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 자살 신드롬. 1.

똥광의영광 작성일 13.03.08 12: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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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여러 가지 의심이 들 수 있습니다. 제가 만약 귀하라도 그럴 거예요. 하지만 믿으세요.”

 

에스신드롬의 사이트 상담원인 안수마리는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들을 대신 밖으로 표현해 준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기분 나쁠 수 있다. 그러나 이 정도로 상대방을 꿰뚫고 있는 여성이라면 내 처지에 대해 해결책을 내 줄 수도 있겠지 하는 바램에 안수마리가 정해 놓은 약속시간에 맞춰 서울 역삼동에 도착한다.

 

도착하기 전, 근 10여년이나 여자를 잊고 살았던 나에게 핸드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안수마리의 목소리는 괜히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어차피 노땅인 내 스스로 이 여성과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아저씨 취급이나 하면서 홀아비 냄새를 풀풀 풍긴다는 말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역삼동 거리 전체는 금연구역으로 지정돼있어 담배 대신 껌을 하나 사서 질겅 씹는다. 안수마리가 보자고 했던 그 건물은 꽤 멋지게 건축이 되어있어 내가 살고 있는 후미진 동네와 비교 했을 때 하늘과 땅 차이다.

 

‘그래도 이곳에서 보자고 한 걸 보면 어느 정도 신뢰성이 있는 단체인가 보군.’

 

그러나 지금 난 ‘진심으로 죽고 싶습니까?’라고 말한 여성과 만나게 된다. 그 에스신드롬의 사이트를 운영하는 단체가 어떤 곳인지도 모른 채로 불확실성을 앉고 만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아는 사람에게 들었던 다단계업체의 다이아몬드 멤버일 수도 있는 것이고 아니면 노땅인 아저씨를 유혹해 일부 건강한 장기를 적출 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밀려온다.

 

‘괜히 왔나.’

 

스멀스멀 올라오는 걱정. 부정적인 기우로 인해 약속을 깨버리고 집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 때 울리는 핸드폰의 진동. 살짝 긴장을 하며 폴더를 재낀다. 역시나 0505로 시작하는 안전번호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A고객님. 에스신드롬 사이트의 상담원 안수마리입니다. 지금 어디시죠?”

“지금 말씀 하신 곳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간 개념은 정확한 분이시군요. 저도 지금 건물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검은색 정장에 뿔테 안경을 낀 사람이 바로 접니다.”

 

안수마리의 그 말에 갑자기 일본 만화인 감옥학원의 어둠의 학생위원장의 캐릭터가 떠오른다. 아니, 그 반대일 수도 있겠지. 말하는 투하며 대화하는 방법이 전형적인 일본 오타쿠 일수도…….

 

‘그렇습니다만, 저렇습니다만. 웃기지도 않는 군.’

 

일본 만화와 소설을 즐겨 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말투들이나 성향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저 한국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발상과 스토리 때문에 적절히 분배를 하면서 찾아볼 뿐이다.

 

또 헛된 상상 속에 빠진 나는 마음을 다시 잡고 고개를 돌려 검은 정장에 뿔테 안경을 낀 여성을 찾아본다.

 

“A님이시죠. 반갑습니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어느새 내 뒤에서 등을 살짝 치며 인사를 건넨다. 어떤 복장을 입고 있는지 말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날 알아 본거지?

 

몸을 돌려 그 여성을 똑바로 쳐다본다. 그리고 주인공의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훑어본다.

 

“초면에 굉장히 실례군요 고객님. 요즘 S대기업 같은 곳에선 현장근로자가 여성 직원을 5초 이상 쳐다보는 것도 성추행이라고 하는데 귀하께서 하신 짓은 성추행 범죄에 포함 될 수 있겠군요.”

 

직설적인 화법. 나를 고객이라고 부르면서도 인간 취급 하지 않는 이 여자. 상담원 안수마리가 맞다.

 

“제 행동이 오해를 샀군요. 미안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안수마리의 모습을 머릿속에 깊이 박아 놓는다. 영화나 드라마, 만화에서나 나올법한 베이글녀의 이미지는 아니지만 꽤 준수한 외모와 키를 가지고 있다.

 

“아니에요. 전화로도 말씀드렸지만 어디까지나 제 성격상 그렇게 말씀을 드린 것뿐이니 괘념치 마세요.”

 

잠시간의 정적, 주위에는 본새 나는 정장의 사내들과 여성들이 건물 안을 들락날락 하고 있고, 거리에는 멋들어진 외제 차들이 즐비하게 주차돼있다.

 

“아마 A고객님께선 수많은 의혹을 가지고 이곳으로 오셨을 거라 판단합니다. 어찌 보면 현실세계에서는 일어 날 수 없는 일들을 갑작스럽게 받아들이려니 그럴 수도 있겠지요.”

“…….”

 

“그런데…….”

 

“그런데……?”

갑자기 뿔테 안경에 오른손을 갖다 대곤 얼굴을 들이미는 안수마리. 난 어쩔 줄 몰라 고개를 돌려버린다. 5도 이상 체온이 올라간 듯, 화끈거리는 느낌.

 

“장난으로 기입하셨다는 글 중에, ‘여자가 없어서’ 죽고 싶다는 내용은 진실인 것 같군요.”

 

“이봐요 안수마리씨. 그렇게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나이 먹은 아저씨를 놀려대면 기분이 좋습니까?”

 

살짝 기분이 나쁘다. 내가 만약 20대의 풋풋한 청년이었다면 특유의 직설적인 내뱉음에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차피 마흔 둘씩이나 되신 중년에게 이런 말씀 드린다고 해봤자 상처를 입지 않으리라는 것 정도는 알아요. 뭐, 기분이 나쁘신가 본데 어디까지나 저는 귀하를 도와드리려는 목적에서 뵙자고 한 것이니 이 정도는 가볍게 넘어 가 주시길 바랍니다.”

 

‘허헛.’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온다. 아직까지도 이 여자가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말을 한 것도 아닌데. 그 말 한마디가 상당히 위로가 되는 것을 보면 여자가 없어도 괜찮아 라고 했던 내 자신 스스로에게 합리화를 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 자 그럼. 본격적으로 테스트를 시작하겠습니다. 따라오시죠.”

 

뜬금없이 테스트라는 말에 화들짝 놀랄 뿐.

 

“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테스트?? 무슨 테스트요?”

 

죽 일관된 표정을 유지한 채 천천히 입을 여는 안수마리.

 

“에스신드롬 사이트는 어떤 단체에 의해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그녀가 다시 말을 이어가려는 찰나, 난 그 말을 끊어버린다.

 

“단체요? 어떤 단체요?”

 

그러자 그녀는 검지를 자기 입술로 가져다 대며 ‘쉬잇’거리고

 

“아직까진 그걸 알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귀하께서 상상하는 것보다 더욱 큰 단체라고만 인지하시면 됩니다.”

 

라고만 말할 뿐이다.

 

“제가 귀하에게 도움을 드린다고 말씀 드렸죠. 그건 분명한 겁니다. 그러나 장기적인 도움을 받으시려면 저희 단체의 일원이 되셔야만 합니다만. 그 전에 몇 가지 테스트를 할 것입니다. 그 테스트는 약간 까다로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해 단체의 일원이 되지 않으시더라도 몇 가지 특별한 혜택을 드릴 것이니 상심은 하지 마세요.”

 

계속 이해가 되지 않는 말과 말의 연속.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하는 걸까.

 

“따라오세요.”

 

안수마리는 거대한 회전문을 통해 건물 입구로 들어간다. 머쓱해진 나 또한 터덜거리며 뒤를 좇아간다.

 

회전문을 통과했을 찰라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는 안수마리. 그리고 건네는 한마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저를 믿으세요.”

 

그 한마디는 마음속의 기우를 어느 정도 씻어내 준다.

 

 

1-3.

 

안수마리를 따라 건물로 들어선다. 그리곤 중앙에 설치되어있는 5대의 엘리베이터 중 제일 왼쪽에 있는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는 그녀. 그 거대하고 웅장한 건물 내부와 맞지 않는 품격을 가진 나는 점점 위축이 될 뿐이다.

 

신기한건, 다른 엘리베이터 들은 전부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데 유독 이 엘리베이터는 사람들이 모이질 않는다. 판타지 소설이나 가공된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 현실이 과연 나에게 무엇을 해 줄지 라는 의문이 든다.

“타세요.”

 

그녀의 짧은 한마디. 난 뒷머리를 긁으며 머쓱하게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정숙하게 서 있는 안수마리의 뒤에서 내 눈으로 그녀의 신체 뒷부분을 흘겨본다.

 

“이건 무라카미 하루키가 썼던 댄스댄스댄스의 주인공이 비현실적인 양사나이를 만나는 신도, 영화 올드보이에서 최민식을 가둬 놓기 위해 트랩을 설치한 엘리베이터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 발상을 착안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연관은 되어있다고 봐야죠.”

 

계속해서 뭉툭한 대화만 건네는 안수마리에게 뭐라 대꾸를 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려고 마음먹는다.

 

“여기서, 이렇게. 엘리베이터를 정지 시킵니다.”

 

이 엘리베이터는 지하 7층까지 연결이 되어있다. 현재는 지하 3층과 4층을 내려가는 중간.

 

내 상상이 맞다면 어떤 방법을 통해 이 문을 열고 나가는 것이겠지.

 

“그리고 이 열쇠를 넣고 돌리면…….”

 

그녀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온오프 스위치 아래의 구멍에 끼워 넣은 다음 왼쪽으로 힘차게 돌린다.

그러자 엘리베이터의 문이 금속 표면에 강제로 스치는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억지로 열린다.

 

“오, 이런. 오늘은 타이밍이 맞지 않았군요. 그래도 이정도면 충분히 나가실 수 있겠지요?”

 

엘리베이터 안과 밖은 평행하지 않다. 결국 몸을 숙인채로 그 안을 통과 한 후 밖으로 나간다.

 

“약간은 비대하셔서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제 착각이었군요.”

 

‘뚱뚱한 사람이 몸은 더 유연한 법이지’

 

이제는 안수마리의 비꼬는 말도 적응이 되었는지. 그냥 웃음을 한 번 내지어보이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쪽으로 오세요.”

 

주차장처럼 생긴 비밀의 층엔 차들도 사람들도 아무것도 없다. 그저 회반죽 된 콘크리트의 석벽들이 천장의 형광등에 비쳐 음침하게 보일 뿐이고 안수마리는 갑자기 링의 사다코처럼변해 눈알을 부라리며 나의 목을 조를 것만 같다.

 

“마치 제가 귀하를 잡아먹을 것만 같은 표정을 지으시는 군요.”

 

그녀의 말에 난 또 머쓱해져 뒷머리를 벅벅 긁는다. 그녀가 멈춘 곳. 석벽의 끝 중앙에 미닫이 형 철문이 있고, 안수마리는 문의 손잡이를 돌려 당긴다.

 

그러자, 환한 빛이 내 시야에 들어오고 그 환한 빛에 넋을 잃고 안으로 들어간다.

 

1-4.

 

약 5평 남짓 되어 보이는 공간. 가상현실 공간처럼 중간에는 흰색으로 도배된 직사각형의 테이블. 그 위에 맥북과 정사각형의 용도를 알 수 없는 기계 하나가 놓여 있고 서류문서로 보이는 종이들과 재떨이가 가지런히 정돈 되어있다. 그 아래 서로 마주보고 있는 바퀴달린 흰색 클래식 체어. 그것들을 감싸는 백색의 무결점 공간아래 검은색 정장과 머리 그리고 뿔테 안경을 쓴 안수마리의 모습의 대비가 조화를 이루는 느낌이다.

 

그에 반해 나는 검푸른 점퍼와 구제 리바이스 청바지. 서로 매칭되지 않는 흰색 나이키 운동화. 조화속의 부조화에 얼떨떨한 나의 표정을 본 안수마리는 의자를 내어 주며 조용한 목소리로 앉으라고 한다.

 

“음료는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단, 흡연은 가능하니 적당한 선에서 적당하게 피우길 바라겠습니다.”

 

그러고선 안수마리가 담뱃갑을 꺼내 한가치를 꺼낸다. 약간 길쭉한 생김세가 뭔가 하고 봤더니 다름 아닌 라일락이다.

 

그녀는 담배필터를 테이블로 가져간 후, 엄지와 검지로 위아래로 툭, 툭 튕겨낸다.

 

왠지 그 모습에 담배가 당겨 점퍼에서 담배를 꺼낸다.

담배 한가치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려는 찰나, 그녀는 담배 연기를 내 뿜으며 말한다.

 

“이 노트북 옆에 놓인 기계는 진실 탐지기입니다. 거짓말 탐지기와 동일한 기계이지만 귀하의 뇌파를 통해 거짓 유무를 판단함으로써 99%의 확률을 자랑하고 있죠. 자기공명영상법(MRI)을 이용한 건데 저희 단체에서 이미 10여 년 전에 완성한 것입니다. 그 이후 버전이 업데이트 되면서 이렇게 작게 만들 수 있게 된 거죠. 원래는 꽤 복잡한 과정으로 이루어진 테스트이지만 세상이 세상인지라 이제는 이렇게 패치를 붙이기만 해도 간단하게 진실을 탐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 이 기계는 극비에 만들어 진 것이기 때문에 외부에 시판 될 일은 없습니다. 귀하께서 이 진실 탐지기를 통해 대답하는 모든 것들은 1차 테스트에 포함되기 때문에 스스로 조금 민망하거나 쪽이 팔리더라도 가급적이면 진실로 대답해 주세요.”

 

갑자기 들이 당긴 담배 연기가 목구덩이에서 용 트림을 하는 기분이다.

 

“뭐라구요?”

 

난 콜록 거리며 대답한다. 뇌파를 이용한 진실 탐지기라니 뭐 자기 공명 어쩌구?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낫겠죠?”

 

결국 혼잡한 의문 속에서도 수긍을 해버린다.

 

“그래요. 그럼 편하죠.”

 

안수마리는 기계에 부착되어있는 패치를 내 이마에 붙인다. 그리고 기계의 전원을 작동시키고 노트북의 전원을 킨다. 그녀가 내 몸에 가까이 다다랐을 즘 어떤 향수도 몸에 바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무색무취, 오직 청결한 것만을 좋아 하는 것 일 수도 있겠지 하며 담배를 마저 핀다.

 

“약간은 두근거리거나 흥분하셨군요? 제가 귀하의 신체에 가까이 다가간 것만으로도.”

 

난 화들짝 놀랐지만 킁킁 거리며 그 질문에 부정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거짓.’

 

tvn에서 방영하는 롤러코스터의 여자성우가 말하는 투의 ‘거짓’이란 판단에 난 다시 한 번 강하게 부정한다.

 

“진짜 아닙니다.”

 

‘거짓.’

 

그러자 안수마리는 전에 없던 미소를 살짝 보여준다. 그 미소에 난 엉겁결에 말끝을 흐리며 대답한다.

 

“조금 그랬던 것 같기…….”

 

‘거짓.’

 

“그래요! 흥분했어요. 됐어요?!”

‘진실.’

 

안수마리도 독종이라는 생각을 몇 번했지만 이 기계 또한 꽤 독종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일말의 자비도 없군. 아마 누군가가 이 상황을 지켜봤더라면 난 쪽팔려 죽었을 거야라는 생각을 한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현재 채무가 있습니까?”

 

“네, 1000만 원 정도가 있습니다.”

 

‘진실’

 

“그럼 현재 채무 불이행건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진실’

 

“…….”

 

“지금 하는 일은 어떤 직종이죠?”

 

“현, 현장 근로입니다.”

 

‘진실’

 

뫼비우스의 고리처럼 계속해서 순환하는 질문만 할 것 같은 안수마리가 갑자기 흐름을 끊는다.

 

“정확히 무슨 일 인가요? 현장근로라고 한다면 여러 가지 일이 있는데.”

 

그녀의 물음에 난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설명해 주었고 그럴 때마다 기계에선 진실이라고 판단을 해준다. 그 후 의미 없는 호구조사를 하곤, 라일락을 한 가치 더 피기 시작한다.

 

“정말 평범하기 그지없군요. 그저 먹고 똥만 싸려고 세상에 태어나신 분 같아요. 저희 단체에서 수많은 고객들을 접해 보았지만 귀하 같은 평범한 분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아, 오해는 마세요. 저는 귀하가 첫 번째 고객이니까요. 자료를 통해 말씀 드린 것뿐이에요.”

 

“……. 누군들 이렇게 살고 싶어서 그렇겠습니까?”

 

‘진실’

“그 말씀은 과거의 얘기치 않은 상황 때문에 현재의 상황에 처해있다는 말씀을 하시고 싶은 건가요?”

 

“그렇죠.”

 

“그럼 그건 누구 탓입니까? 남 탓인가요? 자기 탓인가요?”

 

난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반반이요.”

 

‘거짓.’

 

“아니, 남 탓이에요.”

 

‘거짓.’

 

“그래요. 제 탓이에요. 됐습니까?”

 

‘진실.’

 

“그럼 귀하께선 현재 현실을 부정하고 계시겠군요.”

 

“아니오. 그런 건 아니에요. 저는 현실을 인정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짓.’

 

‘?’

 

난 현실을 인정하고 살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항상 말한다. 내 잘못으로 인해 밟아온 길이기에. 그런데도 이 기계는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판단해 버린다. 왜 그럴까? 하는 고착상태에 안수마리는 독설적인 돌직구로 나를 깨워준다.

 

“과거에 대한 미련을 잊지 못했는데 어떻게 현실을 인정할 수 있을까요. 자기 자신에 대한 방어기제가 상당히 심한 분이시군요.”

 

“…….”

 

“혹시 특정 종교를 믿고 있습니까?”

 

“아니요. 무교입니다.”

 

‘진실.’

 

“그렇다면 신을 부정하는 군요?”

 

“그건 아닙니다. 신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불교의 윤회 론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있어요.”

 

‘판단할 수 없음.’

 

“무교이면서 불교의 윤회 론을 믿는다. 결국 환생이나 전생을, 내세의 삶을 믿는 다는 건데…….”

 

그녀가 말꼬리는 흐리는 건 처음 본다.

 

“그럼 지금 이 총체적인 상황에 처한 것 또한 전생에서 잘못한 것이 많기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네, 그래요.”

 

“그럼 다음 질문, 혹시 20살이 되기 전, 트라우마를 입은 적이 있습니까? 예를 들어 왕따나, 가족 간의 불화등등요.”

 

그 말에 난 곰곰이 되뇌어 본다.

 

“그건 왜 물어보는 거죠?”

 

“해답을 찾아드리려고 하는 거예요. 분명 말씀드렸잖아요. 테스트를 한다고 했지만 그와 동시에 혜택을 드린 다구요.”

 

“잠깐만요.”

 

난 깊은 한 숨을 내쉬곤, 과거의 일들을 떠올려 본다. 그렇게 행복한 적이 없었던 과거. 너무나 평범해 남들 눈에 띄지 않았다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동급생에게 매일같이 괴롭힘을 당했던 날들. 고등학교 때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정신적인 불안감으로 나에게 호감을 가졌던 여학생에게 실수 했던 일들.

 

“자세하게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있다 없다 로만 대답해주셔도 됩니다.”

 

“있습니다.”

 

‘진실.’

 

“그 상처는 아직까지도 당신을 괴롭히나요?”

 

“네, 맞아요. 일에 집중을 하다가도 어떤 사물이나 사람 등을 보았을 때 불연 듯 추악한 과거가 떠오르곤 해요. 그럴 때마다 그걸 잊기 위해 혼잣말을 내 뱉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지요.”

 

‘진실.’

 

“좋아요. 좋습니다. 이제 1차 테스트는 거의 마지막이네요.”

 

“…….”

 

“그럼 그런 과거의 기억들 때문에 죽고 싶었습니까?”

 

“모르겠습니다.”

 

‘판단할 수 없음.’

 

“제가 질문을 잘 못 드렸군요. 그럼 현재는 죽고 싶습니까?”

 

“네.”

 

내 말에 기계는 ‘진실’이라고 답해준다. 여느 때와는 다르게 프리 딜레이가 걸려버린 듯, 진실이란 음성이 내 귓가를 반복해서 맴돈다.

 

 

1. 마지막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귀하의 등급을 판단하려면 약 5분의 시간이 걸리오니 그 동안 담배라도 피고 계세요.”

 

몸에 좋지도 않은 담배를 계속 해서 피라고 하는 안수마리. 입안의 구린 찝찝함에 연속해서 줄담배를 피긴 싫지만 하릴없이 시간을 죽이기도 뭐해서 결국 담배를 한가치 꺼내 든다. 그리고 담배를 다 폈을 즘. 그녀가 뿔테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나를 쳐다본다.

 

“귀하는 D 등급입니다. 총 F등급까지 있는데 D 등급 정도면 2차 테스트를 통해 저희 단체에 가입할 수 있을지 없을지 결정을 하게 됩니다.”

 

“2차 테스트는 뭔가요?”

“그걸 답해 드리기 전에 우선, 왜 D 등급이 나왔는지 설명부터 해드리죠.”

 

“네.”

 

“귀하 같은 평범한 타입은 얼마든지 자살을 살자로 바꿀 수 있고 의지를 바꿔 이겨 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희 단체에서 제공하는 혜택들이 불필요 할 수도 있습니다만 과거의 트라우마와 현실의 부정이 오묘하게 조합된 타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심리학자도 아니고 철학자도 아니기 때문에 자세한 용어를 들어 설명을 해 드릴 순 없습니다만 결론을 내 드리자면 귀하께선 시간이 지나 조금 더 큰 시련에 부닥쳤을 때 그것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자살을 할 수 있는 분이라 판단했습니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고작 한다는 말이 자살을 할 수 밖에 없다니. 그럼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날들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자괴감에 빠트리려고 작정한 것이 아닌가.

 

“도움을 준다더니 오히려 힘만 쫙 빼는 군요. 지금 장난하세요?”

 

“물론, 장난은 아니죠. 생각해 보세요. 이런 비싼 기계를 통해 뭣 하러 장난을 할 것 같나요? 지금 흥분해 봤자 그건 자신의 좀먹은 과거로 인해 밀려오는 충동으로 인해 생겨나는 분노뿐이에요.”

 

“이 여자가!”

 

그 말에 더없이 흥분 한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수마리는 오히려 느긋하게 라일락을 피워대며 웃음을 짓는다.

 

“2차 테스트. 지금 현재의 당신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를 단번에 해결 해 줄 겁니다. 지금까지 진행해왔던 것들이 귀하의 눈에 진실로 비춰졌다면 이제 부턴 당신에게 큰 혜택을 줄 것임에 틀림없으니 그만 흥분하시고 저를 따라 오세요.”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반응에 아랑 곳 하지 않고 들어왔던 입구의 맞은편에 위치한 쌍닫이문을 연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며 손짓으로 들어가라고 한 후, 다시 한 번 미소 짓는다.

 

‘여기서 흥분 해 봤자.’

 

난 화를 억누르며 담배를 발로 비벼 꺼버린다. 그때 갑자기 드는 의문

 

“도대체 이렇게 까지 하는 의도가 뭐요? 나한테 무엇을 바라는 겁니까?”

 

내가 인생을 보내면서 한 가지 느낀 게 있다면 ‘절대 공짜는 없다’라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물 흐르듯이 그녀가 차려놓은 밥상에 수저를 올려놓고 떠먹여 주기까지 한다면 그건 필시 원하는 게 있어서 일거다.

 

“분명히 말씀드리자면, 공짜는 없습니다. 분명 저는 귀하에게 얻으려고 하는 것이 있겠지요. 저희 단체의 신조는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이 있고 오는 것이 있으면 주는 것이 있다.‘입니다. 그러나 오는 것이 있어도 단체의 일원이 되지 않는 이상 저희에게 주는 것은 없으니 걱정 마세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면 저를 믿으세요.”

 

인상을 찌푸려 본다. 본디 착하게 살았다고 생각해도 내 외모는 그리 착하지 않다. 그래서 무언의 협박용으로 잘 사용하는 무기지만, 그것조차도 그녀에겐 통하지 않는다.

 

다음 방으로 걸어가자 중앙에는 치과에서나 볼 수 있었던 수술대가 놓여있고 그곳엔 각종 의료기기들이 놓여있다.

 

“표정을 보아하니 또 망상을 하고 계시는 군요. 이건 장기 적출을 위한 수술대가 아니에요. 바로 자각몽 실현기라고 불리는 신 개념 꿈발현기 죠.”

 

그녀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단하기가 힘들 정도로 내 이성은 점점 무너져 간다. 자각몽실현기라니. 말이 될 법한 소리인가.

 

“현실을 부정하는 귀하에게는 더없이 좋은 혜택입니다. 영어로는 루시드 드림. 바로 꿈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행위 일체를 해 볼 수 있는 기회.”

 

“그래서 어쩌란 말이요. 내가 자각 몽을 꾸면 뭘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어떻게 하지 않으셔도 되요. 다만, 이 자각몽 실현기를 통해 과거의 트라우마를 씻어 내버릴 수 있는 용도로 이해를 하시고 접근 하시면 됩니다. 그 말인 즉슨, 현재의 성장한 인식을 가지고 초등학교 때나 중학교 때, 아니면 타인으로 인해 일어났던 추잡한 과거를 바로 잡을 수 있죠.”

 

“퓨전판타지에서 흔히 볼법한 설정으로 당신이 주체가 되어 한나라의 소드마스터가 되라는 것도 아니고 9클래스의 마법사가 되라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망상은 당신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헛된 망상을 심어주죠.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과거로 여행을 가 어릴 때의 자신을 겪으면서 일진들을 때려눕히는 히어로가 되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되기엔 이 자각몽 실현기의 시간이 한정이 돼있구요. 어찌 보면 한정된 시간이 그런 대리만족에 대한 허탈감을 없애준다고 해야 할까요?”

 

“결국엔 과거를 바로 잡아 트라우마를 떨쳐내라는 것이군요.”

 

“맞습니다. 귀하께서도 올바른 말씀을 하실 때가 다 있네요. 아, 이건 빈정 거리는 게 아니에요. 칭찬하는 겁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되나요?”

 

“별 건 없습니다. 그저 이 자각몽 실현기에 누워서 눈을 감고 기다리세요. 그럼 이 패치를 통해 수면이 일어나게 되고 당신도 모르는 사이 무의식속에 감춰진 트라우마 속으로 들어 갈 거예요. 그럼 그때부턴 현재의 인식을 가지고 마음껏 활동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주의할 사항은요?”

 

“특별히 주의할 사항은 없습니다. 자각몽 실현기가 구동된 후 약 3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눈이 떠지실 겁니다. 하지만 상대성이론에 의해 자각몽 실현기 안에서는 현실의 3시간이 단 1시간이 될 수도 있고 1주일이 지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 두시면 됩니다.”

 

“왜 그런 상황이 일어나는 거죠?”

 

“저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자세하겐 설명을 드릴 순 없습니다. 하지만 이 기계는 트라우마 치료의 목적으로 발명된 것이기 때문에 귀하께서 무의식속의 트라우마가 해결 됐을 즘에 자연히 눈이 떠지실 겁니다. 그래도 현실에선 항상 3시간이 지난 후 이지만요.”

 

“만약 해결이 되지 않았을 때는요?”

 

“그럴 일은 없습니다. 귀하께서 만약 트라우마 치료를 거부한다 하더라도 기계자체의 제어 시스템으로 인해 일정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해결을 해주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죠.”

 

무식한 나로썬 그녀가 하는 말이 잘 와 닿진 않지만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 생각하며 자각몽 실현기에 발을 올린다. 무의식속에 어떤 트라우마가 떠오를 진 몰라도 긴장도 되고 두려우면서도 약간은 흥분이 된다.

 

안수마리는 천장의 조명을 응시하고 있는 나에게 얼굴을 갖다 대며 처음으로 싱긋 웃는다.

 

“믿으세요. 2차 테스트 후에 분명히 당신의 저희 단체의 일원이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그녀의 말이 약간은 안심이 된다. 그렇기에 난 눈을 감고 마음을 비운다.

 

“하지만, 이건 5pb에서 만든 슈타인즈 게이트가 아니에요. 과거를 갔다 왔다고 해서 현실이 변하는 건 아닙니다.”

 

그녀가 말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온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졸음이 쏟아지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사실은 이미지 파일로 올리려고 했는데 그림이 깨지는 바람에 그냥 텍스트로 올립니다. 프롤로그하고 1-1화는 (보실 분들이나 있는지 몰라도^^;) 원본이 유실되는 바람에 블로그에 이미지 형태로만 남겨두었습니다.(http://blog.naver.com/kjm302/70161656599)

 

구상은 몇 주 전부터 한건데 아마추어 습작 개념이라 생각나는데로 어제 오늘 해서 써보았습니다. 좀 많이 딸리는 필력이지만 그냥 대충 감상만 해주셔도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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