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사막을 바라보았다. 아니 그렇다고 느꼈다. 거대한 빌딩 숲 속에서 사람들 사이를 걸어 다녀도, 그는 사막의 모래바람을 느끼며 광막한 그 공간 속에 서 있었다. 그 정도로, 세상은 아무 것도 없다고 느껴졌다. 사막의 사진을 하나 구해서 책상머리에 붙여놓은 것에 주위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고, 그럴 때마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꼭 가고야 말 것이라고 자신에게 다짐하듯 남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현재 자신이 하는 일 가지고는 아마도, 힘들 것 같았다. 마치 절대로 가보지 못할 이상향을 꿈꾸는 것 같았다. 그의 일은 이미지를 파는 광고의 일이었다. 광고의 일이란 때론 아주 좋은 일이 될 수도 있지만, 남자의 회사는 그렇지 못했다. 말하자면 2류 회사, 광고주가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는 경우였다. 시안도 광고주가 싫다고 하면 다음날 바로 바뀌었다. 그런 사장의 서비스 마인드 덕분에 갈아엎었던 광고시안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그날 밤도 그랬다. 바닥에 이때까지 그렸던 보드들과 이미지들의 자료들을 전부 흩뿌린 채로, 남자는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들에 짜증을 폭발시키고 있었다. 선배가 술을 가지고 들어왔고, 그 술은 바깥까지 이어졌다. 선배는 여기서 예술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저 먹고 살면 되는 것일 뿐이라고. 그는 그 말에 반항이라도 하듯 술을 퍼마셨다. 그는 비틀대며 어딘가의 침대에 누웠고, 선배는 돈을 주고 사는 여자라면 환장을 하는 버릇답게, 그의 방에도 누군가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들어왔다. 어렸다. 끽해야 고등학교 1학년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손을 댈 수도 없는 몸과 정신의 상황이었지만, 손을 대고 싶지도 않았다. 소녀는 떨고 있었고, 내가 첫손님이라고 했다.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느냐는 그의 질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그의 아버지에게 이끌려 그런 짓을 하게 된 것이었다. 가난이, 그녀의 등을 떠밀어 놓은 것이다. 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게 훨씬 성숙한 그녀의 가슴 속에서, 사막의 바람이 밀려왔다. 그 느낌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가까스로 챙겨왔던 가방에서 스케치 보드를 꺼내고는 그녀에게 침대 위에 설 것을 명령했다. 소녀는 그저 팔을 벌린 채 서 있을 뿐이었다. 그의 손은 미친 듯이 움직였고, 몇 개의 이미지들을 그려냈다. 그는 다음날 선배에게 급하게 연락하여, 여자를 부른 곳을 수소문하고 어린 그녀의 연락처를 입수한 후, 자신이 모아뒀던 돈을 급히 마련하고, 자신의 속에서 번개 치듯 몰아친 전체적인 티저 광고의 아이디어를 미친 듯이 하루 안에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그는 급히 뛰쳐나갔다. 조금이라도 늦는다면 모든 것은 허사였다. 그녀의 청초함이 세상의 추악함에 짓밟히기 전에, 그는 소녀를 구출해야 했다.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그는 소녀의 손을 붙잡았다. 일단은 자신이 묵고 있는 작은 오피스텔로 데려온 후, 그녀에게 누구와도 연락하지 말라고 하고 출근한 그는, 사장이 하라고 들이밀었던 표절이나 다름없는 시안을 찢어버린 채 자신의 시안을 광고주에게 들이밀었다. 도박은 성공적이었다. 광고주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그의 시안을 받아들었고, 짧은 기간이나마 오케이 싸인이 떨어졌다. 사장은 불같이 화를 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오피스텔에 돌아와서, 그녀에게 할 일이 아주 많다고 설명했다. 어린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는 CF모델이 되었다. 아직 청소년의 시기이면서도 묘하게 어른스럽고 신기한 인상을 풍기는 그녀의 이미지는 삽시간에 CF등과 함께 세상을 사로잡았다. 어딜 가나 소녀는 화제였고 사람들을 끌어당겼다. 소녀의 프로필은 각종 연예신문과 세간의 표적이 되었고, 갑작스런 세상의 변화에 그는 두려움을 느꼈다. 시한폭탄 같은 상황이긴 했지만, 그래서 이 연극의 끝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는 최대한 그 사이의 시간을 이용해볼 심산이었다. 그리고 가끔씩, 그녀의 가슴 속에서 불어오는 사막의 바람을 느꼈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행복하다고 느꼈다. 그 사막의 속에서 자신은 혼자 있지 않다고 느꼈으므로. 그의 본가에선 형의 내외가 아버지와 같이 살고 있었다. 그의 일이 성공적으로 돌아가고 있었음에도, 그의 형은 그에게 아직까지 핀잔을 주었다. 그런 일을 하지 말고 애초부터 아버지나 본인 같은 정치계 일이나 하고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레파토리는 잊을 만하면 꺼내들었다. 그의 어머니가 왜 자살을 했는지에 대해서 형은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지만, 그는 항상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과 똑같은 짓을 형이 하고 있었다. 난잡한 생활, 정부를 끼고 즐기는 모습들. 문제는 그 형만이 아니었다. 형수 역시 보란 듯이 몸을 굴려대고, 심지어는 그에게까지 추파를 던졌다. 그들에게서 불어오는 것은 하수구 속의 추악하고 질척한 습기와 냄새가 밴 바람이었다. 그의 단기간 티저의 시안은 광고주들에게 엄청난 효과를 안겨주었고, 재계약 때는 3배 정도 인상된 계약금을 부를 수 있었다. 핵심적인 광고모델의 관리를 그가 책임지고 있었고, 외부와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하는데 주력한 점이 먹혀든 것이다. 심지어는 광고주에게조차 선을 보이지 않는 그의 전법에 사장은 물론 광고주들까지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점을 그는 그녀에게 항상 미안하게 생각했다. 소녀 역시 잘 따라 주었다. 소녀는 이제 어느 정도의 부를 거머쥔 위치였지만, 그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저 가난이 끝났다는 것과, 자신이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만 감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일, 그에게 감사했다. 그와의 오피스텔 생활은 여전히 지속됐고, CF 일 이외에는 밖으로 나가는 것도 잘 할 수 없는 불편한 생활이었지만, 가끔씩 변장을 하듯 꾸미고 밖으로 나가는 것을 스릴 있다고 그에게 웃으며 얘기하는 그녀의 착한 심성에 그는 감동받았다. 그리고, 소녀는, 그를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작은 행복 뒤로 세상의 추악함은 고개를 들었다. 먼저 시작된 곳은 연예신문이었다. 기자가 있었고, 남의 뒷소문을 캐고 다니는 것에 그는 천부적인 재능과 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먼저 소녀의 아버지부터 공략해갔다. 소녀의 아버지는 황금알을 낳는 닭을 죽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정신과 입은 그만큼 치밀하지 못했다. 소녀의 아버지가 저지른 몇 개의 말실수에서 기자는 다시 냄새를 맡았다. 광고의 책임자 오피스텔에서 소녀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과, 소녀의 아버지가 입막음을 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 몸 파는 것을 주선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기자는 그 얘기들을 조합해 보았다. 소녀는 몸을 팔고 있었다는 사실이 확실했다. 하지만 일정선 이상까지는 뉴스를 풀지 않았다. 기자는 소녀의 몸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기자는 소녀의 CF촬영 현장으로 단순 방문한 것처럼 가장하고는 그때까지의 증거들을 들이밀었다. 소녀는 겁에 질렸다. 모든 것이, 그가, 부서질 지도 몰랐다. 기자의 말을 따르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는 듯 싶었다. 소녀는 그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고, 기자를 만났다. 하지만, 소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까지 세상에 휘둘려온 자신보다 더 위에 있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것에 굴복하면 절대 안 된다, 소녀는 다짐했다. 그리고 기자의 바로 앞에서 저항했다. 기자는 다시 협박을 했지만, 그것이 씨알도 안 먹힐 것이란 사실을 알았다. 스스로의 울분과 욕망을 참지 못한 기자는 강제로 손을 대려 하기 시작했다. 소녀는 목숨을 걸고 반항했다. 이 싸움에서 진다면 자신은, 그는, 자신이 보는 모든 세상은 망가질 것이란 것을 알았다. 실랑이가 얼마나 벌어졌을까. 소녀는 기력이 다했고, 기자는 땀방울을 흘리며 이제 조금만 있으면 채울 수 있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호흡을 골랐다. 그리고 기자의 뒤통수에 파이프가 내리쳐졌다. 그는 파이프를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소녀를 다시 한 번 구했다. 사람들에게 알리고, 상황을 확대시켰다. 경찰이 왔고, 기자는 하루아침에 소녀를 성추행하려던 개로 추락했다. 하지만 그와 소녀에게 불리한 것을 기자는 아직 쥐고 있었다. 그것은 모두에게 위험했다. 그리고 그것이 세상에 공표되었다. 입소문은 가중되었고, 수많은 쏘삭거림들이 세상 속에서 번져나갔다. 그것은 그와 소녀를 옭죄었다. 광고주는 이 상황에 우려를 나타냈고, 사장은 머리를 싸쥐었다. 그의 가족들이 그 때 달려왔다. 모든 상황을 뒷거래와 협박으로 마무리 짓고, 신문사의 사과까지 나오게 만든 형은 그에게 말했다. 어머니의 자살 이후 자신은 망가져 있지 않은 동생의 모든 것을, 순수한 그 부분들 까지도 지키겠다고 다짐해왔고, 이제야 겨우 기회가 온 것 같다면서 머쓱해했다. 형수는 오히려 소녀와 친해졌다. 그리고, 그와 거의 대화가 없던 아버지는 처음으로 그를 제대로 대면했다. 자신의 죄를 용서해달라면서. 모든 것이 마무리되고, CF의 계약이 종료된 후, 그와 소녀는 사막의 한 귀퉁이에서 주저앉아 사막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서로의 가슴속에 부는 바람을, 다시 사막으로 돌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