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너머 어딘가 #8 돌

백두사이다 작성일 17.09.21 22:5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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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사랑을 나눴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세 번.

사랑을 나누고 날 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가슴 속 궁금증을 물었다.

혹시 유부녀?

뭐?

아니 밤에 집에 갔다가 아침에 그것도 일찍 아니고 10시에 나온다고 하니까.

너도 참. 

아침 일찍 일어나는게 얼마나 힘든데.

아니 그건 모르는게 아니지만 너 출근 안해?

출근 하지.

그럼 무슨 일 하는데?

헤어디자이너

그래?

왜?

아니 헤어디자이너들은 대부분은 화려하던데 넌 너무 수수해서.

난 튀는 거 별로 안좋아해.

튀는 걸 떠나서 옷이 좀 수수한 것 같기도, 아니구나. 참. 가죽잠바 큭큭

뭐야.

아니 가죽잠바가 인상에 강했어.

그 잠바 좋아, 옷도 따뜻한데다가 뭔가 쎄보이잖아.

쎄보이고 싶었어?

뭐 꼭 그렇다기보단 쉽게 보이고 싶지 않았어.

그런거였어?

응, 나이트 오면 그리고 내 직업 얘기하면 다들 쉽게 보니까. 그게 싫었어.

요즘도 그런거 따지나?

없다곤 할 수 없을 걸

여튼 뭐 그건 중요한 거 아니니까.

그럼 지금 남친은 있어?

어.

어?

어, 있어.

정말? 그런데 나랑 이래도 괜찮아?

뭐 걔도 이러고 있지 않을까?

아니 그건 좀 그렇지 않냐?

뭐가?

그럼 서로 신뢰하지 않는다는거 아니야?

꼭 육체적 사랑이 한 사람에게 국한되는 것이 신뢰라고 생각하지 않아.

우와.

왜?

아니, 난 그런 생각 못해봤거든.

그래서 싫어?

아니, 싫은 건 아닌데 또 하나의 숙제가 생긴 듯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난 사실 오늘 나랑 밤새 있어줘서 나랑 연인으로 발전할 수 있나라고 생각해 봤거든

연인? 나이트에서 만나서?

왜 그렇게 놀라.

아니, 그냥 너도 나도 즐기려고 만나서 연인으로 발전한다는 생각이 너무 순진해서.

순진하다고? 우리 사랑도 나눴잖아.

그건 중요치 않아. 그건 그냥 몸이 원했던거고 너도 나도 서로에 대해서 잘 모르고, 지금 기분에 그런 생각이 아닐까 싶어.

은근히 냉철한데.

냉철한게 아니라 지금 상황이 그렇잖아. 내가 남친이 없었다면 사귀자고 했을거아냐?

아마도.

그럼 넌 아웃이야, 난 애인이 만들고 싶었던게 아니야. 그냥 이 순간을 즐기고 싶을 뿐이지.

도대체 난 널 모르겠다.

알려고 하지마, 그러려고 만난 거 아니니까.

그래.

나 갈래.

지금 새벽 4시야, 그냥 자고 가지?

아니, 더 같이 있다간 너가 오해할 것 같은데.

아냐, 안해. 

내가 별루야, 나 갈께.

연락해도 될까?

해, 너가 진지하게 생각지 않으면 난 너가 좋으니까.

그래.

그녀가 방을 나갔다.

또 혼자서 방을 지킨다.

오늘은 자기 위안을 떠나서 흩어진 내 정신을 다잡는다.

유부녀는 아니지만 남자친구가 있다.

근데 사랑을 나누는 건 좋다고 한다.

단 연인으로 발전할 생각은 없다.

어쩌면 내가 나이트에서 만나고 싶어하는 그 이상적인 파트너를 만났다.

그런데 영 기분이 찝찝하다.

오늘도 잠이 쉬이 오지 않는다.

알람이 울려서야 간신히 눈을 떴다.

아, 이런 집에 들려서 수업 준비를 하고 가야하는데.

부랴부랴 씻고 방을 나섰다.

한참을 걷다보니 발에 뭔가 걸리는 기분이 들었다.

뭐지? 

신발을 벗어 속안을 털었으나 나오는 건 꼬릿한 발냄새뿐.

다시 신발을 신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서 수업 교재와 오늘 수업할 내용에 대한 자료를 찾았다.

그리고 학원에 가서 내용을 체크하고 부교재로 쓸 내용을 복사했다.

생각보다 내용 파악과 수업 준비 정리되어 늦은 점심을 먹으러 내려갔다.

오후 2시반, 역시 학원가 근처도 평화로웠다.

길거리엔 학부모 외에 학생들은 보이지 않았다.

저녁이면 수 많은 자동차와 학생들이 거짓말처럼 나타나는 이 신기한 공간.

제육덥밥을 먹으며 어제 새벽을 떠오렸다.

연락해볼까?

남자친구란 사람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난 심심했다, 아니 외로웠다.

그냥 친구처럼 연락하자, 양심에 걸리지 않게.

- 일해?

- 아직, 손님이 없네.

- 어제 잘 들어갔어?

- 응, 넌 역시나 잘 들어갔냐는 연락은 안하더라. 매너 없어.

- 미안, 내가 습관이 안되서.

- 너 여자친구들 사귀었다면서 은근히 매너가 없네.

- 여자친구한테는 잘해.

- 그럼 난 뭐야?

- 넌 여자사람이지. 

- 참나. 어제 새벽엔 애인이고 뭐고 하더니 다 뻥이구만

- 인생 뭐 있냐.

- 어이구

- 나 그냥 너랑 친구처럼 만날까 해

- 그러시던지

- 근데 너 나랑 자는 거 괜찮아?

- 뭐가?

- 진짜 처음에 했던 말 유효하냐고?

- 뭐 하고 싶은 거 하라고?

- 응

- 그게 뭐 어때서 서로 실수만 안하면야.

- 내가 참 어떤 액션을 취해야할지.

- 넌 그냥 너 하고 싶은대로 하고, 나도 나 하고 싶은대로 하면 돼. 복잡하게 생각할꺼면 안만나는거고.

- 어, 그래.

- 너가 전에 물어본게 나 왜 만나냐고 했지?

- 응,

- 나 있는 그대로를 보여줘도 내 주변 누구에게도 나란 사람에 대해 얘기할 수 없어서야.

-

- 나한테 기대도 없고 그냥 나 그대로 살고 있으니까 잠깐 동안이라도

- 그렇구나

- 나 손아파

- 어, 그래 오늘 열심히 쓴다했다.

- 또 연락할께. 참 연락 피해야 하는 시간은 없어?

- 얘가 본격적으로 연락하려나보네

- 뭐야? 하면 안돼?

- 돼, 그리고 딱히 시간 가릴 필요 없어.

- 정말?

- 응, 그냥 친군데 뭘 

- 맞아, 친구지. 쫌 진한 친구

- 뭐래

- 알겠어, 수고.

어쩌면 그녀의 말대로 나도 그녀도 아무런 기대없이 그냥 본모습에 충실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나에게 솔직하다면, 그녀에게 내 본모습을 그대로 보여도 된다면.

가슴 한 쪽 구석에 윤리라는 녀석이 남친의 존재를 잊어주기만 한다면 더 할 나이 없겠지만 말이다.

학원으로 올라가는데 또 다시 신발에 뭔가 들어간 듯 하다.

신발을 다시 탈탈 털어보니 작은 돌이 툭 하고 떨어져 나왔다.

발이 한결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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