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오만가지 사람들이 있다. 재수가 오라지게 좋아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년놈이 있는가 하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으로 근근히 먹고 사는 사람들도 있고, 또 뱃속에서부터 혈관이 비뚤어진 건지 알 수 없는 사이코 짓을 하며 살아가는 그의 부장 같은 사람도 있다. 가장 모멸감을 주는 방법이랍시고 코딱지를 파서 훈계할 때 옷에다 묻힐 때마다 그는 목구멍이 포도청임을 명심하면서 참아왔다.
그런 오만가지 사람들이 있지만, 지금만큼은 그런 사람들 중에서도 그는 자신을 제일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일주일 연속이다. 지하철 플랫폼에 들어서기만 하면 꾸르륵거리는 배를 움켜쥐고 화장실로 달려가기 시작한 것이. 이 쯤 되면 이제 병원을 가봐야지 싶기도 한데, 아침만 지나면 평안하니 딱히 갈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아침에 지각해 몇 번이나 그의 옷에 코딱지가 묻혀 졌던가. 나흘째 되는 때엔 설마 싶으면서도 좀 더 일찍 나섰는데, 역시 아니나 다를까. 그의 뱃속에서 신호가 왔다.
‘누가 나에게 저주를 내리는 것 같아.’
같지도 않은 의혹이 확신으로 변하는 걸 느끼면서 그는 힘을 주었다. 차가운 겨울철에 엉덩이를 까고 지하철 변기에 앉아있어야 하는 고난쯤은 해방감과 함께 보낼 수 있었다. 그래도 이젠 시간이 여유가 있으니까. 하고 그가 생각하는 동시에,
그의 눈앞에 무엇인가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파리라고 생각했다. 그는 손을 휘휘 내저었지만 파리는 도망가지도 않고 앞에서 그를 거만하게 지켜보는 것 같았다. 그는 다시 그 점을 자세히 보았다. 날개도 다리도 몸통도 없는, 그저 둥그럽고 검은 구체 모양의 파리 크기만한 것일 뿐 파리가 아니었다.
이게 뭐지, 하며 그는 거기에 손을 대보려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손대지 마라!”
하면서 누군가 화장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그는 반사적으로 바지를 끌어올렸다가 자신이 뒤처리를 안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경악했다. 그런 급작스런 감정들이 한데 뭉쳐 나오는 소리는 좋을 리가 없었다.
“누구야 넌 이 개객끼야!”
“쉿! 조용히!”
그는 눈앞의 남자를 뜯어보았다. 과학자 같은 하얀 가운과 두꺼운 뿔테, 그리 크지 않은 키. 헝클어진 머리. 마치 방금 연구소에서 사고 치고 튀어나온 매드 사이언티스트라고 온몸으로 말하는 듯한 그 이미지.
“특이점이 발생했어. 이것은 지구, 아니 우주의 위기다. 거기 손대지 말고 가만히 있게.”
“이......이게 뭔데요?”
개객끼 취급에서 어느새 존대체로 돌아서 있는 그였다.
“쉽게 말하자면, 블랙홀이야.”
“에에에에에엑?!?!?!?”
그는 깜짝 놀랐다. 블랙홀이라니. 모든 빛과 물질을 순식간에 빨아들인다는 바로 그 놈인가? 하지만 그도 아주 무식하진 않았다. 블랙홀이 어떻게 생기는 지에 대한 지식 정도는 케이블의 다큐멘터리를 한 10여분 정도 본 걸로 갖고 있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그게 이렇게도 생기나요? 라고 물었고 그렇다네, 라는 확신에 찬 대답을 들으면서, 네, 라고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와 과학자는 둘이서 검은 점에 닿지 않도록 최대한 벽에 붙어서 얘기를 나누었다.
“특이점은 원래 일주일 정도의 특이한 징후 이후에 나타나지. 이상하게 시공간이 뒤틀리는 것은 각종 계측기에도 감지가 되고. 다행히 위치를 빨리 산정했기에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큰일날 뻔 했어. 뭔가 짚이는 것 없나?”
“없는데요.”
라고 대답하면서, 그는 그 일주일 정도의 특이한 징후라는 것이 자신의 설사라고는 죽어도 말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건 아니잖아, 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뭔가를 숨기는 눈치인데.”
“뭐.....뭐가요.....”
“됐다. 뭐 어차피 특이점은 생겨버린 거니까. 자 그럼 이쯤에서!”
“이쯤에서......뭐요?”
“물 좀 내려. 냄새 심하다.”
“아, 네......”
물과 함께 설사가 떠내려갔고, 레버를 누르고 일으킨 그의 머리가 과학자를 보려는 순간 갑자기 눈앞에 하얀 가운이 펼쳐졌다.
“악! 뭐야 이거!”
그는 급하게 가운을 머리로부터 걷어내 시야를 확보했고, 그 과학자의 모습이 변해 있는 것을 확인했다.
“특이점 폭렬전대 블랙홀레인저!!!!!”
가운 안에 미리 입어뒀는지 검은색 전신 타이즈에 디자인도 요란한 벨트에 언제 챙겼는지 헬맷까지 썼으면서도 뿔테안경은 벗지도 않고 완전히 전대물의 히어로 꼴이 된 그 과학자를 보면서.
그는 생각했다. 제대로 미쳤다고.
“자, 이제는 어쩐다.”
둘은 검은 점을 바라보고 있었고, 과학자는 말했다. 그는 어이가 없어졌다.
“뭐라구요? 뭔가 해결할 수 있어서 온 거 아니에요?”
“생성된 초기의 특이점은 건들지만 않으면 크게 문제는 없어. 하지만 없애려면 손을 대야 하는 것도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이지.”
“그럼 일단 화장실 문을 열고 여기서 피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알리는 게.....”
“그럴 것 같았으면 내가 변신을 했겠나! 거기다가 이 화장실 문을 열어제끼면 그때야 말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바보같은 자식!”
그는 울컥했다.
“아니, 해결도 못하면서 변신을 왜 하냐고요!”
“그런 건 어떻게든 하는 것이 바로 히어로잖아!”
“그러니까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다 죽게 생겼는데!”
그의 입에서 어느새 존대체가 사라진 순간.
“꼼짝마!!!!!!!!!!!”
하며 또 화장실 문이 벌컥 열렸고, 블랙홀레인저는 보기와는 다르게 뛰어난 반사신경으로 그 팔을 잡아끌었고, 끌려 들어온 자는 느닷없는 힘에 비틀대면서 그 검은 점에 닿을 뻔 한 것을 그가 고함을 지르며 겨우 지탱했다. 그 와중에서도 끌려 들어온 자는 화장실 문을 잽싸게 잠갔다.
“당신은 또 누....누구요?”
이번엔 검은 정장. 나란히 세워놓으니 가관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그는 말했고, 정체불명의 사나이는 자신의 소속을 밝히는 수첩을 꺼냈다.
“국정원 소속 9팀 남정관이라 한다. 이 빌어먹을 테러범 자식들아.”
“네?”
그의 어이는 또다시 안드로메다행 열차를 탔다.
“무슨 말씀을.....”
“우린 너를 쭉 감시하고 있었다. 사흘 이상 같은 장소를 비슷한 시각에 들락거린다, 그것은 테러범 밖에는 할 수 없는 행동이지. 마침 공범까지 나타났군. 부장의 가르침이 이런 데서 쓸모가 있을 줄이야. 너희들의 인생은 이제 끝장이야!”
팀이라매. 그럼 팀장이겠지 부장이겠냐, 라는 당연한 물음보다 그의 머릿속을 휘저은 것은, 그 쪽의 부장도 굉장한 사이코시군요, 라는 말을 꺼낼까 말까 하는 망설임이었다.
“그런데 이 검은 점은 뭐냐?”
“그것에 대해서는 내가 설명하지.”
검은색 전신타이즈의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모든 것을 설명하고 나자 국정원 사나이는 다시 격분했다.
“역시! 네가 만든 거지! 이 개같은 자식!”
그는 잠시 지끈거리는 머리를 진정시키느라 이마에 손을 갖다 댔다. 하기사 아주 딱히 부정할 수도 없는 상황이긴 했다. 자신이 설사병에 걸린 특이한 상황이 이것과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아주 높으니. 어쨌든 셋은 이미 물이 차올라 조용해진 변기와 미니 블랙홀을 사이에 두고 망연자실하게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몇 번의 시도가 있었다. 일단은 블랙홀레인저가 특이한 캡슐에 담아보겠다고 난리를 쳤지만 하필 그자에겐 수전증이 있어서 작업이 어려웠고, 이런 어려운 작업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순 없다고 앵앵댔다. 국정원 사나이가 밖으로 연락을 하려고 하자 역시 아까와 마찬가지로 블랙홀레인저가 앵앵댔다. 만지거나 할 수가 없으니 옮길 수도 없고,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고. 남정관은 남정관대로 안보의식에 눈이 멀어 이걸 여기서 처리해보자고 박박 우겼다. 답들이 없는 놈들이 하필 이런 때에. 그는 좌절하면서 한숨과 함께 말했다.
“그놈의 설사병만 안 걸렸어도.......”
“그게 무슨 소리야?”
그의 혼잣말을 잽싸게 캐치한 블랙홀레인저가 물었고, 그는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블랙홀레인저가 잠시 팔짱을 끼며 생각하더니 손바닥을 주먹으로 탁 쳤다.
“그래!! 이거야!!!”
그리고는 그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너, 이 특이점을 먹어라.”
근데 이 잡놈의 새퀴가. 그는 순간적으로 이렇게 생각했고, 내뱉을 뻔 했다.
블랙홀레인저의 말은 그럴 틈도 주지 않고 이어졌다.
“어쨌든 네 뱃속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아. 그렇다면 원인이 나타난 곳으로 결과물을 이동시키면, 엔트로피와 네트로피의 양이 같아지면서 마침내는 뫼비우스의 띠. 아무것도 아닌 무형의 순환 에너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거지.”
“외계어 좀 제해주시고.”
“없앨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야.”
“안없어지면요?”
“그럼 너나 나나 남정관이나 다 죽는 거지 뭐.”
쿨하게, 말을 뱉는 블랙홀레인저를 보면서 그는 살의를 느꼈다.
“그래도 일리 있어 보이는데.”
남정관의 맞장구에 그는 그동안 낸 세금이 아까워졌다.
“자, 빨리 해보자.”
한쪽은 광기에, 한쪽은 안보의식에 쩔은 눈동자 4개가 그를 쏘아보았고, 그는 할 수 없이 맘속으로 다짐해야 했다. 어차피 죽어도 나 혼자 죽는 건 아니니까, 라는 되도 않는 위안도 함께.
입을 벌리고 천천히 먹어보려고 하는데 블랙홀레인저가 외쳤다.
“잠깐!!!!!”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아 왜!!!!!”
“일단 아무것도 닿지 않게 목구멍 깊은 곳까지 가야 해. 그렇지 않고 네 혀 같은 몸에 닿아 간섭이 일어나면 말짱 꽝이야.”
그는 생각했다. 십 헐. 안 그래도 다른 사람의 생식기를 입에 넣는 것 같은 어정쩡한 포즈로 특이점을 먹어야 하는데 뭐? 닿지 않게 하라고? 이빨로 확 씹어뿌까?
“정신차리고, 조심하라고!!!!!”
남정관까지 합세해서 난리를 피우는 바람에, 그는 할 수 없이 천천히, 고통스런 자세로 특이점으로 입을 가지고 갔다. 그리고는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입을 벌렸다. 특이점은 조금씩, 조금씩 다가왔고, 그의 몸은 어정쩡한 자세로 인해 근육들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는 그것을 참느라 온몸의 힘을 아까 설사할 때보다 훨씬 더 줘가면서 조종해야 했다. 그것은 서서히 입 앞에서 입 속으로, 입 속으로 조금씩 들어왔고, 특이점은 천천히 그 입 안으로 들어가는 찰나,
물기 있는 바닥 때문에 버티고 있던 그의 발이 미끄러졌다.
“으아아아악!!!!!”
그의 비명과 함께, 몸이 앞으로 숙여지면서, 블랙홀레인저와 남정관의 경악하며 비틀대는 모습이 느린 화면처럼 펼쳐졌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는 아까 미처 하지 못했던 뒤처리를 마무리하고 손을 씻었다. 세면대에서 흐르는 물을 바라보면서 그는 블랙홀레인저와 남정관이 서로 얼싸안고 성공을 자축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며 칭송에 칭송을 거듭하고 나간 모습을 다시 떠올렸다. 블랙홀레인저는 또다시 곤란한 일이 있을 때 나타나겠다며 가운을 챙겨입고 하하하하 웃으면서 사라졌고, 남정관은 오해해서 미안하다며 당신은 지금 이 대한민국을 구하고 세계를 구한 자랑스런 국가의 보배라고 입발린 칭송을 늘어놓고는 상관에게 보고를 해야 한다며 발걸음을 돌렸다.
같잖은 칭찬들이었지만, 그래도 칭찬은 고래도 각기춤 추게 만든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는 잠시 우쭐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은 한 시간 뒤, 부장 앞에 섰을 때 절망과 좌절로 바뀌었다. 오늘따라 건덕지가 굉장히 큰 놈이 손가락에 떨려온 것이다. 그 손가락이 천천히 그의 단벌정장으로 다가왔고, 전과 달리 더욱 힘을 주어 부비부비 하는 부장의 사이코패쓰적인 기질에 치가 떨려왔다.
그는 분노했다.
왜 이래, 나는 조금 전만 해도 세계와 지구와 우주를 구했던 사람이지 않은가.
난 블랙홀을 삼켜 없앤 남자야! 라고.
웅혼한 기상과 장엄한 의식으로 그의 마음은 분연히 떨치고 일어났다. 정말 생각에 반응해서인지 몸도 근육 속에서 활력이 넘치고 팽팽해졌다. 혈관이 두근두근 뛰었고 단전에 묵직한 기운이 넘쳐흘렀다. 그는 한 번 몸에 힘을 확 주었고, 그 광대한 기세는 그의 몸을 타고 흘러 넘쳐나와,
요란한 소리의 똥방귀가 되었다. 그리고,
부장의 잔소리는 진정한 광기의 영역으로 돌입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