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너머 어딘가
#2. 설렘
- 뭐야, 번호 따가고 왜 연락 없어?
- 1지워졌다. 대답해.
- 안녕하세요.
- 안녕해.
- 원래 말투가?
- 어? 어제 말놓기로 한거 아니였어?
- 맞네요, 근데 저 기억나세요?
- 어, 어리버리하던 학원강사 아님?
- 아 아닌 것 같은데.
- 너 맞어, 옆에서 잘난체 하는 애랑 같은 방에 있었잖아.
- 흠
- 오늘 볼래?
- 오늘이요?
- 어, 글구 너 말 놔, 짜증날라하네. 어젠 되게 센척하더니.
- 하하, 그래.
- 이따 서울대입구 6번 출구에서 보자. 밤 9시 어때?
- 좋아.
- 내가 먼저 연락했으니까 밥은 내가 먹고 싶은 거로 사라, 어제 니 술주정 다 들어줬으니까.
- 술주정?
- 아, 손아퍼, 만나서 얘기해. 이따 봐.
- 어, 어.
빠르다.
뭔가 뭔지 모르겠지만 순식간이다.
근데 떨린다.
아니 설레인다.
분명 내가 연락처를 받은 애는 세 명.
한 명은 자기가 유부녀라고 놀고 싶으면 연락하라고 번호를 먼저 줬었다.
가슴을 유난히 도드라지게 강조했던.
두 번째 여자는 그냥 친구따라 온 공시생.
걔나 나나 참 재미없는 얘기만 하면서 전화번호는 주고 받았다. 우린 여기서 만나면 안될 사이인 듯 하게 말이다.
다시 연락할 일은 없겠지만 비상용으로.
마지막으로 방 나오기 전에 가죽자켓입고 온 키큰 애.
키는 내 이상형이었지만 얼굴은 기억이 안난다.
그리고 걔한테 무슨 얘길 했는지도 기억이 안난다.
술은 안취했는데 기억이 안난다.
아, 술 취했네, 취했어.
하여튼 난 오늘 그 이름도 모른 여자애를 만났다.
잠깐, 조선족이라 장기 떼가는 그런 여자는 아니겠지?
아닐거야, 아니니까.
아닐 수도 그럴 수도.
에이, 이래나 저래나 인생 심심하고 재미없는데 가보자.
서울대입구역에서 별 일 있겠어.
동네가 조금 후진듯하면서도 사람 많고 하니 근데 왜 서울대입구역이지?
사당이나 잠실도 괜찮은데 많은데.
아 갑자기 생각이 많아진다.
참, 나 뭐 입고 가지.
정장?
너무 차려입고 가나?
세미 정장?
너무 신경쓴 티 나는데?
캐주얼?
애들같아 보이지 않읗까?
그냥 평소대로 입자, 그게 가장 나다운 거니까.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굳이 뭐 이렇게 신경써.
나 답지 않아, 나 답게 가자, 나 답게.
평일 보충 수업을 마치고 보니 벌써 8시 반.
2호선 지하철을 탔다.
저녁 8시인데도 사람이 많다.
삼삼오오 모여있는 회사원들.
업무가 끝났는데도 함께 다니는 걸 봐선 참 사이가 좋은 듯 하다.
아, 중간에 인상 쓰고 딴짓하는 거 보니 상사랑 집이 같은 방향이라 잡힌거구나.
학원이나 회사나 윗사람 눈치보는 건 똑같군.
사람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서울역입구다.
지하철을 내리면서 가슴이 두근대긴 참 오랜만이다.
얼굴도 잘 기억안나고 이름도 모르고 그냥 톡 한 번 온 사인데.
어떻게 인사하지?
이렇게 손을 들어 인사할까?
너무 친한 척하는 것 같은데?
고개 숙여 인사하는건?
학부모를 상대하는것 같잖아.
아씨, 올 시간이 됐는데... 참 난감하네.
그러고보니 카톡 프사에 얼굴도 없어서 누군지도 모르는데 나도 참 깝깝하다.
이제 오분 남았다.
후우 자꾸 한숨만 나온다.
무슨 말을 하지?
아 자꾸 목이 탄다.
이거 뭐 수업 시강할 때 보다 더 긴장되네.
왜 그래, 김선수.
너 선수한다며, 선수할거라며 쫄지마, 쫄지마.
어, 벌써 9시다.
그러고보니 저 여자 아까부터 서있었는데 저 사람인가?
그녀에게 다가가는데 한 남자가 그 여자를 데리고 간다.
개망신 당할 뻔 했네.
그럼 저 여잔가?
택시타네.
뭐야, 벌써 십분이 지났는데 왜 안와.
전화해볼까?
전화해서 뭐라고 하지?
어제 나이트에서 만난 누군데요, 이래야하나.
아, 학부모 전화멘트 외엔 머릿 속에 생각나는게 하나 없네.
젠장할.
어이, 어리버리.
응?
너 말야, 너.
그녀가 왔다.
이름도 모르는 키는 꽤 컸던 가죽자켓, 그 여자다.
2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