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25 글연습

NEOKIDS 작성일 13.01.25 07: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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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5 글연습


그에게 이런 현상이 있는 건, 한 두 번의 일은 아니었다. 그것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그의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낮의 소음, 그것을 일으키는 것들. 그것들이 갑자기 조용해진다. 사람들이 모두 다 사라진다. 자동차도, 전철도 없다. 오로지 남아있는 것들은 콘크리트의 건물 숲과 그 속에 남겨진 가구 따위 같은 것들 뿐. 그는 그 공간에 홀로 남겨져 있다. 그것은 보통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유지된다. 그 현상이 끝났을 때 그는 원래의 시공간으로 도로 돌아와 있다. 


이런 현상이 낮설지 않았기에, 으레 인간이란 것이 어떠한 우연이라도 그 속에서 법칙성을 찾아내려고 부질없는 일을 하는 그 속성대로, 그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이 현상을 분석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아있는 사물들의 리스트를 체크해보면서 그는 이것들 사이에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를 깨닫기엔 그는 너무 어렸다. 대학교 2학년쯤에 이르러서야, 그는 허수공간에 남겨진 사물들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서 만들어진 이래로, 너무나 자연스럽고 공기 같아서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고 소외되어 있는 것들만 남아있다는 것. 


그는 그 법칙대로 모든 것을 다시 바라보았다. 전기가 그랬고, 건물이 그랬고, 책걸상들이 그랬고, 수많은 책과 종이들이 그러했다. 자동차 같은 경우는 사람들이 쓰고 있고 손질하고 있으니 사랑받을 만했고, 전철도 동일하다. 돈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 공식을 발견하고 나서, 그는 허탈감에 빠졌었다. 사람들이 의미를 두지 않는 것들이 점유한 공간 사이에 남아있다는 것 자체가, 자신에게도 사람들이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은 공기처럼 쓸모없는 존재다. 


이 명제를 부정하려고 그는 늘 애써보았다. 그 허수공간, 이제는 결계라고 이름 붙인 그 현상을 어떻게 하면 겪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것은 한 때 그에게 너무나도 큰 고민이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하루에 두어 번은 이 결계 속으로 들어가는 현상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마치 그의 삶의 일부인양 자연스럽게 계속 찾아왔다. 


아무도 없는 공간을 헤매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던 그는, 이제 결계 현상에 대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버려두었다. 그것이 군대를 제대하고 사회로 복귀했던 때였다. 


그러자, 결계현상은 그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그에게 있어 그 현상은 심신이 쉴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이 되었다. 사람들이 완전히 사라진 거리를 자신이 가지고 있던 핸드폰으로 찍었고, 그것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으며 감상했다. 때로는 한 시간 동안 걷고 싶은 만큼 걸어보기도 했고, 아예 여행을 준비하는 것처럼 한 장소에서 결계현상이 나타날 때까지 오래 기다려보기도 했다. 결계현상이 생겼을 때 가보고 싶은 장소들을 가보는 것이었다. 호기심이 끌리는 곳 - 예를 들어 사창가 내부나 영화관의 영사실 같은 - 등등 평소 가보기 힘든 장소들의 뒷면들과 구조를 바라보며 그것들을 인상에 남기는 것은 그에겐 또 다른 취미이자 즐거움이었다. 


그가 직장을 가지게 된 이후로는 그 시간은 더 절실해졌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혹은 어떤 급한 일들을 해야 할 때는 그 결계가 맘먹은 대로 찾아와 주기를 바랄 지경이 되었다. 사람들은 가만히 일을 하고 있다가도 갑자기 스퍼트를 내며 일을 빠른 속도로 처리하는 그의 경이로운 행동을 보고 신기하게 여길 지경이었지만, 그에겐 이미 결계에서 모두 생각해보거나 해본 것들이었기에 신기할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소외된 것들의 공간에 언제나 들어갔다. 이제는 그것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여유를 가지게 되었을 즈음이었다. 


다시 찾아온 결계현상을 느끼며, 세상에 홀로 남아있다는 고독을 씹는 것을 즐기며, 그는 밤거리를 걸었다. 물론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은 채 휘황찬란한 불빛들만이 남아있는 콘크리트 숲의 밤거리였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소외된 모든 것들에 대한 찬사를 조금씩 읊조리며 차도 한 가운데를 걷고 있었다. 때마침 눈까지 내려 아름다운 밤이었다. 그는 조금이나마 퇴근 후의 피로감을 이렇게 씻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기까지 했다. 모든 것이 행복했다. 


8차선 대로의 중앙선에서, 

그녀와 딱 마주치기 전까지는. 


처음에 둘이 만났을 때의 표정은 놀라움과, 곤혹스러움과, 기묘함이 뒤범벅이 된 표정이었다. 수많은 생각들이 교차되었고, 수많은 추측들이 난무했다. 그렇게 복잡한 뇌의 화학적 반응 속에서, 서로의 입을 먼저 비집고 나온 말은


“안녕하세요.”


였고, 그 다음으로는


“어떻게 여기에.......”


였다. 마치 서로가 앵무새처럼 똑같은 타이밍으로 말을 하자, 둘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갑작스레, 결계는 풀어졌다. 


그는 걷기 전의 원래 자리로 돌아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눈이 내려오고 있었다. 그 눈을 맞으면서 그는 생각했다.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그의 가슴 속은 한없이 벅차오르고 심장은 미쳐버릴 듯이 뛰었다. 소외된 공간 속, 소외된 시간 속. 그것을 공유하는 이 지구상의 단 한사람일지도 모르는 그녀가 있다. 


문득, 그는 그녀와 어떠한 연락처도 교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먼저 후회했다. 

하지만 방법은 없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퇴근 후 항상 밤에 찾아오는 결계의 시간에, 그 8차선 도로로 나갔다. 눈이 내린 이후 한층 더 차가워진 공기 속에서 그는 8차선 도로의 중앙선, 그 자리를 계속 지켰다. 그녀를 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안고서. 


하지만 사흘, 나흘, 일주일이 되어도 그는 그녀를 볼 수 없었다. 처음에는 결계로 들어오는 타이밍이 서로 맞지 않는 것인가를 의심했다. 아니면 그녀가 자신을 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애써 후자의 생각을 부정하고 전자의 생각에만 주력했다. 어차피, 양쪽 다 희망이 없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불가항력적인 면이라는 점이 받아들이기엔 더 편하다는 인간적인 사실은 그조차 비켜가지는 못하는 것이었으니. 


그리고, 일주일의 마지막. 그 결계의 시간에서, 그는 여전히 그 중앙선에 서있었고, 

그녀가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너무 감격에 벅차 먼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고 있었다. 생각이야 해두었지만 그녀를 보는 순간 머릿속은 마치 하얀 종이처럼 변해버렸고, 그저 뭔가 해야겠다는 성급함만이 그를 휘감고 있었다. 아무 말도 없이 서로의 입김만 흐르는 시간이 1분여 지나면서 그는 초조해졌다. 그 침묵을 깬 것은 그녀였다. 


“두려웠어요.”

그녀는 고개를 숙인채로 말했다. 

“이 공간 속에 사람이 있다는 것이.”

“그러셨군요.”

그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전 반대였습니다. 너무 반가웠지요.”

“네. 계속 기다리셨더군요.”

그는 그 얘기를 듣자, 이제 확실히 깨달았다. 

“계속, 보고 계셨군요.”

그녀는 잠시 화들짝 놀라 허둥대는 눈치였다. 

“죄송합니다. 많이 식었지만, 잠시, 괜찮겠지요?”


그는 아까 전에 테이크아웃으로 사온 커피 두 잔을 들어 보이며 웃었다. 

시간이, 다시 흐르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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