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오브 스틸 (1)

NEOKIDS 작성일 13.06.20 23:5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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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오브 스틸 보고 개인적으로 이렇게 갔으면 어땠을까 싶어서 써보려는 습작임.......





맨 오브 스틸

크립톤
엘 가문의 조엘은 온몸에 느껴져 오는 땅의 미세한 진동에 걸음을 더욱 빨리 했다. 자신의 예측이 모두 맞아 떨어져 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시간이 없어져 간다는 것이기도 했다. 
엘의 후예들이 늘 입어왔던 금빛 갑주를 걸친 그의 손에는 크립토니안들의 모든 유전정보가 담겨 있는 ‘코텍스’가 들려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멸망을 앞둔 크립토니안들의 유일한 미래였다. 그는 지금 그것을 자신이 만든 또 다른 미래, 자신의 아들 칼엘와 함께 젊은 태양계 속에 존재하는 머나먼 어느 별로 보내려고 하는 중이었다. 
그런 그의 조급한 발걸음을 누군가가 막아섰다.
“자네도 느꼈겠지.”
같은 형태의 금빛 갑주. 그러나 가슴에는 다른 가문의 문장이 새겨져 있는 자. 조엘은 그를 잘 알고 있었다. 크립톤의 미래를 위해 함께 힘썼던 자, 그리고 지금은 그의 앞길을 막아서는 최대의 적. 조드 장군.
“우리가 그토록 지도자들에게 진언했던 멸망이 이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그래서 가야만 하네.”“코텍스를 가지고 어디로 가겠다는 건가.”
조드의 절도 있는 손짓에 그의 친위대원 병사들은 조엘을 둥그렇게 포위했다. 모두들 손에 암 소드를 장비하고 있었다. 
“그걸 어디로 보내려는 건지는 몰라도, 그 미래는 내게 필요하네. 크립토니안들의 역사를 다시 일으켜 세울 나, 조드 장군에게.”“자네에겐 넘길 수 없어.”“나와 자넨 같은 목표를 위해 손잡았던 것이 아닌가.”“적어도 자네가 변하기 전까지는 말이지. 조드.”
조엘은 팔에 달린 검을 들고 전투자세를 취한 채로 강렬한 적의의 눈빛을 조드에게 보냈다. 
“자넨 스스로 명예를 버렸어. 맘에 들지 않는 동족을 죽이고,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만 하려는 자 따위에게 협력한 기억은 없다.”“내가? 명예를 버렸다?”
조드는 눈을 부라렸다. 
“크립토니안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려는 나 조드 장군이, 명예를 버렸다고?”
갑자기 앞으로 튀어나간 조엘이 자신의 암 소드를 빠르게 뻗었지만 그 끝에 있는 건 조드가 아닌, 그를 보호하려던 친위대원 중의 한 명이었다. 빠르게 그것을 빼낸 조엘의 등 뒤로 친위대원들이 만든 벽이 그를 촘촘히 압박해 왔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이런 무의미한 싸움에 허비해야 한다는 것은 여간 안타까운 것이 아니었지만, 조엘은 그들 너머로 그가 준비해 놓은 것들에 다가가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팔의 갑주에서 뻗어 나온 암 소드로 짧고도 아름다운 궤적들을 그리면서. 
캡슐의 마지막 궤도 수정을 위해 콘솔을 조작하고 있던 조엘의 부인, 라라는 캡슐발사실의 문이 열리고 갑주가 피투성이로 변한 조엘의 모습을 보자마자 다급히 그의 곁으로 달려갔다.
“괜찮아요? 조엘?”“가슴......밑을 찔렸소......준비는?”“다 됐어요.”“서두릅시다....”
 갑주에는 조드의 친위대원들 피만 묻어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늑골 밑부분에 소드의 부러진 칼날이 반쯤 박혔고, 그것을 통해 조엘의 피가 계속 흘러 갑주를 적셨다. 조엘은 라라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품속에서 코텍스를 꺼내고는 그것을 칼엘의 몸 위에 이미 준비되어 있던 트랜스 장치 위에 올려놓았다. 기계는 이내 작동을 시작했다. 
조엘은 거친 숨을 내뱉으며 코텍스가 미립자 단위로 분해되어 칼엘의 몸으로 흡수되어가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칼엘은 그렇게, 크립토니안들의 수많은 유전샘플을 한 몸에 지닌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 순간조차 조엘에게는 너무나 아쉬운 시간이었다. 지각의 진동이 아까보다 더 심해져왔던 것이다. 시간의 계산이 맞다면, 이제 몇십 분 후 지각은 널을 뛰듯 들끓어 폭발하게 될 것이었고, 그 전에 캡슐을 발사해 궤도상보다 위로 올려놓아야 했다. 
이로써 자신들은 멸망하고, 새로운 희망 칼엘은 다른 종족들 틈에서 자신을 만들어가며 크립토니안의 역사를 이어갈 것이었다. 비록 그가 외로운 존재로 남는다 하더라도. 
그 이후의 모습을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 조엘과 라라에게는 큰 슬픔이었고, 그들은 아기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망막에 담으려는 듯 코텍스의 미립자들을 흡수하고 있는 칼엘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칼엘의 작은 사지가 꼬물대며 움직였고, 조그만 눈동자가 조엘과 라라를 코텍스의 미립자 흐름 사이로 두리번거리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 잠깐의 시간조차 허락할 수 없다는 듯, 캡슐 발사실의 문이 이내 박살이 나면서 조엘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은 대여섯 명 정도의 친위대원들과 조드가 나타나 조엘을 노려보았다. 조엘은 라라를 뒤로 물러서게 한 뒤, 자세를 다시 잡고 소드의 날을 번뜩였다. 일순간만.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벌어야 해. 자신의 다른 한 쪽 주먹에 쥔, ‘코덱’을 굳게 쥐고 그는 속으로 자신에게 외쳤다. 코덱스가 흡수되고 아이의 요람이 캡슐 속에 세팅될, 그 작은 순간만 견디면 되는 것이다. 
“자넨 끝까지 날 이해하지 못하고 있군.”
조드의 목소리가 무미건조하게 울렸다. 
“피차 마찬가지야.”“이것은 자네가 자초한 거야.”
조드의 손짓에 친위대원들은 다시 달려들었다. 조엘의 손에 동료들이 죽어나가는 광경을 봤음에도 그들의 몸짓은 공포는커녕 어떤 감정에도 지배되지 않은 기계처럼 달려 나갔다.
지각의 흔들림이 더 심해지는 것, 흡수과정이 끝난 칼엘을 담은 요람이 캡슐 속으로 이동하는 것과 조엘이 그들과 싸우기 위해 앞으로 나선 것은 동시였다. 다시 처절한 혈투가 벌어졌지만 조드는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건물의 사방이 뒤틀리고 제대로 서있기도 힘들 정도로 뒤흔들리는 와중에도, 친위대원들은 조엘에게 얻어터지면서 벽으로 날아가 쳐박히고 있었고, 조드는 자신이 보낸 병사들의 마지막 하나가 조엘에게 당하는 순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갑작스레 돌진해갔다. 갑주로 싸인 그의 발이 방금 한 놈을 쳐날려 빈틈을 보이는 조엘의 늑골 밑으로 날아가 조엘에게 박혀 부러진 소드 끝을 쳐넣었다.  
“크헉!!!!”
한됫박은 됨직한 피를 쏟으며 캡슐 밑까지 밀려나간 조엘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고통과 과다출혈로 희미해지려는 눈에 캡슐이 전부 준비를 끝낸 것이 보였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코덱을 캡슐의 콘솔 쪽으로 천천히 들어올렸다. 
조엘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깨달은 조드가 그를 막으려고 움찔했을 때는 이미 늦어있었다. 코덱 홀 속에 코덱이 완전히 고정된 것이었다. 이제 한 번만 더 힘을 주어 누르기만 하면 되는 찰나. 조엘은 그 코덱 위로 손을 뻗은 채, 조드를 노려보았다. 조드는 한 손을 내뻗은 채로 말했다. 
“지금 보낸다면, 넌 네 아들까지 내 손으로 죽이라고 하는 거다.”“오만한 조드여.”
피가 고인 조엘의 입에서 겨우 말이 새어나왔다. 
“이 아이는 네 손에 죽지 않을 것이다. 네가 만들려는 크립토니안의 미래도 함께 막아서게 될 거야.”
조엘의 손바닥이 코덱을 강하게 누르자 캡슐이 강한 진동을 하며 상승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지점까지 상승하면 캡슐은 초공간 도약을 통해 미리 입력된 위치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그 곳에는 아직 유전자적으로 자신들보다는 열등한, 그러나 자신들과 닮은 형태의 종족들이 살고 있었다. 그 곳을 향해 캡슐은 서서히 가속하며 허공으로 상승하고 있었다. 
“조엘!!!!!!!!!!!”
조드가 돌격해 오는 것에도 아랑곳없이 조엘은 떠나가는 캡슐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아들아. 우리의 모든 미래를, 너에게 주마. 너는 외로울 것이다. 고민할 것이다. 그러나, 언제든 어디서든, 너는 좋은 길을 만들어 내리라, 믿는다. 
조드의 암 소드가 조엘의 몸속에 깊숙이 박혔다. 격통이 조엘의 온 몸을 휩쓸었다. 조엘의 고개가 캡슐에서 조드로 향했다. 조엘은 조드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이제, 끝이라네.”
조엘의 평온한 눈을 보며 조드는 분노에 휩싸인 채 소릴 질러댔다. 
“으아아아악!!!!!!!!”
조드가 힘있게 뽑아낸 암 소드의 날이 조엘의 피를 바닥에 흩뿌렸다. 
그런 와중에도 이미 크립톤은 멸망의 길을 걷고 있었다. 지붕에서 부서진 조그만 조각들이 계속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조드는 망연자실하게 일어서서, 조엘에게 달려들어 우는 라라를 내려다보았다. 조드에게는 동지로써, 또한 크립톤의 미래를 같이 걱정하는 사람으로서 조금이나마 조엘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 남아있던 그 끈을 자신의 손으로 끊었다는 것에 대한 슬픔과 함께, 찌꺼기처럼 남아있던 모든 감정들은 사라져버렸다. 오로지 크립톤의 미래를 위해야 한다는 차가움만 남긴 채로, 그는 단서를 알고 있는 라라에게 거칠게 다가서서는 조드는 라라의 목덜미를 잡아 일으키면서 물었다. 
“코텍스를 어디로 보낸 건가?”“말하지 않겠어.”
라라가 노려보는 눈을 보며, 조드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각의 뒤틀림과 진동이 점점 더 심해지는 상황에서는 우주선에 올라탈 시간만 겨우 주어져 있을 뿐. 그는 라라를 내팽개쳐버리고 건물 밖으로 향하며 가지고 있던 통신기로 피오나에게 통신을 시작했다. 
“지시한 것은 준비되었는가.”“네. 지금 그 앞으로 와 있습니다.”
조드가 건물 밖으로 나서자, 바로 옆의 허공에 거대한 크립토니안의 우주선이 대기하고 있었다. 부하들을 시켜서 미리 탈취하라고 해놓은 특별한 우주선이었다. 그것을 올려다보며 조드는 미소를 지었다. 이것이 있는 한, 자신이 만들려는 미래는 아직 사라진 것이 아니었기에. 


라라는 충격을 입은 몸으로 바닥을 기어 아직 숨이 조금 붙어있는 조엘의 몸을 껴안고 어렵사리 앉았다. 이미 지각은 점점 부풀어 올라 그 속에 있는 것들을 상공으로 뿜어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몇 개의 산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주변의 건물들이 단숨에 그 폭발 속으로 휩쓸렸다. 인지조차 못한 채 죽어가는 크립토니안들의 마지막 광경을 바라보며 라라는 조엘에게 말했다. 
“우리의 미래가, 우리의 아들이 떠났어요, 조엘.”
조엘은 말 대신 떨리는 팔을 들어 마지막으로 라라의 손을 잡으며 라라를 마주보았다. 둘은 크립톤의 마지막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대규모의 폭발은 점점 조엘의 건물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찰나에 라라는 조엘의 머리를 강하게 부둥켜안았고, 그 순간 두 사람의 잔영은 바닥에서부터 치솟아 오는 마그마에 먹혀 가려졌다. 
크립톤의 내부 폭발이 융기하면서 행성의 모습은 짓눌리는 고무공처럼 크게 사방으로 일그러졌다. 내부로 잠시 응축되는 듯 싶었던 멸망의 힘은 순식간에 우주 공간의 전체면으로 되튕겨 나갔다. 행성은 자신의 시체조각들을 흩뿌리며 끝내 모든 것이 뿜어져 나오듯 폭발했고, 어마어마한 양의 부산물들은 인력을 잃어버린 채 자유속도로 공간을 질주했다. 
그 반탄력과 파편들은, 궤도상을 벗어나 칼엘의 캡슐을 겨우 따라잡기 시작했던 조드의 우주선에 심각한 상처를 입혔다. 조드의 우주선이 기우뚱거리며 손상을 입은 기체로 자세를 유지하려 애쓰는 동안, 칼엘의 캡슐은 그것을 방패삼아 하이퍼 드라이브를 가동시켰다. 초공간 도약이 가져오는 공간의 찢김과 함께, 캡슐은 머나먼 곳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크립토니안의 미래인, 아직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아기에게 삶을 주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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