는 것처럼 얼굴은 입만을 남겨두고 완전히 밋밋해져 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멀쩡한 사람 취급했다. 그는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다. 자신이 조금씩, 없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렇게 말해서 어떻게 될까 겁이 나는 것은 둘째치고, 그런 말을 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자신은 늘 아무도 믿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사회에서의 인간관계는 그만큼 껍데기만 유지하면 된다는 게 평소의 지론이었기에, 정말로 믿을 수 있는 사람 따위는 만들어놓지 않았던 것이다.
점점 상황은 기괴해져 갔다. 다음 차례라면 입이어야 하거늘 이번엔 왼손의 손톱들이 없어졌다. 그럼에도 물건을 들려고 하면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 다음은 손이, 그 다음엔 팔이 통째로 사라졌다. 물건을 잡으려 하는 것을 조금 불편하게 느꼈지만, 그는 이내 익숙해졌다. 평소에 팔을 움직이던 습관을 떠올리며 팔을 뻗고 잡는다, 고 생각하면 어려울 것이 없었다. 회사에는 쉰다고 하고 하루 정도 지나니, 키보드까지도 어렵지 않게 다룰 수 있었다.
그는 또다시 추리했다. 현재, 자신의 신체는 여기에 존재하고 있지만 왠지 모를 이유로, 자신은 그걸 볼 수가 없다고. 그리고 자신의 정신과 의식. 그것만이 지금 계속 남아서 없어지는 신체들을 대신하고 있다고.
증거를 찾을 필요도 없이 현실이 그랬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아무 이상 없는 존재로 대해주고 바라봤다. 일상에서의 일도, 집에서의 일도 여전히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
이제 그는 자신의 신체가 사라지는 일을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고, 그렇게 한 달 남짓한 기간에 걸쳐 양쪽 팔이, 견갑골이, 다리가, 골반이, 등뼈가, 갈비뼈가, 사라져갔다.
마치 투명인간이 되는 것 같은 그 과정을 이제 그는 즐기고 있었다. 자신이 팔을 뻗어 잡아올렸다 생각한 물건들이 거울을 보면 허공에 둥둥 떠있는 광경에 재밌어 하기도 했고, 손을 뻗어 밑을 만진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사실에 신기해하기도 했다. 다만 문제는 성적인 부분이었는데, 그것도 어려울 것은 없었다. 늘 상대가 없어 혼자서 하는 짓거리조차 불편함 없는 시간이었으니.
그리하여 두개골까지 없어지고 뇌와 입만 남게 되었을 때, 그는 문득 자신이 바라고 있던 것을 떠올렸다.
어떤 일에 빠지길 원했다. 그것이 정신을 온전히 잡아채기를 원했다. 그렇게 빠져서 살 수 있다면 그 삶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를 그럴 수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필요한 것에 매달려야 했고, 자신의 시간과 노동력을 대여해주며 뭔가를 얻어야 했고, 그 때마다 무언가 마음속의 소중한 것들을 내주고도 그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벌써부터 우울함으로 미쳐버렸을 테니. 그리고는 그것을 자신이 죽기 전까지 받아들여야 할 숙명으로 여겼다.
자신의 신체가 사라지는 것은 그 대여해 간 놈들이 돌려주지 않고 있다는 것.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는 그것들을 돌려받을 생각을 해보았지만, 곧 그는 뇌와 입밖에 남지 않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누가, 어떻게, 어느 기간까지 대여해 간 것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것을 돌려달라고 할 상대를 찾아낸다는 것은 더욱 미친 짓 같았다. 회사에? 사회에? 자신을 심심풀이 껌으로 이용하거나 만나서 시간 때우는 자로 생각했던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누구에게 내 몸을 내놔, 라고 말한단 말인가.
그는 거울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정말로 말 그대로, 입만 살아있다고.
그리고 그 입마저, 사라졌다.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해 보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거울을 보면서 뇌만 둥둥 떠다니는 것을 보자, 그가 읽은 소설 중에서 마지막 잎새가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니, 그냥 웃고 싶다고만 생각했다. 이제 저 뇌가 사라지면 나도 사라지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는 무기력증을 느꼈다. 그래도 정신과 의식은 아직 살아있었다. 삶도 그대로였고, 출근도 이상 없이 하고 있었다. 마치 그냥 버릇이 든 것 같긴 하지만 아직은 아무것도 불편함이 없었다.
그 날 아침,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는 일어났고, 세면대의 거울에서 드디어 자신의 뇌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그럼에도 그는, 살아있다고 느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자신을 거울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아니, 제대로 말하자면 거울엔 아무것도 비치고 있지 않지만, 거울을 보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 자신이 거기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기뻤다.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 거기, 그 시공간에 존재하고 있었으므로.
오피스텔의 밖으로 나서자 어느덧 겨울의 기울어진 햇살이 따뜻한 봄의 그것으로 바뀌어 비춰왔다. 그는 그 햇살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은 여기에 있다. 그것을 제대로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 그 느낌이 있는 순간 그는 희망을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이제는 누가 옆에서 죽어나간다 해도 그것은 그와 관계없는 현실이다. 내일 당장 지구에 운석이 떨어진다 해도, 무슨 일이 벌어진다 해도 그는 이 감각을 가지고 이 시공간에 남아있을 것이었다. 온전히,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기능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그는 그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는 살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