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니 이벤트] 버스안의 그 누나의 샴푸향

씨씨케이 작성일 20.09.01 02:34:49 수정일 20.09.01 03: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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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도 더 지난 지금도 그 날의 샴푸향 기억난다. 

그 날의 햇살 바람 향기 그리고 그 누나.


 

시골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시골에서 자랐던 나는 읍내에 있는 하나 밖에 없는 인문계 남고를 다녔다. 읍내에는 하나밖에 없는 인문계 여고도 하나 있었다. 읍내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았던 탓에 버스를 타고 긴 통학시간을 가질수 밖에 없었다.

등교시간이 8시반. 그 시간 안에 도착하려면 7시 15분차를 타야한다. 시골인 탓에 배차 간격이 제법 되서 다음차는 7시45분차다.


 

고1 그리고 6월 어느 아침.

큰일이다. 어무니가 안깨우시고 들에 일을 가셨다. 

허겁지겁 씻지도 않고 겨우 교복만 입은채버스를 타러 뛰어갔으나 버스는 이미 가버린 후다. 그리고 타게된 7시 45분차..

버스 창문 넘어 흘러가는 구름을 잠 덜깬 표정으로 멍하니 바라보며 버스 손잡이에 기댄채 버스는 정류장 하나 하나 서며 그렇게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선 어느 정류장.

 

여고생이다. 

 

명찰색이 2학년. 심장이 멎는듯하다.

호흡이 멎고 심장은 요동쳤을지도 모르겠다.

 

허벅지 중간쯤 내려와있는 교복끝자락

 

너무 타이트하지도 너무 헐렁하지도 않게 적당히 작은 몸에 달라붙어있는 블라우스

 

화려하지만 절제된듯 메여 있던 빨간색 넥타이

 

그리고 하얀 얼굴에 턱선 까지오는 단발, 오똑한 코, 고양이눈..빨간 입술..

 

그때부터 내 좌우명이 시작 되었는지 모르겠다.

검이불루 화이불치.

그날 그이후에 지각해서 몇대를 맞았는지 뭘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니 기억이 날 수가 없다.


 

다음날부터 당연히 7시 45분차를 정류장에서 7시10분부터 기다린다.

7시 15분차가 방금 지나간다. 잘가라 꿈도 희망도 없는 쇠떵이로 만든 버스여.

더 기다려 7시 45분 차가 오신다. 처음이다. 광채가 난다. 비브라늄으로 만든 버스에 탔다. 기사님 인상이 좋으시다.  어제누나가 서있던 자리 옆에 자리했다.

버스는 느릇느릿 달려 이윽고 누나의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어제보다 더 이상적인 모습으로 누나가 탄다. 누나가 내 옆에 서서 버스 손잡이를 잡는다. 교복을 입고있어서 짱공유에 누가될까 더이상의 설명이 더해지면 안될거같다. 라인, 볼륨, 테두리, 끝 선, 더 붉어진 빨간 입술, 그리고 살짝 열려있는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에 날려 은은히 풍겨오는 숨쉬기 편한..그어떤..샴푸향.


 

너무 힐끔댔나보다. 이따금씩 눈이 마주친다.

가슴이 또 멎었다 뛰었다 반복된다. 


 

그렇게 한 달을 지각을 했다. 담임한테 계속 맞긴했을건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맞이한 여름방학. 여름방학 좃같다. 보충수업 일주일 깔짝하고 학교에 가지 않는다. 공교육 좃같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 동네 날라리 형의 꼬득임에 친구들과 동네 뒷동산 언덕에서 난생 처음 소주를 마시게 됐다. 조금 있다가형 여자친구랑 여자친구의 친구들 온다는 말에..


 

먼 발치서 세 명의 여자들이 걸어온다. 취기 때문인지 자꾸 그 샴푸향이 난다.

 

누나다!!

 

누나가 형 옆에 앉는다. 내마음도 내려앉는다.

"어? 나 쟤 알아."

누나가 나를 보며 말을 했다.

"안녕하세요. 누나. 저 @#/@₩$.."

난 자꾸 말을 전다.

기억도 나지 않는다.


 

술에 취해 어렴풋이 기억나는건 누나의 입술앞에 시커멓고 빻은 얼굴의 동네형이 있었다는것 정도.


 

이렇게 이렇게 내 고1 짝사랑은 끝이 났다.


 


 


 

장범준의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거야'를 듣고 그 누나가 스쳐가듯 생각났던 애 둘딸린 유부남 얘기였습니다.


 

스물두살 대학생 때, 부평 지하상가 옷가게에서 우연히 그 누나를 만나서 그이후 얘기까지 원래 쓸라다가 핸드폰으로 쓰는 탓에 엄지손가락 끝이 나갈거 같아서 반응보고 쓰겠습니다.


 

맞춤범 뛰어쓰기가 개발 새발입니다. 이해해주시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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