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 하지만 사랑 5,6 (선희의 이야기)

근신희 작성일 15.02.09 18: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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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홀로 학교 앞 놀이터 근처에 있는 아파트 위를 올라갔다.

내가 한 말은 한 번도 여자에게 차여본 적이 없는 상우의 자존심에 엄청난 스크래치를 냈나보다.

 

나는 그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랑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실수였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상우를 선택한 것은 나였으니까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다.

 

나의 친했던 친구들은 상우를 만나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그를 만났다.

 

그가 먼저 나와 사귄다는 소문을 퍼트렸고, 나는 나도 모르게 그와 사귀고 있었다.

 

그 당시에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

 

자세하게 생각하기는 싫지만, 굉장히 낯설기 때문에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너무도 멀리 와버렸다.

 

“사... 살려줘.”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살려달라는 말.

 

인터넷에 나의 사진이 돌아다니게 된다는 것은 나에게 사형선고로 들렸고,

 

 나는 그 순간에 살고 싶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아름다운 사랑과 미래는 완전히 짓밟힌 꿈이 되어버렸다.

 

 그들은 수치심을 공포심으로 치환하여 나를 사선 끝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그들이 나에게 가하는 행위가 그들에게는 단순히 재미와 유흥일 뿐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공포심과는 반대로 그들은 나를 놀려 먹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곤충 체집통 안에 잡혀 버렸다.

 

자유로웠던 세상은 이제 나와는 분리된 공간이다.

 

그들은 나를 언제든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툭툭 건드릴 수도... 죽일 수도 있었다.

 

무조건 사람을 찔러 죽이고 한다는 것만이 살인을 한다는 것일까.

 

 손에 든 칼보다 혀에 문 칼이 훨씬 더 무섭다는 것을 나는 이른 나이에 깨달을 수 있었다.

 

인생은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라지만,

 

그런 깨달음은 정말... 없었으면 좋았을 종류의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란 무엇일까.

 

세상은 나를 구해줄 수 없다.

 

날개를 잃어버린 나비의 날개는 다시 생겨나지 않는다.

 

더이상 날 수 없고, 평생 바닥을 기어 다니게 될 것이다.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삶이 고등학교의 문턱에서 찾아왔다.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앞으로의 삶이 어떤 식으로 이어진다고 한들 의미가 없다고 느껴질 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의 최선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어느 누군가는 그 선택이 현명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 선택은 멍청한 짓이라고.

 

 태어난 것 그 자체로 소중한데... 그 인생을 한 번의 선택으로 버리는 것은 안 된다고.

 

앞으로 더 좋은 일이 있을 것이고, 지금의 시련은 시련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선택은 인간이 능동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일 테지만,

 

또 어떤 선택은 그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끔 강요되어진다.

 .

.

 

아마도 자살이란 것은 반은 능동적이고 반은 수동적인 행동이다.

 

 

 

 

 

수업종이 울리고, 상우와 다른 아이들이 교실로 간 사이... 나는 교실로 되돌아가지 않았다.

 

 

 

홀로 학교 앞 놀이터 근처에 있는 아파트 위를 올라갔다.

 

 

 

 

 

 

 

6.

 지극히 고요한 아파트단지 어딘가에서였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온다.

 

날씨가 꽤 따뜻한 시기인데, 그 바람이 차갑게 느껴지는 것은

 

 나의 의식이 감각계에 교란을 일으킨 탓인지도 모른다.

 

그 바람은 너무나도 서늘하고 날카로워서 마치 면도칼로

 

 내 얼굴 표면을 살살 긁어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옥상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주차된 차들이 보이고 그 사이로 어디론가 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주부, 뛰어노는 아이들, 벤치에 앉아 손을 잡고 있는 커플  따위가 보이는데... 그들은 모두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세상은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다.

.

.

 

 

단 내가 있는 공간만 제외하고 말이다.

 

 


 

짧은 인생일 것이다.

 

19살에 생을 마감하는 것은 진정 무리가 있다

 

. 지금 여기서 끝내는 것은

 

 앞으로의 나의 인생에 남은 무한한 가능성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은 아주 작은 것이라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산다고 한다.

 

그리고 그 작은 영향이 모이고 모여가면 세상이 움직인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내가 이 자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다는 것은

 

 내가 앞으로 만들어 내야만 하는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

 

아주 무책임한 종류의 것일 수도 있다.

 

의무를 져버린 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책임이 따르는 일이며,

 

그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의무’ 란 것이기 때문에 특히 그러하다.

 

 


 

하지만 의무란 것은 그것을 수행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특히 가혹하다.

 

 의무란 것은 ‘해야만 한다.’ 인 것인데, ‘해야만 하는데, 할 수가 없다.’ 는 결론에 이르게 되면

 

 그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이 없다.

 

인간의 생은 누구에게나 쉽게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나는 나에게 부여된 삶의 시간을 소중하게 사용해야만 하고,

 

 최소한 이 삶이 남에게 피해가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내가 지금 하려고 하는 이 행동은 분명 이 세계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 것이고,

 

그것은 결코 미미한 정도의 수준이 아닐 것이다.

.

.

  

이것은 분명하게 무책임한 짓이다.

어쩌면 엄청나게 멍청한 짓이었다.

.

.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불구덩이 밖에 있는 사람은 그 안이 얼마나 뜨거운지 모른다.

 

이해한다고 해도 상상으로 이해한 것일 뿐이다.

 

그것이 죽을 정도라는 것을 감히 생각해낼 수 없다.

 

계단에 올라올 때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옥상에서 꽤 시간이 지난 후에야 갑자기 생각이 들었다.

 


  

엄마...

 


  

엄마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내가 엄마에게 아주 무책임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미안해졌다.

 

 우리 엄마는 참으로 평범한 축에 속하는 인간이었다.

 

평범하게 대학을 졸업했고 평범한 남자와 결혼해서 평범한 가정을 일구고

 

 평범한 삶을 살아오셨다.

 

 물론 누군가는 아버지와의 이혼이 평범하지 않다며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그렇게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오로지 엄마의 사랑 안에서 아주 평안하게 자랐다.

 

 내가 아버지 없이 살면서도 내 삶이 평범했다고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지극히 엄마 덕분이었다.

 

 언제나 가정 안에 있었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을 도맡아서 해오셨다.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생각해 볼 때

 

우리 엄마는 참으로 대단한 일을 하셨다.

 

 


 

하지만 나의 선택으로 인하여 우리 가정은 달라질 것이다.

 

 우리 엄마는 더 이상 평범한 인간이 아니게 되어버릴 것이다.

 

 자식새끼가 어린 나이에 자살했다는 것이 우리 엄마에게 미칠 영향력은

 

 절대 평범한 것이 아닐 것이다.

 


 

아플 것이다. 상상하기 힘들만큼 아플 것이다.

 


 

그리고 파괴될 것이다.

 

그 어느 가정보다도 안정적이고 화목했던 우리 가정은 불안정을 넘어 절망으로 치달아 갈 것이다.

 

 

  

왜냐하면  엄마는 나를 너무나도 사랑해 주었고,

 

나도 엄마를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사랑하기 때문이다.

 

낮은 곳에서 떨어지는 것은 아프지 않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것이 뼈아픈 것이고,

 

 사랑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충격은 아마도 더 클 것이다.

 

나는 우리 가족이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충격을 심히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

.

.

.

.

 

하지만 미안해요. 엄마.

 

저는 그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에요.

 

알고 있는데... 알고 있는데... 더 이상은 살 수가 없어요.

 

 이미 헤어나올 수 없는 늪에 빠져버렸어요.

 

저에겐 이제...1%의 희망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미안해요.. 엄마.

 


.

.

  

제가 나쁜 아이에요.

 

 

 

  

그리고 나는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지극히 고요한 아파트단지 어딘가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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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에서도 연재중입니다~ 미리 더 보실 분은 클릭하세요. 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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