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자살신드롬 3.

똥광의영광 작성일 13.03.09 20:59:16
댓글 1조회 1,164추천 2

3. Suicide Syndrome.

 

 

현실에서의 3시간 후, 알 수 없는 공허함과 허탈감을 가진 채 눈을 뜬다.

 

흐린 시야 속에 들어온 건 안수마리의 무표정한 얼굴. 난 그렇다고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본다.

 

잠깐, 그대로 앉아 계세요. 잠시 동안 머리가 어지러울 수 있어요.”

 

그녀는 그 말과 함께 뒤를 돌아 맞은편에 설치된 테이블로 걸어간다.

 

살짝 느껴지는 두통에 머리를 부여잡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그녀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앉아 계시지 그러셨어요.”

 

안수마리는 테이블 위에 놓인 서류를 들고 내 앞에 서서 뿔테안경을 만지작거린다.

 

어떤가요? 자각몽 실현기를 통해 과거의 트라우마가 치료된 것 같으신가요?”

 

눈의 초점은 서류에 맞춰진 채 물음을 건네는 그녀에게 지금 느끼는 공허함과 허탈감에 대해 설명해 본다.

 

그러자 안수마리는 전례 없던 큰 환호성을 내지르며 나를 껴안고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로 입술을 떨며 천천히 말한다.

 

귀하는 충분히 저희 단체의 일원이 될 자격을 갖추셨습니다. , 맙소사. 혹시라도 자격이 되지 않을까봐 속으론 얼마나 노심초사 했는지 모르실 거예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무슨 말이라뇨. 귀하께서 자각몽 실현기를 통해서 얻은건 아무것도 없다고 하셨잖아요. 공허함과 허탈감. 그것을 느끼게 되셨다면 저희 단체의 일원이 된 것과 마찬가지인거죠. 만약에라도 기계를 통해 살고싶단 희망을 가지게 되셨다면 귀하와의 인연은 끝이 났을거라구요."

 

환한 웃음을 잃지 않은 채로 자신의 포커페이스를 180도 바꿔버린 그녀에게 난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멍하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 채 가만히 있어본다.

 

절 따라 오세요.”

 

그녀는 내 손을 붙잡곤 1차 테스트를 거쳤던 방의 맞은편에 위치한 문으로 걸어가 문고리를 힘차게 돌린다.

 

아직까지도 정신이 온전하게 돌아오지 않은 터라, 주위 사물을 확연히 인식 할 수가 없다. 그저 안수마리가 하자는 대로 따라 할 뿐이다.

 

앉으세요.”

 

1차 테스트를 했던 곳과 같은 구조의 방. 그러나 진실 탐지기는 없다.

 

아까도 봤던 곳이잖아요. 뭘 그렇게 두리번거리시죠? , 여기 몇가지 서약서와 동의서가 있습니다. 작성 부탁드릴게요.”

 

그녀는 나에게 서류 종이와 펜을 들이 민다. 그리곤 깍지를 낀 채로 내가 어서 이 서류를 작성 해 달라는 무언의 부탁을 건넨다.

 

맨 첫 장에 놓인 종이의 여백 안에는 금색 테두리가 인쇄돼있다. 상단엔 큼지막하게 서약서라고 써져 있고 그 아래, 그 아래엔…….

 

혹시라도 마음이 변한 건 아니시겠죠?”

 

, 펜을 들고 그 말을 넘겨 들은 후, 천천히 서약서의 내용을 읽어 본다. 그 문서를 끝까지 다 읽고 나자 내 입구덩이는 말라 비틀어져 버린다.

 

표정이 심각하시군요. 혹시라도 서약서의 내용 때문에 그러신 건가요?”

 

난 담배를 꺼내어 한가치 핀다. 그리고 긴장한 목소리로 물어본다.

 

어떠한 이유로든 탈퇴가 불가라고? 이게 무슨 뜻인가요? 그리고 단체의 이름이 Suicide Syndrome이 맞습니까?”

 

, 맞아요. 저희 단체의 정식 명칭은 자살 신드롬. , 먼저 단체의 이름을 밝혔어야 귀하께서 그렇게 긴장하지 않으셨을 텐데 저로써는 첫 고객인 귀하에게 본의 아니게 두려움을 드리게 됐군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단체는 음지에 존속된 단체에선 꽤 규모가 크고 신뢰성이 있답니다. 그러니 서약서를 작성 해 주시죠.”

 

침을 꿀꺽 삼킨다. 그리고 연신 담배를 빨아들이며 과연 어떤 선택이 옳은 건지 가늠해 본다. 사이트에 접속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죽음과 관련이 돼 있을 거라곤 생각해 봤지만 안수마리가 정확하게 말해주지 않아 그저 흘러가는 대로 따라왔을 뿐인데 난 아직도 물어볼 것이 많다.

 

몇 가지만 물어보죠. 꼭 대답을 해주셔야만 할 겁니다. 그래야 이 펜을 들고 있는 제 손도 움직일 테니 말이죠. 하지만 지금처럼 빙빙 둘러서 대답을 하셨다간 이 종이를 찢어버리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러자 안수마리는 왼쪽 입 꼬리가 크게 올라간 채로 비소를 날린다.

 

뭐 좋습니다. 궁금한 것은 어느 정도 해소를 해 드릴 테니 마음껏 물어보시죠.”

 

도대체 자살 신드롬이라는 당신들의 단체는 무엇을 하는 곳이죠?”

 

아까 귀하께서는 불교의 윤회론을 어느 정도 믿는다고 말씀하셨죠?”

 

, 분명 그랬습니다.”

 

저희는 종교가 아닙니다. 이론으로써 가능한 것을 실제적으로 실행 가능한 단체지요.”

 

돌리지 말고 대답해 달라고 분명히 말했을 텐데!”

 

, 미안해요. 우리 단체는 전생과 환생, 그리고 내세를 믿고 있어요.”

 

그것과 당신들의 단체는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는 건데?!”

 

그건 강의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서약서를 작성해야지만 이해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제가 간단하게 설명 드리자면 온전한 죽음으로써 미래가 보장된 내세에 환생할 수 있게끔 만들어 주는 단체라는 것이죠.”

 

뭐요?! 그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리입니까?”

 

말이 안 된 다고만 생각하지 마세요. 눈에 보이는 것들만 꼭 현실이라고 인지하지 마시라구요. 귀하께서 지금처럼 하릴없이 되는 데로 인생을 보내다가 암에 걸려 죽거나 사고에 의해서 죽거나 인생을 비관해서 죽었다 쳐 보죠. 그럼 미래가 보장된 내세에서 태어날 확률이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하지만 확실한건 인간은 인간으로써 다시 태어난 다는 것. 그러나 아무런 목적도 없이 죽어 버린 채로 내세에서 캄보디아나 아프가니스탄의 불쌍한 꼬마아이로 태어난다면 얼마나 슬플까요.”

 

맙소사…….”

 

영화 원티드를 보셨죠. 모건 프리건이 명주실을 통해 암살할 타깃을 점지해 주지만 결국 그건 구라였고 치밀한 계획에 의해 구상 되었다는 것을. 그건 이론으로써도 불가능 한. 어차피 영화 자체가 허구지만 어쨌든, 안젤리나 졸리는 그것을 맹목적으로 믿었지요. 여기서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두 가지에요. 믿음을 가지세요. 그러나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맹목적인 믿음은 아닙니다. 절대 가능한 것. 현세에서 온전한 죽음을 통해 안정된 내세가 보장되는 것. 바로 저희 단체의 절대적인 신념이죠.”

 

세상이 꺼진 느낌. 아니. 내 뇌가 액체로 변해 바닥으로 흘러버리는 듯, 옳고 그름을 가릴 수가 없다. 내가 미친 건가, 아니면 이 여자가 미친 건가. 에스신드롬 사이트에 접속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느끼는 찝찝함이 이렇게 한 번에 터져버리다니, 도대체 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지 마세요. 지금 귀하께서 이곳을 나가신다면 인연은 끝이라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이곳을 나가는 순간 제가 장담하건데 5년 안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을 확률이 100%라구요. 차라리 시궁창과 같은 삶 대신 저희 단체의 일원이 되어 확실한 내세가 보장 될 때까지 후원을 받으면서 열심히 살다가 때가 되면 죽으세요.”

 

머릿속이 타래실을 꼬아놓은 듯 풀어지지 않은 채로 복잡하기만 하다. 담배는 이미 재가 되어있고 펜을 든 손은 어느새 서약서로 옮겨져 있다.

 

좋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물어볼게요. 도대체 저에게 이런 짓을 하는 목적이 뭡니까? 이건 어떤 혜택도 아니잖소.”

 

그러자 안수마리는 배꼽을 잡으며 깔깔 웃어댄다.

 

혜택? 귀하께서 지금까지 받은 걸 혜택이 아니라고 하신다면 도대체 어떤 게 혜택 이라는거죠? 설마 귀하에게 수억을 드려 인생 재역전을 시켜드릴 것이라고 상상했다면 큰 오산이라구요. 어떤 미친 사람들도 당신에겐 단돈 100원조차 공짜로 내밀어 주지 않아요. 하지만 저희 단체는 세상에선 알아주지 않을 당신의 생명을 소중히 여깁니다. 그것만으로도 큰 혜택이 아닌가요?”

 

분명 실내가 덥지는 않다. 그러나 이마에선 땀이 흘러내린다. 난 답답한 실내의 공기에 목 소매를 몇 번 털면서 그녀가 하는 말에 대해서 더 이상 반박하지 않는다.

 

제가 말씀드렸죠? 귀하는 D등급 이라구요. 살 수 있는 의지가 분명히 있는 분이시지만 어찌됐든 두 가지의 테스트를 통해 조건은 충족 되셨어요. 귀하의 의지로요. 그렇기에 이곳을 떠나봤자 득 될 건 하나도 없을 거예요. 협박이 아니라, 현실이 그렇게 만들어 줄 테니까요.”

 

깊은 한숨을 몇 차례 내쉬고 나서야 알았다고 대답한다. 떨리는 손으로 서약서에 이름과 서명을 한 후 그녀에게 건넨다.

 

안절부절 하는 것을 보아하니 아직도 결정을 못 내린 것 같군요. , 좋아요. 어차피 서약서 작성은 끝났고, 이제는 그 불안감을 완전히 해소 시켜 드릴 테니까요.”

 

그녀는 받아든 서류를 테이블 위로 탁탁 치며 가지런히 정리한다.

 

일어나세요. 이제 강의를 받으실 차례군요.”

 

 

-End-

똥광의영광의 최근 게시물

짱공일기장 인기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