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소설) 홀로 선 창가에서

백두사이다 작성일 18.02.15 11:4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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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선 창가에서 

 

 

다니던 직장을 잃었다.

회사가 없어지지도 않았고 명예롭게 퇴직당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난 직장을 잃었다.

무려 26년간을 늘 한결같이 일했는데 하루아침에 내 자리를 잃었다.

그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주변인들의 말에 위로 아닌 위로를 받으며 말이다.

내가 기관사가 된 것은 우연한 일은 아니었다.

학교를 가거나 학원을 갈 때면 이용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지하철뿐이었다.

내게 버스는 시간의 사치였고 택시는 돈의 사치였다.

난 창밖의 풍경보단 눈앞의 책을 봐야했고 정시정각에 도착하고 출발하는 지하철만이 어두컴컴한 내 앞날을 조금이나마 제 자리에 올려놔줄수 있을 것 같았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하라는 대로만 생활했으니.

중학교를 거치고 고등학교를 지나도 여전히 내 삶은 막막했고 답답했다.

그리고 늘 그렇듯 시간을 흘러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수능날을 맞이했다.

수능시간은 지하철 시간만큼이나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순서에 맞춰 정확하게 끝이 났다.

학원에서 가채점한 내 점수는 희망하는 대학과는 거리가 너무도 멀었다.

“따뜻한 남쪽나라에나 가능한 점수다.”

따뜻한 남쪽나라에 갈꺼냐는 우습지도 않은 농담이 귓가를 때렸다.

때렸다, 진짜 때리고 싶었다.

나 말고도 수십 수백 수천 명의 아이들이 원치 않은 대학을 가야하는데 그걸 농담이라고 던지는 그 선생을 때리고 싶었고 그 정도밖에 안 되는 나를 때리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두컴컴한 지하도를 가다 문득 한강이 보고 싶었다.

이유는 없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 좀 좋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강바람을 쐰 기억이 없었다.

아니 있었는데 기억나지 못하는지도.

그렇게 하염없이 걷고 또 걸어 반포대교에 다다랐다.

강바람은 실로 차갑고 매서웠다.

달빛은 무척이나 반짝였지만 날카로웠고 섬뜩했다.

귀가 아려올정도로 몰아치는 바람에 잠시나마 삶을 내려놓자는 실낱같은 의지도 두꺼운 잠바 속으로 집어넣은 채 지하철에 올랐다.

지하철이 움직이고 눈 밖의 한강은 예뻤다.

그리고 좋았다.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무척 무거웠지만 가야한다고 다독이며 시간 주변을 맴돌다 지하철 막차시간을 빌미로 집으로 향했다.

부모님은 자고 있었다.

수능날 미역국을 끓인 게 못내 미안했는지 그게 혹은 자신 때문에 시험을 망친 건 아닌지 그 심란한 마음을 잠으로 피한 듯 했다. 내가 강으로 피했듯이.

집안은 조용했고 주변은 서늘했다.

그렇게 하루를 마쳤다.

 

다음날 아침 학교를 향하던 내게 승무원 모집이란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소정의 시험만 보면 그리고 자격증을 취득한다면 된다고 했다.

대학교가 전부인양 떠들던 진로담당선생님이 생각이 났다.

나쁜 년, 다른 길도 있었는데.

나는 그 길로 역무소에 가서 시험을 물어보고 자격조건을 물어봤다.

자격조건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학력 문제가 아니었다.

신체문제도 아니었다.

나이에 따른 군대 문제가 있었다.

그는 내게 군대에서 자격증을 따면 더 쉽게 들어올 수 있다는 귀띔을 해주었다.

그리고 3년 후 나는 승무원이 되고 뒤이어 차장이 되고 정말 기관사가 되었다.

그게 26년 동안의 나의 삶이었다.

내가 직장을 잃은 건 불과 몇 달 전이다.

평소처럼 지하철을 몰고 답답한 어둠에 한줌의 라이트를 비추며 노선을 돌았다.

왕십리를 돌고 을지로를 돌고 김포를 돌았다.

하루 스물 네 시간이 도는 것처럼 한 쪽으로 돌고 또 돌았다.

얼마나 돌았을까, 정신이 나갔다.

자꾸 귓가에 삐익 삐익 대는 소리가 울렸다.

공황장애의 초기라고 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첫 출발지 방화에서 고등학생의 마지막을 보았다.

시발. 열차의 시발이 내 정신의 시발이 되었다.

며칠 간 충격으로 회사에서 병가를 내주었다.

그게 병가였는지 조사를 위한 과정이었는지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지하철 자살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나는 기관사였고 목격자였고 피의자였다.

달리는 기관차로 뛰어든 그 학생의 순간적인 후회마저도 용납하지 않는 그 성실한 지하철은 그렇게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로부터 한 달 후 다시 차장으로 돌아왔다.

기관사가 아닌 차장. 지하철 맨 뒤에서 안내 방송을 하는 차장.

나는 기관사였는데, 돌아오니 차장이었다.

각 역에서 주어진 시간과 장소에서 동일한 안내 방송을 해댔다.

하루에 백번도 넘게 말했다. 어쩌면 천 번인지도 모른다. 막상 내가 몇 번을 말했는지 세어본적은 없으니까.

또 다시 귀에서 삐익 삐익 경고음이 들렸다.

다시 병원을 찾았다. 쉬라고 한다.

쉬고 싶었다.

답답한 지하 그늘 아래서 혼자 앞을 보는 게 싫었고 혼자 있을게 싫었다.

친구와 말하고 싶었고 지하철 안에서 떠드는 이들과 함께 숨 쉬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바깥구경이 하고 싶어 타고 싶던 버스를 비싸지만 편하게 다닐 수 있는 택시를 이용할 수 없는 것만큼 내게 큰 사치였다.

나는 그냥 기계적인 기계에 맞춘 기계인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얼마 후 회사는 내게 명예퇴직을 권했다.

명예롭지 않은데 명예퇴직이라니 나는 거부했다.

거부하고 도리어 회사를 상대로 문제를 제기했다.

회사는 웃었다. 내 동료는 웃지 않았고 승객들도 웃지 않았지만 회사는 웃었다.

정신병자의 헛소리라며 웃었다.

나는 슬펐지만 슬플 수 없었고 울고 싶었지만 울 수 없었다.

몇 차례의 업무 경고를 받고 나는 자연스럽게 지하철에 내렸다.

내가 내려야 할 역이 아님에도 내렸다.

기관사로서도 차장으로서도 아닌 나이 많은 그리고 정신병이 있는 승무원으로서 지하철에서 영영 내려야만 했다.

얼마가 지났을까 문득 아내에게 공기 좋은 곳에 살자고 했다.

서울을 떠나 살자고 했다. 아내는 서울이 아니면 싫다고 했고 교통편이 나쁘면 싫다고 했다.

나도 싫다고 했다. 다 싫다고 했다. 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있을게 없냐고 싫다고 했다.

아내는 서럽다며 울었고 나는 역시나 울어야 할 타이밍을 모른 채 무뚝뚝하게 집을 나섰다.

1호선을 탔다.

지하철은 온양온천역으로 갔다.

철로 위로 깜깜한 어둠과 밝은 빛이 생동했다.

그 동안 잊고 지냈던 어두컴컴한 지하철이 지하가 아닌 육상에서 싱그럽게 내달리고 있었다. 

 

 

관련 키워드 : 퇴직, 기관사,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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