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100-003
1.
새들이 지저귀고, 햇살은 눈부시다. 물이 흐르는 소리, 바람이 나뭇잎을 스쳐가며 와사삭 하는 소리, 코끝엔 풀비린내가 가득하고, 시원한 공기가 피부를 자극한다.
이 모든 것들은 물론, 거짓이다.
이용 시간이 다 되었다는 안내와 함께, 나는 홀로그램 룸을 나선다. 지구가 이렇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만든, 도서관의 홀로그램 룸이다. 모든 것은 진짜 같다, 아니, 이 말은 어폐가 있다. 내가 존재한 때부터 나는 실제로 지구의 환경을 겪어본 적이 없으니까.
그럼 내게 주어진 ‘진짜’는 어떤 모습이냐 하면.
도서관을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면 온통 붉은 색이 가득 차 있다. 거대한 유리 돔의 가장 가장자리로 나가면 돔을 큰 쇳덩이 덮개로 덮을 수 있는 장치들의 골조들, 그 넓직한 틈 사이로, 붉은 산의 산맥들이 보인다. 어디를 보아도, 붉은 색 이외에는 눈에 띄는 것이 없고, 그나마 그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
항상 홀로그램이 끝나면 나는 이쪽으로 와서, 길게 늘어선 벤치들 중 하나에 앉아 그 붉은 산맥들을 바라본다. 아주 멀리 있지도 않지만 아주 가까이 있어보이지도 않는 그 산맥들을 바라보며, 내가 화성 이주민 3세라는 사실을 다시금 강하게 깨닫는다.
한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당신이 노오오력만 하면 지구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라고 쓰여 있는 홀로그램 전광판들이 명멸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돈 같은 건 얘기하지도 않은 채.
나처럼 그냥, 포기하면 편한데.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내일 할 일들을 생각해 본다. 오늘도 내일도, 항상 일은 많았다. 해도 해도 줄어들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급료는 겨우 먹고 살만큼 나온다. 그냥 포기한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다.
지구에 가려면 엄청나게 많은 돈이 필요하다. 먹고 살기도 빠듯한데. 그러면서 뭐가 ‘노오오력만 하면’ 이란 말이냐.
그런데도 사람들은 단순해서, 그것을 목표로 살아가기도 한다. 뭔가 잘만하면, 나는 남들보다 그래도 조금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 부모 세대들은 그게 어느 정도 가능했다. 어차피 다 가난했으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만 살아가면 집과 밥은 걱정 없었다. 하지만 우리 세대는 아니다.
그런 생각을 붙잡고 있어봤자, 답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피해자가 된 것만 같은 더러운 생각에 빠질 뿐이다.
내가 왜 피해자야? 내가 왜 그런 것들에 나를 괴롭혀야만 되는 거지?
나름 이 화성의 갑갑한 유리돔 안이라도, 나름 즐길 것은 많다고.
예를 들면, 네트워커가 그렇다. 내 집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한 칸짜리 원룸에는 얼마 안 되는 급료 중에서 쪼개고 모아 네트워커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다. 대여섯 개의 홀로그램 모니터와 최신형 네트워커들이 내 보물이다.
이 세상에선 나 같은 사람을 넷버그라고 한다. 설계된 미래 없이, 그저 데이터들 속에 파묻혀 이것저것 들춰보는 재미로 사는 사람들을. 한 1세기 전에는 이걸 해커라고도 했던 거 같은데. 즉, 낮에는 별 것 없는 월급쟁이 데이터 취급자, 밤에는 한없이 자유롭고 강한 최상급 실력의 넷버그. 그것이 내 정체라는 이야기다.
도서관과 벤치를 거치고 나면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와 자리에 앉는다. 머리에 네트워크 전용 홀로그래머스를 뒤집어쓰고 넷 상황을 연결한다. 모든 회선은 연결되어 있고, 모든 회선에는 방어벽이 있다. 하지만 넷버그에게 방어벽 같은 건 사실 소용이 없다.
이 세계에서 나는 완전히 자유인 것이다. 조그만 유리돔도 아닌, 어디까지든 뻗어갈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이런 넷버그들도 나름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정보들을 나누며 사회를 구축하고 있다.
나는 여유있게 내 아바타를 이용해 그들의 가상광장에 다가간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또 해묵은 토론들이 발동하는 광경을 본다.
지구행 회선에 관한 이야기들. 지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정보들은 분명 충분히 누적되어 있다며 지구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는 무리들과, 그런 건 다 뻥이고 화성 정부는 우릴 지구에 보내줄 생각이 없다는 증거들이 많다고 말하는 무리들이 치고받는 설전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다만 그들 사이에 확실한 정보는 하나 있다. 스티븐 제이라는, 실명까지 밝혀진 넷버그에 관련한 이야기.
이 친구의 발상은 지구로 간 사람이 있니 없니 떠드는데 그렇다면 지구와 연결된 회선에 접근해보면 될 것 아니냐, 하는 간단한 사실 확인의 차원이었다.
그는 설전의 와중에 그 말을 남겼고, 지구와 연결된 회선을 발견하는데 몰두했다. 지구와 연결된 회선이라는 것 자체도 접근하기 어려웠지만, 일단 나처럼 넷버그 중에서도 최상급에 속하는 사람이었던지라 어떻게 접근법을 찾아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게 제이에게는 재앙이 되었다. 접속하자마자 단번에 엄청난 공격성 정보가 그의 홀로그래머스를 강타했고, 그 자리에서 그의 머리는 과부화를 일으킨 홀로그래머스에 의해 박살이 났다는 것. 마치, 그래. 아주 옛날의 사형법 중에 전기의자라는 게 있는데, 바로 그 꼴처럼 되어버렸다는 거다.
스티븐 제이의 죽음은 공식으로 뉴스화 되지 않았을 뿐 넷버그들 사이에서는 이미 그의 신상과 함께 기정사실로 확인된 사고이다. 이 뉴스 때문에 넷버그들의 논란은 한층 가열된다.
정부가 지구에 보내줄 의향이 있다면 그런 짓을 해놓겠느냐, 그건 단지 방어벽의 일환일 뿐 지구 문제와는 상관이 없다 등등등. 사실 방어벽으로 인한 홀로그래미의 과부화는 언제든 있어온 일이지만, 그렇게 전기의자 꼴이 된 적은 거의 없었다. 홀로그래머스 안에도 정보처리 과부화로 인한 차단장치라는 보호막이 있기는 했으니까.
논란은 논란만을 낳을 뿐 해답을 제시해주지는 못했다. 스티븐 제이가 정보를 얻었다면 이런 건 생기지도 않을 것이었지만, 그의 죽음과 함께 논란은 쳇바퀴를 타기 시작했고, 그런 논란도 지금은 결론도 없을 뿐 어느 정도 유행이 지난 마당이라, 넷버그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은 거의 관심을 두지 않고 있는 이야기이다.
나로 말하자면, 그 논란이 일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그 주제 자체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다.
많은 돈이 있어야 갈 수 있다는 지구행이란 것에 관심을 두어봐야, 그림의 떡이라는 생각도 들고, 그 논란 자체가 어차피 답을 찾아내면 끝날 일인데 ‘죽어버릴까봐’ 아무도 손을 대고 있지 않고 말장난만 하고 있다는 비겁함이 역겨워서이다.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넷버그짓을 하면서부터 누구하고도 사회적인 관계를 가지려 하지 않는다는 게 내 성향인 탓이기도 하다. 어울리는 것도 싫은데, 말을 섞는다는 것 자체가 될 리가 없지.
그런 해묵은 꼰대같은 논란들의 곁을 스치던 중,
뭔가가 우연히 눈에 밟힌다.
그것은, 용량이 거의 없어보이는 첨부 데이터.
2.
나는 그 데이터에 천천히 다가간다. 확실히 그것은 그 지구 논란에 관련된 전자 가상광장의 영역 구석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누가 봐도, 그런 곳에서 어떤 사람들이 돈을 벌겠답시고 살포하고 다니는 광고성 배너 정도로 착각했을 만한 그런 크기의 것이지만, 그 파일의 데이터 영역 안에는 아무 것도 없는 그냥 명함크기 정도의 빈 종이 같은 모습. 나는 그 파일을 거두어 다시 자세히 본다.
아무것도 없는 듯 싶지만, 내가 만든 데이터 감지 프로그램에는 확실히 뭔가가 잡히고 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몰두한다. 처음에는 홀로그래미의 기본 데이터 처리용량 단계인 테라 단위로, 그 다음에는 그 한 단계 아래인 기가 단위로. 여기까지가 한계인 듯 데이터 자체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가 특정 데이터를 주목했을 때 작동되는 데이터 감지기는 여전히, 이 파일 영역 안에 데이터가 있다고 말한다.
구미가 당겨온다.
하드웨어를 조정하는 칩 속의 몇 가지 고정된 설정을 기술적으로 해체하면 내가 조정할 수 있는 기준점들이 나온다. 이 기준점들을 조정하면서 별도의 통로를 설정해 홀로그래미 루트에 연결한다. 이렇게 하면 이 가상광장에 연결되는 데이터들은 그대로 유지되면서, 특정 포인트에 맞춰 데이터 크기 한정을 극소의 단계까지 조정해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해서 그 명함크기만한 데이터의 거의 분자 수준까지 읽어낸다.
이런 실력들은 사실 회사에서도 자주 보여주지 않는다. 눈에 띄는 것도 싫고, 이런 실력 때문에 일거리가 늘어난다는 것도 싫기 때문에.
데이터 구성의 한땀 한땀을 거의 분자수준 단위로 떨어뜨려 읽어 나간다. 거기서 몇 개의 데이터가 나온다. 하지만 데이터 감지기는 더 많은 수의 양을 보고 있다. 메가급 단위로 처리한 건데도 더 많은 데이터가 있다는 것은, 1세기 전 쯤 컴퓨터라는, 데이터 정보처리의 단말기가 활성화되기 시작하던 때의 고대급 단위, 킬로바이트 급이라는 말이 된다.
나는 다시 그 수준까지 끌어내려, 꽤 오랜 시간을 거치고 나서야 그 속의 데이터들을 얻는다.
그 당시에는 파일 뒤에 확장명이라는 것이 붙어 있었다. 지금이야 데이터 내부에 내장형 헤드파트가 있어 그 파일의 성격에 맞는 연동을 프로그램들이 알아서 하게 되었지만, 예전엔 그런 헤드파트 기술이 없었고 이 확장명이라는 것을 통해 파일과 그에 연동되는 프로그램을 구분했던지라, 그 확장명이란 놈이 없으면 파일도 정체가 뭔지 도통 알 수 없는 상태에 빠진다는 것이다.
도대체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는지 원.
얻어낸 데이터들 역시 확장명을 달고 있다. JPG라는 것들이 잔뜩.
그걸 보려면 역시 고대급의 데이터 단말기가 필요하려나 싶은 순간, 다른 생각이 떠오른다.
누가 이걸 이런 데 떨어뜨려 놓은 거지?
나는 주변을 돌아본다. 혹시 이런 것들이 굉장히 많이 살포되어 있는 건가?
만일 이런 게 바닥에 널려있다면, 최상급 실력의 넷버그를 알아보기 위한 일종의 장난질일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정체를 드러낸 것이나 마찬가지 꼴이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아도 이런 류의 데이터는 내가 손에 들고 있는 단 한 장 뿐이다. 수많은 넷버그들이 가상광장을 오가고 있지만 나처럼 이런 걸 손에 들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런 게 아니라면?
또 다른 건, 누군가가 첨부하고 다니는 데이터의 부스러기가 일종의 현상으로 인해 떨어져 나갔다는 건데, 이건 가능성이 희박하다.
분명 그런 현상은 있지만 그것은 데이터의 부스러기로, 결과적으로는 어떠한 파트들에 속해있다는 걸 알만하다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건 고대급의 데이터다. 하나하나가 극소량이긴 해도, 독립적이라는 이야기다. 거기에 데이터 영역 안에 담겨 있다. 이 말은 이 데이터 자체는 어딘가의 부속이 아닌, 하나의 완결된 데이터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누군가가, 이걸 발견해주기를 바랬다는 것 정도?
문득, 이 가상광장 영역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지구와 관련된 논란이 있는 곳. 혹시 이 주제와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
나는 그 데이터를 저장영역 안에 조심스럽게 집어넣는다. 누군가가 내 행동들의 의미를 눈치채지 못했기를 바라면서, 또 미행이 붙지 않는가도 조심스럽게 로그기록들을 체크해 가면서. 미행을 한다면 나와 비슷한 로그 기록들이 뜨는 전자캐릭터가 있을 것이고, 데이터 감지기는 그런 것도 잡아낼 것이다.
하지만 데이터 감지기는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 미행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