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2-09 글연습
사실 밴드에 관한 작품 구상을 한 지는 10여 년이 되어 간다. 이렇게 묵혀두는 동안 그에 관련한 서적과 자료들도 모아두고 쌓아놨을 뿐 통 돌아보지를 못하였다. 사실 그것은 나름의 게으름이라기 보다는 내 자신에 대한 끔찍한 반성에서 비롯된다. 스토리라인을 완성시켜놓고 보니 초딩드라마도 이것보단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밴드가 우여곡절 끝에 성공한다, 거기까지는 누구라도 쓸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둘러싼 아우라들을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형태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부실했고, 능력도 그렇게 되지를 않았던 것이다. 길 자체가 보이지 않고 유치하고 국소적인 요소들만이 내 구미를 당겼다.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참아왔다. 밴드는 밴드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 곳의 뒤에는 그 밴드의 음악을 가능케 하는 분위기와 요소들이 사회에 존재하고 그것은 또다시 밴드에게 영향을 주어 뭔가 한 발짝을 더 나아갈 수 있게 한다.
설 연휴를 맞아서 남아도는 시간, 과거의 잡지들을 꺼내어놓고 스크랩을 하기 위해 한 권씩 펼쳐본다. 핫뮤직이라는 잡지다. 특히 90년대의 것들에서 알찬 정보들이 많다. 보다 보니 필이 꽂혀서 작가 서문이랍시고 어줍잖게 세 페이지나 끼적였다.
다시 책을 펼치고, 칼을 대고 슥슥 기사들을 잘라내며, 나는 90년대를 반추해본다.
그 때는 확실히, 한국과 바깥이 골고루 약동하던 시기였다. 한국만으로 국한하자면, 자금도 돌았고, 문화도 돌았고, 정치도 돌았고, 모든 게 다 스핀 어라운드였다. 모든 것이 맞아 떨어져 마치 폭풍처럼 여러 가지 것들이 휘몰아치던 시기. 마치 70년대 해외의 아방가르드 같은 사조만큼이나 파괴력이 있지만 사실 그것들을 잘 알아차리지 못하고 체화해버렸던.
그리고 2000년대를 넘어 2010년대까지 오는 지금도, 한국의 수많은 것들은 그 당시의 스트림에 빚을 지고 있다. 개미굴처럼 다분화된 소비시장 취향의 형성, 한층 더 자유로와진 의식과 사고의 틀 등등을 포함하여. 그리고 그것들은 적어도, 위에서 얘기했던, 밴드들이 한 발짝 더 나아간다, 라는 사실을 가능케 했다. 그것은 한국뿐만이 아니라 외국에서도 가능했던 것들이다.
지금으로서는 사실 락이라는 장르에선 이래저래 맥이 풀리고 김이 빠진 구석들이 없진 않다. 테크닉은 상향 평준화되었지만, 가슴을 뛰게 하는 사람들은 없다. 90년대의 빅밴드들이 내놓는 앨범들은 이게 뭐냐 싶고, 그나마 매니아 외로도 선전하는 메탈리카 정도만 빼면 모두들 매니아의 숲으로 숨어들어가 버린 느낌 같다. 한국으로 치면 IMF 사태, 전세계적 추세로 치자면 장기적인 경제불황과 스마트 전쟁의 소용돌이들이 그것들을 부추긴 경향이 없지 않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자꾸 이성의 세계를 만들고 감성마저 고딕화시키는 그런 분위기.
그런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는 되도록 오래 이 아이디어를 묵혀두었다. 내가 쓸만해지면 쓰자, 그리고 최후의 작품이 될 것이다, 라는 치기도 떠올랐다. 그런 생각이 들 만큼 음악의 역사와 기술들, 그것을 둘러싼 비즈니스의 세계 등은 방대하고, 거기서 파생되는 사회적 현상들의 예들 역시 방대하다. 무엇을 선별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지금도 눈을 다 키웠다고 말하기에는 역부족인 것처럼 보인다. 요근래는 다행히도. 그런 부분에서 몇 가지 돌파구가 될 법한 방법론들을 깨달았다. 이게 다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읽고 깨달은 것이다. 놀라운 잡스 녀석. 죽어서도 이런 깨달음을 전파하는 구나.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애플 제품을 좋아하지 않는다.
세월의 흐름에 맞춰가는 말장난보다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뿌리가 있는 정보들을 골라내고 칼질을 해대면서, 책도 이러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내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심심풀이로 읽고 침대에 던져버릴 수 있을 정도의 가벼움을 추구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더 심하게 말하자면 공장판 무협지나 만화 같은 수준으로. 바램은 그렇지만 그조차도 쉽진 않다.
그나저나,
핫뮤직은 나오고 있긴 한 건가? 흐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