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자살신드롬 2.

똥광의영광 작성일 13.03.09 20:5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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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과거의 흔적.

 

기억은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다. 내 눈으로 보았던 현실들. 42년간의 인생 전부 똑똑히 기억난다. 그러나 지금 내 눈에는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바로  B초등학교의 교문이 비춰지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사물들이 전보다 크게 보인다. 어릴 때는 인식하지 못했던 부분들마저 마흔 두 살의 인식을 가지고 바라보니 난 이렇게 작았구나. 라고 생각하며 거대한 철문을 만져본다.

 

내 등에는 전형적인 직사각형 가방이 메어져 있고 후줄근한 티셔츠와 바지. 그리고 새것처럼 보이는 프로스펙스 운동화가 신겨져 있다.

 

천천히 교문 옆의 가로 수 길을 따라 걸어가 본다. 늦가을 인 듯, 날씨는 쌀쌀하고 낙엽들은 흩뿌려지듯 모래 먼지와 함께 흩날린다.

 

지금 난 꿈을 꾸고 있는 건?’

 

안수마리가 말했다. 자각몽 실현기를 통해 내가 입은 트라우마를 치료 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이것이 만약 자각몽 상태라면 난 날라 다닐 수도 있고 벽을 통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만 마흔 둘인 듯, 모든 것은 내가 지냈던 과거와 동일하고, 현실 범주 이상의 모든 행위들은 불가능 하다.

 

정말 현실적인 자각몽이군.”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왔지만 난 지금 몇 학년이고 몇 반인지 모른다. 결국 실내화를 갈아 신은 채 1층을 두리번거린다.

 

. 닌 네 밥이야.’

 

날 괴롭혔던 L이 항상 하던 말. . 따까리와 같은 용어로 쓰인 그 단어는 초등학교 6학년 내내 내 별명이었고 내 별명을 부르는 순간. L의 주먹이 날라 와 나를 때렸지.

 

이런저런 생각에 교실 문 밖을 배회하다 중앙 현관에 비치되어있는 거울을 우연히 쳐다본다.

 

이렇게나 살이 쪘었구나.’

 

볼품없는 외모. 뚱뚱한 몸집. 내가 기억하는 과거의 모습. 그대로다.

 

가슴 왼쪽에 달려있는 명찰을 쳐다본다. 6학년 4A. 6학년 4반이었고, 내 반은 건물 5층에 있다.

 

3층 계단에 다다랐을 즘. 숨이 턱 끝까지 밀려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이렇게도 약해빠진 내 몸뚱아리 덕분에 그 무수한 괴롭힘에도 당해낼 도리가 없었지.

 

숨을 몰아쉬며 5층에 올라갔을 때 6학년 4반은 K라 불리는 전교 1등의 우등생이 먼저 앉아 있었다. 그 친구는 정말 착했고, 내가 괴롭힘을 당할 때 막아주던 나의 영웅 같은 존재였다.

 

K와는 같은 중학교로 올라갔다.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던 K는 중학교를 올라가서도 항상 전교 1,2등을 놓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 친구에게는 얼굴에 여드름이 많이 피어나 그 순수했던 미소를 가리게 되었다.

 

하지만, K는 동급내기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정말 많았다. 성실한 성품과 상위권을 유지하는 성적으로 인해 발렌타이 때나 빼빼로 데이, 그리고 K생일 때면 항상 초콜릿과 선물이 넘쳐났다.

 

내가 우연히 교실 문을 나서고 고개를 숙인채로 집으로 향하던 순간, 우연찮게 어떤 여학생이 K에게 고백을 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 여학생은 빨개진 뺨을 가진 채로 수줍어하며 편지를 건넸고, K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이곤 양손으로 그것을 꼭 받았다.

 

그때, 심한 열등감을 느꼈고 평범이 몸에 박혀버린 나로썬 K가 미칠 듯이 부러웠다. 하지만 열등감은 열정으로 바뀌지 못해 게으름과 나태함을 통해 결국 보잘 것 없는 성인으로 만들어 졌고 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어떤 선물도 여자에게 받아 보지 못했다.

 

그 이후, 내가 성인이 되고 아는 동창을 만났을 때 K의 소식을 묻자 사법고시를 패스하고 판사가 됐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이 K에게는 딱 들어맞았던 것이다.

 

어떤 사람이든지, 노력으로 안 되는 것이 없다고 하지만 인생의 비관론자인 나로썬 그것을 부정하기에 바빴다. 에디슨은 천재가 99%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인생의 비관론자인 내가 느끼기엔 1%의 영감 없이는 99%노력을 해도 안 된다 라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단체에 의해 말도 안 되는 혜택을 입곤 어떤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할 내 자신의 과거를 이렇게 인지하고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그렇기에 현실에서 정해진 3시간동안 난 기억의 상처를 치유하려고 한다.

 

안녕 K. 일찍 왔구나.”

 

어린 K에게 살갑게 인사를 건넨 나는 그에게 다가가 본다. 그러자 K는 손을 흔들고 반갑게 맞이 해준다.

 

, 학교 일찍 왔구나.”

 

, 오늘은 일찍 왔어. 이야, 교과서 펴고 공부하는 거? 역시 대단해.”

 

대단하긴 뭘, 그나저나 A 네가 나한테 했던 말 기억하니?”

 

? 어떤가?”

 

저번에 네가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 할 수 있는지 물어봤잖아.”

 

, 그랬지.”

 

, 내가 엄마랑 같이 참고할 만한 책들 몇 가지 적어봤어. 이거 가지고 부모님한테 사달라구 해. 그리구 그걸로 공부하면 도움이 될 거야.”

 

그래, K는 오지랖도 넓었지.’

 

난 환한 미소와 함께 쪽지를 건네는 K에게 연신 고맙다며 그의 어깨를 흔든다.

 

그리고 내 자리를 찾아 의자에 앉고 가방을 책상 옆 고리에 걸어 놓는다.

 

학생들의 절반정도가 반으로 들어왔을 즘. 내 평생 잊을 수 없었던 L이 모습을 보인다.

 

, . 저금통에 돈 좀 모았냐?”

 

기억난다. 저금통. 그래 L은 나에게 부모님께 매일 받는 300원의 용돈을 저금통에 저금하고 그게 꽉 찼을 때 가져오라고 했다. 분명히 그랬다. 그리고 L이 나에게 밥이라고 말하는 순간.

 

!’

 

L은 내 왼쪽 팔을 있는 힘껏 때렸다. 그러자 K가 벌떡 일어서서 L에게 성큼 다가간다.

 

“L 그만해. 만날 A를 괴롭혀?!”

 

, 범생이는 저기 찌그러져 있어. 너무 나대지마.”

 

L의 그 말에 K는 눈을 부라리며 쳐다본다. 그러자 L은 위축됐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기 자리로 가버린다.

 

난 왼팔을 문지르며 주위를 둘러본다. 아이들은 L이 나를 괴롭히는 것에 면역이 됐는지 자기 할 일만 해댄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 난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벌써 하교 시간이다. 교실 종은 울리고 반장인 K가 담임선생님에게 인사를 한 후 경례를 한다.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기에 학교건물 입구로 걸어가 프로스펙스 운동화로 갈아 신는.

 

야 신발 샀구나? 프로스펙스네?”

 

언제 뒤따라 왔는지 내 신발을 보곤 빈정댄다.

 

…….”

 

난 묵묵부답으로 신경 쓰지 않고 그냥 가로수 길로 걸어간다.

 

미쳤구나 A. 내 말을 씹네.”

 

그 말과 동시에 주위에 있던 L의 패거리 중 한명인 J가 내 발을 밟아 버린다.

 

새 신발 샀는데 신고식 해야지. 따라와!”

 

그 이후 난 그 아이들에게 한 시간 가까이 발을 밟혔고 새로 산 프로스펙스 운동화는 너덜너덜 해져버려 어머니에게 수차례 엉덩이를 맞았다.

 

그 과정은 기억에서 흘러나온 것이고, 지금 난 그 과정이 넘어가 버린 채 예전에 살던 아파트의 내 방안 침대에 누워있다.

 

제어 프로그램이 있다더니, 끔찍한 기억은 넘어가 버리는 군.’

 

주위를 둘러본다. 책들이 빼곡히 꽂혀져 있는 서재 2개와 그 옆에 놓여 있는 구식 타자기. 그리고 그 옆에 놓여 져 있는 내 전용 책상. 어릴 때부터 정리습관이 안 들여져 언제나 아버지에게 혼이 났었다.

 

이 저금통, 돈이 꽉 차있어.’

 

그런 와중에 발견한 저금통.

 

분명 그 저금통을 L에게 갖다 바쳐. 내 돈으로 햄버거 하나를 사주곤 나머지는 자기가 다 가로챘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 이렇게 저금통 안에 동전과 지폐가 꽉 차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 처해있는 상황은 금방 타개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느새 하루가 지나고, 아침이 밝는다. 난 꽉 차 있는 저금통을 가지고 내 가방 안에 넣는다.

 

그리고 학교로 향한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L은 나에게 눈을 부라리며 협박을 한다.

 

마침, 담임선생님이 올 시간이다.

 

아이들이 전부 자리에 앉고 반장인 K가 일어서서 인사를 할 때 난 가방 안에 들어있는 저금통을 들고 저금통의 뚜껑을 열어 L에게 힘껏 던져 버린다.

 

처먹어!”

 

예상치 못한 나의 행동은 L을 충분히 놀라게 만들었다. 주위에 있던 아이들도, 담임선생님도 K,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나를 쳐다보기만 한다.

 

무슨짓이니 A!"

 

담임선생님이 나에게 달려와 다짜고짜 캐묻는다. 어차피 현실이 아닌 현실이기에 난 바락 소리를 지르며 L을 향해 말한다.

 

“L이 저를 2년 동안 괴롭혔어요! 제가 매일 받은 용돈을 저금통에 모아서 꽉 차면 가지고 오라고 했단 말이에요!”

 

목이 부르트도록 외쳐본다. 그러자 L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담임선생님에게 아니라고 말했고, 주위에 있던 아이들은 내 행동을 옹호 하지 않는다.

 

잘못된 선택인건가?’

 

마음속으로 내 행동에 대해 의문을 품을 때 즈음, 담임은 매를 가져와 나를 때리려고 한다.

 

그러자 K가 담임선생님에게 뛰어가며 큰 소리로 외친다.

 

“A 말이 맞아요! L은 항상 A를 괴롭혔어요!”

 

내가 하는 말은 들어보려고도 하지 않았던 담임선생님이 K의 말에는 허둥거리며 그게 진짜냐?’라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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